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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I 부여/II 부여 왕조

금와왕(金蛙王) - 부여 금와왕 (재위년 BC60년경~BC20년경) :: 부여왕 - 3

금와왕(金蛙王) - 부여 금와왕 (재위년 BC60년경~BC20년경) :: 부여왕 - 3



부여 금와왕(金蛙王)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여 금와왕(金蛙王) 


부여의 3번째 왕

- 재위 : BC60년경~BC20년경

- 왕호 : 금와왕(金蛙王)

- 이름 : 해금와(解金蛙)

- 아비 : 해부루왕

- 처    : 유화부인

- 아들 : 대소(帶素), 추모(鄒牟) 外 5명의 아들


단군조선이 기원전 238년경에 멸망으로 해체되면서 여러 부여족 계열의 나라가 세워졌는데 부여족이 세운나라로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北夫餘), 해부루와 금와가 세운 동부여(東夫餘), 추모왕이 세운 졸본부여(卒本夫餘)가 있다.



  부여 금와왕(金蛙王)의 탄생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하루는 해부루가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렀을때 그곳에 있던 큰바위를 보고 말이 눈물을 자꾸만흘려 기이하게 생각하여, 바위를 굴려보았더니 금빛이 나는 개구리모양의 어린아이가 발견되었다. 해부루가 기뻐하며 '하늘이 내린 아들'이라며 아들로 삼았다. 이가 곧 금와왕이다.



  부여 금와왕(金蛙王)의 결혼 - 유화부인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버려져있는 한여인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하백(河伯)의 딸 유화부인(柳花)이다.

유화를 데려다가 방에 가두었더니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훗날 고구려의 시조가 되는 추모왕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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