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전경(大巡典經) 초판 평역(平譯)

^___^ 2020. 6. 20. 19:49

평역 대 순 전 경

平譯 大 巡 典 經

 

대순전경 초판본(大巡典經 初版本) 원문(原文)과 평역(平譯)

 

 

大巡典經 序

大明은 无光하고 大音은 无聲하니

오직 无光의 光이라야 能히 三元을 通亮(통량)하고

无聲의 聲이라야 能히 天地를 □□(감탕)하며

神人은 无功하고 至德은 无名하니

오직 无功의 功이라야 能히 宇宙를 宰正하고

无名의 名이라야 能히 萬化를調理하나니

생각건데 甑山先生께서 三元에 大巡하사 모든 先天의 謬機(습기)를 革除하시고

宇宙를 砧杵(침저)하사 後天의 度數를 裁正하시고 神明公事를 行하사

萬古의 원을 解하시고 埋火□克(거극)하사 相生의 道를 闡明(천명)하사

이로써 造化仙境의 元基를 奠定하시되 天下는 知치 못하고 覺치 못하니 非他라.

 

三元大巡의 光은 곧 无光의 光이오, 宇宙砧杵의 聲은 곧 无聲의 聲임으로

天下의 視聽에 逸한 所以이며 萬古解寃의 功은 곧 无功의 功이오,

相生大道의 名은 곧 无名의 名이므로 天下의 言思에 絶한 所以이니

視聽에 逸하고 言思에 絶하였음이 오직 先生의 神聖하신 功化의 象徵이라.

이에 視廳의 逸한 곳에서 萬一의 視聽을 求하며

言思의 絶한 곳에서 萬一의 言思를 구하여 이로써 一心大衆의 歸依方向을 啓導하며

造化仙境의 工作指針을 提供하려 함이 大巡典經을 作한 所以로다.

 

嗚呼라, 典經의 作을 어찌 容易히 云謂하리요.

蕩蕩莫名의 大巡醫世의 理想을 오직 視聽言思의 圈外에서 淺見薄識으로

그 眞諦妙義를 □明(양명)하기에 庶幾(서기)를 말하기 어려우며

또한 數十載의 下에서 數十載의 前을 講明하기가 더욱 어려울지라.

 

그러나 性命을 攻함에 毫末의 耿芒(경망)을 捕捉하면 大光明이 따라 열리며

科學을 治함에 基本의 理法을 透得(투득)하면 全問題가 따라 풀리나니

三元衆理와 隱顯萬象이 모두 整然한 秩序의 體系를 떠나지 못하는 까닭이라.

 

이에 先生의 巡遊하시던 地帶를 踏査하고 親灸 從徒를 歷訪하며

또 先生의 在世時에 知面을 有한 樵□漁老(초수어로)를 追拍(추박)하여

모든 法言聖蹟을 蒐輯(수집)하기에 全力을 集主한바 六年의 功을 積한 然後에

今日에 至하여 비로소 成編을 보게 되었으니

九年公事와 一代垂訓에 對해서는 實로 恒河一沙에 不過하여

이로써 大巡醫世의 理想의 周延內包를 膾列無漏함에는 至치못하였으나

此로써 无光에서 耿芒을 捕捉하며 无聲에서 微振을 譜符(보부)하며

无功에서 化跡(화적)을 追求하며 无名에서 隱諦(은제)를 發摘(발적)하는 대로

足히 그 基準標點을 作할 수 있을 것을 確信하는 바이다.

 

十三分章에 簡詳(간상)이 不一하니 異蹟과 治病은 蒐輯된 材料가 極多하나

明確한 意義를 缺한 것은 此를 省略하였으며

天地公事는 그 材料를 充分히 蒐集 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임의 蒐集된 者 中에도 그 意義의 明瞭를 缺한 者가

不少함은 遺憾을 不勝 하는 바이라.

그러나 十三分章이 서로 脈絡이 關聯하였으니 引相對照하여 潛心推究하면

旨意의 □槪(편개)를 探索하기가 不難할 줄 믿노라.

己巳[1929年] 三月 旣望(기망)[陰16日]에 后學 李祥昊는 謹序하노라.

 

평역:

큰 밝음(大明)은 빛없고(無光) 큰 음파(大音)는 소리없나니(無聲)

오직 빛없는 빛(無光之光)이라야 능(能)히 삼원(三元)을 뚫어 밝히고(通亮)

소리없는 소리(無聲之聲)라야 능히 천지(天地)를 뒤흔들며

신인(神人)은 공없고(無功) 지덕(至德)은 이름없나니(無名)

오직 공없는 공(無功之功)이라야 능히 우주(宇宙)를 고쳐 바루고(宰正)

이름없는 이름(無名之名)이라야 능히 만화(萬化)를 골라 다스리는지라(調理)

 

생각컨대 증산선생(甑山先生)께서 삼원(三元)에 대순(大巡)하여

모든 선천(先天)의 그른 기틀(謬機)을 뜯어 없애시고(革除)

우주를 다듬질하여 후천(後天)의 도수(度數)를 재정(裁定)하시고

신명공사(神明公事)를 행(行)하여 만고(萬古)의 원(寃)을 풀으시고

불을 묻어(埋) 극(剋)을 제(除)하여 상생(相生)의 도(道)를 드러내 밝히사(闡明)

써 조화선경(造化仙境)의 밑터(元基)를 닦아 정(定)하시되

천하(天下)는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다름아니라 삼원에 대순하는 빛은 곧 빛없는 빛이요

우주를 다듬질하는 소리는 곧 소리없는 소리이므로

천하의 보들음(視聽)에 빠진 까닭이며

만고해원(萬古解寃)의 공(功)은 곧 공없는 공이요,

상생대도(相生大道)의 이름은 곧 이름없는 이름(無名之名)이므로

천하의 마생각(言思)에 끊어진 까닭이니 보들음에 빠졌고 마생각에 끊어졌음이

오직 선생의 신성(神聖)하신 공화(功化)의 상징(象徵)이라.

 

이에 보들음의 빠진 곳에서 만일(萬一)의 보들음을 구하여

마생각에 끊어진 곳에서 만일의 마생각을 구(求)하여

써 일심대중(一心大衆)의 귀의방향(歸依方向)을 틔워

인도(啓導)하며 조화선경의 공작지침(工作指針)을 제공(提供)하려 함이

대순전경(大巡典經)을 지은 까닭이니라

 

아- 전경(典經) 짓기를 어찌 쉽게 이르리오

폭잡을 수 없는 대순의세(大巡醫世)의 이상(理想)을 오직 보들음과

마생각의 테밖(圈外)에서 천견박식(淺見薄識)으로 그 참법(眞言帝)과

깊은 뜻(妙義)을 들쳐내 밝히기(闡明)에 거의 다 말하기 어려우며

또한 수십년 뒤(數十年後)에서 수십년 전(數十年前) 일을 밝혀

말하기(講明)가 더욱 어려울지라

 

그러나 성명(性命)을 공부(工夫)함에 털끝만한 빛을 붙잡으면

큰 광명(大光明)이 따라 열리며 과학(科學)을 연구(硏究)함에

기본이법(基本理法)을 뚫어내면 온 문제(問題)가 따라 풀리나니

삼원중리(三元衆理)와 은현만상(隱顯萬象)이 모두 정연(整然)한

질서(秩序)의 체계(體系)를 떠나지 못한 까닭이라

 

이에 선생의 순유(巡遊)하시던 지대(地帶)를 답사(踏査)하며

친자종도(親炙從徒)들을 방문(訪問)하며 또 선생의 재세시(在世時)에

지면(知面)이 있던 산노인(山老人)과 들사람을 찾아서

모든 법언성적(法言聖蹟)을 수집(蒐輯)하기에 전력(全力)을 들인 바

육년(六年)의 공력(功力)을 쌓아 이제야 비로소 성편(成編)을 보게되었노니

구년(九年)동안 행(行)하신 공사(公事)와 일대교훈(一代敎訓)에 대(對)하여는

실(實)로 항하(恒河)의 한 모래에 지나지 못하여

써 대순의세(大巡醫世)의 이상(理想)의 온 내용(內容)을 흘림없이 회(膾)쳐

벌임(列)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이로써 빛없는 데서 팃빛(耿芒)을 붙잡으며

소리없는 데서 가는 진동(微振)을 맞춰올리며

공없는 데서 조화자취(造化跡)를 추구(追求)하며

이름없는 데서 숨은 법(隱言帝)을 발적(發摘)하는 데는

족(足)히 그 기준표점(基準標点)을 지을 수 있을 것을 확실(確實)히 믿는 바이다.

 

십삼분장(十三分章)에 간략(簡略)하고 자세(仔細)함이 같지 아니하니

기행이적(奇行異蹟)과 치병(治病)은 수집된 재료(材料)가 극(極)히 많으나

명확(明確)한 뜻이 없는 것은 덜어버렸으며

천지공사(天地公事)는 그 재료(材料)를 충분(充分)히 수집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이미 수집된 재료 중(中)에도 그 뜻이 분명(分明)치 못한 것이 적지 아니함은

유감(遺憾)됨을 이기지 못하는 바이라

 

그러나 십삼분장(十三分章)이 서로 맥락 (脈絡)이 관련(關聯)되었으니

이끌어 서로 대조(對照)하여 깊이 미루어 연구(硏究)하면

뜻의 경개(景槪)를 찾기가 어렵지 아니할 줄 믿노라.

 

기사(己巳:1929년) 삼월(三月) 기망(企望)에

후학(後學) 이상호(李祥昊)는 근서(謹序)하노라.

先天百代는 天道偏重時代라, 空相의 幻夢으로 虛靈來世의 追求 괴롭더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리며 天地大道밝았구나.

現實을 肯定하사 靈肉으로 병진(□進)하시니 現實福祿無量하리로다.

 

先天百代는 地運否塞時代라, 界域의 晝限으로 都鄙種族의 差別 孔劇터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리며 大地기운 돌았어라.

山河의 鍾靈을 拔□(발췌)하사 統一하시니 四海一家同樂하리로다.

 

先天百代는 衆理錯綜(착종)時代라, 後天運이 열리며 歸一眞法 나왔어라.

萬古律液統收하사 集衆宗以大成하시니 人世文運光明하리로다.

先天百代는 病劫 滔□(도탕)시대라,

衰弱의 遺傳으로 社會 膏□(고황)의 病源 깊었더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리며 萬國醫院 열었어라.

 

醫統을 傳授하사 世界를 醫治하시니 不老不死 康寧하리로다.

先天百代는 寃滿乾坤時代라, 척神의 橫行으로 人世福祿의 不均 滋甚터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리며 解寃日月 밝았어라.

逆神을 調和하사 世界를 準理(준리)하시니 社會正面 平成하리로다.

 

先天百代는 相剋司配時代라,

□氣(여기)의 衝激으로 鬪爭殺伐의 災殃 慘酷(참혹)하더니

大公事가 行한 뒤에 後天運이 열리며 相生惠澤흘렀어라.

火塊를 埋藏하사 劍戟을 收束하시니 平和烟月 □久(유구)하리로다.

 

大公事를 마치신 後 大神門을 닫으시고 天地에 質正하사

宇宙 化機 굳게 定 하시니 度數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릴지라.

于是乎天地가 大成功하야 禎祥이 무르녹는 造化仙境 열리리로다.

大公事를 마치신 後 南朝鮮배 돛을 달고

血食君子 배질시켜 苦海에 두리둥실 띄우시니 泛彼中流 저 앞길에 風波도 없을지라.

于是乎 一心大衆 실어다가 幸福이 무르녹는 造化仙境 닿으리로다.

大公事를 마치신 後 人文公庭열으시고 化民靖世를 命하사 神明시켜

工作監視하니 天地祿士 모여들어 不日成之 쉬울지라.

于時乎赤衷 一心勤勉으로 萬福吉祥 무르녹는 造化仙境 세우리라.

 

우리先生은 大巡의 神이시니 新生命의 光이시며 造化仙境의 長이시라.

往古佛聖渴仰理想의 表極이며 億兆願戴의 主이시니

日月로 同居하사 弘大無邊하신 化權神力으로 新社會를 宰成하시옵소서.

 

天下之大金山下에 龍華道場 넓은 基址 莊嚴한 법탑(法□)을 奠設할 적에

모퉁이 모퉁이 仙藥이오, 봉우리 봉우리 꽃송이라.

陽春三月 好時節에 열 석자의 굳은 期約 花園둘러 入城속에 榮光의 仙顔비추이사

衆生의 渴仰(갈앙) 풀어주옵소서.

 

己巳 三月 旣望에 大巡典經 成編되어 莊嚴한 儀式으로 發行致誠 嚴肅하다.

且生於數千載之下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 亦己難矣한 소리로

弟子 謹簒(근찬)하고 보니 大神門의 비약(秘□)이오, 天地公事의 終件이라.

우리先生의 大巡理想 오직 典經 너 뿐이니 新生命의 糧食되며

造化仙境의 指針되어 日月同居 先生모셔 爾壽無量(이수무량) 할지어다.

 

己巳[1929年] 三月 旣望[陰16日] 后學 李成英 謹贊

 

평역:

선천백대(先天百代)는 천도편중시대(天道偏重時代)라

공상(空想)의 환몽(幻夢)으로 허령내세(虛靈來世)의 추구(追求) 괴롭더니

대공사(大公事)가 행한 뒤에 후천운(後天運)이 열리며 천지대도(天地大道) 밝았도다

 

현실(現實)을 긍정(肯定)하사 영육(靈肉)으로 병진(竝進)하시니

현실복록(現實福祿) 무량(無量)하리로다.

 

선천백대는 지운비색시대(地運否塞時代)라

계역(界域)의 획한(劃限)으로 도비종족(都鄙種族)의 차별(差別) 공극(孔劇)터니

대공사가 행한 뒤에 후천운이 열리며 대지기운(大地氣運) 돌았도다

 

산하(山河)의 종령(鍾靈)을 뽑아 모아 통일(統一)하시니

사해일가(四海一家) 동락(同樂)하리로다.

 

선천백대는 신계혼란시대(神界混亂時代)라

음신(淫神)의 도량(度量)으로 위구불안(危懼不安)의 세태험란(世態險亂)터니

대공사가 행한 뒤에 후천운이 열리며 조화정부(造化政府) 열렸도다

 

신명(神明)을 통제(統制)하사 도수(度數)를 획정(劃定)하시니

무위이화(無爲以化) 절로 되리로다.

 

선천백대는 중리착종시대(衆理錯綜時代)라

유리(謬理)의 남장(濫張)으로 인류(人類) 이성(理性)의 현혹극심(眩惑極甚)터니

대공사가 행한 뒤에 후천운이 열리며 귀일진법(歸一眞法) 나왔도다

만고진액(萬古津液) 통수(統收)하사 집중리이대성(集衆理以大成)하시니

인세문운광명(人世文運光明)하리로다.

선천백대는 병겁도탕시대(病劫滔蕩時代)라

쇠약(衰弱)의 유전(遺傳)으로 사회고황(社會膏황)에 병원(病源)깊었더니

대공사가 행한 뒤에 후천운이 열리며 만국의원(萬國醫院) 열렸도다.

 

의통(醫統)을 전수(傳授)하사 세계(世界)를 의치(醫治)하시니

불로불사강녕(不老不死康寧)하리로다.

선천백대는 원만건고시대(寃滿乾坤時代)라

척신(神)의 횡행(橫行)으로 인세복록(人世福祿)의 불균자심(不均滋甚)터니

대공사가 행한 뒤에 후천운이 열리며 해원일월(解寃日月)밝았도다

 

역신(逆神)을 조화(調和)하사 세계를 준리(準理)하시니

사회정면평성(社會正面平成)하리로다.

선천백대는 상극사배시대(相剋司配時代)라 여기(■氣)의 충격(衝擊)으로

투쟁살벌(鬪爭殺伐)의 재앙참혹(災殃慘酷)터니

대공사가 행한 뒤에 후천운이 열리며 상생혜택(相生惠澤) 흘렸도다.

 

화괴(火塊)를 매장(埋藏)하사 검극(劍戟)을 수속(收束)하시니

화평연월유구(和平煙月悠久)하리로다.

대공사를 마치신 후 대신문(大神門)을 닫으시고 (天地)에 질정(質正)하사

우주화기(宇宙化機) 굳게 정하시니 도수(度數) 돌아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릴지라,

우시호천지(于是乎天地)가 대성공(大成功)하여

정상(禎祥)이 무르녹는 조화선경(造化仙境) 열리리로다.

 

대공사를 마치신 후 남조선(南朝鮮) 배 돛을 달고

혈식군자(血食君子) 배질시켜 고해(苦海)에 두둥실 띄우시니

범피중류(泛彼中流) 저 앞 길에 풍랑(風浪)도 없을지라.

우시호일심대중(于是乎一心大衆) 실어다가

행복(幸福)이 무르녹는 조화선경이 되리로다.

대공사를 마치신 후 인문공정(人文公庭) 열으시고

화민정세(化民靖世)를 명(命)하사 신명(神明)시켜 공작감시(工作監視)하니

천지녹사(天地祿士) 모여들어 불일성지(不日成之) 쉬울지라

 

우시호(于是乎) 적충일심근면(赤衷一心勤勉)으로

만복길상(萬福吉祥) 무르녹는 조화선경 세우리로다.

어황천사(於皇天師)는 대순(大巡)의 신(神)이시니

새 생명의 빛이시며 조화선경의 왕(王)이시라.

왕고불성(往古佛聖) 갈앙이상(渴仰理想)의 표극(表極)이며

억조원대(億兆願戴)의 주(主)이시니 일월(日月)로 동거(同居)하사

홍대무변(弘大無邊)하신 화권신력(化權神力)으로

새 사회(社會)를 재성(宰成)하옵소서.

 

천하지대금산(天下之大金山)아래 용화도장(龍華道場) 넓은 기지(基祉)

장엄(莊嚴)한 법탑(法榻)을 전설(奠設)할 적에 봉우리 봉우리 꽃송이요,

모퉁이 모퉁이 승지강산(勝地江山)이라

 

양춘삼월(陽春三月) 호시절(好時節)에 열석자의 굳은 기약(期約)

화원(花園)둘러 인성(人城)속에 영광(榮光)의 선안(仙顔) 비치이사

중생(衆生)의 갈앙(渴仰) 풀어주옵소서.

 

기사(己巳) 삼월(三月) 기망(旣望)에 대순전경(大巡典經) 편성(成編)되어

장엄(莊嚴)한 의식(儀式)으로 발행치성(發行致誠) 엄숙(嚴肅)하다

차생어수천년재지하(且生於數千載之下)

이욕강명어수천년재지전(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 역이난의(亦已難矣)한 소리로

제자근찬(弟子謹纂)하고보니 대신문(大神門)의 비약(秘약)이요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종건(終件)이라.

어황천사(於皇天師)의 대순이상(大巡理想) 오직 전경(典經) 너 뿐이니

새 생명의 양식(糧食)되며 조화선경의 지침(指針)되어

일월동거천사(日月同居天使)모시어 이수무량(爾壽無彊)할지어다.

 

기사(己巳) 삼월(三月) 기망(旣望)에

후학(後學) 이정립(李正立)은 근찬(謹贊)하노라

補 註

第五章十節

先生께서 金俊相에게 四聖飮을 주신지가 이미 二十年이 지났으나

藥貼을 내어서 藥材를 상고한즉 藥材가 如新하여 腐敗치 아니하고

좀도 일지 아니 하였더라.

 

第六章

天地公事라 하면 누구나 다 처음 듣는 말이므로 그 意義를 曉得(효득)키 어려울지라.

例컨데 어느 公會에서 會長이 會員을 召集하여 會議를 열어

모든 意見을 徵取(징취)하여 最善의 方針을 決定함과 같이

先生께서 三界를 主宰하사 天地大神門을 열고 萬古神明을 召集하사

先天 旣往(기왕)의 모든 非法을 改廢하고 가장 合理的으로

天道와 地義와 人事에 徵取하여 萬世不替의 眞法을 規定하신 後

天地神明으로 하여금 如律令 攝成(섭성)케 하신것이니

곧 大宇宙를 先生의 大理想속에 料理하심이라.

따라서 先生의 深遠한 抱負와 偉大한 價値를 오직 여기서 찾게 될 뿐이오.

其外 法言聖行은 오직 그 斷片的 現露일 뿐이니

그러므로 天地公事의 妙義를 理解치 못하면

또한 先生의 宏謨遠猷(굉모원유)를 엿볼 수 없을지니라.

그런데 九年間을 쉬임없이 갖은 苦難을 겪으면서 여러가지로 행하신 公事를

從徒들이 많이 參觀하였으나 모든 것이 超人間的인 神秘에 屬한 것이므로

보는 者가 그 條理를 曉得치 못하며 先生께서도 大蓋(대개) 그 行하시는 것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아니하시고 매양 隱秘에 붙이시므로

모두 泛然(범연)히 看過하였으며, 또 그 行하시는 바가 일일이 天地에 應驗하여

奇現象이 나타나는 것을 한갓 好奇心으로 구경에 貪하야 보았을 따름이오,

意味있게 본 사람은 없었나니

그러므로 若干事實을 傳하여 온 것도 그 詳細를 잃었으며 公事를 行하실 때에

매양 度數를 定한다는 말씀을 慣用하셨는데

그 意味는 어떠한 狀態를 어느 時期에 이르러 豫定대로 現實케 하는것,

즉, 이 時代를 어느 때에 어떠한 狀態로 變動하야 推移케 한다는 것이라.

그러나 그 內容은 漠然히 不知하고 다만 所觀의 奇驗만 傳한 것도 많으며

또 從徒중에 漢字에 能하여 흔히 文明을 받아 쓴 者는 金光贊인데

그도 隨時로 쓰여서 燒火하실 따름이오, 別途로 抄記치 못하게 하였으므로

이제 傳하여온 片言隻行(편언척행)은 頭緖없이 記憶된 者라.

距今 十餘年前에 光贊이 身死하였으므로 그나마 詳細히 들을 곳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追從한 者는 金亨烈인데 公事를 行하실 때에는

흔히 客地에 巡回하사 그 隨從을 많이 替番하셨으므로

한 사람으로서 公事件數의 終始를 參觀치 못하였나니

그러므로 大略 듣는 대로 記錄한 것이 실상 恒河一沙에 不過하나니

讀者는 깊이 參商할지어다.

 

第六章二十六節

古阜禍亂에 拘囚되었던 二十人中에 金亨烈 金自賢 二人外에는

모두 흩어져 다시는 先生을 따르지 아니하니라.

 

第六章三十四節,三十五節

先生이 化天하신 後 三年 辛亥 九月二十一日에 車京石이 藥藏과 机와

모든 備品을 옮겨가고 藥局 壁上에 바른 종이까지 떼어간 後에

비로소 布敎運이 열리기 始作하니라.

그 藥藏을 옮길 때에 金亨烈의 딸이 身死하므로 京石이 金 二十圓을 支拂하야

安葬케하고 모든 器具는 致誠室에 奉安하니라.

또 그 後로 金山寺 大藏殿과 釋迦佛像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으니

先生의 말씀이 일일이 應驗되니라.

第九章四節, 五節

金亨烈이 가로되 先生께서 公事를 行하실 새 丹朱를 紫微垣(자미원)에 붙이사

七星을 主宰하여서 一切星宿을 管掌하며 人間의 壽命福祿을 司理케 하셨으니

그러므로 藥藏에 丹朱壽命과 七星經을 쓰셨다 하고 一般門人의 說을 據하건대

丹朱로서 世運을 管掌케하사 現世大局이 그의 碁法에 應하야 機軸을 展開캐 하셨으니

回文山을 父山으로 하야 五仙圍碁를 應氣캐 하심이 此로 因함이니

大盖 碁法이 丹朱로부터 始作한 까닭이라 하니 이제 諸說을 綜合하고

先生의 遺物과 法言과 文明을 考察컨데 藥藏에 丹朱壽命과 七星經을 쓰셨고

法言에 丹朱를 解寃한다 하셨으며 山河大運을 돌리실 새, 回文山을 父山으로 하야

그 五仙圍碁를 應氣캐 하시고 大運이 碁와 如히 展開되리라 하셨으니

讀者는 天地公事에 丹朱解寃이 큰 意義가 있음을 생각할지어다.

 

第十章一節

病勢文은 周紙에 써서 물 담은 白甁口를 막아서 車京石의 집에 두신 것인데

化天하신 뒤에 發見되었으나 그 後로 原紙는 없어지고

다만 口口相傳 된 것이니 次序가 많이 違錯(위착)된 듯하며

그 以外 散文도 分明한 記錄이 없으므로 듣는 대로 記錄하니

誤落이 없지 못할 줄로 思하노라.

大巡典經 目錄 (대순전경 목록)

 

제 1 장. 선생의 탄강과 유년시대

(第一章, 先生의 誕降과 幼年時代, 共六節)

 

제 2 장. 선생의 유력

(第二章, 先生의 遊歷, 共六節)

 

제 3 장. 선생의 성도와 기행이적

(第三章, 先生의 成道와 奇行異蹟, 共一百八節)

 

제 4 장. 문도의 종유와 훈회

(第四章, 門徒의 從遊와 訓晦, 共七六節)

 

제 5 장. 치 병

(第五章, 治 病, 共四二節)

 

제 6 장. 천지 공사

(第六章, 天地公事, 共八一節)

 

제 7 장. 전 교

(第七章, 傳 敎, 共一二節)

 

제 8 장. 법 언

(第八章, 法 言, 共七二節)

 

제 9 장. 개벽과 선경

(第九章, 開闢과 仙境, 共二四節)

 

제 10 장. 문 명

(第十章, 文 明, 共三二節)

 

제 11 장. 인고 문명

(第十一章, 引古 文明, 共四節)

 

제 12 장. 화 천

(第十二章, 化天, 共三十節)

 

제 13 장. 선생의 이표

(第十三章, 先生의 異表, 共六節)

第 一 章 先生의 誕降과 幼年時代

一.

先生의 姓은 姜이오, 名은 一淳이오, 甑山은 그 號이시니 距今 五十八年前[1929年기준] 李朝 高宗 辛未[1871年] 九月十九日에 朝鮮 全羅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今 邑郡德川面 新月里)에서 誕絳하시니라.

 

평역:

선생의 존함은 강 일순(姜一淳)이시며 증산(甑山)은 그 분의 호(號)이시니 지금으로부터 134년전(2005년 기준) 단기4204년, 서기1871년, 이조 고종 8년 신미(辛未)년 음력 9월 19일(양력 11월1일)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서 탄강(誕降) 하시니라.

증산선생께서 탄강하신 마을은 원래 객망리(客望里) 즉 우리말로 손바래기라 불리워 지던 곳으로 증산선생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신선을 기다리는 선망리(仙望里)라고 불리워지더니 후에는 객망리(客望里)라 하고 다시 증산선생께서 화천(化天)하신 후로는 신월리(新月里)라 불리워지니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新月里) 신기(新基)마을 곧 새터가 그 곳이니라.

 

二.

父의 名은 興周요, 母는 權氏니 權氏가 古阜郡 馬項面 西山里 그의 親家에 覲省하였다가 하루는 하늘이 南北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내려와 몸을 덮음에 天下가 光明하여지는 꿈을 꾸고 이로부터 有身하였더니 그 誕降하실 때에 産室에 異香이 가득하며 밝은 빛이 집을 둘러 하늘에 뻗쳤더라.

 

평역:

증산선생의 아버님 존함은 흥주(興周)요, 어머님은 권씨이시니 선생의 어머님께서 고부군 답내면(畓內面) 서산리(西山里)에 있는 친정에 근친(覲親)가셔서 계시던 어느 날 하루는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내려와 몸을 덮으면서 온 세상이 밝아지는 꿈을 꾸신 후 그 뒤에 태기가 있더니 선생이 탄강하실 때에는 산실(産室)에 이상한 향기가 가득하고 밝은 빛이 온 집안을 둘러 그 빛이 하늘까지 닿아 있더라.

 

三.

漸次 자라심에 相貌가 圓滿하시고 率性이 寬厚하시며 聰明과 慧識이 超衆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敬愛를 받으시니라.

 

평역:

점차 자라시면서 얼굴이 원만하시고 성품이 관대하고 후하시며 남다르게 총명하시며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심으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으시니라.

 

四.

幼時로부터 好生의 德이 富하사 種樹하기를 즐기시며 자라나는 草木을 折치 아니하시고 微細한 昆蟲이라도 害치 아니하시며 或 危機에 瀕(빈)한 生物을 보시면 힘써 救援하시니라.

평역:

어리실 때 부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덕이 두터우셔서 나무심기를 즐기시며 자라나는 초목 하나라도 꺽지 아니하시고 아주 작은 곤충이라도 해를 입히지 아니하시며 간혹 위험에 빠진 생물을 보시면 힘써 살리시니라.

 

五.

書塾에 들어 漢學을 배우실 때 한 번 들은 것은 곧 깨달으시고 동무들과 더불어 글을 지으심에 恒常 壯元을 하시니라. 하루는 스승이 여러 학부형에게 미움을 받을까하여 文章이 次號되는 他兒에게 壯元을 주려고 內意를 定하고 考試하였더니 또 先生에게로 壯元이 돌아가니 이는 先生이 스승의 內意를 미리 알으시고 文體와 字樣을 變하야 辨別치 못하게 하신 까닭이라. 모든 일에 이렇게 慧明하심으로 보는者가 다 驚異하니라.

 

평역:

선생께서 서당에 들어 가셔서 한학을 배우실 때 한 번 들으신 것은 곧 그 자리에서 깨달으시고 동무들과 함께 글을 지으실 때는 항상 장원을 하시니라. 하루는 선생의 스승이 다른 여러 학부형에게 미움을 받을까 하여 증산선생 다음으로 뛰어난 학동에게 장원을 주려고 미리 속으로 마음을 정하고 시험을 보았더니 또 선생에게 장원이 돌아가거늘 이것은 선생께서 스승의 속마음을 미리 아시고 다른 학동과 선생의 문체와 글자모양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신 까닭이라. 모든 일에 이렇게 지혜롭고 현명하심으로 보는 사람마다 다 놀랍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六.

家勢가 貧乏함으로 學業은 일찍 廢하시니라.

 

평역:

집안이 매우 가난하시어 학업은 일찍 그만 두시니라.

 

第 二 章 先生의 遊歷

一.

二十四歲 되시던 甲午[1894年]에 古阜人 全琫準이 當時의 惡政을 憤慨하야 東學信徒를 모아 革命을 일으키니 一世가 洶動(흉동)한지라, 先生이 그 前途가 不利할 줄 알으시고 "月黑雁飛高 單于(선우)夜遁逃 欲將輕騎逐 大雪滿弓刀"의 古詩를 여러 사람에게 외어주사 冬期에 이르러 敗滅될 뜻을 諷示(풍시)하시며 妄動치 말라고 曉諭(효유)하셨더니 이해 겨울에 果然 東學軍이 官軍에게 剿滅(초멸)되고 先生의 曉諭에 좇은 者는 다 禍를 免하니라.

 

평역:

선생께서 24세 되시던 갑오(1894)년에 고부사람 전 봉준이 당시의 악정(惡政)에 분개하여 동학신도(東學信徒)들을 모아서 혁명(갑오농민혁명)을 일으키니 세상이 흉흉해지는지라. 선생께서 동학농민군의 앞 길이 이롭지 못할 것을 미리 아시고 "달빛 어두운 밤에 기러기 높이 나는데 오랑캐 장수 선우(匈奴族君長)는 밤을 틈 타서 도망 하는구나. 날쌘 말을 탄 장수가 뒤를 쫓으니 큰 눈이 내리는 속에 막다른 곳에서 둘러 쌓이리라." 라는 옛 시를 여러 사람들에게 외어주시며 눈 내리는 겨울에 이르러 동학군이 패망 할 것임을 미리 알려 주시고 함부로 동학군에 들어 움직이지 말라고 가르치시더니 과연 이해 겨울에 동학군이 관군에게 패하여 섬멸(殲滅)되고 선생의 가르침에 따른 사람은 모두 화를 면하니라.

 

二.

以後로 國政은 더욱 腐敗하고 世俗은 날로 惡化하야 官憲은 오직 貪贓殘虐을 일삼으며 儒者는 虛禮만 崇尙하고 佛徒는 誣惑만 힘쓰며 東學은 겁難(겁난)을 經한 後로 萎靡(위미)를 極하여 거의 形跡을 거두게 되고 西敎(基督新 舊敎)는 勢力을 伸張하기에 盡力하니 民衆은 苦窮에 빠져 安堵(안도)의 길을 얻지 못하고 四圍의 眩惑에 쌓이어 歸依할 바를 알지 못하여 危구와 不安이 全社會에 襲來하거늘 先生이 慨然히 匡救의 뜻을 품으사 儒佛仙 陰陽讖緯의 書籍을 通讀하시고 다시 世態 人情을 體驗하시기 爲하여 丁酉[1897年]로부터 遊歷의 길을 떠나시니라.

 

평역:

갑오동학농민전쟁 이후로 나라의 정치는 더욱 부패해지고 세상의 인심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며 권력을 쥔 자들은 더욱 횡포하고 잔학해져서 재물을 억지로 강탈하는 것을 일 삼으나 유교는 허례허식만 숭상하고 불교는 혹세무민에만 힘쓰며 동학은 혁명 실패 후 그 기세가 꺾여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고, 기독교(新,舊敎)는 이 틈을 타서 세력을 신장하는데만 온 힘을 기울이니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 마음을 편히 가지지 못하고 귀의 할 곳을 찾지 못하여 불안과 두려움이 사회 곳곳마다 엄습하거늘 선생이 널리 천하를 구하실 뜻을 품으시고 유교, 불교, 선교, 음양참위의 모든 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읽으신 후에 세상인심을 두루 살피시고 체험하시기 위하여 정유(1897)년부터 길을 떠나시어 여러 곳을 두루 다니시니라.

 

三.

忠淸道 連山에 이르사 易學者 金一夫에게 들리시니 이때에 一夫의 꿈에 하늘로부터 天使가 내려와서 姜士玉과 함께 玉京에 올라오라는 上帝의 命을 傳하거늘 一夫가 先生과 함께 天使를 따라서 玉京에 올라가 曜雲殿이라 題額한 壯麗한 金闕에 들어가 上帝께 謁見하니 上帝께서 先生에게 對하여 匡救天下하려는 뜻을 賞讚하며 極히 優遇하는지라. 一夫가 크게 異常히 여겨 이 꿈을 말한 後에 曜雲이라는 道號를 先生께 드리고 甚히 敬待하니라.

 

평역:

충청도 연산에 가셨을 때 역학자 김 일부에게 들리시니 이때 일부는 어느 날 꿈에 하늘로부터 천사(天使)가 내려와서 증산선생과 함께 천상옥경에 올라오라는 상제(上帝)의 명을 전하므로 일부가 선생과 함께 천상에 올라 요운전(曜雲殿)이라는 액자가 걸린 화려한 궁궐에 들어가 상제를 뵈오니 상제께서 선생이 널리 세상을 구하려 하시는 뜻을 치하하며 매우 우대하는지라. 일부가 이상히 여기고 있었는데 선생이 오셨으므로 이 꿈을 말씀드린 후에 요운이라는 호(號)를 선생께 드리고 매우 공경 하니라.

四.

이 길로 京畿, 黃海, 江原, 平安, 咸鏡, 慶尙各地를 轉轉遊歷하시니 先生의 慧識은 博學과 廣覽을 따라 더욱 明澈하여지심으로 이르는 곳마다 神人이라는 稱頌이 높으니라.

 

평역:

이 길로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 각지를 유력하시며 민심과 풍속을 살펴시니 선생의 학식과 견문이 더욱 깊고 넓어 지셔서 가는 곳마다 신인(神人)이란 칭송를 들으시니라.

 

五.

이렇게 數年동안을 遊歷하시다가 庚子[1900年]에 故鄕으로 돌아오시더니 이때에 全州 伊東面 龍里 李治安이 求婚次로 忠淸道를 向하다가 旅舍에서 先生을 만나 一夜를 同宿하고 翌日 臨發에 先生이 治安에게 일러 가라사대 그대가 이제 求婚次로 길을 떠났으나 반드시 虛行이 될 것이니 이 길을 가지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前日부터 議婚하여 오던 곳에서 君家에 媒介를 보내어 完約을 求하리라.

만일 이 機會를 잃으면 婚路가 열리기 어려우리니 빨리 돌아가라 하시거늘 治安이 先生께서 自己의 事情을 알고 말씀하심을 神奇히 여겨 비로소 姓名을 通하고 先生의 住所를 자세히 물은 後에 곧 그 길을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니 果然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라.

 

평역:

이렇게 수 년간을 두루 세상을 유력 하시다가 30세 되시던 경자(1900)년에 고향으로 돌아 오시더니 이때에 전주 이동면 전룡리에 사는 이 치안이 아들의 혼담을 위해 충청도로 향하다가 주막에서 선생을 만나 서로 인사도 없이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그 다음날 떠나려 할 적에 선생께서 치안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혼사를 위해 길을 떠났으나 반드시 헛 일이 되리니 이 길을 가지말고 오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전부터 혼사를 이야기하여 오던 곳에서 매파를 보내와서 청혼을 하여 혼인이 성사 되리라. 만일 이 기회를 잃으면 다시 혼인길이 열리기 어려우니 빨리 돌아가라." 하시거늘 치안이 선생께서 자신의 일을 상세히 알고 말씀하시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여 비로소 선생과 인사를 나누고 선생의 계시는 곳을 상세하게 물은 후 집으로 돌아가니 과연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라.

 

六.

이 後로 治安이 先生의 神異하심을 欽慕하여 自家로 延聘 하였더니 마침 里中人口를 緊急히 調査할 일이 있어서 治安의子 直夫가 甚히 苦心하는지라. 先生이 籌(주)를 取하여 演算하신 後에 戶數와 男女人口數를 자세히 일러주시고 三日內에 一口가 損할 것을 말씀하시거늘 直夫는 믿지 아니하고 드디어 里中을 돌아 일일이 精査한즉 果然 一戶 一口의 差錯이 없고 또한 三日內에 一口가 死亡하는지라. 이에 直夫가 비로소 驚異하야 그 神異하심을 感服하니라.

 

평역:

혼사 일이 있은 이후로 이 치안이 선생의 신성하심을 흠모하여 자기집으로 선생을 모셔 왔더니 그때 치안의 아들 직부는 마을 이장으로 갑자기 마을인구를 조사할 일로 매우 고민하는지라. 선생께서 주산으로 셈하신 후에 호수와 남녀 인구수를 자세히 일러주시고 삼일내에 한 사람이 줄어 들 것임을 말씀하시거늘 직부는 믿지 않고 온 마을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조사해보니 과연 한 호수 한 사람의 차이도 없고 또 삼일만에 한 사람이 사망하므로 이로부터 비로소 직부가 선생의 신성하심을 진심으로 느끼고 따르니라.

 

第 三 章 先生의 成道와 奇行異蹟

一.

先生이 多年間 客地에 遊歷하사 많은 經驗을 얻으신 後에 辛丑[1901年]에 이르사 비로소 모든 일을 自由自在로 하실 權能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시고 드디어 全州 母岳山 大願寺에 들어가 道를 딱으사 七月 大雨 五龍噓風에 天地大道를 깨달으시고 四種魔를 降하시니 이때에 同寺 主持 朴錦谷이 모든 便宜를 도왔더라.

평역: 증산선생께서 여러 해 동안 객지를 다니시면서 많은 경험을 얻으신 후에 신축(1901)년 선생께서 31세 되시던 해에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하실 권능을 얻지 아니하시면 널리 세상을 구할 뜻을 이루지 못할 것 임을 깨달으시고 드디어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가셔서 도를 딱으시니 이 해 7월에 상서러운 큰 비가 쏟아지고 큰 바람 일어나는 가운데 하늘과 땅의 무상없는 큰 도를 깨달으시고 탐음진치 사종마(四種魔)를 굴복시키시니 이때에 대원사 주지승이던 박 금곡이 선생께서 공부하실 때 시중을 들었더라.

 

二.

壬寅[1902年] 四月에 先生이 金溝郡(今金堤郡) 水流面 院坪場에 지나시다가 全州郡 雨林面 夏雲洞 金亨烈을 만나시니 大抵 亨烈은 前者부터 先生께 知面이 있었는데 先生의 成道하신 所聞을 듣고 뵈옵기를 願하던 次임으로 喜不自勝하여 自家에 顧臨(원림)하시기를 懇請하였더니 同月 十三日에 亨烈의 집에 이르사 곧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君家에 産氣가 있으니 빨리 內室에 들어가 잘 도우라 하시거늘 亨烈이 內庭에 들어가니 果然 그 妻가 第三子를 分娩하였더라.

평역:임인(1902)년 4월에 금구군 수류면(현재 김제군 금산면) 원평장을 지나시다가 우림면 하운동에 사는 김 형렬을 만나시니 형렬은 예전에 선생을 만나 뵌 적이 있었는데 선생께서 도를 이루셨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뵙기를 원하던 차 이므로 크게 기뻐하며 자기집으로 와주시기를 간청하였더니 4월13일에 형렬의 집에 오셔서 곧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집에 아이 낳을 기운이 보이니 빨리 안방에 들어가서 출산을 잘 도우라." 하시거늘 형렬이 안방에 들어가보니 과연 아내가 형렬의 셋째 아들을 낳았더라.

 

三.

亨烈의 妻가 自來로 産後에 반드시 腹痛이 發하여 累月을 苦痛하는 例症이 있어서 또 復發하므로 亨烈이 크게 근심하거늘 先生이 慰勞하여 가라사대 今後로는 모든 일에 나를 信賴하고 근심을 놓으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다만 天師만 믿고 근심을 놓았더니 果然 그 妻의 腹痛이 곧 그치고 그밖에 喘氣(천기)와 咳嗽(해수)等 別症도 다 나으니라.

평역:형렬의 아내가 예전부터 아이를 낳은 후에는 반드시 복통이 생겨서 몇 개월씩 고생하고 하였는데 이번에도 그러하므로 형렬이 크게 근심하였더니 선생께서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모든 일에 나를 믿고 근심을 하지 말라." 하시므로 형렬이 선생께서 명하신대로 선생만을 믿고 근심을 놓았더니 과연 아내의 복통이 곧 그치고 그 밖에 기침과 해소같은 다른 잔병도 모두 나으니라.

 

四.

先生이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末世를 當하여 앞으로 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純潔한 마음으로 天地公庭에 參與하라. 나는 三界大權을 主宰하야 造化로써 天地를 開闢하여 不老不死의 仙境을 열어 苦海에 浸淪(침륜)한 衆生을 건지리라 하시고 이로부터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天地公事를 行하실 때 亨烈에게 神眼을 열어주사 神明의 會散과 聽令을 參觀케 하시니라.

평역:선생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선천의 도가 어지러워지고 쇠퇴하는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끝없는 큰 운수가 열릴 것이니 모든 일을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는 모임에 참여하라.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늙지않고 죽지않는 신선세계를 열어 고통의 바다에 빠진 중생들을 건지려 하노라." 하시고 이로부터 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면서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어 주시어 신명들의 모임과 흩어짐 그리고 신명들이 선생의 명을 받드는 것을 곁에서 참관(參觀)하게 하시니라.

 

五.

여름을 지내실 새 亨烈의 집이 貧寒하여 供■(공궤)가 粗略하고 또 圃園이 瘠薄(척박)하여 蔬菜(소채)가 잘 자라지 아니함으로 亨烈이 근심하거늘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山中에는 別味가 없나니 蔬寀나 잘 蕃殖(번식)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이로부터 약간 심어 두었던 蔬寀가 人工을 加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잘 蕃殖하여 採之不竭(채지불갈)하니라.

평역:선생께서 김 형렬의 집에서 여름을 지내실 때 형렬의 집이 가난하여 선생께 올리는 음식이 약소하고 또 채소밭이 메말라서 채소가 잘 자라지 않으므로 형렬이 근심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산속에는 별미가 없으니 채소나 잘 자라게 하여주리라." 하시더니 이로부터는 약간 심어 두었던 채소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라서 쓰임에 넉넉하게 되니라.

 

六.

六月[1902年] 어느 날 亨烈을 命하사 耶蘇敎書 一冊을 求하여 오라 하시거늘 亨烈이 隣里 梧桐亭 金京安에게서 新約全書 一冊을 빌어다 올리니 先生이 받아서 불사르시니라. 그 後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고 梧桐亭 車允必의 집에 가니 京安이 와서 빌려간 冊을 돌려주기를 請함에 亨烈이 對答치 못하거늘 先生이 가름하야 對答하시되 곧 돌려주리라 하시더니 마침 한 筆商이 지나거늘 先生이 불러들 이사 술을 많이 주신 後에 그 筆箱을 열어보기를 請하신 대 筆箱이 곧 열어 보이니 新約全書 一冊이 있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는 반드시 耶蘇를 믿지 아니하니 이冊은 無用이라. 나에게 傳함이 어떠하뇨 筆商이 許諾(허락)하거늘 先生이 그 冊을 받아서 京安에게 주시니라.

평역:임인(1902)년 6월 어느날 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예수교책 한 권을을 구해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이웃마을 오동정에 사는 김 경안에게서 신약전서 한 권을 빌려서 올리니 선생이 받아서 그 책을 불사르시니라. 그 후에 형렬이 선생을 모시고 오동정에 사는 차 윤필의 집에 가니 경안이 와서 빌려간 책을 돌려주기를 요청하므로 형렬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니 선생이 대신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곧 돌려주리라." 하시더니 마침 한 붓장사가 지나가거늘 선생이 불러들이시어 술과 음식을 많이 접대한 후에 "그 붓상자를 열어보라." 하시니 붓장사가 상자를 열어 보이니 신약전서 한 권이 들어 있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분명히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이 책은 그대에게 쓸모가 없을 터이니 나에게 줄 수 없겠느냐." 하시니 붓장사가 후한 대접을 받은터라 허락하거늘 선생께서 그 책을 받아서 경안에게 주시니라.

 

七.

그 後에 佛書千手經과 漢字玉篇과 史要와 海東名臣錄과 康節觀梅法과 大學等 書를 불사르시니라.

평역:그 후에 불교책 천수경과 한자옥편과 사요와 해동명신록, 강절관매법, 대학등 여러 책과 형렬의 채권부를 불사르시니라.

 

八.

九月[1902年]에 農家에서 麥耕으로 奔忙하거늘 先生이 ■然(위연)히 가라사대 이렇게 辛苦하여 收穫을 얻지 못하리니 어찌 可惜치 아니하리요 하시거늘 亨烈이 이 말씀을 듣고 드디어 麥農을 廢하였더니 癸卯[1903年]春에 이르러 天候가 順調하여 豊登의 兆가 있는지라. 金甫京 等 모든 從徒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두 亨烈을 嘲笑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일은 神明公事에서 決定된 것이니 아직 結實期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어찌 豊作을 預斷(예단)하리요 하시더니 果然 五月五日 大雨로 因하여 麥穗(맥수)가 다 말라서 收穫이 全無하게되고 米價가 高騰(고등)하여 一斗에 値 七兩(今金貨一圓四十錢)이 되니 이로부터 모든 사람이 先生께 信服하니라.

평역:임인(1902)년 9월에 농부들이 부지런히 밭을 갈아서 보리를 심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저렇게 힘들여 일하나 수확을 얻지 못하리니 어찌 불쌍하지 아니하리오." 하시거늘 형렬이 그 말씀을 듣고 그 해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하였더니 이듬해 봄 기후가 순조로워서 보리농사가 잘되어 풍년의 징조가 보이는 지라. 김 보경등 모든 종도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두 선생의 말씀을 믿고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한 형렬을 비웃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신명공사에서 결정 된 것이니 어찌 결실하기 전에 미리 풍작을 말할수 있으리오." 하시더니 과연 5월5일에 쏟아진 폭우로 인하여 보리이삭이 다 말라서 전혀 수확이 없게 되고 쌀값이 폭등하여 한 말에 일곱 냥(일원 사십전)이나 되니 이로부터 모든 사람이 선생의 말씀을 깨달아 믿고 복종하니라.

 

九.

한 사람이 물어 가로사대 今年에는 어떤 穀種을 심음이 좋으오니까. 先生이 가로사대 日本人이 祿을 띄고 왔나니 日本種을 取하여 심어라. 또 生計의 모든 일을 그들에게 順從하라 祿줄이 따라들리라 하시니라.

평역:한 사람이 선생께 묻기를 "금년에는 어떤 곡식을 심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본사람이 녹줄을 가지고 왔으니 일본종자를 심어라. 그리고 모든 일에 그들을 거슬리게 하지 않으면 녹줄이 따라 들어오리라." 하시니라.

 

十.

冬月[1902年]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더니 마침 大雪이 내리거늘 亨烈이 여쭈어 가라사대 傳說에 宋尤菴의 居住하는 집지붕에는 눈이 쌓이지 못하고 녹는다하니 진실로 天地의 至靈之氣를 타고난 사람 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진실로 그러하랴, 이제 나있는 곳을 살펴보라. 亨烈이 밖에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많이 내려 쌓이되 오직 그 집 지붕에는 一點雪도 없고 맑은 기운이 하늘에 뻗치어 구름이 가리우지 아니하고 碧空이 通하여 보이더라. 이로부터 亨烈이 恒常 留意하야 살피니 언제든지 그 머무시는 곳에는 반드시 맑은 기운이 碧空을 通하여 구름이 가리우지 못하고 비록 큰비가 오는 때에도 그러하더라.

평역:임인(1902)년 겨울에 김 형렬이 선생을 모시고 계실 때 마침 큰 눈이 내리거늘 형렬이 "전설에 송 시열이 거주하는 집 지붕에는 눈이 쌓이지 못하고 녹았다 하니 송 시열은 진실로 천지의 정기를 타고난 사람일 것 입니다." 라고 말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그러하랴. 이제 내가 있는 곳을 살펴보라." 하시거늘 형렬이 밖으로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많이 내려 쌓였는데 오직 선생이 거처하시는 형렬의 집 지붕 위에는 한 점의 눈도 없고 맑은 기운이 하늘에 뻗어 구름이 가리지 못하고 푸른하늘이 보이는지라. 이날 이후로 형렬이 항상 유의해서 살피니 언제나 선생이 머무시는 곳에는 반드시 맑은 기운이 푸른하늘까지 통하여 구름이 가리지 못하고 비록 큰 비가 오는 때에도 그러하더라.

 

十一.

매양 出他하실 때에는 神明에게 治道令을 써서 불 살으사 여름이면 바람을 불게 하여 길에 이슬을 떨어뜨리시고 겨울이면 진 길을 얼어 굳게 하신 後에 마른신으로 다니시니라.

평역:항상 밖으로 나가실 때에는 종이에 치도령을 써서 불사르시니 신명들이 여름이면 바람을 불게 하여 길에 이슬을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진 길을 얼어 굳게 함으로 선생은 언제나 마른 신발로 다니시니라.

 

十二.

夏雲洞은 山中이므로 길이 甚히 좁고 樹木이 길에 우거져 얽혀서 이슬이 많을 뿐 아니라  霖(료림)이 질 때에는 길에 물이 흘러 溪流를 이루되 先生의 신발은 恒常 乾淨하므로 附近 村民들이 모두 다 神異하게 여기더라.

평역:하운동은 산 속이므로 길이 협소하고 숲이 우거져서 이슬이 많을뿐 아니라 장마에는 길이 개울을 이루었으나 선생의 신발은 항상 깨끗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十三.

또 出他하실 때에는 반드시 洞口의 左右側에 雲柱가 높이 뻗치어 八字形을 이루므로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물은즉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將門이라 하시니라.

평역:또 선생이 계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실 때에는 언제나 동네 입구 양 편에 구름기둥이 깃대와 같이 높이 뻗쳐서 여덟 팔자 형태를 이루므로 종도들이 그 이유를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신장(神將)들이 나를 호위하기 위하여 대기하니 만들어지는 문이니라." 하시니라.

 

十四.

癸卯[1903年] 七月에 米價가 奔騰(분등)하고 農作物에 蟲災가 甚하여 人心이 極히 不安하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辛丑[1901年] 以後로는 年事를 내가 맡았으니 今年의 農作을 豊登케 하여 民祿을 넉넉케 하리라 하시고 크게 雷電을 일으키시니 이로부터 蟲災가 그치고 作物이 大登하니라.

평역:계묘(1903)년 7월에 쌀값이 크게 오르고 농작물에 해충피해가 심하여지므로 민심이 불안해 지거늘 선생이 여러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신축(1901)년 이후로는 일년삼백육십오일 일년의 일을 모두 내가 맡았으니 금년농사를 잘 되게 하여 민중의 생계를 넉넉하게 하리라." 하시고 크게 우뢰와 번개를 일으키시니 이로부터 해충피해가 줄어들고 농작물이 잘 자라느니라.

 

十五.

先生의 親弟 永學이 恒常 道術을 通하기를 熱望하여 先生께 發願하더니 하루는 先生이 한 부채에 鶴을 그려서 永學을 주시며 가라사대 집에 돌아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七星經을 武曲破軍까지 읽고 이어서 大學을 읽어라, 그러면 道術을 통하리라. 永學이 부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鄭南基(先生의 妻男)의 집에 들리니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의 美麗함을 貪내어 빼앗고 주지 아니하거늘 永學이 不得已하여 그 事由를 말하고 돌려주기를 懇求(간구)하니 南基의 아들은 더욱 貪내어 주지 아니함으로 하릴없이 빼앗기고 돌아 가니라.

평역:선생의 친동생 영학이 항상 도술을 통하기를 바라며 선생께 빌었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부채 한개에 학을 그려서 영학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집에 돌아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칠성경을 무곡파군(武曲破軍)까지 읽고 이어서 대학을 읽어라. 그러면 도술을 통하리라." 하시니라. 영학이 부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선생의 처남집인 정 남기의 집에 들리니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부채를 빼앗고 돌려 주지 아니하거늘 영학이 부득이 선생이 부채를 주신 사유를 말하고 돌려주기를 간청하니 남기의 아들은 더욱 탐내어 주지 않음으로 할 수없이 빼앗기고 돌아가니라.

 

十六.

그 後에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大學을 읽음에 문득 神力을 통하여 能히 神明을 부리며 물을 뿌려 비를 베푸는지라, 南基가 기뻐하여 그 아들을 敎唆(교사)하야 先生의 道力을 빼앗으라함으로 그 아들이 父南基로부터 夏雲洞에 이르니 先生이 그 일을 미리 아시고 南基의 無義함을 꾸짖고 그 아들의 神力을 거두신 後에 돌려보내시니라.

평역:그 후에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대학을 읽으니 문득 신통력이 생겨나 신명(神明)들을 부리고 물을 뿌려 비를 오게하니 남기가 기뻐하여 그 아들을 부추겨 선생의 도력(道力)을 빼앗고자 아들을 데리고 함께 하운동에 이르니 선생께서 그 일을 미리 아시고 우묵골(宇默谷)에서 하운동으로 오셔서 두 사람을 만나시고 남기의 예의없음을 꾸짖으시고 그 아들을 신통력을 거두신 후에 돌려 보내시니라.

 

十七.

甲辰[1904年] 正月에 白南信이 官厄에 걸리니 깊이 隱居하여 所措(소책)을 莫知하고 金秉旭을 통하여 先生께 解難하여 주시기를 懇乞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富貴한 者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十萬兩(今金二萬圓)의 證書를 가져오라. 南信이 곧 十萬兩의 證書를 올렸더니 그 後로 南信의 禍厄(화액)이 곧 풀리는지라. 先生이 그 證書를 불사르시니라.

평역:갑진(1904)년 정월에 백 남신이 관액(官厄)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깊이 숨어서 김 병욱을 통하여 선생께 그 액을 풀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십 만냥을 증서(證書)로 가져오라." 하심으로 남신이 곧 십 만냥의 증서를 선생께 올렸더니 그 후로 곧 남신의 관액이 풀리는지라. 선생께서 그 받으신 증서를 불사르시니라.

 

十八.

十五日에 先生이 술을 마시시고 혼몽히 주무실 때 張興海의 幼兒가 急病이 發하야 瀕死(빈사)함으로 興海의 父 孝淳이 急히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누워 일어나시지 아니하시고 혼몽中에 冷水나 먹이라 말씀하셨더니 孝淳이 病兒에게 冷水를 먹임에 곧 死亡하는지라, 孝淳은 本來 性質이 慓悍(표한)하여 府中人이 天動이라고 號하는 터인데 病兒의 死亡함을 보고 大怒하여 先生을 원망하여 가로되 이는 故意로 藥을 그릇되게 일러주어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디로 危殆(위태)한 病을 고침을 내가 實見한 바이니 만일 고의가 아니면 물은 姑捨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神異한 道術로 能히 낫게 하였을 것이라고 하고 드디어 棍棒을 가지고 와서 先生을 亂打하여 流血이 淋■(임리)케한지라. 先生이 비로소 깨어 일어나시니 孝淳이 先生을 結縛하여 長房廳으로 갔다가 문득 뉘우친 듯 이끌며 가로되 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幼兒가 急病으로 죽었거늘 어찌 先生을 원망하리오 하고 前交를 回復하기를 請하며 自家로 同行하기를 求하거늘 先生이 듣지 아니하시고 徐元圭의 집으로 가서 留하시고 翌日에 李直夫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孝淳이 先生을 容恕하여 長房廳으로부터 돌아가시게 한 것은 白南信에게 받은 돈 二十萬兩의 證書가 있음을 알고 돈을 要求하려 함이더라.

평역:갑진(1904)년 정월 십오일에 선생께서 술을 잡수시고 곤히 주무시는데 갑자기 장 흥해의 부친 효순이 찾아와 어린 아이에게 급한 병이 생겨서 죽게 되었으니 와서 살려 주시기를 청하거늘 선생께서 혼몽하신 가운데 "냉수나 먹이라." 말씀하셨더니 효순이 그 말대로 병든 아이에게 냉수를 먹였더니 곧 죽는지라. 효순은 원래 성질이 사나워서 사람들이 천둥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터인데 병든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선생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고의로 약을 잘못 가르쳐 주어 죽게 함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일으키며 말 한 마디로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고치는 것을 내가 직접 본 바이니 만일 고의가 아니라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을 것이라고 하고 드디어 몽둥이를 가져와서 선생을 마구 치기 시작하니 선생의 온 몸에 유혈이 낭자한지라. 그제서야 선생이 비로소 깨어 일어 나시니 장 효순이 선생을 결박하여 장방청으로 끌고 가다가 문득 뉘우친 듯 이끌며 말하기를 "이것은 다 나의 잘못이라, 아이가 급병으로 죽었거늘 어찌 선생을 원망하리오." 하며 마음을 풀고 옛 정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며 자기집에 함께 가시기를 원하거늘 선생이 듣지 아니하시고 서 원규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후 이튿날에 전주 이동면 이 직부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흥해의 부친 효순이 선생을 용서하여 장방청에 끌고 가다가 돌아가시게 한 것은 선생께서 백 남신에게 받은 돈 이십 만냥의 증서가 있음을 알고 돈을 요구하려 함이더라.

 

十九.

翌日에 孝淳이 元圭의 집에 가서 先生의 안 계심을 보고 大怒하여 殺人犯으로 逃避하였다하고 四方으로 搜索하더라 그때에 先生의 省率은 全州郡 亂田面 花亭里 李京五家 狹室에 移居하였는데 孝淳의 家族이 花亭里에 와서 行悖(행패)하니라. 金亨烈은 孝淳의 일을 알지 못하고 先生의 消息을 들으려고 花亭里에 오니 孝淳의 家人이 亨烈을 結縛하여 元圭의 집으로 가서 先生의 行方을 묻되 가르쳐주지 아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憤怒하여 亨烈과 元圭를 無數히 毆打하니라. 이 일로 因하여 先生의 省率(성솔)은 泰仁 屈峙로 避禍하고 亨烈은 元圭의 집에서 乘夜逃避하고 元圭는 그들의 連日行悖에 견디지 못하여 藥局을 閉鎖하고 家眷을 거느리고 益山으로 避禍하니라.

평역:다음날 장 효순이 서 원규의 집으로 가서 선생께서 계시지 않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사람을 죽인 자가 도망하였다 하고 사방으로 찾으니라. 이때 선생의 가족은 전주 우전면 화정리 이 경오의 집 곁방에 옮겨 거처하시고 계셨는데 효순의 가족이 화정리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니라. 한편 김 형렬은 장 효순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선생의 소식을 들으려고 화정리에 오니 효순의 집 사람들이 형렬을 결박하여 원규의 집으로 끌고 가서 선생의 행방을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아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화를 내며 형렬과 원규를 무수히 구타하니라. 이 일로 인하여 선생의 가족들은 태인 굴치로 화를 피해서 이사를 가고 형렬은 원규의 집에서 밤을 이용하여 피하여 도망하고 원규는 매일 계속되는 그들의 행패를 견디지 못하여 약국 문을 닫고 가족을 데리고 익산으로 화를 피해 숨으니라. (이 일을 張 孝淳의 亂이라 한다)

 

二十.

이때에 先生이 李直夫의 집에 머무르시니 直夫의 父 治安이 當年의 命壽를 묻거늘 先生이 白紙一枚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다시 글을 써서 緊封하여 주시며 가라사대 急한일이 있거든 열어보라 하신지라, 治安이 깊이 갈무리하여 두었더니 그 後에 그 子婦가 難産으로 危境에 이르렀음을 듣고 그 일을 가르치심인가하여 그 封書를 가지고 간즉 이미 順産하였거늘 다시 갈무리해 두었더니 歲末에 이르러 治安이 病들어 危篤(위독)한지라 直夫가 封書를 떼어보니 小柴(소시)胡湯二貼이라 씌여있거늘 그 藥을 써서 곧 快復되니라.

평역:이 때에 선생께서 이 직부의 집에 머무르시니 직부의 부친 치안이 그 해의 운세를 선생께 여쭈니 선생께서 백지 한 장에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고 다시 글을 쓰셔서 밀봉하여 주시며 "급한 일이 있거든 열어보라." 하시므로 치안이 깊이 갈무리하여 두었더니 그 후에 치안의 아들며느리가 난산(難産)으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듣고 선생께서 그 일을 가르치심인가 하여 그 봉서(封書)를 가지고 가니 이미 순산하였거늘 다시 갈무리해 두었더니 그 해 말에 이르러 치안이 병들어 위독한지라. 직부가 봉서를 떼어보니 소시호탕 두첩이라 적혀 있으므로 그대로 약을 쓰니 곧 나으니라.

 

二一.

二月[1904年]에 屈峙에 계실 때 永學에게 大學을 읽어라 하셨더니 永學이 듣지 아니하고 術書에 沈味하거늘 先生이  然히 歎息하여 가라사대 멀지 아니하여 永學을 訣別하리라 하시고 李道三을 命하사 "骨暴沙場纏有草(골포사장전유초), 魂返故國弔無親(혼반고국조무친)"이란 一句詩를 永學에게 傳하사 이로써 戒■(계구) 省悟케 하시되 永學이 종시 省悟치 아니하니라.

평역:갑진(1904)년 2월에 밤재에 계실 때 선생께서 친동생 영학에게 대학(大學)을읽으라 하셨으나 영학이 듣지 아니하고 술법책(術書)에만 빠져 있으므로 선생께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멀지 아니하여 영학을 못보게 될 것이라." 하시고 이 도삼에게 명하시어 "뼈는 마른 모래 사장에 널려 있고 풀뿌리만 사방에 둘러 있으니 넋이 고향이라 하여 돌아오건만 제사지내 줄 후손하나 없구나." 라는 시 한 구절을 영학에게 전하게 하시어 이 글로서 살펴 깨닫게 하시려고 하셨으나 영학이 끝내 깨닫지 못하니라.

 

二二.

그 後에 永學이 病들어 죽게 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金甲七을 데리고 집으로 가실 때 中途에 한 酒店에 들러시니 한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엎드려 기어 다니거늘 先生이 그 허리를 펴지 못하는 理由를 물으시니 그 사람이 對하되 十餘年前부터 곱사가 되어서 고치지 못하였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손으로 그 허리를 주물러 펴주시며 가라사대 謝金 五十兩(今三圓)을 가져오라하시니 그 사람이 瞬間에 허리를 편 後에 기뻐 뛰놀며 가로되 先生은 實로 再生之恩이 있사오니 그 恩惠를 報答할진대 山岳이 오히려 가벼우나 只今(지금) 몸에 所持金이 없사오니 무엇으로 酬答(배답)하오리까. 先生이 가라사대 物品도 可하니라. 그 사람이 對하되 내가 棺材장사를 하오니 棺材로 드림이 어떠하나이까 棺材한벌 價額이 十五兩 이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도 좋으니 잘가려두라 하시고 집에 돌아가시니 永學이 이미 죽었거늘 그 棺材를 가져다가 治葬하시니라.

평역:그 뒤에 영학이 병들어 위독하여 죽게 된 것을 선생께서 들으시고 김 갑칠을 데리고 밤재로 가시는 도중에 한 주막에 드시니 한 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엎드려 기어 다니거늘 선생께서 그 허리를 펴지 못하는 이유를 물으시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십여년전부터 곱사가 되어서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하거늘 선생께서 손으로 그 허리를 만져서 펴주시고 "사례금 열 다섯냥을 가져오라." 하시니 그 사람이 기뻐 뛰며 여쭈기를 "선생님은 진실로 저를 다시 살리신 은인이시니 그 은혜를 갚으려 하면 태산이 오히려 가벼우나 지금 몸에 지닌 돈이 없사오니 무엇으로 갚으오리까."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물품도 괜찮으니라." 하시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제가 널 장사를 하오니 대신 널을 드림이 어떠하나이까. 널 한 벌 값이 열 다섯냥이나이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도 좋으니 잘 가려서 두라." 하시고 집에 돌아가시니 영학이 사경에 이른지라. (선생께서 영학의 입에 손가락을 대고 말씀하시기를 "이 손가락을 떼면 곧 네가 죽을테니 뜻이 있는대로 유언을 하라." 하시니 영학이 부모에게 할 말을 모두 마친 후에 선생께서 손가락을 떼시니 곧 죽으니라.) 이에 선생께서 널을 가져다가 장례(葬禮)를 치르시니라.

 

二三.

十五日[1904年2月] 金甲七을 데리시고 扶安, 古阜等地를 巡遊하실 새 昏夜(혼야)에 古阜 黑巖酒店을 지나시니 이때에 火賊이 熾盛(치성)하여 白晝에 橫行함으로 巡檢一人이 微服으로 夜巡하기 위하여 이 酒店에 들렀거늘 先生이 酒婦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 사람에게 酒食을 주지 말라. 만일 酒食을 주었다가 값을 받지 못하면 不贍(부섬)한 營業에 損害가 아니냐 하시니 巡檢이 그 말씀에 憤怒하여 先生을 毆打하며 無禮한 말을 한다고 꾸짖거늘 先生이 웃어 가라사대 다죽은 屍體에게 맞아서 무엇이 아프랴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 酒婦가 巡檢에게 이르길 저 사람의 말이 異常하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지라. 나가서 謝過하고 그 緣由를 물어보라 하거늘 巡檢이 옳게 여겨 곧 先生의 뒤를 따르며 謝過한 後에 緣由를 물으니 先生이 가라사대 今夜에는 事務를 廢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避하라 하시거늘 巡檢이 命하신 대로 卽時 몸을 避하였더니 이윽고 夜深하여 火賊이 巡檢을 죽이려고 預約한 일이 있음이라. 翌日에 巡檢이 先生의 留하시는곳을 찾아와서 再生의 恩을 感謝하니라.

평역:갑진(1904)년 2월 보름에 김 갑칠을 데리시고 부안 고부등지를 두루 돌아 보실 때 저녁 무렵에 고부 검은바위 주막에 들리시니 이때에는 화적(火賊)들이 많이 일어나서 대낮에도 나타나고 함으로 순검 한사람이 평복으로 변장하고 야간 순찰을 하려고 이 주막에 들어 있음을 선생께서 보시고 주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에게 술이나 밥을 주지말라. 만일 주었다가 그 값을 받지 못하면 넉넉하지 못한 장사에 손해가 아니겠느냐." 하시니 순검이 그 말에 분노하여 선생을 구타하며 무례한 말을 한다고 꾸짖거늘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다 죽은 시체에게 맞았다고 무엇이 아프랴."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 주모가 순검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의 말이 이상하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니 따라 나가서 사죄하고 그 이유를 물어보라 하거늘 순검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곧 선생의 뒤를 따르며 사죄한 후에 그 이유를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에는 사무를 보지 말고 다른곳으로 몸을 피하라." 하시거늘 순검이 선생께서 명하신대로 즉시 몸을 피하였더니 이윽고 밤이 깊어 화적들이 몰려와서 주모를 구타하며 순검의 행방을 묻더라. 이것은 곧 화적들이 순검을 죽이려고 미리 작정하고 있었음이라. 다음날 순검이 선생께서 머무시는 곳에 찾아와서 살려주신 새 삶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니라.

 

二四.

五月[1904年]에 先生이 屈峙에 계실 때 甲七이 銅谷으로부터와서 뵙거늘 先生이 물어 가라사대 너의 地方에 農況이 어떠하더뇨. 甲七이 對하여 가로되 旱災(한재)가 甚하여 移秧을 못함으로 民心이 騷然(소연)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비를 빌러 왔도다. 네게 雨師를 붙이나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만날지라도 回避치 말라. 그것은 네가 天地公事를 몸에 띈 緣故니라. 甲七이 領命하고 돌아갈 새 얼마 아니 가서 비가 始作하여 頃刻間에 河川이 漲溢(창일)하는지라 이로부터 水量이 充足하여 數日間에 移秧을 마치니라.

평역:갑진(1904)년 5월에 선생께서 굴치에 계실 때 김 갑칠이 구릿골로 부터 와서 뵙자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너희 지방 농사 형편이 어떠하냐." 하시므로 갑칠이 말씀드리기를 "가뭄이 심하여 아직까지 모를 심지 못하여 민심이 흔들리고 있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에게 비를 빌리러 왔도다. 내가 너에게 우사(雨師)를 붙여 줄테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만날지라도 피하지 말라. 그것은 너의 몸이 천지공사를 간직하고 가는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을 받들고 돌아 갈 때 얼마가지 않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냇물이 넘치더니 이로부터 물이 풍족하여져서 몇 일 사이에 모두 모내기를 마치니라.

 

二五.

六月[1904年]에 亨烈을 데리고 泰仁 新培를 지나실 때 그 里中에 어떤 집이 失火하여 모진바람에 火勢가 猛熱하거늘 先生이 민망히 여겨 가라사대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全洞이 焦土될 것이니 맞불을 놓아 求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짚으로 불을 피우시니 瞬息間에 바람이 자고 불이 꺼지니라.

평역:갑진(1904)년 6월에 김 형렬을 데리고 태인 신배를 지나가실 때 그 마을 어떤 집에서 불이 났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더욱 불길이 세어지거늘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말씀하시기를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구하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어 섶으로 불을 피우게 하시니 순식간에 바람이 자고 불이 꺼지니라.

 

二六.

八月 二十七日[1904年]에 益山 萬中里 黃士成의 집에 이르시니 마침 어떤 사람이 怒氣를 띄고있거늘 다시 同里 鄭春心의 집으로 옮기시니라. 元來 士成의 父 叔京이 全州 龍進面 龍巖里 黃參奉에게 債務가 있었더니 黃參奉이 죽은 後에 그 아들이 專人하여 債金을 督促(독촉)하며 만일 갚지 아니하면 警務廳에 告訴하여 獄中에다 썩히면서 받겠다고 威脅(위협)하는지라. 이날 밤에 士成父子가 春心의 집에 와서 先生을 뵙고 이 事實을 告하며 無事하도록 풀어 주시기를 懇乞(간걸)하거늘 先生이 叔京에게 命하사 白木 一疋(일필)을 사오라하사 衣服을 지어 입으신 後에 叔京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근심을 풀어라 일이 順調롭게 풀리리라 白木一疋은 곧 債權債務間에 길을 딱는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後에 巡檢이 와서 叔京을 잡아가려 하거늘 叔京이 巡檢과 더불어 債主의 집에 가서 償還을 延期하기로 하고 和解를 請하되 債主가 듣지 않고 固執하거늘 그 母가 아들을 불러 꾸짖어 가로되 저 어른은 네 父親의 친구인데 이제 獄에 가두려하니 이는 禽獸의 行爲를 하려함이라 하고 곧 그 證書를 빼앗아 불살라버리니 債主가 할 수 없이 叔京에게 謝過한 後에 드디어 告訴를 取下하고 債金을 免除하여 버리니라.

평역:갑진(1904)년 8월27일에 익산 만중리 황 사성의 집에 이르시니 마침 어떤 사람이 화난 얼굴을 하고 있거늘 이것을 보시고 같은 동네 정 춘심의 집으로 옮기시니라. 원래 황 사성의 아버지 숙경이 전주 용진면 용암리 황 참봉에게 돈을 빌려 쓴 일이 있었는데 황 참봉이 죽은 후에 그 아들이 사람을 보내어 빌려간 돈을 독촉하면서 만일 갚지 아니하면 경무청에 고소하여 감옥에 보내어 썩히면서 받겠다고 위협하는지라. 이날 밤에 황 사성 부자가 춘심의 집으로 와서 선생을 뵙고 이 사실을 고하며 이 일이 무사하게 풀리도록 하여 주실 것을 간청하거늘 선생께서 숙경을 명하시어 백목 한 필을 사오라고 하셔서 옷을 지어 입으신 후에 숙경에게 말씀하시기를 "이후로는 근심을 풀어라. 일이 순조롭게 풀리리라. 백목 한 필은 곧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길을 딱는 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후에 순검이 와서 숙경을 잡아가려 하거늘 숙경이 순검과 함께 채권자의 집에 가서 채무상환을 연기해줄 것을 부탁해보기로 하고 채권자에게 화해를 청하나 채권자가 듣지 않고 고집 하거늘 그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아들을 불러 꾸짖어 말하기를 저 어른은 너의 부친과 친구인데 이제 옥에 가두려하니 이것은 짐승과 같은 행동을 하려고 함이라하며 그 증서를 빼앗아 불살라 버리니 채권자가 할 수 없이 숙경에게 사과 한 후에 고소를 취하하고 채무관계를 없던 일로 하여 버리니라.

 

二七.

九月十日[1904年]에 咸悅 會仙洞 金甫京집에 가시니 甫京이 여쭈어 가로되 이 附近에는 近日에 盜賊이 出沒하여 밤마다 村落을 ■掠(겁략)하는데 내집이 비록 饒足치는 못하나 外間에서는 富豪라 稱하므로 實로 危■(위구)하와 마음을 놓지 못하오니 請컨데 盜難을 免케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웃으시며 그 문 앞에 침을 뱉으시고 일러 가로사대 今後로는 마음을 놓으라. 盜賊이 저절로 멀리 가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後로는 盜賊의 자취가 없어지니라.

평역:갑진(1904)년 9월19일 함열 회선동에 있는 김 보경의 집에 가시니 보경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요즘 이 부근에 밤마다 도둑이 나타나서 물건을 훔쳐 가는데 저의 집이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희 집을 부자라 말하니 참으로 무서워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청하건데 도둑으로부터의 재난을 피하게 해 주십시오 하자 선생이 웃으시며 그 집 문 앞에 침을 뱉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후로는 마음을 놓으라, 도둑이 저절로 멀리 가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그 후로는 도둑의 자취가 없어지니라.

 

二八.

十一月[1904年]에 全州府에 이르시니 마침 民擾(민요)가 일어나서 人心이 洶洶(흉흉)하거늘 甫京에게 일러 가라사대 金秉旭이 國家의 重鎭에 處하였으니 人民의 動搖를 잘 鎭撫(진무)하여 이로써 그 職責을 다하여야할지라 그 方略을 어떻게 定하였는지 秉旭에게 물어오라. 甫京이 秉旭을 찾아 命하신 바를 傳하니 秉旭이 先生께 와서 뵙고 가로되 나의 無能으로는 물끓듯하는 民擾를 鎭壓할 수 없사오니 오직 先生의 神威만 믿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내가 가름하여 鎭壓하리라하시고 그날 밤부터 雨雪을 크게 내리시며 天氣를 酷寒케 하시니 防寒의 設備가 없이 露營에 모였던 群衆은 할 수 없이 解散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雨雪은 三日을 繼續(계속)하므로 群衆은 다시 모이지 못하고 騷亂은 저절로 平定되니라.

평역:갑진(1904)년 11월에 전주에 가시니 민중들의 소요(民擾)가 일어나서 인심이 흉흉하거늘 선생께서 김 보경에게 말씀하시기를 "김 병욱은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으므로 소란한 민심을 잘 다스려서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인 바 그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병욱에게 물어보고 오라." 하시므로 보경이 병욱을 찾아서 말씀하신 바를 전하니 병욱이 선생께 와서 뵙고 말씀드리기를 "저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물끓듯하는 민중의 소요사태를 진압시킬 길이 없사오니 오직 선생께서 지니신 신의 위엄만을 믿겠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알아서 진압 하리라." 하시고 그 날 밤부터 눈과 비가 많이 내리게 하시어 날씨를 혹독하게 하시니 미처 추위에 대비하지 못하고 거리에 모였던 군중들은 할 수 없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그 후로도 눈과 비가 삼일간을 계속 내리므로 군중들이 다시 모이지 못하게 되어 민중들의 소요(民擾)가 저절로 평정 되니라.

 

二九.

十二月[1904年]에 院坪에 계실 때 그때에 御使 朴齊斌(박제빈)이 全北 七邑郡守를 罷免(파면)하고 將次 全州에 出道하려함에 郡守 權直相의 地位도 危殆하게 된지라. 金秉旭은 當時 全州 陸軍將校로서 權直相과 友誼關係가 있을 뿐 아니라 또한 脣齒(순치)의 關係가 있음으로 그 일을 근심하여 先生께 그 對策을 묻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無事하게 풀리도록 하리니 근심치 말라 하시더니 그 後에 朴御使가 權直相을 罷免하려고 全州府에 들어오자 때마침 朴御使 免官秘訓이 全州府에 到着하니라.

평역:갑진(1904)년 12월에 선생께서 원평에 계실 때 어사(御使) 박 제빈이 전라북도 일곱 고을 군수를 파면하고 곧 전주부에 출두하려고 하니 군수 권 직상의 직위도 위태로운지라. 이때 김 병욱은 전주부의 육군 장교로 군수 권 직상과는 친분이 두터우므로 권 직상이 파면되면 자신도 같이 낭패 당할 일이 많으므로 근심하여 선생께 그 대책을 여쭈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일은 무사하게 풀리도록 할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 하시더니 그 후에 박 제빈이 권 직상을 면직하려고 전주부로 들어오자 때 마침 박어사(御使)를 면직(免職)한다는 비밀훈령이 전주부에 도착하니라.

 

三十.

乙巳[1905年] 正月 晦日(회일)에 先生이 亨烈과 더불어 扶安 成根里 李桓九의 집에 가시어 여러날 머무르실 때 桓九가 扶安邑人 辛元一을 자주 薦擧(천거)하거늘 先生이 元一을 부르시니 元一이 와서 뵙고 先生을 自己집으로 모셔다가 供養하니 元一의 父와 弟가 先生을 믿지 아니하고 오래 머무르심을 싫어하는지라. 元一이 請하여 가로되 家親이 本來 漁業을 즐겨하여 해마다 營業하다가 去年에 暴風으로 因하여 큰 損害를 보았으니 請컨데 今年에 風災를 없게 하사 漁業을 興旺케 하여주시면 家親을 위하여 多幸하겠나이다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多益을 얻은 後에 돈 千兩을 나누어 오라. 將次 用處가 있노라하시니 元一 父子가 기뻐하여 許諾하더니 이해에 果然 風災가 없고 七山海上에서 元一父의 漁業이 가장 興旺하여 大金을 얻은 지라. 先生이 元一父에게 傳人하사 許諾한 돈 千兩을 보내라 하시니 元一의 父가 前約을 어기고 보내지 아니하거늘 先生이 元一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는 大人을 欺罔(기망)함이라 내 일은 모든 것을 神明과 더불어 作定하는 것이므로 한가지라도 사사로이 못하나니 今後로는 君의 父의 漁業이 撤廢케되리라 하시더니 그 後로는 一尾의 魚도 잡히지 아니하므로 드디어 漁業을 廢止하니라.

평역:선생께서 을사(1905)년 정월 그믐날에 형렬과 더불어 부안군 성근리에 사는 이 환구의 집에 가시어 여러 날 머물고 계셨는데 환구가 부안읍에 사는 신 원일을 자주 천거(薦擧)하므로 부르시니 원일이 와서 뵙고 선생을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공양(供養)하니 원일의 아버지와 아우는 선생을 믿지 아니하고 선생께서 오래 머무르시는 것도 싫어 하는지라. 원일이 선생께 부탁하여 여쭈기를 "저의 집 부친이 해마다 고기잡이 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여 왔는데 작년에는 폭풍으로 인하여 큰 손해를 보았사오니 금년에는 바람으로 인한 재앙(風災)를 없게 하셔서 고기잡이가 잘되게 하여 주시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겠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많은 이익을 얻은 후에 돈 천냥을 나누어 가져오겠느냐. 장차 쓸 데가 있느니라." 하시니 원일 부자(父子)가 기뻐하며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이 해에는 과연 바람의 재해(風災)가 없고 칠산 바다에서 신 원일 부친의 고기잡이가 가장 잘 되어 큰 돈을 벌었더라. 그 후에 선생께서 원일의 부친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전에 약속하였던 돈 천냥을 보내라 하시니 원일의 부친이 약속을 어기고 보내지 아니하거늘 선생께서 원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대인(大人)을 속이는 것이라. 나의 모든 일은 신명(神明)과 함께 미리 정하고 하는 것이므로 한가지라도 사사로이 못하느니 이제부터 그대 부친은 고기잡이업으로 먹고 살아 가지 못하게 되리라." 하시더니 그 후로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히지 않아 드디어 고기잡이 업을 그만두게 되니라.

 

三一.

三月[1905年]에 一進會와 全州吏屬이 서로 交爭하여 崔昌權이 府內吏民을 모아 四門을 堅閉(견폐)하고 一進會의 入城을 막으며 四方으로 通文을 發하여 民兵을 募集하여 一進會를 剿滅(소멸)코저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어렵게 살아난 것이 또 죽게 되니 救助하여 주리라 하시고 花亭里 李京五에게 돈 七十兩을 請求하시니 京五가 돈이 없다고 謝絶하거늘 他處에서 七兩을 辦備(판비)하사 가라사대 이 七兩이 能히 七十兩을 代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데리고 全州 龍頭峙 酒店에 이르시어 行人을 많이 請하여 술을 먹이시고 종이에 글을 써서 그 집문 돌쩌귀와 문고리를 聯結하시더니 이날 夕暮에 이르러 一進會와 吏屬이 和解하여 四門을 열고 一進會를 入城케 하니라. 이 날에 消費하신 돈이 六兩이라 先生이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古人은 바둑 한點으로 十萬兵을 물리쳤다하는데 나는 돈 六兩으로 吏會의 交爭을 풀었으니 내가 古人만 같지 못하다하시니라.

평역:을사(1905)년 3월에 일진회 회원과 전주부내 아전들이 서로 다투어 정 창권이란 사람이 전주부내 아전들과 백성들을 모아서 사대문을 굳게 잠그고 일진회 회원들이 성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사방으로 통문을 보내어 민병을 일으켜 일진회를 타도하고자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렵게 살아난 사람들이 또 죽게 되었으니 내가 그들을 구해주리라." 하시고 화정리에 사는 이 경오에게 "돈 칠십 냥을 가져오라." 하시니 이 경오가 돈이 없다고 하므로 다른 곳에서 일곱 냥을 구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곱 냥이 능히 일흔 냥을 대신하리라." 하시고 전주 용머리 고개에 있는 주막에 이르시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아 술을 먹이시고 종이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쩌귀와 문고리를 연결하시더니 이 날 저녁 무렵에 일진회와 아전들이 서로 화해하여 사대문을 열고 일진회가 성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하니라. 이 날에 쓰신 돈이 여섯 냥인데 선생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옛날 사람은 바둑 한 점으로 십 만 군사를 물리쳤다 하는데 나는 돈 여섯 냥으로 아전과 일진회의 싸움을 말렸으니 내가 옛 사람만 같지 못하다." 하시니라.

 

三二.

同日에 火賊이 李京五의 집을 襲擊하여 돈 七十兩을 奪去(탈거)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그 돈에 賊神이 犯하였음을 알고 活人하는 일에나 쓰기 爲하여 請求하였더니 京五가 듣지 않고 없다고 謝絶하였다 하시니라.

평역:그 날 이 경오의 집에 화적이 습격하여 돈 칠십 냥을 강제로 빼앗아 가거늘 선생께서 그 일에 대해 들으시고 말씀 하시기를 "그 돈에 도둑의 기운(賊神)이 들었음을 알고 내가 그 돈을 사람 살리는데나 쓰려고 달라고 하였더니 경오가 듣지 않고 없다고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三三.

이 後로 數朔동안 客望里앞 酒店에서 公事를 行하시매 從徒의 來往이 頻繁(빈번)하여 店主 吳東八이 돈을 많이 모았더니 그 後에 經用이 不足함을 보고 甚히 冷待하거늘 모든 從徒가 그 無義함에 怒하니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至愚無學한 무리가 어찌 義理를 알리오. 우리가 만일 그 無義함에 怒하면 그가 반드시 大禍를 받으리니 나의 過次에 德을 흘리지 못하고 도리어 禍를 끼치면 어찌 穩當하리오 하시니라.

평역:이 뒤로 두어달 동안 손바래기 마을앞 주막에서 선생께서 공사를 행하시니 종도들의 오고 감이 많아지자 주막 주인 오 동팔이 돈을 많이 모았더니 그 뒤에 경비가 부족해진 것을 보고 매우 차갑게 대하므로 모든 종도들이 그 의리 없음을 분하게 생각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무리가 어떻게 의리를 알리오. 우리가 만일 그 의리없음을 보고 화를 내면 그가 반드시 큰 화(禍)를 입으리니 나의 지나가는 길에 덕을 베풀지 펴지 못하고 도리어 화(禍)를 끼치면 그것이 어찌 사리(事理)에 맞는 일 이리오." 하시며 종도들을 타이르시니라.

 

三四.

그 後에 泰仁邑에 이르시어 夜半에 여러從徒들을 데리시고 山에 올라 公事를 行하신 後에 일러 가라사대 이제 大神明이 會集하였으니 그 解散끝에는 慘酷한 膺懲이 있으리라 말씀을 마치시자 문득 泰仁邑에서 群衆의 高喊소리가 나는지라 從徒들이 先生을 모시고 山에서 내려와 事由를 探聞하니 辛京玄의 酒店이 群衆의 襲擊을 받아 家藏 什物(집물)과 酒缸(주항)이 모두 破損無遺하였더라. 元來 辛京玄이 酒業을 經營함에 邑中 少年의 同情을 얻어서 多益을 보았더니 그後로 少年들이 窮乏(궁핍)하여짐에 京玄이 甚히 冷待하거늘 少年들이 그 無義함에 怒하여 이렇게 襲擊함이라. 翌日에 先生이 京玄의 집에 가시니 京玄 夫妻가 號泣하며 他處로 옮기려하거늘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元來 利害得失이 모두 自身에게 있고 位置에 있지 아니하나니 이 後로는 삼가하여 모든 사람에게 溫情을 베풀라. 그러면 前路가 펴이고 營業이 다시 興旺하리라 하시니라.

평역:그 후에 태인읍에 이르시어 밤중에 종도들을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 공사를 행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에 큰 신명(神明)들이 모였으니 그들이 해산할 때에는 반드시 참혹한 응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자 문득 태인읍으로부터 군중들의 고함소리가 일어나는지라. 종도들이 선생을 모시고 산에서 내려와 그 이유를 알아보니 신 경현의 주점이 군중의 습격을 받아서 집 안 살림살이와 술독이 다 부서져 성한 것이 없더라. 원래 신 경현이 술 집을 경영하면서 읍내 청년들의 동정을 얻어서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 뒤에 청년들이 궁핍하여지자 경현이 그들을 매우 차갑게 대하거늘 청년들이 그 의리없음에 화를 내어 이렇게 습격한 것이라. 그 다음날 선생께서 경현의 집에 가시니 경현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 하거늘 (선생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주모에게 "술을 가져오라." 하시니 주모가 대답하기를 "술 항아리가 모두 깨졌으니 무슨 술이 있겠습니까."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궤 속에 감추어 둔 소주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주모가 감탄하며 "선생님 앞에서는 조금도 숨길수가 없습니다." 하고 작은 병에 담겨 있는 소주를 따라 올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원래 이해득실이란 모두 자신에게 있고 장소에 있지 아니하니 이 뒤로는 삼가하여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라. 그러면 앞 길이 펴이고 영업이 다시 잘되리라." 하시니라.

 

三五.

그 날밤에 吳東八의 酒店에는 뜻밖에 우뢰같은 소리가 나며 집이 저절로 드날려서 顚覆되고 人蓄과 家産은 아무 傷害가 없는지라 東八이 材木을 收拾하여 집을 改築하다가 二回나 거듭 前과 같이 顚覆되므로 할 수 없이 工事를 中止하고 依幕을 치고 지내더니 하루는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景狀을 보고 矜惻히 여겨 自進하여 겨우 三四時間을 費하여 집을 改築하여주고 賃金도 要求하지 않고 가니라. 大抵 그 改築에는 普通木工十餘日 품을 要할 工事이므로 이웃사람은 크게 異常히 여기되 從徒들은 모두 泰仁 山中에서 말씀하신 일을 生覺하여 그 被禍(피화)한 것은 반드시 神明解散時의 膺懲이오 다시 그 神奇한 求助를 받은 것은 先生께서 矜惻(긍측)히 여기사 神將을 보내어 工作케 하심이라고 生覺하니라.

평역:그 날 밤 손바래기앞 오 동팔의 주점에서 갑자기 우뢰같은 소리가 나더니 집이 저절로 무너졌으나 사람과 가축 그리고 집의 세간살이에는 아무 피해가 없는지라. 오 동팔이 재목들을 다시 모아서 집을 지으려 하나 두 번이나 거듭 전과 같이 무너지므로 할 수 없이 집 고치려는 것을 그만두고 천막을 치고 살고 있으니 하루는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모양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스스로 나서더니 불과 서너시간 만에 집을 고쳐주고 품삯도 요구하지 않고 가더라. 무릇 그 집 고치는 일은 보통 목수가 일해도 십 여일을 일 해야만 하는 공사이므로 이웃사람들은 그 일을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종도들은 모두 선생께서 태인 산중에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여 오동팔이 화를 당한 것도 신명들이 해산 할 때의 응징이오, 다시 그 신기한 도움을 받은 것도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신장(神將)을 보내시어 집을 고쳐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니라.

 

三六.

매양 天地公事를 行하실 때 모든 從徒에게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좋은 世上을 구경하라 하심으로 從徒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이르기를 希望하더니 하루는 辛元一이 固請하여 가로되 先生께서 天地를 開闢하여 새 世上을 建設한다 하신 지가 이미 日久하오며 公事를 行하심도 累回를 經하였으되 時代의 現狀은 少豪도 變改함이 없사오니 弟子의 疑惑이 날로 滋甚하나이다 先生이시여 하루바삐 世上을 뒤집어서 仙境을 建設하사와 남의 嘲笑를 一身에 注集치 않게 하시고 애달프게 기다리는 우리에게 榮華를 주시옵소서 하거늘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人事는 機會가 있고 天理는 度數가 있나니 그 機會를 지으며 度數를 運化함이 當然한 일이라 이제 機會와 度數를 어기고 억지로 私權을 쓰면 이는 天下에 災를 끼침이며 億兆의 生命을 빼앗음이니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하시되 元一이 더욱 굳이 請하여 가로되 方今天下가 混亂無道하여 善惡을 가리기 어려우니 마땅히 속히 殄滅(진멸)하고 새 운수를 열으심이 옳으니이다 하거늘 先生이 피로해 여기사 七月에 元一과 그 아래 數三從徒를 데리고 邊山 開巖寺에 가사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扶安 石橋를 向하여 뿌리시니 문득 그 方面으로 구름이 모여들어 大雨注下하고 開巖寺 附近은 晴朗하더라. 先生이 元一을 命하사 速히 집에 往還하라 하시니 元一이 承命하고 집에 돌아간즉 그 아우의 집이 大雨에 倒壞(도괴)되고 그 眷屬이 자신의 집에 모여있거늘 元一이 悲慘을 이기지 못하여 곧 돌아와서 先生께 그 事由를 告白하니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開闢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이제 天下가 水國化하여 모든 것을 淪沒(윤몰)케 하고 우리만 살아 있으면 무슨 福利가 되리요 大抵 濟生醫世는 聖人의 道요 災民革世는 雄伯의 術이라 이제 天下가 雄伯에게 괴로움을 당한지 오랜지라, 내가 相生의 道로써 化民靖世하리니 새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大人을 공부하는 者는 恒常 남 살리기를 生覺하여야하나니 어찌 億兆를 死滅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圖謀함이 옳으리요 하시니 元一이 이 일로부터 두려워하여 無禮한 言辭로 先生께 괴롭게 한일을 뉘우치고 元一의 아우는 그 兄이 先生께 追從하고 家事를 돌보지 아니함을 미워하여 恒常 先生을 ■辱(후욕)하더니 兄으로부터 이 事實을 듣고는 先生께  辱한 罪의 報應으로 家屋이 倒壞됨이 아닌가하여 이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평역:항상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구경하라." 하시니 종도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오기를 바라더니 하루는 신 원일이 간청하여 말씀드리기를 "선생께서 천지를 개벽하여 새 세상을 건설한다 하신 지가 이미 오래이며 공사를 행하신 것도 여러 번인데 세상 돌아가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사오니 제자의 의혹이 날로 깊어지나이다. 선생이시여 하루바삐 이 세상을 뒤집어서 신선세계를 건설하시어 우리가 남들의 비웃음을 받지 않게 하시고 애달프게 기다리는 저희에게 권력과 부귀를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거늘 선생께서 일러 말씀 하시기를 "사람의 일에는 기회가 있고 하늘의 이치에는 도수(度數)가 있으니 그 기회를 만들어 도수를 짜서 운용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마땅한 일 일 것이라. 이제 기회와 도수를 어기고 사사로운 권한으로 억지로 일을 꾸미면 이것은 천하에 재앙을 끼치는 일이며 수 없는 생명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니 차마 할 일이 아니로다." 하시었으나 신 원일이 다시 고집하여 간청하기를 "현 세상이 혼란하고 도(道)가 없어져서 선악을 가리기 어려우니 마땅히 빨리 멸망시키고 새 운수를 열으심이 옳나이다." 하거늘 선생께서 매우 괴로워 하시더라. 칠 월에 신 원일과 그 아래 종도 몇 명을 거느리시고 변산에 있는 개암사(開巖寺)에 가시어 (원일에게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을 준비하라 명하신 후 청수(淸水) 한 그릇을 방 한편에 놓으시고 쇠머리를 삶아 청수 앞에 진설하신 뒤 그 앞에 원일을 무릎 꿇게 하시고 성냥 세 개비를 청수에 넣으시니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 나는지라. 선생께서 원일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청수 한 동이 물에 성냥 한 갑을 다 넣으면 천지가 물바다가 될지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니 그리 알지어다. 만약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앙만 끼칠 뿐이니라." 하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부안에 있는 석교(石橋)를 향하여 뿌리시니 갑자기 그 쪽으로 구름이 모여들어 큰비가 쏟아지고 개암사 부근은 청명하게 맑더라. 선생께서 원일에게 명하시어 "빨리 집에 갔다가 오라." 하시더니 원일이 명을 받들고 집에 돌아가 보니 그 아우의 집이 큰 비에 무너지고 그 가족들은 자신의 집에 모여 있거늘 원일이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곧 돌아와서 선생께 그 일을 말씀 드리니 선생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이제 온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모든 것이 물에 빠져 죽게 한 후에 우리만 살아 남아 있으면 무슨 복과 이득이 있으리오. 무릇 삶을 구제하고 세상을 보살펴 치료하는 일은 성인의 도법(道法)이며 백성에게 재앙을 주고 세상을 뒤집는 것은 제후들이나 영웅들의 술법(術法)이라. 이제 천하가 영웅들과 제후들에게 괴로움을 당한 지 오래이니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세상을 다스리리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큰 사람(大人)이 되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항상 남 살리기를 생각해야 하느니 어찌 수많은 생명을 죽여 멸망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꾀함이 옳으리오." 하시니라. 원일이 이 일을 당한 후부터 두려워하여 무례한 말로 선생을 괴롭게 한 일을 뉘우치고 또 원일의 아우는 원일이 선생을 따르고 난 후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음을 미워하여 항상 선생을 못 마땅하게 생각해 오더니 형으로부터 그 일에 대해 전해 듣고 선생께 불경하게 대한 죄의 대가로 집이 무너져 부수어진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여 이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三七.

그 後에 古阜 立石里 朴昌國의 집에 이르시니 昌國의 妻는 先生의 親媒라 마침 벗은 발로 밖에 다니시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여겨 가라사대 이 도랑에 毒蛇가 있으니 벗은 발을 물면 어찌 하리요 하시고 길게 휫바람을 부시니 문득 큰 毒蛇 한 마리가 풀밭으로부터 나와서 뜰 밑에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있더니 이윽고 昌國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毒蛇를 보고 大驚하여 곧 喪杖을 들어 打殺하거늘 先生이 그 피가 땅에 있음을보시고 가라사대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害가 있으리라 하시고 親히 그 血痕을 밟아 毒氣를 除하시니라.

평역:이 뒤에 고부 선돌에 있는 박 창국의 집에 이르시니 창국의 집 사람은 선생의 누이동생이라. 마침 벗은 발로 밖에 다니는 것을 보고 민망히 여기시어 말씀하시기를 "이 부근 도랑에 독사가 있으니 벗은 발로 다니다가 발을 물리면 어찌하리오." 하시고 길게 휘파람을 부시니 갑자기 큰 독사 한 마리가 풀밭에서 기어 나와 뜰 밑에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있더니 이때에 창국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독사를 보고 깜짝 놀라 곧 초상 당하였을 때 짚는 지팡이로 때려 죽이니 (선생께서 이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독사를 집안에 상 당한 사람이 보면 그 상장으로 때려 죽일 것이오. 도를 딱는 선승(禪僧)이 보면 그 선장으로 죽일 것이나 누이동생은 상장도 선장도 없으니 무엇으로 독사를 제거하리오 하시고) 선생이 그 독사의 피가 땅에 떨어져 있음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해를 입으리라." 하시고 친히 그 피흔적을 밟아 독기운을 없애시니라.

 

三八.

十二月[1905年]에 咸悅에서 銅谷으로 가실 때 길이 심히 질어서 行路가 困難한지라 先生이 "御在咸羅山下"라 써서 불사르시니 泥路가 곧 얼어서 굳어지거늘 이에 마른 신발로 登程하시니라.

평역: 을사(1905)년 섣달에 함열에서 구릿골로 가실 때 길이 진흙탕이 되어서 가시기가 어려우시자 선생께서 "길을 딱는 신장에게 명하노니 함라산 아래 머무는 임금의 거처를 동곡으로 옮기리니 길을 예비하라. (勅令治道神將 御在咸羅山下 移御于全州銅谷)" 하시는 글을 써서 불사르셔서 길 닦는 신장에게 치도령을 내리시니 질었던 길이 곧 얼어 붙어서 굳어지거늘 이에 마른 신발로 길을 가시니라.

 

三九.

丙午[1906年] 正月 三日에 銅谷에 계실 때 여러 從徒에게 一晝夜동안 言語와 吸煙을 禁하시니라.

평역:병오(1906)년 정월 초사흘날에 구릿골에 계실 때 여러 종도들에게 하루 낮과 밤 동안 말하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못하게 하시니라.

 

四十.

五日에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오늘은 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는 웃음을 조심하라 만일 웃는者가 있으면 이 神明이 公事를 보지 아니하고 돌아가리니 그가 한 번 가면 어느때 다시 올지 모르리라 하시거늘 여러 사람이 特別히 조심하더니 뜻밖에 鄭成伯이 웃음으로 一座가 다 함께 웃느니라. 그날 午後에 成伯이 문득 惡寒大痛하야 三日間을 委席하더니 先生이 앞에 눕히시고 어루만지시니 곧 나으니라.

평역:병오(1906)년 정월 (초사흘에 김 형렬과 김 성화의 부자와 김 보경의 부자(夫子)와 김 광찬의 숙질이 구릿골에서 선생을 모시고 선생께서 명하신 대로 하루동안 말도 아니하고 담배도 끓고 있을 때) 선생께서 이틀 후 정월 5일에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웃음을 주재하는 신명인 호소신(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들은 웃음을 조심하라. 만일 웃는 자가 있으면 이 신명이 공사를 보지 아니하고 돌아가리니 그 호소신은 한 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르느니라." 하시므로 여러사람들이 각별히 조심하다가 뜻밖에 정 성백이 웃기 시작하자 모두가 같이 웃는지라. 그 날 오후에 성백이 갑자기 오한이 일어나 크게 아프더니 사흘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니 선생께서 성백을 앞에 눕히시고 어루만지셔서 곧 낫게 하시니라. (이때에 선생께서 날마다 물형약도(物形略圖)를 그려서 불사르시니라.)

 

四一.

銅谷앞에서 酒店營業을 하는 丁槐山이 極히 貧寒하되 매양 先生을 至誠으로 供待하더니 正月에 先生이 그 집에 들리시니 槐山이 先生께 供待하려고 狗湯을 土鼎에 끓이다가 문득 土鼎이 깨어짐에 槐山의 妻가 落膽하여 울고 서있거늘 先生이 矜惻(긍측)히 여기사 辛京元을 命하사 그가 經營하는 鐵店에서 鐵鼎一座를 가져다주었더니 이로부터 槐山의 家勢가 漸漸 裕足(욕족)하여지니라. 그 後에 槐山이 泰仁方橋로 移居할 때에 그 鐵鼎을 環坪 鄭東朝에게 팔았더니 槐山은 도로 貧寒하여지고 東朝는 裕足하게 되었음으로 모든 사람이 그 鐵鼎을 福鼎이라 稱하니라.

평역:구릿골 앞에서 술장사를 하는 정 괴산이 매우 가난하지만 항상 선생을 지극한 정성으로 공경하며 대접하더니 병오(1906)년 정월에 선생께서 괴산의 집에 들리시니 괴산이 선생께 공양하려고 질 솥에 개장국을 끓이다가 갑자기 질 솥이 깨어지니 괴산의 아내가 낙심하여 울고 서 있거늘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신 경원에게 명하시어 그가 경영하는 철물점에서 쇠 솥 하나를 가져다 주었더니 이때부터 괴산의 집안살림이 점점 넉넉하여 지니라. 그 후에 괴산이 태인 방아다리로 이사할 때에 그 쇠솥을 수류면 환평리에 사는 정 동조에게 팔았더니 괴산은 도로 가난하여 지고 동조는 넉넉하게 되었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쇠솥을 복솥이라 일컬어 말하니라.

 

四二.

하루는 龍華洞 朴奉敏의 酒店에 이르사 술을 찾으시니 마침 술이 떨어졌다 하거늘 先生이 술을 빚었던 그릇을 가져오라하사 물을 채워 부으시고 손으로 저으신 後에 마시며 여러 從徒에게 나누어주시니 그 맛이 本來 빚었던 술과 같으니라.

평역:하루는 금산면 용화동에 있는 박 봉민의 주점에 가셔서 술을 찾으시니 마침 술이 다 되었다 하거늘 선생께서 술을 빚었던 그릇을 가져오라 하시고 그 그릇에 물을 채우신 후 손으로 저으신 뒤에 잡수시며 여러 종도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그 맛이 원래 빚었던 술과 같으니라.

 

四三. (원본에 누락)

 

四四.

하루는 金山寺 靑蓮菴 僧 金玄贊에게 일러 가라사대 明堂쓰기를 願하느냐 하시니 玄贊이 對하여 가로 대 平生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믿고 있으라하시고 그 後에도 金秉旭에게 일러 가라사대 明堂을 쓰려느냐 하시니 秉旭이 對하여 가로 대 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믿고있으라 하시더니 그 後 數年이 되도록 다시 그에 對한 말씀을 아니하심으로 兩人은 다만 先生의 뜻만 바라보고 있다가 하루는 秉旭이 여쭈어 가로대 前者에 許諾하신 明堂은 언제나 주려 하시나이까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아들을 願함으로 그때에 明堂을 쓰였나니 이미 發陰되었느니라 하시니 元來 秉旭이 無子함을 恨하다가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小室을 얻어서 아들을 낳았더니 이 일을 이르심이라. 秉旭이 甚히 虛誕(허탄)히 여기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先天에는 埋白骨而葬之로되 後天에는 不埋白骨而葬之라 하시니라. 그 後에 玄贊이 또 묻거늘 가라사대 明堂은 이미 썼거니와 이제 發陰이 되었느니라 하시니 大抵 玄贊도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退俗(퇴속)하여 娶妻(취처)하고 아들을 낳았음으로 이 일을 이르심이더라.

평역:하루는 금산사 청련암의 중 김 현찬에게 "명당 쓰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어 말씀하시니 현찬이 대답하기를 "평생소원 입니다." 하니 "믿고 있으라." 하시고 그 후에 김 병욱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명당을 쓰려느냐." 하시더니 병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소원입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믿고 있으라." 하시더니 그 후 몇 년이 지나도록 명당에 대한 말씀을 아니하시므로 두 사람이 선생의 뜻만 바라보고 있다가 하루는 병욱이 여쭈기를 "전에 약속하신 명당(明堂)은 언제쯤에나 주시려 하시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아들을 원하므로 그 때 명당(明堂)을 써서 이미 기운이 발음(發陰)되었느니라." 하시니라. 원래 병욱이 자식없음을 한탄하다가 명당을 주신다 약속 하신 후 작은 집(小室)을 얻어서 아들을 낳았더니 이 일을 이르심이라. 병욱이 매우 허탈하게 여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백골(白骨)을 묻어서 땅에 장례를 치루고 그 땅기운을 받아 후손이 복을 받게되기를 빌었으나 후천에는 백골을 묻어 장례를 치루지 않게 되리라." 하시니라. 그 후 현찬이 또 명당을 주시기로 하신 것에 대해 여쭈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명당은 이미 써서 발음(發陰) 되었느니라." 하시니 이 일 또한 현찬이 명당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은후 환속(還俗)하여 아내를 얻고 아들을 낳은 일을 이르심이더라.

 

四五.

金甲七이 親墓를 緬禮(면례)하기 爲하여 모든 器具를 準備하였더니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爲하여 緬葬(면장)하여 주리라하시고 準備한 棺槨(관곽)과 모든 物品을 모두 불사르신 後에 그 재를 앞 내에 버리며 하늘을 보라 하시거늘 甲七이 命하신 대로하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니 문득 異常한 구름이 北天으로부터 南天까지 뻗쳤더라.

평역:김 갑칠이 부모의 산소을 옮겨 장례를 지내기 위해서 모든 이장(移葬)에 쓸 장례기구를 준비하였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산소를 옮겨 장례를 지내 주리라." 하시고 준비한 관과 모든 물품들을 모두 불사르신 후에 그 재를 앞 냇물에 뿌리게 하시며 "하늘을 보라." 하시거늘 갑칠이 명 하신대로 하늘을 우러러보니 문득 이상한 구름이 북쪽 하늘에서 부터 남쪽 하늘까지 뻗어 있더라.

 

四六.

十月[1906年]에 全州府人 文泰潤이 와뵈이거늘 先生이 그 携帶(휴대)한 褓子를 보시고 가라사대 이 房은 安閑한 工夫房이라, 속 모르는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 褓(보)를 끌러 뵈이라 그 가운데 반드시 戰爭의 張本이 있으리라. 泰潤이 부끄러운 빛으로 그 褓를 끌러 보이니 그 叔姪間에 金錢關係로 爭訟(쟁송)하는 書類가 있는지라. 泰潤이 여쭈어 가로대 이런 不美한 일이 있음으로 先生의 神聖하심을 듣고 解決策을 물으러와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차마 稟達(품달)치 못하였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戰爭은 家族戰爭이 큰 것이니 一家의 亂이 天下의 亂을 끌어내나니라 하시고 한 封書를 주시며 가라사대 이 封書를 그대 조카의 집에 가서 불살으라 하시거늘 泰潤이 그대로 하였더니 그 後로 果然 和解되니라.

평역:병오(1906)년 10월에 전주에 사는 문 태윤이 선생을 찾아 뵙자 선생께서 태윤이 가지고 있는 보따리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방은 편안하고 한가로운 공부방이라. (사방에 의병의 동요가 일어나 감시가 심하므로) 그러므로 그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 보따리를 풀어보라. 그 속에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는 문서가 있으리라." 하시니라. 태윤이 (머뭇거리다가 다시 선생께서 재촉하심에) 부끄러운 얼굴빛으로 그 보따리를 풀어 보여드리니 숙질간에 금전관계로 소송하는 문서가 들어 있는지라. 태윤이 여쭈어 말하기를 (이런 불미한 일이 있으므로) "선생의 신성하심을 듣고 그 해결책을 묻고자 해서 왔으나 마음이 부끄러워 차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쟁은 가족간의 전쟁이 큰 것이니 한 가족의 분란이 천하의 모든 난리를 만들어 내느니라." 하시고 글을 써서 봉하여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봉한 글을 그대의 조카집에 가지고 가서 불살으라." 하시거늘 태윤이 그대로 하였더니 그 후로 과연 숙질간에 화해가 이루어지니라.

 

四七.

이 달에 辛元一이 乾材藥局을 배설하고 貿藥(무약)하러 公州令市에 갈 때 先生께 와 뵙고 여쭈어 가로사대 方今 길이 질어서 行人의 不便이 極甚하오니 請컨데 公衆의 交通便宜를 爲하여 길을 얼어 굳게 하여 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許諾하시고 술을 가져오라하시어 마시시니 그날 밤 부터 길이 얼어붙어서 歲末까지 녹지 아니하니라.

평역:병오(1906)년 10월에 신 원일이 건재 약국을 차리고 약재를 사려고 공주에 있는 약재시장에 가는 길에 (김 보경의 집에 들러) 선생께 와서 뵙고 말씀드리기를 지금 길이 매우 질어서 행인들의 통행에 불편이 심하오니 여러사람들이 통행하기 쉽도록 길을 얼려서 굳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허락하시고 원일에게 술을 가져 오라하여 마시시니 그 날밤부터 길이 얼어 붙어서 그해 말까지 녹지 아니하니라.

 

四八.

金益贊을 데리고 全州 細川(세내)을 지나실 때 日人獵師가 雁群이 많이 내려 앉은 곳에 獵銃을 겨누고 發射하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君子不忍見이라 하시고 왼발로 땅을 한 번 구르시며 서시니 그 獵銃이 發射되지 못하는지라. 獵師는 異常히 여겨 銃을 檢査하되 理由를 알지 못하고 無數히 힘들이며 헤매던 차에 雁群이 다 멀리 날아가거늘 先生이 발을 옮겨 길을 行하시니 獵銃은 그제야 發射되니라.

평역:김 익찬을 데리고 전주 세내를 지나실 때 일본인 포수가 기러기떼가 많이 내려 앉은 것을 보고 엽총을 겨누어 쏘려고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차마 군자(君子)된 도리로서 볼만한 일이 아니로다." 하시고 왼발로 땅을 한 번 구르시고 그 자리에 서시니 포수의 엽총이 발사되지 못 하는지라. 포수가 이상하게 여겨 엽총을 검사했으나 도저히 이유를 알지 못하고 힘들이고 있는 사이 기러기떼가 다 멀리 날아가거늘 그제서야 선생께서 발을 옮겨 가시던 길을 가시니 엽총이 비로소 발사 되니라.

 

四九.

佛可止 金成國의 집에 머무르실 때 雉群이 많이 텃밭에 내리거늘 成國이 金德贊과 더불어 網■(망고)를 많이 만들어 텃밭에 張羅하여 잡으려고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너희는 잡을 공부를 해라 나는 살릴 공부를 하리라 하시더니 이 일로부터 雉群은 많이 내려오되 한 마리도 網 에 걸리지 아니하니라.

평역:(한 겨울에) 선생께서 전주 이서면 불가지 김 성국의 집에 머무르고 계실 때 꿩들이 텃밭에 많이 내려 앉는 것을 보고 김 성국이 김 덕찬과 함께 그물망을 많이 만들어 텃밭에 설치하여 꿩을 잡으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잡는 공부를 하라. 나는 살리는 공부를 하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 후로 꿩들이 많이 내려오지만 한 마리도 그물망에는 걸리지 아니하니라.

 

五十.

佛可止로부터 全州로 向하실 때 東南으로부터 大雨가 몰아오거늘 先生이 길 가운데 흙을 파고 침을 밭아 묻으시니 몰아 오던 비가 문득 두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東天으로 향하고 한 갈래는 西天으로 向하여 몰려가니라.

평역:불가지로부터 전주로 향하여 가시는 도중에 동남쪽으로부터 큰 비가 몰려오니 선생께서 길 가운데에 흙을 파시고 침을 뱉어 묻으시니 몰려오던 비가 문득 두 갈래로 나뉘더니 한 갈래는 동쪽 하늘로 향하고 한 갈래는 서쪽 하늘로 향하여 몰려가니라.

 

五一.

黃應種, 金甲七을 데리고 院坪을 지나실 때 院坪 앞다리를 건너시면서 왼발로 길을 한 번 구르시고 길가에 서시더니 이윽고 乘馬客 三人이 오다가 다리건너便에 이르러 馬足이 땅에 붙어서 옮기지 못함으로 御者가 無數히 힘들여 끌다가 하릴없이 멈추고 섰더니 한 御者가 말고삐를 놓고 다리를 건너와서 先生에게 절하고 비켜서시기를 빌거늘 先生이 웃으시며 비켜서시니 말이 비로소 달려가니라.

평역:황 응종,김 갑칠을 데리고 원평 앞 다리를 지나시는데 건너편에서 세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 오는지라. 선생께서 왼발로 길을 한 번 구르시고 길에 멈추어 서시니 다리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말의 다리가 땅에 붙어서 걸음을 옮기지 못하니 마부가 무수히 힘들여 말을 끌다가 할 수 없이 멈추고 섰더니 한 마부가 말고삐를 놓고 다리를 건너와서 선생께 절하고 비켜서 주시기를 간청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며 비켜서신 후에야 말이 비로소 달려가니라.

 

五二.

藥房에 계실 때 하루는 早朝에 해가 떠서 앞제비山 봉우리에 반쯤 오르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러한 難局에 處하여 靖世의 뜻을 품은 者는 能히 日行을 멈추는 權能을 가지지 못하면 不可할지니 내 이제 試驗하여 보리라 하시고 축인 담배 세대를 갈아 피우시되 해가 山■(산전)을 솟아오르지 못하더니 先生이 煙竹을 떼어 땅에 던지시니 해가 문득 數丈을 솟느니라.

평역:선생께서 김 형렬의 집에 차리신 약방에 계시던 겨울 어느날 이른 아침에 약방 앞 제비산 봉우리에서 아침 해가 반쯤 떠오르는 것을 보시고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이렇게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여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뜻을 품은 사람이 능히 해의 운행을 멈추는 권능을 가지지 못한다면 아니되리니 내가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물에 축인 담배 세 대를 연달아 피우시니 떠오르던 해가 산 위로 더 이상 솟아 오르지 못하고 있다가 선생께서 담뱃대를 땅에 던지시니 그제서야 해가 불쑥 솟아 오르니라.

 

五三.

丁未[1907年] 四月에 古阜 客望里로부터 泰仁으로 가실 때 먼저 辛元一을 보내 사 사관을 定하라하시고 翌日에 客望里를 떠나 그 앞 酒店에 이르사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여기서 留宿하리니 너는 먼저 泰仁에 가서 元一 과 함께 자고 明日早朝에 下馬亭에서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 亨烈이 奉命하고 泰仁에 이르러 元一을 만나서 함께 자고 翌日에 元一과 더불어 下馬亭에 이르니 마침 市日이므로 사람이 많이 모여들더라. 先生이 亨烈 元一을 만나서 길가 술집에 坐定하시고 元一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오늘 霹靂을 쓰리니 술을 가져오라. 元一이 술을 올림에 잔을 잡으사 두어 번 두르신 後에 마시시니 문득 바람이 일어나고 暴雨가 쏟아지며 霹靂이 大發하니라. 이윽고 비가 개이거늘 元 一을 命하여 가라사대 辛京元의 집에 가면 알 일이 있으리니 빨리 갔다오라 元一이 應命하고 京元의 집에 가니 마침 나무장사가 비를 避하여 京元의 집에 들어와서 말하되 나는 오늘 놀라운 일을 보았노라 나무를 지고 오는 길에 老婦와 少婦가 길에서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 內容을 들은 즉 少婦는 老婦의 子婦로서 乳兒를 낳은지 七日이 못되어 昨夜에 夫喪을 當한지라. 治喪도 아니하고 乳兒를 버리고 逃亡하므로 老婦는 少婦를 쫓아 만나서 乳兒를 데려다 기르라고 哀乞하되 少婦가 듣지 않고   ■■(힐항)하다가 문득 落雷를 맞아서 少婦가 죽었으니 이 일로 볼진대 天道가 昭明하다 하거늘 元一이 돌아와서 그 들은 말을 告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내가 오늘 아침에 客望里 酒店을 지날 때에 한 少婦가 이슬을 떨며 빨리 지나가더니 그 後로 老婦가 달려오며 少婦의 자취를 묻는 故로 그 事由를 자세히 들으니 實로 人道上 容恕치 못할 罪惡이라. 하물며 그 作配는 저희들끼리 지은것이라 하니 大抵 父母가 지어준 것은 人緣이오 스스로 지은 것은 天緣이라 人緣은 오히려 고칠 수 있으되 天緣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거늘 이제 人道에 悖戾(패려)하고 天緣에 沒義(몰의)하니 어찌 天怒가 없으리요 하시니라.

평역:정미(1907)년 4월에 고부 손바래기로부터 태인으로 가실 때 먼저 신 원일을 보내시어 머물러 쉬실 곳을 정하라 하시더니 다음날 손바래기 마을앞 주점에 이르시어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곳에서 머물 것이니 너는 먼저 태인에 가서 원일과 함께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하마정에서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 형렬이 선생의 명을 받들어 태인에 가서 원일을 만나서 함께 자고 다음날 원일과 함께 하마정에 이르니 마침 시장이 서는 날이므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더라. 선생께서 형렬, 원일과 만나서 길 가에 있는 술집에 자리하신 후 신 원일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은 벼락을 쓸 것이니 술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원일이 술을 올리자 잔을 잡으시고 두어번 두르신 후에 마시시니 문득 바람이 일어나고 폭우가 쏟아지며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 나니라. 이윽고 비가 개이자 신 원일에게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신 경원의 집에 가면 알 일이 있으리니 빨리 다녀오라." 하시니라. 원일이 명을 받들고 경원의 집에 가보니 마침 나무장사가 비를 피하여 경원의 집에 들어와서 말하기를 "내가 오늘 나무를 지고 오는 길에 놀라운 일을 보았는데 노파와 젊은 여자가 길에서 다투고 있어서 그 내용을 들어본즉 젊은 여자는 노파의 며느리인데 아이를 낳은지 채 일주일도 안돼서 남편의 상을 당한지라. 그런데 며느리가 남편의 초상도 치르지 아니하고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거늘 그 시어머니가 젊은 며느리를 쫓아가며 아이를 데려다가 길러 달라고 애걸하여도 며느리가 마음을 돌리지 아니하더니 문득 벼락이 떨어져 그 벼락을 맞아서 죽었으니 이 일을 볼진대 하늘이 어찌 무심하다 하리오." 하거늘 원일이 돌아와서 그 말을 들은 대로 선생께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 아침에 손바래기 주점을 지날 적에 한 젊은 여자가 이슬을 떨구며 빨리 지나가고 그 뒤를 노파가 따라 달려오며 젊은 여자의 자취를 묻는지라, 그 이유를 자세히 듣고 보니 실로 사람의 도리로 볼 때 용서하지 못할 죄악이라. 하물며 그 부부의 인연은 저희들끼리 지은 것이라 하니 "대개 부모가 지어 준 것은 인연(人緣)이오. 스스로 지은 것은 천연(天緣)이라, 사람의 인연은 오히려 고칠 수 있으되 하늘이 준 천연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거늘 이제 인간의 도리에도 어긋나고 하늘이 맺어준 천연에 대해서도 의리를 함께 저버림이니 어찌 하늘의 진노함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五四.

五月五日[1907年] 端陽節에 從徒들과 里中人이 聯合하여 先生을 모시고 學仙菴으로 소창하러 갈 때 中路에 暴雨가 크게 몰려오거늘 先生이 煙竹으로 몰려오는 비를 向하여 한 번 두르시니 문득 비가 다른 곳으로 몰려가더니 學仙菴에 當到한 後에 비가 내리니라.

평역:정미(1907)년 5월5일 단오절에 종도들과 마을사람들이 같이 선생을 모시고 학선암에 소풍가시기를 청하자 허락하시고 가시는 도중에 폭우가 크게 몰려 오거늘 선생께서 담뱃대로 몰려오는 비를 향하여 한 번 휘두르시니 문득 비가 다른 곳으로 몰려가더니 학선암에 도착한 후에야 비가 내리니라.

 

五五.

六月[1907年]부터 數朔동안 井邑 大興里 車京石의 집에 계실 때 朴公又가 從遊하기 一朔前에 川原 市場에서 耶蘇敎人과 交爭하다가 큰 돌에 맞아서 가슴뼈가 傷하여 一時 昏倒하였다가 겨우 回■(회소)하여 數旬間 治療를 받은 後에 겨우 行起는 하되 아직까지 胸部에 손을 대지 못하고 起臥에 크게 苦痛을 感하는 中이므로 그 事實을 先生께 告達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前者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胸部를 쳐서 死境에 이르게 한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잘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快復한 後에는 加害者를 찾아서 죽이려고 生覺하나 너에게 傷害를 받은 者바의 척神이 그에게 붙어서 報復한바 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마음을 잘 풀어 加害者를 恩人과 같이 生覺하라 그러면 곧 快復되리라. 公又가 그 말씀에 크게 服膺(복응)하여 加害者를 憎惡하는 마음을 풀어버리고 後日에 만나면 반드시 禮待하겠다는 生覺을 두었더니 數日後에 川原 耶蘇敎會에 十二郡 牧師가 會集하여 大傳道會를 開催한다 하거늘 先生이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 傷處를 낫게 하기 爲하여 十二郡 牧師를 召集하였노라 하시더니 그 後 三日만에 公又의 傷處가 全快하니라.

평역:선생께서 정미(1907)년 6월부터 두어달동안 정읍 대흥리 차 경석의 집에 가셔서 계셨는데 박 공우가 선생을 모시고 따르기 한 달쯤 전에 천원시장에서 예수교인들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서 가슴뼈가 상하여 잠시 기절하였다가 겨우 깨어나서 수십 일간 치료를 받은 후에야 겨우 움직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다쳤던 가슴부위에 손을 대지 못하고 일어서고 눕는데 크게 고통을 느끼는 중이므로 이 사실을 선생께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예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잘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다 나은 후에는 너를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서 죽이려고 생각하나 예전에 너에게 다친 사람의 척신이 너를 다치게한 예수교인에게 붙어서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그러니 네 마음을 잘 풀어서 너를 다치게 한 사람을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회복되리라." 하시니라. 공우가 그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아 자기를 다치게 한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풀어 버리고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예의로 대접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더니 몇 일 후에 천원군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전도회를 개최한다 하거늘 선생께서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두고을 목사를 모이게 하였노라." 하시더니 그 후 사흘만에 공우의 상처가 완전히 나으니라.

 

五六.

하루는 가물치膾를 올렸더니 先生이 잡수신 後에 門밖에건 이르시다가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웃어 가라사대 그 기운이 빠르다 하시거늘 從徒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異常한 기운이 가물치모양을 이루어 虛空에 떠서 東天으로 向하여가더라.

평역:하루는 차 경석이 손수 가물치를 잡아 가물치회를 올렸더니 선생께서 잡수신 후에 문밖을 거닐고 계시다가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 기운이 빠르다." 하시므로 종도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가물치 모양을 이루어 허공에 떠서 동쪽하늘을 향하여 가더라.

 

五七.

하루는 從徒 五六人이 琴師를 불러서 伽耶琴을 타게 하고 愉快히 놀더니 先生이 禁止하사 가라사대 저 虛空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從徒들이 모두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異常한 기운이 彈琴하는 形狀과 五六人의 列坐한 모형을 이루어 虛空에 떠 있더라.

평역:하루는 종도 대여섯명이 가야금 타는 사람을 불러서 가야금을 타게 하고 유쾌하게 놀고 있으니 선생께서 못하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저 하늘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거문고를 타는 모양과 대여섯명이 모여앉아 있는 형태를 이루어 하늘에 떠 있더라.

 

五八.

中伏日[1907年]에 先生이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오늘 電光이 나지 아니하면 蟲災가 생겨 農作을 害하리니 잘 살 피라 하시거늘 모두 注意하여 저물도록 살피되 電光이 나지 아니하는지라. 先生이 하늘을 向하여 가라사대 天地가 어찌 生民의 災害를 이렇게 돌아보지 아니하느뇨 하시며 마른 짚을 끓어서 火爐불에 꽂아서 살으시니 문득 北方에서 電光이 發하는지라. 또 가라사대 北方사람만 살고 他方사람은 다 죽어야 옳으냐 하시니 다시 四方에서 電光이 번쩍이더라.

평역:정미(1907)년 6월 중복날에 선생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번개가 치지 않으면 농작물들이 충재(蟲災)의 해를 입으리니 잘 살피라." 하시니라. 종도들이 모두 주의를 기울이고 저물도록 살폈으나 번개가 번쩍이지 아니하자 선생께서 하늘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어찌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재해를 돌보지 아니하느냐." 하시며 마른 짚을 끓어서 화롯불에 꽂아서 불사르시니 문득 북쪽에서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북쪽에 사는 사람들만 살고 다른 쪽에 사는 사람들은 다 죽어야 옳으냐." 하시니 다시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라.

 

五九.

하루는 辛元一, 朴公又外 三四人을 데리시고 泰仁 살포정에 이르사 旅舍에 들어 쉬시니 문득 雷聲이 일어나며 電光이 大發하여 집에 내리려하거늘 先生이 虛空을 向하여 꾸짖으시니 電光이 곧 그치는지라. 公又는 先生이 井邑에서 글을 써서 壁에 붙여 雷聲을 大發케하시고 또 이번에 한 말씀으로 雷電을 그치게 하심을 보고는 비로소 先生께서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줄 알고 이로부터 더욱 敬畏하더니 하루는 先生이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오랫동안 食告를 잘 하였으나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食告는 나에게로 돌릴지어다 하시니 公又가 더욱 기뻐하여 平生所願을 이룬 줄 깨달으면서 곧 그리하겠나이다라고 對答하니라. 元來 公又는 다른 東學信徒의 通例와 같이 "大神師應感"이라는 生覺으로 食告를 하지 않고 恒常 "하느님 뵈여지이다"라는 祈願으로 食告를 하였더니 이제 先生의 말씀하시는 바를 듣건대 반드시 마음으로 生覺하는 것을 洞察하심이며 또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것을 볼 때 分明히 하느님의 降臨하심이 無疑하다고 生覺하니라.

평역:하루는 신 원일 박 공우등 몇사람을 거느리시고 태인 살포정에 이르시어 주막숙사에 들어 쉬실 때 문득 천둥번개가 크게 일어나 그 집에 떨어져 내리려고 하거늘 선생께서 허공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곧 그치는지라. 공우는 선생께서 정읍에서는 벽에 글을 써서 붙이셔서 천둥번개를 크게 일으키기도 하시고 또 이번에는 말씀 한마디로 그치게 하시는 것을 보고 비로소 선생께서 천지의 모든 조화를 마음대로 쓰시는 줄 깨닫고 이로부터 더욱 선생을 기꺼이 공경하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랫동안 밥을 먹기전에 감사하는 마음을 하늘에 고하는 일을(食告)를 잘 하였으나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이제 그 고하는 일(食告)을 나에게 돌릴지어다." 하시니 공우가 더욱 기뻐하여 평생소원을 이룬 줄 깨달으면서 곧 "그리하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니라. 원래 공우는 다른 동학신자들같이 "대신사응감(大神師應感)" 이라는 생각으로 식고(食告)를 하지 않고 항상 "하느님을 뵙게 하여 주소서." 하는 발원으로 식고(食告)를 하였는데 이제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보니 반드시 자신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통찰하심이며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심으로 보아 평생소원이던 하느님께서 강림하신 것이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하지 아니하니라.

 

六十.

하루는 先生이 車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降靈을 받아야하리라 하시고 "元皇正氣來合我身"을 읽히시며 房門을 여시니 京石이 문득 放聲大哭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울음은 神明에게 벌을 당하는 소리라 하시니라.

평역: 하루는 차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신내림(降靈)을 받아야 하리라." 하시고 지극히 크고 바른 기운이 나의 몸과 합하게 하여 달라는 "원황정기 내합아신(元皇正氣來合我身)"의 글귀를 읽히시며 방문을 여시니 경석이 갑자기 큰 소리로 통곡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울음은 신명에게 벌을 받는 소리라." 하시니라.

 

六一.

하루는 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의 先墓 九月山 金盤死雉의 穴蔭을 옮겨오리라 하시고 京石으로 하여금 舞蹈(무도)캐 하시고 公又로 북을치게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구월산 너의 선조 묏자리에 있는 금반사치혈(金盤死雉의 穴蔭)의 기운을 옮겨오리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고 공우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시니라.

 

六二.

하루는 鄭南基의 집에 이르시니 南基의 弟가 무슨 일로 父親에게 叱責을 當하고 不遜한 말로 對答한 後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向하여 들어오더니 문득 문 앞에 우뚝 서서 動作을 못하고 땀을 흘리며 連하여 소리를 지름에 家人이 驚慌罔措(경황망조)하여 어찌 할 줄을 모르는지라. 이윽고 先生이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어찌 그렇게 困苦를 當하느냐하시니 그제야 能히 屈伸하며 精神을 돌이키거늘 家人이 그 緣由를 물으니 對하여 가로되 뜻밖에 精神이 慌迷(황미)하며 숨이 막혀서 呼吸을 通치 못하며 骨節이 굳어져서 屈伸을 못하였노라 하거늘 先生이 물어 가라사대 그때에 너의 가슴이 답답하더냐 對하여 가로되 甚히 답답하여 暫時라도 견딜 수 없더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 所遭로 네 父親의 가슴을 헤아려보아라 너의 父親에게 그렇게 不敬한 말을 하였으니 그 가슴이 어떠하였으랴 今後로는 허물을 뉘우쳐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선생께서 정 남기의 집에 이르시니 남기의 아우가 어떤 일로 부친께 꾸지람을 듣고 불손한 말로 대답한 후에 밖으로 뛰어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향하여 들어오려고 하다가 문득 문 앞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못하고 땀을 흘리며 계속 소리를 지르니 집안 사람들이 모두 어찌 할 바를 모르는지라. 이윽고 선생께서 돌아보시며 말씀 하시기를 "어찌하여 그렇게 곤란을 당하느냐." 하시니 그제서야 겨우 몸을 펴고 정신을 차리니라. 집안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의 아우가 말하기를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고 숨이 막혀서 호흡이 안되고 온몸의 뼈마디가 굳어져서 몸을 펴지 못하였다하거늘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그때에 너의가슴이 답답하더냐." 하시므로 그 아우가 대답하기를 "매우 답답하여 잠시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그런 마음으로 너의 부친 마음을 헤아려 보아라. 네가 부친에게 그렇게 공손하지 못한 말을 하였으니 그 말을 들은 부친의 가슴은 어떠하였겠느냐, 앞으로는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六三.

十一月[1907年]에 銅谷에 계실 때 朴公又가 뵈이려오는길에 偶然히 興이 나서 "모시러가자 모시러가자 부처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자" 라고 노래를 連唱하였더니 銅谷에 이르러 先生께 보이니 가라사대 내가 너의 집에 가기를 願하느냐 하시거늘 公又가 기뻐하며 가로되 至願이로소이다 하고 先生을 모시고 돌아오다가 龍巖里 水砧幕(수침막)에 들어 쉬실 때 門을 열고 南天을 바라보시며 높다 높다 하시거늘 公又가 바라보니 구름이 가득 끼었는데 하늘이 方席한잎 넓이쯤 通하며 바람이 쓸쓸 불고 눈이 내리는지라. 先生이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하시니 公又는 그 말씀이 惶恐하기도하고 怪異하게도 여겼더니 또 가라사대 기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不知中에 여쭈어 가로되 바람이 좀더 불리리다 하였더니 果然 바람이 크게 부는지라 또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 하며 기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또 가로되 바람이 높아지리이다 하였더니 그때는 風勢大作하여 沙石을 날리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龍虎大師의 기운을 公又에게 붙여 보았더니 그 기운이 적다 하시니라.

평역:정미(1907)년 11월에 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박 공우가 선생께 뵈이러 오는 길에 우연히 흥이 나서 "모시러가자 모시러가자 부처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자." 라는 노래를 연달아 부르고 동곡에 이르러 선생을 뵈오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집으로 가기를 원하느냐." 하시거늘 공우가 기뻐하며 "지극한 소원입니다." 하고 선생을 모시고 돌아오다가 용암리 물방앗간에 들어가 쉬실 때 문을 열고 남쪽하늘을 바라보시며 "높다 높다." 하시거늘 공우가 바라보니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 하늘이 방석 크기만한 넓이로 열려서 바람이 쓸쓸히 불고 눈이 내리는지라. 선생께서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와 친구로 지내자." 하시니 공우는 선생의 그 말씀에 황송하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여겼더니 또 말씀하시기를 "기운이 적다." 하시거늘 공우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바람이 좀 더 불겠나이다." 하니 과연 그 말대로 바람이 크게 부는지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와 친구로 지내자." 하시며 "기운이 적다." 하시니 공우가 또 말하기를 "바람이 높아질 것 입니다." 하였더니 이 때는 바람이 크게 일어나 모래와 돌이 흩날리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용호대사 북창 정렴(北窓鄭)의 기운을 공우에게 붙여 보았더니 공우가 기운이 적다." 하시니라.

 

六四.

하루는 公又를 데리고 井邑으로 가실 때 公又에게 "風雲造化"를 心誦(심송)하라 하심으로 公又가 그대로 心誦하다가 문득 잊어버리고 그릇 "天文地理"를 心誦하더니 先生이 돌아보아 가라사대 그릇 찾으니 다시 生覺하라 하시거늘 公又 놀래어 生覺하니 果然 그릇 찾았는지라. 이로부터 고쳐 心誦하며 大興里까지 왔더니 이날 밤에 비와 눈이 섞여 오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너의 한 번 그릇 生覺함으로 因하여 天氣가 한결같지 못하다 하시니라.

평역: 하루는 공우를 데리고 정읍으로 가실 때 공우에게 "풍운조화를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읽으라." 하시므로 공우가 그대로 마음속으로 외우다가 문득 잊어버리고 잘못하여 "천문지리" 를 마음속으로 읽었더니 선생께서 돌아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잘못 찾고 있으니 다시 생각하라." 하시거늘 공우가 놀라서 생각하니 과연 잘못 외고 있는지라. 이로부터 고쳐 외며 대흥리까지 왔더니 이 날 밤에 비와 눈이 섞여 오므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한 번 잘못 생각함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운이 한결같지 못하다." 하시니라.

 

六五.

戊申[1908年] 二月에 從徒를 데리고 어디로 가실 때 보리밭가로 지나가시더니 從徒들이 서로 말하되 此世에 貧富의 差別로 因하여 穀類中에 오직 먹기 어려운 보리가 貧民의 食糧이 되어 먹을 때에 恒常 괴로움이 많으니 보리를 없애버려야 衆生이 괴로움을 免하리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의 말이 有理하니 보리를 없애버리자 하셨더니 四月에 大旱하여 牟麥(모맥)이 枯死함에 農民이 크게 騷動(소동)하는지라 從徒들이 그 事由를 告하여 가로되 이제 만일 麥凶이 들면 餓死하는 者가 많으리라하거늘 先生이 꾸짖어 가라사대 前者에 너희들이 보리를 없애버림이 可하다하고 이제 다시 麥凶을 呼訴하느냐, 내 일은 비록 戱談(희담)한마디라도 度數에 박히어 天地에 울려나가나니 이 後로는 모든 일에 실없는 말을 삼가라하시고 全州 龍頭峙에 가사 金洛範을 命하여 거친 麥飯한 그릇과 土醬한 그릇을 가져오라하사 가라사대 窮民의 飮食이 이러하리라 하시고 土醬에 밥을 말아서 다 잡수시니 문득 黑雲이 일어나며 비가 내려서 牟麥(모맥)이勃然(발연)히 生氣를 얻어서 豊作을 이루니라.

평역:무신(1908)년 2월에 종도 들과 어디로 가시는 길에 보리밭 곁을 지나시니 종도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 세상에 곡식 중에 오직 먹기 어려운 보리가 가난한 사람의 양식이 되어 빈부의 차별을 일으키고 먹을 때마다 항상 괴로움이 많으니 보리를 없애버려야 사람들이 괴로움을 면하리라." 하거늘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의 말이 일리가 있으니 보리를 없애버리자." 하시더니 이 해 4월에 크게 가물어서 보리가 다 말라죽으니 농민들이 크게 동요하는지라. 종도들이 이 일을 선생께 말씀드리며 "이제 만일 보리가 흉년이 들면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많으리이다." 하니 선생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전에는 너희들이 보리를 없애버림이 옳다고 하더니 이제는 다시 보리가 가물어 죽는 것을 호소하느냐. 나의 일은 비록 농담 한 마디라도 도수에 박혀 하늘과 땅에 울려 퍼지나니 앞으로는 모든 일에 실없는 말을 삼가하라." 하시고 전주 용머리고개에 가시어 김 낙범에게 명하시어 거친 보리밥 한 그릇과 된장국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하시어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 이러하리라." 하시고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다 잡수시니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비가 내려서 보리가 다시 생기를 얻어서 풍작을 이루니라.

 

六六.

公又가 從遊함으로부터 先生의 巡遊하실 때에 많이 陪從하였는데 어디서든지 머무르시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시려 하실 때에는 밤이면 月暈(월훈)이 나타나고 낮이면 日暈이 나타나는 것을 微驗(미험) 하였으므로 어느 때던지 日月暈만 나타나면 出行하실 줄 알고 먼저 신발과 行裝을 단속하여 命을 기다리면 반드시 부르사 가자 하시며 出發하였나니 大抵 先生은 어디를 가시던지 미리 말씀을 아니하셨더라.

평역:공우가 종도로서 선생을 따르고 난 후부터 선생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이 모시고 따라 다녔는데 선생께서 어느 곳에서 머무르시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시려고 하실 때에는 항상 밤에는 달무리가 나타나고 낮에는 햇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언제나 햇무리나 달무리가 나타나면 어디로 가시려는 줄 알고 먼저 신발과 행장을 꾸려서 선생의 명령을 기다리면 반드시 부르셔서 가자 하시며 떠나셨나니 대개 선생께서는 어디를 가시던지 미리 말씀을 하지 아니하시니라.

 

六七.

하루는 井邑수퉁店에서 留宿하실 때 公又가 侍側하였더니 李道三이 와서 그 이웃 버들里에서 二十歲쯤 된 女子가 범에게 물려갔다는 말을 告하므로 先生이 公又 에게 하늘에 蟲星(속말에 좀성이라함)이 보이는가 보라 하심으로 公又가 나가서 우러러보고 나타나있음을 告하니 先生이 木枕으로 마루 장을 치시며 蟲星아 어찌 사람을 害하느냐 하시더니 翌日에 그 女子가 살아왔는데 衣服은 破裂되고 몸의 傷害는 크지 아니하더라.

평역:공우가 선생을 모시고 정읍 수통점에서 머무를 때 이 도삼이 와서 그 이웃 버들리에서 스무살쯤 되는 여자가 호랑이에게 물려 갔다는 말을 아뢰거늘 선생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좀생이별이 보이는가 나가 보라." 하시므로 공우가 나가서 살펴보고 나타나있음을 아뢰니 선생께서 목침으로 마룻장을 치시며 "좀성아 어찌 사람을 해치려 하느냐." 하시더니 그 다음날에 그 여자가 살아 왔는데 옷은 많이 찢겨졌으나 몸의 상처는 크지 아니하더라.

 

六八.

天道敎主 孫秉熙가 敎徒의 信念을 鼓舞키 爲하여 湖南各地에 巡廻할 次로 全州에 와서 머물거늘 先生이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全州로 가서 孫秉熙를 돌려보내고 오라 邪說로 群衆을 誣惑하여 疲弊가 極度에 達하였으니 그의 巡廻가 不可하니라 公又가 領命하고 翌日에 發程하려하다가 다시 命하지 아니하심으로 異常히 여겨 停止하였더니 數日後에 孫秉熙가 豫定을 고쳐 京城으로 돌아갔다는 報가 들리니라.

평역: 천도교 교주 손 병희가 교도들의 신념을 북돋우기 위하여 호남지방 각 지역을 순회하는 중 전주에 와서 머물고 있거늘 선생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전주로 가서 손 병희를 돌려보내고 오라. 올바르지 못한 교리로 말을 꾸며 군중들을 미혹하는 폐해가 극에 달하였으니 그의 순회를 허락하지 못할지라." 하시니라. 공우가 명을 받들고 다음날 떠나려고 하다가 다시 명하지 아니하셔서 이상하게 여겨 멈추었더니 몇 일 후에 손 병희가 예정을 고쳐 서울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들리니라.

 

六九.

金甫京이 熊浦에 小室을 두고 本家를 돌보지 아니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주어 가라사대 네 小室을 對하여 불살으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甫京이 그대로 하였더니 뜻밖에 淋病에 걸려서 本家로 돌아와 月餘를 머물렀더니 그 小室이 다른 곳으로 간지라 先生이 甫京을 불러 경계하여 가라사대 이제는 家室이 安靜하여 吉運이 열리리니 本妻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하시고 淋病을 낫게 하여 주시니라.

평역:김 보경이 곰나루(곰개)에 작은 집을 두고 본처를 돌보지 아니하거늘 선생께서 글을 써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의 작은 마누라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 글을 불사르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보경이 그대로 하였더니 뜻밖에 성병이 걸려서 본가로 돌아와 한 달간을 머물렀더니 그 작은 마누라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는지라. 선생께서 보경을 불러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집안이 편안해져서 좋은 운이 열리리니 본처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성병을 낫게 하여 주시니라.

 

七十.

하루는 龍頭峙 旅舍에서 金德贊, 金俊贊等 數人을 데리시고 公事를 行하신 後에 마침 雜技軍이 모여들어 윷판을 벌리니 이것은 先生의 一行을 誘引하여 金錢을 빼앗으려 함이라. 先生이 가라사대 저들의 願을 이루어줌도 또한 解寃이라 하시고 돈五十兩을 놓고 윷을 치실 때 말씀대로 윷을 지어 頃刻間 에 그들의 돈 八十兩을 다 빼앗은 後에 품삯이라 하시며 五錢을 남기시고 七十九兩五錢을 돌려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다 不義의 일이니 各히 집에 돌아가서 職業을 求하여 安堵(안도)하라 하시니 그들이 크게 感服하고 돌아가니라. 從徒들이 말씀대로 윷을 짓는 法을 물으니 가라사대 던지는 法을 一定하게 하여 變改치 아니하면 그리되나니 이도 또한 一心의 法이니라. 또 일러 가라사대 現今 朝鮮의 情勢는 失業者가 增加하여 賭博으로 業하는 者가 續出하리니 日後에 法禁이 嚴刻하여지면 그들은 饑餓에 빠질 수 밖에 없을지라. 그러므로 이제 祿을 붙여주었노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용머리고개 주막에서 김 덕찬, 김 준찬 등 몇몇 종도를 데리시고 공사를 행하신 후 계실 때 마침 노름꾼들이 모여들어 윷판을 벌리니 이것은 선생과 종도들을 유인하여 돈을 뺏으려 함이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도 또한 해원(解寃)일 것이라." 하시고 돈 오십 냥을 놓고 윷을 치실 때 말씀대로 윷을 지어 순식간에 그들의 돈 팔십 냥을 다 빼앗으신 후에 품삯이라 하시며 5전만 남기시고 칠 십 아홉냥 5전을 돌려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은 모두 다 의롭지 못한 일이니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직업을 구하여 열심히 살아가라." 하시니 그들이 크게 뉘우치고 돌아들 가느니라. 종도들이 말씀하시는대로 윷을 지으시는 법을 물으니 말씀하시기를 "던지는 법을 일정하게 하여 변치 않으면 그렇게 되느니 이것도 또한 한 마음을 쓰는 법이라." 하시고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조선정세를 볼 때 실업자가 늘어나서 도박을 아예 업으로 삼아 먹고살려는 사람들이 속출하리니 그러나 다음에 도박을 금지하는 법이 엄해지면 그들은 굶주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들에게도 녹줄을 붙여 주었노라." 하시니라.

 

七一.

하루는 여러 從徒들을 데리고 益山 裡里를 지나실 때 津頭에 이르니 船夫가 없고 배만 떠있거늘 先生이 親히 櫓를 저어 건너신 後에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웃으시거늘 모두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櫓저어 가는 模型을 이루어 徐徐히 떠가더라.

평역:하루는 여러 종도 들을 데리시고 익산리를 지나실 때 나루터에 이르시니 뱃사공은 없고 빈 배만 떠있거늘 선생께서 친히 노를 저어 건너신 후에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웃으시므로 모두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노를 저어 가는 형태를 이루어 천천히 떠가더라.

 

七二.

그 後에 泰仁 今上里에 지나실 때 마침 날이 가물어서 移秧을 못하더니 東學信徒 柳漢弼이 그 前日에 구름이 낌을 보고 비가 올 줄 믿어 마른논에 鋤種(서종)으로 모를 옮겼더니 이내 비가오지 아니하여 苗가 마르거늘 極히 焦悶(초민)하여 가로되 가뭄이 이렇게 甚하여 雨意가 없으니 鋤種한 것을 다시 갈아서 豆太나 심을 수 밖에 없다 하며 길게 歎息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移種한 것을 갈아서 다른 穀種을 심음은 怪變이 아니냐 하시며 柳漢弼을 앞세우고 그곳에 가사 그 慘狀을 보시고 西天을 向하여 雨師를 부르시니 문득 黑雲이 피어나며 急雨가 내리거늘 漢弼은 어떤 까닭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預知術이 있는가 하여 異常히 여기더라.

평역:그 후에 선생께서 태인 금상리를 지나 가실 때 마침 날이 가물어서 모심기를 하지 못하더니 동학신도 류 한필이 그 전날에 구름이 끼임을 보고 혹시 비가 올까 하여 마른 논에 호미로 모를 옮겨 심었으나 이내 비가 오지 아니하여 모가 다 마르거늘 매우 애가 타서 걱정하며 말하기를 "가뭄이 이렇게 심하여 전혀 비 올 생각이 없으니 오늘 옮겨 온 모를 다시 논에 갈아서 콩이나 심을 수 밖에 없다." 하며 길게 탄식하거늘 선생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미 옮겨온 곡식종자를 갈아 엎어서 그 위에 다른 곡식 종자를 심는다는 것은 괴이한 변고가 아니냐." 하시며 류 한필을 앞세우고 그곳에 가시어 그 비참함을 보시고 서쪽하늘을 향하여 우사(雨師)를 부르시니 문득 검은 구름이 피어나며 소나기가 내리거늘 류 한필은 어떤 까닭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다만 선생께서 미리 아는 어떤 술법(術法)을 지니고 있는가 하여 이상히 여길 뿐이더라.

七三.

六月[1908年]에 金秉旭이 委人하여 白南信의 親墓에 墓賊이 들어서 頭骨을 盜去하였다는 事由를 稟達(품달)하니 先生이 사흘밤을 明燭하사 喪家와 같이 지내시고 南信에게 傳言하시기를 頭骨을 찾으러 힘쓰지 말고 幽僻한곳에 處하여 外人의 交際를 끓으라. 處暑節에는 盜賊이 스스로 頭骨을 가져오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때에 사흘밤 徹夜하는 것을 從徒들이 즐거워하지 아니하여 가로되 이같이 힘을 들이되 當事者는 모르오니 무슨 功을 알리이까. 先生이 가라사대 그의 알고 모름이 무슨 關係가 있느냐 하시니라. 南信이 命하신대로 幽僻한 白雲亭에 處하더니 七月에 그 墓下 洞長이 自發的으로 洞會를 열고 議論하되 우리가 이 墓下에 居하여 道義上 泛然(범연)히 지낼수 없으니 擧洞이 出動하여 附近을 搜索하되 만일 頭骨을 찾는 者가 있으면 墓主에게 말하여 厚賞케 함이 可하다 하고 洞民을 總動員하여 附近 山麓(산록)을 搜索하니 이때에 墓賊이 生覺하되 墓主가 安然히 있어서 大金을 費하여 頭骨을 차지하려 아니하니 차라리 이 機會에 頭骨을 가져가면 盜名도 免하고 相當한 厚賞을 얻으리라하고 그 頭骨을 가지고 洞長에게 가서 告하되 내가 各方에 搜索하여 다행히 찾았다 하거늘 洞長이 그사람을 데리고 白雲亭에 오니 이날이 處暑節이더라.

평역:무신(1908)년 6월에 김 병욱이 사람을 보내어 백 남신의 선친 묘에 도둑이 들어서 선친의 두골을 파고 훔쳐서 도망갔다는 일을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사흘 밤을 불을 밝히시고 초상(喪)난 집과 같이 지내시고 나신 후 백 남신에게 말을 전하라 하시기를 "두골을 찾으려고 힘쓰지 말고 한적하고 구석진 곳에 거처하며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끓으라. 처서절에는 도둑이 스스로 두골을 가져오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때에 사흘을 초상 당한 집같이 하여 밤을 지새우는 것을 종도들이 즐거워하지 아니하여 선생께 말씀드리기를 "이같이 힘을 들여도 당사자는 알지 못할 것이니 저들이 무슨 공로를 알겠습니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의 알고 모름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시니라. 백 남신이 선생께서 명하신 대로 한적하고 구석진 백운정에 머물렀더니 7월에 그 선친묘 아래동네 사는 동장이 자발적으로 동네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아래 동네에 살면서 도리로 볼 때 굴총을 당한 일을 모르는 척 하고 지낼 수는 없으니 모든 동네사람이 나가서 부근을 찾아보고 만약 두골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묘주인에게 말하여 크게 상을 주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동네사람들을 총동원하여 부근 산과 들을 크게 수색하니 이때에 두골을 훔친 도둑이 생각하기를 묘주인이 태연하게 조용히 앉아서 큰 돈을 들여 두골을 찾으려 아니하니 차라리 이 기회에 두골을 가져가면 도둑소리도 안 듣고 상당히 후한 상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두골을 가지고 동장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러 곳을 수색하여 다행히 찾았다 하거늘 동장이 그 사람을 데리고 백운정에 머무르는 백 남신에게로 오니 바로 이 날이 처서절이더라.

 

七四.

先生이 이날 早朝에 龍頭峙에 가셨더니 金秉旭이 와서 頭骨찾은 事由를 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盜賊은 어떻게 措處하였느냐 秉旭이 對하여 가로되 警務廳으로 보내었나이다 하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잘 說諭(설유)하여 돌려보내는 것이 可하거늘 어찌 그리 하였느냐 하시고 靑依一件을 지어오라하사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微役에나 處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사람이 處役하니라. 從徒들이 반드시 處暑節에 찾게 된 까닭을 물으니 先生이 가라사대 매양 私事라도 天地公事의 度數에 붙혀두기만 하면 그 度數에 이르러 公私가 다함께 끝이 나니라 하시더라.

평역:선생께서 이날 아침 일찍 용머리고개에 가셨더니 김 병욱이 와서 백 남신의 선친 두골을 찾게된 일를 고하여 말씀 올리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도둑은 어떻게 처리 하였느냐." 하시니 병욱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경무청으로 보내었나이다." 하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을 잘 타일러서 돌려 보낼 일인데 어찌 그렇게 하였느냐." 하시고 푸른 옷 한 벌을 지어오라 하셔서 (김 병욱이 선생께서 명하신 바를 백 남신에게 전하니 백 남신이 푸른 옷 한 벌을 지어 올리니) 그 옷을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으로 그 사람을 징역이나 처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이 징역형을 받느니라. 종도들이 반드시 처서절에 찾게 되는 까닭을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사로운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붙여두기만 하면 그 도수에 이르러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이 다 함께 풀리느니라." 하시더라.

 

七五.

金德贊이 先生께 恒常 倨傲(거오)하더니 하루는 公事를 行하실 때 크게 雷電을 發하시니 德贊이 두려워 하여 避席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罪 지은 바가 없거늘 어찌 두려워 하느뇨 德贊이 더욱 惶怯(황겁)하여 所措(소조)를 莫知하더니 그 後로는 先生을 極히 敬畏하니라.

평역:김 덕찬이 항상 선생께 대하는 것이 거만하더니 하루는 (여러종도들과 함께) 공사를 행하실 때 크게 우뢰와 번개를 일으키시니 덕찬이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하려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죄를 지은 것이 없는데 어찌 두려워 하느냐." 하시니 덕찬이 더욱 놀라고 겁이 나서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모르고 어찌 할 바를 모르더니 그 일이 있었던 다음부터는 선생을 지극히 공경하고 받들었더라.

 

七六.

白南信의 族人 龍安이 都賣 釀酒業의 免許를 얻고 全州府中에 있는 數百 小賣酒家의 家釀을 禁止하니 이때에 先生이 龍頭峙 金周甫의 酒店에 계셨는데 周甫의 妻가 가슴을 치며 가로되 다른벌이는 없고 다만 酒業으로 家眷(가권)이 살아 왔는데 이제 釀酒業을 廢하면 무슨 벌이로 살아가리오 하거늘 先生이 불쌍히 여기사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어찌 男將軍만 있으리오 마땅히 女將軍도 있으리라 하시고 紙片에 女將軍이라 써서 불살으시니 周甫 妻가 문득 神氣를 얻어서 府中을 돌며 號令하여 頃刻에 數百酒婦를 統率하고 龍安의 집을 襲擊하여 形勢가 不穩하거늘 龍安이 大驚하여 群衆에게 謝過하고 都賣經營을 中止하니라.

평역:백 남신의 친척인 백 용안이 술 제조업을 독점하기 위하여 관부로부터 주류도매업 면허를 얻어내고 전주부내에 있는 모든 주점들이 생계를 위해 가정집에서 조금씩 술을 빚어 파는 것을 못하게 하니 이때에 선생께서 용머리고개 김 주보의 주막에 계시다가 김 주보의 아내가 가슴을 치며 말하기를 "다른 벌이는 없고 다만 술을 빚어 먹고 살아 왔는데 이제 술빚는 것 마저 못하게 하면 무슨 벌이로 살아가리오." 하는 것을 들으시고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어찌 남자 장군만 있으리오. 마땅히 여자 장군도 있으리라." 하시고 종이 쪽지에 여장군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김 주보의 아내가 문득 신기(神氣)를 얻어서 큰소리로 전주부중을 돌며 수 백명의 주막집여자들을 모아 데리고 백 용안의 집을 습격하여 형세가 매우 좋지 않으니 용안이 매우 놀라 군중들에게 사과하고 술 도매업을 하려던 계획을 그만두니라.

 

七七.

하루는 從徒들을 데리고 全州 多佳町을 지나실 때 한 喪人이 뒤를 따르며 살려주시기를 哀乞하며 떠나지 못하되 先生이 돌아보지 않고 가시거늘 從徒들이 민망하여 여쭈어 가로되 저사람이 무슨 일로 저러는지 모르나 그 情狀이 可矜하니 돌려보내심이 어떠하니이까. 先生이 돌아보시고 몸에 가졌던 붓을 빼어 먹을 찍으사 喪人의 이마에 한 墨點을 쳐주시며 가라사대 네 褓子를 저 川邊에 버리라하시니 그 喪人이 命하신대로 褓子를 버리고 울며 가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저 사람이 罪를 많이 지었으니 자기 罪에 자기가 죽느니라. 그 褓子는 行妖하는 器具니 몇 時間을 지낸 뒤가 아니면 펴보지 말라 하시거늘 그뒤에 從徒들이 褓子를 펴보니 돌을 싼 것이더라. 그 喪人은 그곳에서 울며 떠난뒤로 곧 失性하여 四方으로 뛰어다니다가 몇 일 후에 죽으니라.

평역:하루는 종도들을 데리고 전주 다가정(多佳町)을 지나가실 때 상복(喪服)을 입은 한 사람이 선생을 계속 따라오며 살려주시기를 애걸하며 떠나지 않으나 선생께서는 돌아 보시지도 않고 가시거늘 종도들이 민망하여 선생께 여쭈어 묻기를 "저 사람이 무슨 일로 저렇게 하는지는 모르나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니 소원을 들어주고 돌려 보내심이 어떠 하겠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돌아보시고 몸에 지니고 계시던 붓을 빼어 먹을 찍으시어 상복을 입은 사람의 이마에 한 점을 쳐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니고 있는 보자기를 저 하천가에 버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선생께서 명하시는 대로 보자기를 버리고 울며 가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은 죄를 많이 지었으니 자기 죄에 자기가 죽느니라." 하시고 "그 보자기 속에는 다니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홀리는 물건들이 들었으니 몇 시간을 지낸 뒤가 아니면 펴보지 말라." 하시니라. 그 뒤에 종도들이 보자기를 펴서 보니 돌을 싼 것이더라. 그 상복을 입은 사람은 그곳에서 울며 떠난 뒤 곧 미쳐서 정신을 잃고 사방으로 뛰어 다니다가 몇 일 후에 죽느니라.

 

七八.

하루는 辛京元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稟(품)하되 警官의 調査가 甚하여 날마다 와서 先生의 住所를 묻나이다. 先生이 來人에게 글을 써주시며 가라사대 이글을 京元에게 傳하여 한 번 보고 곧 불살으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京元이 奉讀한 後에 곧 불살랐더니 그 後로는 警官의 調査가 그치니라.

평역: 하루는 신 경원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말씀 올리기를 "순경들의 조사가 심해져서 날마다 저의 집에 와서 선생께서 계신 주소를 묻나이다." 하고 여쭈니 선생께서 그 사람에게 글을 써주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 글을 신 경원에게 전하여 한 번 보고 곧 불사르게 하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부족하게 내리게 하면 반드시 모든 곳에 원(怨)이 쌓이고, 땅이 만물을 기르면서 흙과 물 쓰는 것을 부족하게 하면 반드시 모든 사물들이 원(怨)을 품게 되며, 사람이 모든 일에 할 때 덕없이 행한다면 반드시 모든 일에 원망이 쌓이느니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고 땅이 흙과 물로 만물을 기르며 그리고 사람이 덕을 베푸는 모든 법이 모두 다 오직 마음쓰는 한가지 법에 달려 있으니, 마음(心)이란 신(神)들이 머무르는 근원처이며 드나드는 문이며 왕래하는 길이니라. 신(神)들이 그 마음의 문을 여닫으며 그 곳으로 들고나며 그 마음의 길로 오고 가나니 때로는 마음속에 착한 것이 들어오고 나기도 하며 때로는 마음속에 악한 것이 들어 왔다가 나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느니라. 그러므로 착한 마음이 들 때면 마땅히 그것을 본받아서 스승으로 삼고, 악한 마음이 들 때면 스스로 조심하여 고친다면 내 마음의 머무르는 자리와 드나드는 문 오고가는 길이 천지의 큰 마음과 크게 다를 바 없느니라." 신 경원이 받들어 읽고 난 후에 곧 불살랐더니 그 후로는 순검의 조사가 그치니라.

 

七九.

金秉旭의 差人 金允根이 先生께 와 뵙고 稟(품)하되 近日에 날이 가물어서 作物이 다 마르오니 先生은 喜雨를 주사 萬民의 焦燥를 녹이소서. 先生이 德贊을 命하사 그가 기르는 家猪一首를 잡아서 烹宰(팽재)하여 여러 從徒들과 더불어 함께 잡수실 때 미처 마치지 못하여 雷雨가 大作하거늘 允根이 ■躍(용약)하여 가로되 先生은 진실로 求活하는 上帝시라 하니라.

평역:김 병욱의 집에서 일을 하는 김 윤근이 선생께로 와서 뵙고 간청 드리기를 "요즈음 날이 가물어서 모든 농작물이 다 마르오니 선생님께서 기쁜 비를 주시어 부디 여러 백성들의 초조함을 덜어 주소서." 하니 선생께서 덕찬에게 명하시어 그가 기르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삶아 여러 종도들과 더불어 함께 잡수시니 미처 잡수시기를 다 마치지 못하여 우뢰가 일어나며 비가 크게 내리거늘 윤근이 힘이 솟아나서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진실로 세상 모든 사람을 살려주시는 상제님이시라." 하니라.

 

八十. (원본에 누락)

 

八一.

泰仁 白巖里 金明七이 山中 傾斜地를 新墾(신간)하여 煙草를 심었는데 肥料를 施하여 붓을 하였더니 문득 急雨가 내림으로 明七이 가슴을 치며 울어 가로되 내 農事는 煙草栽培뿐인데 施肥培土한 後에 이렇게 急雨가 내리니 沙汰가 밀어 내려서 다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가라사대 근심을 풀어라 그 災害를 免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비개인 後에 明七이 가보니 조금도 被害가 없고 他人의 耕作은 全部 沙汰의 害를 입어서 이 해에 煙農이 大凶하니라.

평역:태인 백암리에 사는 종도 김 명칠이 산 속에 있는 비탈을 새로 개간하여 담배를 심었는데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우고 난 후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니 명칠이 가슴을 치며 울며 말하기를 "내 농사라고는 이 담배농사 뿐인데 거름을 주고 흙을 돋우고 난 뒤에 이렇게 갑작스런 비가 내리면 산 비탈 흙이 다 떠밀려 내려가서 농사를 다 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선생께서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말씀하시기를 "그 재해를 면하게 하여 주리니 근심을 풀어라." 하시더니 비 개인 후에 명칠이 가보니 자신의 밭에는 조금도 피해가 없고 다른 사람들의 경작지는 전부 사태를 만나 이 해에는 담배농사가 크게 흉작이 되니라.

 

八二.

하루는 丁槐山의 酒店을 지나실 때 마침 古阜禍亂에 知面된 鄭巡檢이 이르거늘 先生이 술을 사서 待接하셨더니 떠날 때에 돈 十圓을 請求하며 쪼끼속에 손을 넣어 돈 十兩을 훔쳐 가거늘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모든 일을 의롭게 할지어늘 어찌 이렇게 無禮를 行하느냐 하시더라. 鄭巡檢이 全州에 가서 다시 書信으로 돈 四十圓을 請求하거늘 先生이 亨烈로 하여금 若干의 돈을 求하여 보내시며 가라사대 義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몇 일 後에 鄭巡檢이 古阜로 돌아가다가 井邑 한 다리에서 群盜에게 被殺된지라.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巡檢은 盜賊을 懲治하는 職責을 가졌거늘 오히려 非義의 物을 즐기니 盜賊에게 죽음이 當然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神明의 行하는 바이니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정 괴산의 주막집 앞을 지나가실 때 마침 고부환란때 얼굴을 익힌 정 순검이 이르거늘 선생께서 술을 사서 접대하셨더니 떠날 때에 돈 열냥을 달라고 하며 선생의 쪼끼속에 손을 넣어 돈 열 냥을 훔쳐가니 선생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을 의롭게 해야 하거늘 어찌 이렇게 예의 없이 행동하느냐." 하시더라. 정 순검이 전주에 가서 다시 편지로 돈 사십 원을 청구하니 선생께서 형렬로 하여금 약간의 돈을 구하여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의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몇 일 후에 정 순검이 고부로 돌아가다가 정읍에 있는 한 다리에서 도둑 떼들에게 피살당하게 되는지라. 이 일을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순검이란 도둑을 잡아서 다스리는 직책을 가졌거늘 오히려 의롭지 않은 재물을 훔치는 것을 즐기니 도둑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천지신명들의 행하는 바이니라." 하시니라.

 

八三.

하루는 金永西와 鄭南基가 와 보인 後에 兩人이 서로 私語로 酬酌(수작)하되 南基는 日本語學을 배운 사람을 부러워하여 가로되 近來에는 日本語를 通한 사람은 顯達도 쉽고 돈벌이도 容易하더라 하며 永西는 俳優를 부러워하여 가로되 近來에는 劇戱(극희)를 잘하여도 돈벌이가 잘되더라 하여 서로 그런 일을 等閑視하였음을 後悔하더니 문득 南基는 손을 흔들며 流暢(유창)한 口調로 日本語를 말하고 永西는 喪人이라 喪巾을 흔들며 일어나서 喪服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歌舞를 演奏하여 汗出沾背(한출첨배)하거늘 一座가 大笑하는지라. 先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너희는 早速히 所願을 成就하였다 하시니 兩人이 비로소 精神을 차려 부끄러워하는지라. 다시 일러 가라사대 大人을 배우는 者 마땅히 마음을 正大히 하여 그칠 곳을 알아야 할 것이오, 한가지라도 分外의 생각을 가지며 실없는 말을 함이 不可하다 하시니라.

평역: 하루는 김 영서와 정 남기가 선생께 와서 뵙고 난 후에 두 사람이 서로 오가는 말로 그냥 잡담으로 말하기를 남기는 일본어를 배운 사람을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요즘에는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출세도 쉽고 돈벌이도 잘하더라." 하고 영서는 배우를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근래에는 연극공연을 잘하여도 돈벌이가 잘 되더라." 하며 서로 그런 일을 등한시하여 왔음을 후회하더니 문득 남기는 손을 흔들며 유창한 말소리로 일본말을 하기 시작하고 영서는 상(喪)당한 사람이 되어 머리수건을 흔들며 일어나서 상복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땀이 배어서 등을 적시니 그곳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지라.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아주 빨리 소원을 이루었다." 하시니 두 사람이 비로소 정신을 차려 부끄러워하는지라. 선생께서 두 사람에게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큰 사람 되는 일을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크고 바르게 하여 그칠 곳을 알아야 할 것이오, 한 가지라도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실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안되느니라." 하시니라.

 

八四.

하루는 孫秉旭의 집에 가시니 從徒들이 많이 모였음으로 秉旭이 그 妻를 시켜서 午飯을 지을 때 日氣가 甚히 더움으로 그 妻가 괴롭게 여겨 부엌에서 홀로 不平한 말을 하였더니 문득 와사症이 發하거늘 黃應種이 보고 놀래어 先生께 告하자 가라사대 이는 不平한 말을 하다가 ■王(조왕)에게 罰을 받음이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秉旭의 妻로 하여금 부엌에 불사르며 謝過하라 하시니 秉旭의 妻가 그대로 하여 곧 나으니라.

평역:하루는 손 병욱의 집에 가시니 종도 들이 많이 모였음으로 병욱이 그 아내를 시켜서 점심밥을 짓게 하더니 날씨가 매우 더워서 그녀가 괴롭게 여기고 부엌에서 홀로 불평을 하였더니 문득 눈과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와사증이 생기거늘 황 응종이 보고 놀래서 선생께 말씀드리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불평한 말을 하다가 부엌을 주재하는 조왕신에게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음이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시며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이 글을 부엌에서 불사르며 잘못을 빌게 하라." 하시니 병욱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곧 나으니라.

 

八五.

大興里에 계실 때 公又에게 물어 가라사대 네가 남과 싸움을 많이 하였느냐 對하여 가로되 그리하였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네게 豹丹(표단)이 들어서 싸움을 잘하니 이제 豹丹을 빼어내고 人丹을 넣으리라 하시더니 이 後로는 公又의 性質이 溫和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或 싸움하는 사람이 있으면 恐怖心이 생겨서 곧 멀리 피하니라.

평역: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에게 물어 보시기를 "네가 남들과 싸움을 많이 하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리 하였나이다." 하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표범의 단(丹)이 들어서 싸움을 잘하니 이제 그 기운을 빼어내고 사람의 기운을 넣으리라." 하시더니 이 후로는 공우의 성질이 온화하게 되어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혹시라도 싸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공포심이 생겨서 곧 멀리 피하니라.

 

八六.

八月[1908年] 어느 날 金德贊이 先生에게 여쭈어 가로되 오늘 내 妹家에 잔치가 있으니 소풍 겸하여 나가사이다 가라사대 내술을 먼저 마시라. 德贊이 가로되 무슨 술이 있나이까 가라사대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朴公又가 술과 熟鷄(숙계)를 가져와서 先生께 올 리니라.

평역:무신(1908)년 8월 어느 날 김 덕찬이 선생께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오늘 저희 누이동생 집에서 잔치가 있으니 소풍 겸하여 나가사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 술을 먼저 마시라." 하시므로 덕찬이 "무슨 술이 있나이까." 하고 다시 물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박 공우가 술과 삶은 닭을 가져와서 선생께 올리니라.

 

八七.

이 해[1908年] 겨울 어느 날 아침에 大興里로 부터 泰仁 새올 崔昌祚의 집으로 가실 때 朴公又는 해가 올라오면 길이 질까하여 젖은 신발을 하였더니 先生이 보시고 젖은 신발을 하였느냐하시며 손으로 東嶺에 솟아오르는 해를 向하여 세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라오지 못하다가 살포정 旅舍에 들어 쉬시니 그제야 해가 문득 높이 솟아오르더라.

평역:무신(1908)년 겨울 어느 날 아침에 대흥리로 부터 태인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실 때 박 공우는 해가 뜨면 길이 질어질까하여 미리 젖은 신발을 하였더니 선생께서 보시고 "젖은 신발을 하였느냐." 하시며 손으로 동쪽 산마루에 솟아오르는 해를 향하여 세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라오지 못하다가 살포정 주막에 들어 쉬시니 그제서야 해가 문득 높이 솟아 오르더라.

 

八八.

崔昌祚의 집에 이르사 霹靂表를 묻으시니 즉시 雷聲이 大發하여 天地가 震動하거늘 곧 거두시고 翌日에 銅谷藥房에 이르시니 辛元一이 여쭈어 가로되 震默大師는 七星을 七日동안 가두었다하니 옳으니이까 가라사대 이제 試驗하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三個月동안 七星을 가두신 後에 가라사대 現世에 天文學者가 많다하되 七星이 나타나지 아니한 일은 發表한 者가 없다 하시니라.

평역:최 창조의 집에 이르시어 벽력표를 묻으시니 즉시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나며 천지가 진동하거늘 곧 거두시고 다음날 동곡약방에 이르시니 신 원일이 여쭈어 묻기를 "진묵대사는 북두칠성을 칠일 동안 가두었다 전해 오는데 옳은 말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석 달동안 칠성을 가두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현 세상에 천문학자가 많다하나 북두칠성이 나타나지 아니한 일을 발표한 자가 없구나." 하시니라.

 

八九.

崔昌祚의 집에서 公又에게 물어 가라사대 네가 눈을 많이 흘겨 보았느냐 對하여 가로되 그러하였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거늘 公又가 先生께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길에서 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르러 眼疾이 大發하여 한달 동안을 苦痛하다가 하루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 나았는지라 곧 先生께 와 뵈이니 가라사대 眼疾로 辛苦하였느냐 對하여 가로되 그러하였나이다. 先生이 웃으시더라. 元來 公又는 性質이 慓悍하여 싸움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는 性質이 부드럽고 눈짓이 고와지니라.

평역:최 창조의 집에서 공우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눈을 많이 흘겨 보았느냐." 하시므로 공우가 대답하여 "그러하였나이다." 하고 말씀드리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거늘 공우가 선생께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르러 눈병이 크게 일어나 한 달 동안을 고통받다가 하루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 나았는지라. 곧 선생께 와 뵈이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눈병으로 매우 고생하였느냐." 하시므로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러하였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더라. 원래 공우는 성질이 매우 급하여 싸움을 즐기고 눈 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는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눈짓이 고와지니라.

 

九十.

公又가 술이 過하여 酒失이 많더니 하루는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술을 즐기니 酒量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많이 주시거늘 公又가 連하여 받아 마시고 醉한지라. 다시 가라사대 한잔 술밖에 못된다 하시더니 이 後로는 一二杯만 마셔도 곧 醉하여 더 마시지 못하니라.

평역: 공우가 술이 과하여 술로 실수를 하는 일이 많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술을 즐기니 너의 주량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많이 주시거늘 공우가 계속 받아 마시고 취하였는지라. 선생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한 잔 술밖에 못된다." 하시더니 이 뒤로부터는 술 한 두잔만 마셔도 곧 취하여 더 마시지 못하니라.

九一.

金德贊이 그 子婚을 지내려 할 새 모든 사람이 物品과 金錢으로 扶助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는 扶助할 것이 없으니 日氣로나 扶助하리라 하시더니 이때에 天候가 連日 險惡하여 甚히 憂慮하던 中인데 그 期日에 이르러서는 例外로 溫和하니라.

평역:무신(1908)년 겨울에 김 덕찬이 그 자녀의 혼사를 시키려 하니 모든 사람이 물품과 금전으로 부조를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조 할 것이 없으니 날씨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더니 이 해는 매우 춥고 날씨가 여러 날동안 아주 고르지 않아 매우 염려하였으나 선생께서 약속하신 그 날에 이르러서는 예외로 따뜻하고 날씨가 고르니라.

 

九二.

十二月[1908年]에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井邑으로 가리니 이 길이 吉行이라. 이 後에 일을 네게 알리니라 하시더니 이날에 車輪京이 와 뵈입고 高夫人이 眼疾로 苦痛함을 아뢰니 가라사대 이제 돌아갔다가 明日에 泰仁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輪京이 곧 돌아갔다가 翌日에 살포정으로 오니 先生이 아직 오시지 아니하였거늘 곧 소루원 酒店에 이르니 店主가 말하되 先生께서 새올 崔昌祚의 집으로 가시면서 車輪京이 와 묻거든 그곳으로 보내라 하셨다하거늘 輪京이 새올로 갈 때 日本兵 數百人이 道中에 留陣하여 居住와 出行理由를 묻더라. 새올 에 이르러 先生께 뵈이니 날이 이미 저물더라. 이 날밤에 輪京을 命하사 밤이 맞도록 자지 말고 밖에 있어 돌라 하시고 닭의 소리가 난 後에 輪京을 데리고 白巖里로 向하여 떠나시더라.

평역:무신(1908)년 11월에 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한 걸음이라. 이 뒤에 일을 네게 알리리라." 하시더니 이 날에 차 윤경이 선생께 와서 뵙고 고 부인이 눈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돌아갔다가 다음날 태인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러 오라." 하시므로 윤경이 곧 돌아갔다가 다음날에 살포정에 도착해보니 선생께서 아직 오시지 아니하였으므로 곧 소루원 주점에 이르니 주막집 주인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새올 최 창조의 집으로 가시면서 차 경석이 와서 묻거든 그 곳으로 보내라 하셨다 하거늘 윤경이 새올로 갈 때 일본군 수백명이 길가에 진을 치고 사는 곳과 길을 가는 이유를 묻더라. 새올에 이르러 선생께 뵈이니 날이 이미 저물더라. 이 날밤에 윤경에게 명하시어 "밤새도록 자지 말고 밖에 머물면서 집 주위를 돌아라." 하시고 닭소리가 난 후에 윤경을 데리고 백암리로 향하여 떠나시더라.

 

九三.

白巖里 金京學의 집에 이르사 朝飯을 잡수시고 다시 井邑으로 가실 때 或 앞서 기도하고 或 뒤에 서기도 하사 四五步를 걸으신 後에 가라사대 이 길에는 外人을 對하는 것이 不可하다 하시고 井邑 老松亭에 이르사 가라사대 좀 遲滯함이 可하다 하시고 半時辰을 지내신 後에 다시 떠나사 그 모퉁이 큰 못가에 이르니 馬兵이 많이 오다가 되돌아 간 자취가 있더라.

평역: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이르시어 아침을 잡수시고 다시 정읍으로 가실 때 때로는 앞서 가시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 서시기도 하시며 너덧 걸음을 걸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길에서 일본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하시고 정읍 노송정에 이르시어 다시 말씀하시기를 "좀 지체하였다가 감이 좋으리라." 하시고 반시간쯤을 지내신 후에 다시 떠나시어 그 모퉁이 큰 못가에 이르시니 말탄군인들이 많이 오다가 되 돌아간 자취가 있더라.(선생께서 그 자취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이 어찌 대인의 앞 길에 쫓아오리오 하시거늘 윤경이 그 근처 사람에게 물으니 과연 기병 수십명이 달려 오다가 그 곳에서 되돌아 갔다 하더라.)

 

九四.

거기서 大興里로 가려면 兩條路가 分岐되어 한길은 井邑郡을 通過하는 大路요 한길은 狹路라. 輪京이 어느 길로 行할 것이신 지 묻자 先生이 가라사대 君子 어찌 狹路로 行하리요 하시고 大路를 取하여 井邑郡을 通過하시니 左右側에 外人의 商店이 많이 있으되 한사람도 밖에 나선 者가 없더라. 大興里에 이르사 高夫人의 眼疾을 낫게 하시고 因하여 戊申 臘月(납월)[1908年陰12月] 公事를 行하시니라.

평역:그 곳에서 대흥리로 가려면 길이 두갈래로 나뉘어서 한쪽 길은 정읍군을 통과하는 큰 길이요, 한쪽 길은 샛 길이라. 윤경이 어느 길로 가실 것인지를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어찌 샛 길로 다니리오." 하시고 큰 길을 취하여 정읍 읍내를 통과하시니 좌우 측에 즐비한 일본사람들의 상점에서 한 사람도 밖에 나선 사람이 없더라. 대흥리에 이르시어 고 부인의 눈병을 낫게 하시고 이어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니라.

 

九五.

하루는 京石의 黑周衣 한 벌을 가져오라 하사 입으시고 內衣를 벗으신 後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從徒에게 물어 가라사대 이러하면 日本人과같으냐. 모두 對하여 가로되 같으니이다. 다시 벗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幼時에 書塾에서 글 배울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희롱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아니하고 다른 書塾에 通學하다가 그 後에 病들어 죽었는데 그 神明이 怨恨을 품었다가 이제 와서 나에게 解寃을 求함으로 어떻게 하면 解寃이 되겠느냐 하고 물으니 그 神明이 내가 日本服을 싫어하는 줄 알고 日服을 입어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神明을 慰勞함이로다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경석의 검은 두루마기옷 한 벌을 가져오라하사 입으시고 속 옷을 벗으신 후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이러 하면 일본사람과 같으냐." 하시므로 모두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같으니이다." 하니 다시 벗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서당에서 글을 배울 때에 한 아이와 더불어 먹으로 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는 그 서당에 오지 아니하고 다른 서당에 다니다가 얼마 후에 병들어 죽었는데 그 아이의 신명이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와서 나에게 원을 풀어 주기를 구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되겠느냐." 하고 물으니 그 신명이 내가 일본 옷을 싫어하는 줄을 알고 일본 옷을 입어달라 하므로 내가 이제 그 신명을 위로함이라 하시니라.

 

九六.

大興里에서 戊申 臘月[1908年 12月]公事를 行하시고 己酉[1909年] 正月 三日에 官災를 避하사 白巖里 金京學의 집으로 가셨더니 泰仁邑에서 京學의 兄이 사람을 보내어 京學을 불러 가거늘 先生이 발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俚言에 발福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幸이요 잘못가면 不幸이라 함을 이름이라 하시고 곧 떠나사 獨行으로 崔昌祚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그 앞 松林을 通하여 崔德兼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시니 모든 사람이 계신곳을 알지 못하니라. 元來 京學의 兄은 京學이 術客에게 迷惑하여 家産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듣고 一面으로는 京學을 부르고 一面으로는 官府에 告하여 術客을 잡아 懲治하려 함이라. 京學이 집을 떠나 邑으로 가다가 中路에서 巡檢에게 붙들려 帶同되어 집으로 되돌아와서 先生을 찾다가 없음으로 崔昌祚의 집까지 왔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가니라.

평역:대흥리에서 무신(1908)년 동짓달 공사를 행하시고 기유(1909)년 정월 초 사흩 날에 관청의 재앙를 피하사 백암리 김 경학의 집으로 가셨더니 태인 읍에서 경학의 형이 사람을 보내어 경학을 불러 가거늘 선생께서 발을 만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속담에 발 복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다행이요, 잘못가면 불행이라 하는 것을 일러 말하는 것이라." 하시고 곧 홀로 길을 떠나시어 최 창조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그 앞 소나무 숲을 통하여 최 덕겸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시니 모든 사람이 계시는 곳을 알지 못하더라. 원래 경학의 형은 경학이 도술부리는 사람에게 빠져서 집안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경학을 부르고 한편으로는 그 도술하는 사람을 관청에 고발하여 벌을 받게 하려 함이라. 경학이 집을 떠나 읍으로 가다가 길 중간에서 순검에게 붙들려 같이 집으로 되돌아와서 선생을 찾으니 선생께서 안 계심으로 최 창조의 집까지 갔다가 찾지 못하니 할 수 없이 돌아가니라.

 

九七.

五日에 銅谷에 이르시니 數日後에 泰仁으로부터 無事히 된 顚末을 報告하거늘 가라사대 井邑일은 하루 公事인데 京石에게 맡겼더니 一朝에 풀고 泰仁일은 하루아침 公事인데 京學에게 맡겼더니 一日을 걸렸으니 京石이 京學보다 낫다 하시고 또 가라사대 京石은 兵判감이요. 京學은 爲人이 直腸이라. 돌리기 어려우니 돌리기만 하면 善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평역:기유(1909)년 정월 초닷샛날에 동곡에 이르시어 며칠 뒤에 태인으로부터 무사히 된 전말을 들으신 후 말씀하시기를 "정읍의 일은 하루 공사인데 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아침에 풀었고 태인 일은 하루아침 공사인데 경학에게 맡겼더니 하루 내내 걸렸으니 경석이 경학보다 낫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경석은 병조판서 감이요, 경학은 사람이 겨우 직장(直腸)이나 한자리 할 위인이라. 돌리기 어려우나 돌리기만 하면 착한 사람이 되리라." 하시니라.

 

九八.

하루는 公又, 應鐘을 데리시고 泰仁邑 旅舍에 이르사 辛京元에게 일러 가라사대 오늘은 白巡檢을 만나야 하겠으니 그를 데려 오라. 말씀이 마치자 白巡檢이 그 집 앞으로 지나거늘 京元이 나가서 先生의 계신 곳을 알리니 白巡檢이 곧 뛰어 들어와서 先生을 捕縛하는지라. 先生이 公又에게 命하여 가라사대 네게 있는 돈 百兩을 내게 傳하고 崔昌祚의 집에 갔다오라 하시니 公又가 應命하고 가거늘 또 應鍾과 京元을 불러 各히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白巡檢에게 돈 百兩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래였도다 이것을 적다고 하지 말고 用에 보태어 써라. 白巡檢이 致謝한 後 捕縛을 끄르고 물러가니 大抵 그가 先生을 붙들어서 돈을 빼앗으려 하는 줄 알으시고 그 所欲을 채워주심이더라.

평역:하루는 박 공우, 황 응종을 데리시고 태인 읍에 있는 주막에 이르사 신 경원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백순검을 만나야 하겠으니 그를 데려 오라." 하시더니 말씀이 마치자 말자 백 순검이 그 짚 앞으로 지나가거늘 신 경원이 나가서 선생께서 계신 곳을 알려주니 백 순검이 곧 뛰어 들어와서 선생을 체포하여 묶는지라. 선생께서 공우에게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네게 있는 돈 백냥을 나에게 주고 최 창조의 집에 갔다오라." 하시니 박 공우가 명을 받들고 가거늘 또 황 응종과 신 경원을 불러 각자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백 순검에게 돈 백냥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래였도다. 이것을 적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대의 생활에 보태어 써라." 하시니 백 순검이 사례한 뒤에 묶었던 것을 풀고 물러가니 이것은 백 순검이 선생을 붙들어서 돈을 빼앗으려 하는 줄 미리 아시고 그 욕심을 채워 주심이더라.

 

九九.

하루는 全州 佛可止 金成國의 집에 계실 때 金德贊이 侍側하다가 先生의 무슨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게 알면서 거짓 應諾하였더니 다시 일러 가라사대 이제 龍巢里 金議官의 집에 가서 자고 오라 하시므로 德贊이 應命하고 龍巢里에 갔다가 金議官집 門앞에서 醉한 사람을 만나 悖辱(패욕)을 많이 當하고 憤을 이기지 못하여 되돌아 오거늘 先生이 門밖에 나와서 바라보시고 웃어 가라사대 왜 자지 않고 돌아오느냐 하시며 술을 주어 가라사대 사람을 사귐에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거늘 어찌 마음을 스스로 속이느냐 하시니 德贊이 처음에는 先生이 無故히 龍巢里에 보내어 悖辱을 當하게 하신 것을 不平히 여겼다가 이 말씀을 듣고 비로소 先生의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이 알면서 거짓 應諾한 것을 洞燭하사 실없는 醉한 사람을 만나도록 懲治하신 줄을 깨닫고 이일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여 비록 一思一念이라도 삼가하니라.

평역:하루는 전주 불가지에 있는 김 성국의 집에 계실 때 김 덕찬이 선생을 곁에 모시고 있다가 선생께서 하시는 어떤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는 말씀으로 알면서 거짓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더니 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 용소리에 있는 김 의관의 집으로 가서 자고 오라." 하시므로 덕찬이 명을 받들고 용소리에 갔다가 김 의관의 집 문 앞에서 술 취한 사람을 만나 심한 욕을 당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되돌아오거늘 선생께서 문 밖에 나와서 바라보시며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왜 자고 오지 않고 벌써 돌아오느냐." 하시더니 술을 주시며 마음을 풀게 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사귈 때에는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거늘 어찌 마음을 스스로 속이느냐." 하시니 덕찬이 처음에는 선생께서 이유없이 용소리에 자신을 보내어 술 취한 사람에게 행패를 당하게 하신 것을 불평히 여겼다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비로소 자신이 선생의 말씀 끝에 속으로는 실없이 알면서 거짓으로 그러하겠다고 한 것을 선생께서 아시고 실없는 취한 사람을 만나도록 하여 그 마음을 다스리신 줄을 깨닫고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여 비록 한 마음 한 생각이라도 삼가니라.

 

一百.

六月[1909年 ]에 銅谷에 계실 때 從徒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을 걱정하거늘 先生이 甲七 에게 일러 가라사대 淸水一 盆 을 길어다 놓고 上下衣를 벗고 淸水앞에 合掌하고 서 있어라. 이제 네게 將令을 붙여서 西洋으로부터 雨師를 불러 넘겨 萬民의 渴仰을 풀어 주리라. 甲七이 命하신 대로하여 水盆앞에 서있으니 문득 西天으로부터 黑雲이 일어나며 大雨滂 (방타)하거늘 이에 命하사 淸水를 쏟아버리고 옷을 입으라 하시며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들도 잘 修鍊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평역: 기유(1909)년 6월에 구릿골에 계실 때 종도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을 걱정하거늘 선생께서 김 갑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청수(淸水) 한 동이를 길어다 놓고 옷을 모두 벗은 후에 그 물동이 앞에 합장하고 서 있 어라. 이제 너에게 장군의 영(令)을 붙여서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불러 넘겨와 모든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주리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하신대로 하여 물동이 앞에 서 있으니 문득 서쪽 하늘로부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내리거늘 이에 다시 명하사 "그 물을 쏟아버리고 옷을 입으라." 하시고 모든 종도 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도 잘 수련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百一.

이때에 淸州에서 怪疾이 猖獗하고 羅州에도 熾盛(치성)하여 人心이 洶洶한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南北으로 마주 터지니 장차 無數한 生命이 殄滅되리라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代贖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新衣五件을 急히 지어서 한 벌씩 갈아입으시고 泄瀉(설사)하여 버리신 後에 가라사대 弱한 者가 걸리면 다 죽겠도다하시더니 그 後로 怪疾이 곧 寢息되니라.

평역:이때에 청주에서 괴질이 크게 일어나고 나주에서도 크게 퍼지니 인심이 흉흉한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북으로 마주 터지니 장차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 없어지게 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勅令 怪疾神將 胡不犯 帝王將相之家 犯此 無辜蒼生之家乎:괴질신장에게 명령을 내리노니 어찌 제왕이나 장군 재상의 집은 범치 못하면서 이렇게 무고한 백성들의 집들만 침범하느냐) "내가 이것을 대신해서 받으리라." 하시고 김 형렬에게 명하시어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서 가져오게 하여 한 벌씩 갈아 입으시고 그 병을 앓으신 후에 설사하여 옷을 버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약한 사람들이 걸리면 다 죽겠도다." 하시더니 그 후로 괴질이 곧 가라앉느니라.

 

百二.

매양 月夜에 길을 가실 때에 구름이 달을 가렸으면 손으로 달을 向하여 右旋하여 구름을 둥그렇게 열어 젓히사 달빛을 내비치이며 目的地에 達하신 後에 다시 손으로 달을 向하여 左旋하시면 구름이 다시 合하여 原狀대로 回復되니라.

평역:언제나 달밤에 길을 가실 때에는 구름이 달을 가렸으면 손으로 달을 향하여 오른쪽으로 저어 구름을 둥그렇게 열어 젖히시어 달빛을 내 비치게 하시며 목적지에 도착 하신 뒤에는 다시 손으로 달을 향하여 왼쪽으로 젖히시기만 하시면 구름이 다시 합해져서 원래 모양대로 회복 되니라.

 

百三.

院坪市場 金京執의 酒店에 단골 主人을 定하시고 오랫동안 逗留(두류)하실 때 누구든지 先生의 말씀을 憑托(빙탁)하여 酒食을 請하면 代金 有無를 不許하고 다 許諾하더니 泰仁 靑石골 姜八文이 酒食을 많이 먹은 後에 돈을 携帶(휴대)한 것이 主人에게 發見되었으나 先生의 말씀이 있다고 거짓 憑托하여 돈을 支拂치 않고 가더니 이로부터 挾滯(협체)하여  ^症을 이루어 死境에 이르거늘 申京守가 그 事由를 아뢰어도 先生이 對答치 아니하시더니 그 後에 또 危急함을 來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몹쓸 일을 行하여 神明께 罪를 얻어 잘못 죽음을 하게 되었으니 할 일없다 하시더니 그 後에 곧 死亡하니라.

평역:원평시장에 있는 김 경집의 주점 객사을 단골집으로 정하시고 오랬동안 머무르고 계실 때 누구든지 선생의 말씀이라 말하고 술과 음식을 청하면 돈이 있던지 없던지 모두 허락하고 음식을 주었는데 태인 청석골에 사는 강 팔문이 술과 음식을 많이 먹은 후에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주인이 보았으나 선생의 말씀이 있었다 거짓 핑계를 대고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더니 이로부터 급체를 당하고 그 후 여러 가지 병을 얻어 죽을 지경에 이르거늘 신 경수가 그 사유를 말씀드려도 선생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더니 그 후에 또 위급함을 와서 고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몹쓸 일을 해서 신명에게 죄를 얻어 그릇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 할 수없다." 하시더니 그 후에 곧 죽으니라.

 

百四.

從徒들이 매양 근심된 일이 있을 때에는 그 事由를 先生께 稟告하면 無爲中에 自然히 풀리게 되는데 만일 稟告한 後에도 오히려 근심을 놓지 아니하면 慰勞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미 알았으니 근심치 말라 하시니라.

평역:종도들이 언제나 근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사유를 선생께 여쭈어 고하기만 해도 선생께서 들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신 중에 저절로 풀리게 되는데 만일 여쭈어 고한 뒤에도 근심을 놓지 아니하면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알았으니 근심치 말라." 하시니라.

 

百五.

매양 從徒들에게 일을 命하심에 반드시 期日을 定하여 주사 어기지 않게 하시며 만일 命을 받은 者가 或 그 期日에 日氣의 不調로 因하여 어김이 있을까 憂慮하면 先生이 일깨워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어찌 不調한 날을 일러주겠느냐 하셨나니 大抵 先生의 定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不調한 때가 없었느니라.

평역:언제나 종도들에게 일을 명하실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날을 주시어 어기지 않게 하시고 만일 명을 받은 종도가 간혹 그 날짜 내에 날씨가 순조롭지 못하여 어김이 있을까 우려하면 선생께서 일깨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어찌 고르지 못한 날을 일러 주겠느냐." 하셨나니 늘 그렇지만 선생께서 정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순조롭지 못한 때가 없었느니라.

 

百六.

매양 從徒를 어느 곳에 보내시되 使命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신 때가 많이 있었으나 從徒들은 恒常 그렇게 經驗하였음으로 다시 묻지 않고 命하신 곳에 가면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

평역:언제나 종도들을 어느 곳에 보내시되 해야 할 일을 미리 말씀하시지 아니하신 때가 많이 있었으나 종도들은 항상 그렇게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다시 묻지 아니하고 명 하신 곳에 가보면 반드시 무슨 일인지 알게 되더라.

 

百七.

가물 때에 비를 주실 때에는 淸水동이에 小便을 좀 타면 그 비로 因하여 穀類가 豊穰하고 蟲災가 있을 때에는 苦草가루를 풀어 넣으면 곧 蟲災가 그치더라.

평역:날이 가물어 심할 때에는 비를 주시고 비를 주시면서 맑은 물동이에 소변을 좀 타시면 그 비로 인하여 곡식들이 더욱 풍성해지고 해충들의 재해가 있을 때에는 맑은 물동이에 고추가루를 좀 풀어 넣으면 곧 해충들의 재해가 그치니라.

 

百八.

더울 때에 出行하시면 구름이 日傘과 같이 太陽을 가리어 볕이 쪼이지 아니하니라.

평역:선생께서 더울 때에 길을 나서시면 구름이 해를 가리는 양산과 같이 되어 햇빛을 가려서 볕이 쪼이지 아니하니라.

第 四 章 門道의 從遊와 訓誨

 

一.

壬寅[1902年] 四月에 金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公事를 行하시니 亨烈과 金自賢, 金甲七, 金甫京, 韓公淑 等이 次第로 從遊하니라.

평역:임인(1902)년 사월에 김 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 김 형렬과 김 자현, 김 갑칠, 김 보경, 한 공숙등이 차례로 선생을 따르니라.

 

二.

癸卯[1903年] 正月에 全州府에 巡遊하사 徐元圭 藥局에 머무르시니 元圭와 金秉旭, 張興海, 金允贊등이 從遊하니라.

평역:계묘(1903)년 정월에 전주부로 가셔서 서 원규의 약방에 머무르시니 서 원규와 김 병욱, 장 흥해, 김 윤찬등이 선생을 따르니라.

 

三.

張興海가 그 幼子를 甚히 사랑하거늘 先生이 興海에게 일러 가라사대 福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오 아래에서 치올라오지 아니하는 것이니 父母를 잘 敬愛 하라 하시니라.

평역:장 흥해가 그의 어린 자식을 매우 사랑하니 선생께서 장 흥해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요, 아래로부터 치받아 올라 오는 것이 아니니 자식된 도리로서 먼저 부모를 잘 공경하고 사랑하라." 하시니라.

四.

甲辰[1904年] 六月에 金亨烈의 집에 이르사 亨烈에게 全州府에 가서 金秉旭에게 만날 期會를 約定하고 오라 命하시니 亨烈이 領命하고 全州에 가서 秉旭을 만나 그 翌日 夜半에 만나기로 約定하고 돌아오는 길에 張孝淳의 死亡한 消息을 들은 지라. 亨烈이 先生께 復命하고 이어서 孝淳의 死亡을 報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우리 손에 죽어야 할 것인데 절로 病死하였으니 恨스러운 일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것이 무슨 말이뇨 죽은 사람은 불쌍하니라 하시니라.

평역:갑진(1904)년 6월에 김 형렬의 집에 이르시어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전주부에 가서 "김 병욱에게 만날 날을 약속하여 정하고 오라." 하시니 형렬이 명을 받들고 전주부에 가서 병욱을 만나 그 다음날 밤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 효순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니라. 형렬이 선생께 다녀온 일을 말씀드리고 이어서 효순의 죽음을 전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우리 손에 죽어야 할 것인데 저절로 병들어 죽었으니 한스러운 일이로소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무슨 말이냐, 죽은 사람은 불쌍하니라." 하시니라.

 

五.

先生이 비록 至賤한 사람을 對할지라도 반드시 尊敬하시더니 亨烈이 여쭈어 가로되 이 사람은 곧 나의 奴子이오니 尊敬치 말으소서 先生이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奴子이니 내게는 아무 關係가 없나니라 하시며 또 일러 가라사대 이 마을에는 兒少로부터 熟習이 되어 倉猝間에 말을 고치기 어려울지나 다른곳에가면 어떤 사람을 對하던지 다 尊敬하라. 이後로는 嫡庶의 名分과 班常의 區別이 없나니라.

평역:선생께서는 비록 지극히 미천(微賤)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반드시 존대를 하시더니 형렬이 부리는 머슴 지 남식(池南植)을 대할 때에도 항상 존대를 쓰시거늘 형렬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소서."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이 그대의 머슴이라는 것과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나니라." 하시며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마을에서는 어릴 적부터 습관이 되어 갑자기 말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로되 다른 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대하던지 다 존경하라. 이 후로는 본처 후처의 자식이란 명분과 양반 상놈 따지는 구별이 없어지느니라." 하시니라.

 

六.

하루는 亨烈이 어떤 親族에게 不合意한 일이 있어서 모질게 叱責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아직 言行이 덜 풀려서 毒氣가 남아 있도다. "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니라. 말은 마음의 소리요 行事는 마음의 자취라 말을 善하게 하면 福이 되어 점점 큰 福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惡하게 하면 禍가 되어 점점 큰 禍를 이루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평역:하루는 김 형렬이 어떤 친척이 하는 행동이 자기 뜻에 맞지 않아서 모질게 나무라는 것을 보시고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그대의 말과 행동에 독한 기운이 덜 풀려서 남아 있도다." 하시고 "모진 장수가 미워하는 마음으로 베어 없을 때 보니 모두 다 풀로 보이더니, 그 집에 장가들어 다시 보니 모두 꽃이더라." 했느니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복이 되어 점점 큰 복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고, 남에게 말을 악하게 하면 화가 되어 점점 큰 화를 이루어 다시 내 몸에 이르나니라." 하시니라.

 

七.

乙巳[1905年] 八月에 咸悅 會仙洞 金甫京의 집에 이르사 累月間 滯留하실 때 甫京이 咸悅邑人 金光贊을 薦擧하여 從遊케 하고 또 蘇鎭 과 臨陂郡 屯里 金性化 等이 相繼 從遊하니라.

평역:을사(1905)년 8월에 함열 회선동 김 보경의 집에 이르사 수개월간 머무르실 때 보경이 함열읍에 사는 김 광찬을 천거하여 광찬이 선생을 따르게 되고 또 소 진섭과 임피 군둔리에 사는 김 성화 등이 이어서 선생을 따르게 되니라.

 

八.

하루는 先生이 少時에 지으신 글이라 하사 "運來重石何山遠, 粧得尺椎古木秋"를 從徒들에게 외어 주시며 "先生文明이 아닐런가"라고 心告하고 받으라 하시고 "霜心玄圃淸寒菊, 石骨靑山瘦落秋"를 외어주시며 "先靈文明이 아닐런가"라고 心告하고 받으라 하시고 "千里湖程孤棹遠(천리호정고도원),萬方春氣一筐圓(만방춘기일광원)"을 외어주시며 "先王문명이 아닐런가"라고 心告하고 받으라 하시고 "時節花明三月雨, 風流酒洗百年塵"을 외어주시며 "先生先靈先王合德文明이 아닐런가"라고 心告하고 받으라 하시고 "風霜閱歷誰知己, 湖海浮遊我得顔, 驅情萬里山河友, 供德千門日月妻"를 외어주시며 "우리의 得意秋가 아닐런가"라고 心告하고 받으라 하신 후에 時勢를 斟酌(짐작)컨데 "大人輔國正知身, 磨洗塵天運氣新, 遺恨警深終聖意, 一刀分在萬方心" 이라 唱하시며 가라사대 이 글은 閔泳煥의 挽章(만장)이니 "一刀分在萬方心"으로하여 世事를 알게되리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四五世無顯官先靈生儒學死學生, 二三十不功名子孫入書房出碩士"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선생께서 종도 들을 모아 어릴 적에 지은 글을 외어 주시니 "후천 운수가 어느 먼 산의 무거운 돌 옮겨오듯 더디게 오니, 열 마디 자(尺)같고 스무네마디 등뼈(脊椎)같은 오래된 나무가 곱게 단장하고 가을걸음 하더라." 하신 후 "선생문명 아닐런가." 라고 마음속으로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시고 "서리 내리는 속에 상제께서 강림하시니 국화 홀로 떨며 있고, 푸르던 산도 속을 다 드러내니 모든 것들이 말라 떨어지는 가을이구나." 하고 외어 주시며 "선령들의 문명 아닐런가." 라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시고 "천리나 되는 저 물길에 외로운 돛대 멀어져 가고, 온 세상의 봄기운이 한 광주리에 가득하구나." 를 외어 주시며 "선왕의 문명이 아닐런가." 하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시고 "철 맞추어 피는 꽃이 삼월 달 단비에 피어나니, 풍류와 술로 선천 백년동안의 먼지를 씻는구나."를 외어 주시며 "선생과 선령들과 선왕의 덕이 합쳐진 문명 아닐런가." 하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시고 "이 세상 모든 고난 다 겪은 나를 누가 알리오, 넓은 세상 두루 다니며 우리 자신의 바른 모습을 잃지 않고 살더니, 정을 온 세상에 두니 산과 강이 벗이 되고 덕을 천지에 베푸니 해와 달이 짝이 되는구나." 를 외어 주시며 "우리가 가을에 뜻을 얻은 것과 같지 아니하냐." 라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신 후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짐작하건대 대인(大人)이 나라 위해 일함에 몸가짐을 바로 하고 묵은 하늘(先天)의 낡은 기운 갈고 씻어 내니 기운이 새롭구나. 마음 깊이 살펴보니 남은 한(恨)은 성스러운 뜻을 못 다 이룸이라. 한칼로 몸을 가르니 천하사람의 마음이 그와 함께 있구나." 라는 만가(輓歌)를 부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민 영환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니 한 칼로 몸을 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와 함께 있게 한 그 마음으로 하여 세상 일을 알게 되리라." 하시고 (이 뒤에 민 영환이 순절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사오 대를 지나도록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였으니 선령(先靈)들이 살아서는 선비요, 죽어서는 학생이라. 나이가 이삼십세가 넘도록 널리 이름을 못 얻었으니 자손들이 서당에 들어가서 다시 벼슬 없는 선비로 나오는구나." 하시니라.

 

九.

丙午[1906年] 十月에 耶蘇敎堂에 가사 모든 儀式과 敎義를 聞見하신 後에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足히 取할 것이 없다 하시니라.

평역:병오(1906)년 10월에 예수교당에 가시어 모든 의식과 교의를 친히 보고 들으신 후에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별로 보태어 취할 것이 없다." 하시니라.

 

十.

하루는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世上에 學校를 넓게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將次 天下를 크게 文明케하여 이로써 天地의 役事를 시키려 함인데 現下의 學校敎育이 學人으로 하여금 卑劣한 功利에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成道하게 되었노라.

평역: 하루는 종도 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앞으로 천하를 크게 문명케하고 이 문명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의 일에 인간을 참여시켜 힘써 일하게 함으로써 천지의 모든 신과 인간이 다같이 해원(解寃)을 하려고 하는 것인데 요즈음 학교 교육은 배우는 자로 하여금 아주 작고 사소한 이익이나 공(功)을 다투는 일에만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도를 이루게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十一.

丁未[1907年] 四月에 辛元一을 데리고 泰仁 關王廟 祭員 辛敬彦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 새 敬彦과 辛京元, 金京學, 崔昌祚, 崔乃敬, 崔德兼이 從遊하니라.

평역:정미(1907)년 4월에 신 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에 제사지내는 회원중 한 사람인 신 경언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 때 경언과 신 경원, 김 경학,최 창조,최 내경,최 덕겸등이 선생을 따르게 되니라.

 

十二.

五月[1907年]에 龍巖里 水砧幕에서 머무르실 새 그 앞 酒店에서 井邑人 車京石을 만나시니라. 京石이 全州로 가는 길에 이 酒店에서 午飯을 먹고 떠나려 할 때 先生이 대삿갓에 푸른 대님으로 金自賢等 數人을 데리고 오시니 京石이 그 소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띄신 儀表와 純眞한 가운데 巧飾(교식)이 없으신 言語動止를 보고 非凡히 여겨 말씀을 請하니 先生이 溫和하게 對答하신 지라. 京石이 禮畢에 물어 가로되 失禮이오나 무슨 業을 하시나이까. 先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醫業을 行하노라. 또 물어 가로되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이까 가라사대 나는 東亦客 西亦客 天地無家客이로다 하시더라. 京石은 元來 東學信徒로서 孫秉熙를 쫓다가 모든 것이 마음에 合하지 아니하여 다시 길을 고치려하던 차이라. 이날 先生을 뵈임에 모든 行儀가 凡俗과 다름에 異常히 여겨 짐짓 떠나지 아니하고 저물기를 기다려서 先生의 돌아 가시는곳을 따라가니 곧 龍巖里 水砧幕이라 그 食事와 凡節이 너무 粗率(조솔)하여 一時라도 견디기 어렵더라. 先生이 京石의 떠나지 아니함을 괴로워하여 물러가기를 督促(독촉)하되 京石이 떠나지 아니하고 自己의 집으로 가시기를 懇請하니 先生이 或 震怒도 하시며 或 凌辱도 하시며 或 驅逐(구축)도 하시되 京石의 觀察에는 모든 일이 더욱 凡常치 아니할 뿐 아니라 東學歌詞에 "如狂如醉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 한 그 고생을 누구에게 한말이며"라는 句節에 感悟하여 드디어 떠나지 아니하고 十日間을 머무르면서 師事하기를 固請하거늘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全廢하고 나의 가르치는 바에 一心하여야 할지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整理하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京石이 이에 하직하고 집에 돌아가서 모든 일을 整理하고 六月一日에 다시 龍巖里에 와서 先生께 뵈옵고 井邑으로 가시기를 懇乞하니 先生이 다시 拒絶하시다가 三日後에야 許諾하여 가라사대 내가 깊은 목물에 빠져서 허덕거리다가 겨우 벗어나서 발목 물에 當하였는데 이제 네가 다시 깊은 물로 끌어들인다 하시니라.

평역:정미(1907)년 오월에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 물방앗간에 서 머무르실 때 그 앞 주막에서 정읍사람 차 경석을 만나시니라. 경석이 전주로 가는 길에 이 주점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할 때 선생께서 대삿갓에 푸른 대님으로 김 자현등 여러 사람을 데리고 오시니 경석이 그 소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띄신 차림새와 순진한 가운데 꾸밈이 없으신 말씀과 행동을 보고 비범하게 여겨 말씀을 청하니 선생께서 따뜻하게 대답하시는지라. (선생께서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마시실 때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 경석이 받음에 문득 벌 한 마리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벌은 규모있는 벌레니라." 하시더라.) 경석이 선생께 예를 차린 후 여쭈기를 "실례인줄 아오나 무슨 업을 하시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치료하는 업을 행하노라." 하시니 경석이 또 물어 여쭈기를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쪽으로 가도 손님(客)이요, 서쪽으로 가도 손님(客)이요, 하늘과 땅사이에 집없는 손님(客)이로다." 하시니라. 경석은 원래 동학신도로서 손 병희를 따르다가 모든 것이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다시 길을 바꾸려고 하던 참이라. 이 날 선생을 뵈오니 하시는 모든 행동이 보통사람과 다름에 이상히 여겨 짐짓 떠나지 않고 저물기를 기다려서 선생께서 돌아가시는 곳을 따라가니 곧 용암리 물방앗간 이더라. 그 식사 와 범절이 너무 간략하고 초졸하여 잠시라도 견디기 어렵더라. 선생께서 경석의 떠나지 아니함을 괴로워 하사 물러가기를 독촉하되 경석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의 집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 선생께서 때로는 노하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욕을 보이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쫓아내시기도 하셨으나 경석이 보기에는 모든 일이 더욱 범상치 아니할 뿐 아니라 동학가사에 "미친듯하고 취한 듯한 저 양반을 가는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에게 말 할 것이며" 라는 구절이 떠올라서 떠나지 아니하고 열흘간을 머무르면서 선생께 배우기를 고집하여 청하거늘 선생께서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그만두고 내가 가르치는 바에 한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하시므로 경석이 이에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유월 초하룻날에 용암리에 다시와서 선생을 뵈옵고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 선생께서 다시 거절하시다가 삼일이 지난 뒤에야 허락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깊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나서 이제 발목이 닿는 물에 이르렀는데 이제 네가 다시 나를 깊은 물로 끌어 들이려 하는구나." 하시니라.

 

一三.

水砧幕을 떠나 院坪에 이르사 群衆을 불러 술을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길은 南朝鮮 뱃길이니 짐을 채워 떠나리라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意味를 알지 못하니라. 다시 떠나시며 가라사대 大陣은 日行三十里라 하시니 京石이 聞命하고 里程을 헤아려서 古阜 松內에 이르러 知友 朴公又의 집으로 先生을 모시니 公又도 또한 東學信徒로서 마침 四十九日間 禱天(도천)하던 때이더라.

평역:용암리 물방앗간을 떠나 원평에 이르사 사람들을 불러 술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남조선 뱃길이니 짐을 채워 떠나니라."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하니라. 다시 떠나시며 말씀 하시기를 "군대가 움직일 때 대진(大陣)은 하루에 삼십리를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그 말씀을 듣고 가시는 길을 헤아려서 고부 솔안(松內)에 이르러 친한 친구인 박 공우의 집으로 선생을 모시니 공우도 또한 동학신도로서 마침 사십 구일간 하늘에 기도를 모시며 수도하던 때이더라.

 

一四.

先生이 京石,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通情神이 나온다. 나의 일은 비록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西洋 大法國 天啓塔 天下 大巡이라. 東學呪에 "侍天主 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내가 天地를 開闢하고 造化政府를 열어서 人天의 混亂을 安定케 하려하여 三界를 周視하다가 너의 東土에 그쳐 殘疲에 헤메이는 民衆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者는 無窮한 寧福을 얻어 仙境의 樂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東學이라. 弓乙歌에 "朝鮮江山名山이라 道通君子다시 난다"하였으니 이일을 이름이니라. 東學信徒間 에 崔水雲이 更生하리라고 傳하나 죽은者가 다시 살아오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곧 代 先生이로다.

평역:선생께서 차 경석, 박 공우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情神)이 나오느니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 그리고 처와 자식이라도 서로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계탑 천하 대순의 신이라." 하시고 "동학주문에 하느님을 모시고 조화의 근본자리에 머문다(侍天主 造化定) 하였으니 나의 일을 말함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를 열어서 혼란된 인간계와 하늘을 안정케 하려하여 천지인 삼계를 다니며 바라보다가 너희들의 이 동쪽 땅에 그쳐 참혹한 고통에서 헤메이는 민중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토록 끝없는 복을 얻어 신선세계의 즐거움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동학이라. 궁을가에 "조선 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하였으니 이것은 나의 일을 말함이니라. 동학신도들 중에 대선생(大先生)인 수운 최 제우가 다시 살아나리라 전하나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오지 못하는 것이요. 내가 곧 최 수운을 대신 할 대선생(代先生) 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계룡산(鷄龍山)의 정(鄭)씨 왕국(王國)과 가야(伽倻山)의 조(趙)씨 왕국과 칠산(七山)의 범(范)씨 왕국을 일러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영자(影子)를 나타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一五.

翌日에 松內를 떠나 井邑 大興里로 向하실 때 公又를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만났을 적에 하시니 公又가 문득 東學歌詞에 "만나기만 만나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라는 句節이 感悟되어 드디어 따라나서니라.

평역:다음날 솔안를 떠나 정읍 대흥리로 향하실 때 박 공우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만났을 적에" 하시니 공우가 문득 동학가사에 "만나기만 만나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 라는 구절을 떠 올려 깨달아서 드디어 따라 나서니라.

 

一六.

이날 大興里 京石의 집에 이르사 글을 써서 西壁에 붙이시니 문득 雷聲이 大作하거늘 先生이 速하다 하시고 그 글을 떼어 무릎 밑에 넣으시니 雷聲이 곧 그치는지라. 公又는 크게 驚服하고 村人은 뜻밖에 일어나는 白日雷聲을 異常히 여기더라.

평역:이 날 대흥리 경석의 집에 이르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서쪽벽에 붙이시니 문득 천둥소리가 크게 일어나거늘 선생께서 "빠르다." 하시고 그 글을 떼어 무릎 밑에 넣으시니 천둥소리가 곧 그치는지라. 공우가 크게 놀라 감복하고 마을사람들은 뜻밖에 일어나는 맑은 날 천둥소리를 이상히 여기더라.

 

一七.

이 後에 東學信徒 安乃成, 文公信, 黃應鍾, 申京守, 朴壯根 等이 相繼從遊하니라.

평역:이 뒤로 동학신도 안 내성, 문 공신, 황 응종, 신 경수, 박 장근 등이 서로 이어서 선생을 따르니라.

 

一八.

이때에 金光贊은 東谷에 있으면서 車京石의 從遊함을 厭惡(염오)하여 가로되 京石은 本來 東學餘黨으로 一進會에 參加하여 不義를 많이 行하였거늘 이제 道門에 들임은 先生의 不正大하심이라. 우리가 힘써 마음을 닦아 온 것이 다 쓸데없게 된다하고 날마다 先生을 원망하거늘 亨烈이 민망하여 先生께 와 뵈입고 光贊의 不平가진 일을 告하며 가로되 어찌 이런 性格가진者를 門下에 두셨나이까 先生이 가라사대 龍이 물을 求할 때에는 비록 荊棘(형극)을 당할지라도 避치 아니하니 돌아가서 잘 撫諭(무유)하라 하시니라.

평역:이 때에 김 광찬이 구릿골에 있으면서 차 경석이 선생을 모시고 따르는 것을 아주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석은 본래 동학의 잔당(殘黨)으로 일진회에 참가하여 의롭지 못한 일을 많이 행하였거늘 이제 선생께서 도문(道門)에 들이는 것은 선생께서 바르지 못하심이라. 우리가 힘써 마음을 닦아 온 모든 것이 다 쓸데없이 되리라." 하고 날마다 선생을 원망하거늘 형렬이 민망하여 (광찬과 같이) 선생께 와서 뵙고 (두사람 모두 늦도록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그냥 있으니 선생께서 광찬을 구릿골에 가서 있게 하시고 형렬을 조용히 따로 부르시니) 광찬의 불평 품은 일을 말씀드리며 "어찌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문하에 두셨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용이 물을 구할 때에는 비록 가시밭길이 닥친다 하여도 피하지 아니하나니 돌아가서 잘 설득하라." 하시니라.

 

一九.

하루는 京石에게 "溪分洙泗派, 峯秀武夷山, 襟懷開霽月(금회개제월), 談笑止狂瀾(담소지광란), 活計經千卷, 行裝屋數間, 小臣求聞道, 非倫半日閑"의 古詩를 외어 주시고 京石을 데리고 淳昌 籠巖 朴壯根의 집에가사 그 머슴을 불러 물으사대 昨夜에 무슨 본 일이 있었더냐 머슴이 對하여 가로되 어제밤 꿈에 한 老人이 籠岩을 열고 甲胄와 長劍을 내어주며 이것을 가져다가 主人을 찾아 傳하라 함으로 내가 받아다가 이 房에 두었는데 곧 車京石의 앉은 자리이니다 하니라. 大抵 그 地方에서는 籠岩속에 甲胄와 長劍이 들어 있는데 將軍이 나면 내어가리라는 俗言이 傳하여 오니라.

평역: 하루는 차 경석에게 옛시를 외어 주시니 이러 하니라. "공자가 가르침을 편 사수(泗水)는 무이산(武夷山) 봉우리가 빼어난 까닭이라. 가슴속 품은 뜻은 비개인 후 밝은 달 비추듯하고 정겹게 나누는 대화는 거친 물결을 멈추게 하는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수습하니 경서(經書) 천권에 몸 둘 집 몇 칸이라. 오늘 우리가 온 것은 도(道)를 듣고자 함이오. 한가로이 반 나절의 해를 보내려 함이 아니니라." 하시고 그 후 경석을 데리고 순창 농바우에 사는 박 장근의 집으로 가시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대세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의 형세(形勢)에 붙여 돌리려 하노니 네게 한 기운을 붙이노라 하시고) 장근의 머슴을 불러 물으시기를 "어젯밤에 무슨 일을 본 것이 있었더냐." 하시니 머슴이 대답하여 선생께 말씀드리기를 "어젯밤 꿈에 한 노인이 농바우를 열고 갑옷과 큰 칼을 내어주며 이것을 가져다가 주인을 찾아 전하라 하므로 제가 받아다가 이 방에 두었는데 그 곳이 차 경석이 앉아 있는 자리입니다." 하니라. 대저 그 지방에서는 농바우속에 갑옷과 큰 칼이 들어 있는데 장군이 나면 내어 가리라는 전설이 전하여 오느니라.

 

二十.

그 後에 淳昌으로부터 돌아오실 때 泰仁 古縣里 杏壇에 이르사 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孔子가 杏壇에서 講道하였나니 이제 여기서 네게 한 글을 專하리라 하시고 古書一章을 외어주시며 잘 服膺(복응)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夫主將之法, 務襤英雄之心, 賞祿有功, 通志於衆, 與衆同好靡不成, 與衆同惡靡不傾, 治國安家得人也,亡國敗家失人也, 含氣之類, 咸願得其志"

평역:그 후에 순창으로 부터 돌아 오실 때 태인 고현리 행단에 이르사 차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공자가 행단 아래서 도를 가르쳤다하니 이제 여기서 너에게 글 하나를 전하여 주리라." 하시고 옛 글 하나를 외어주시며 잘 받아 마음에 깊이 간직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무릇 사람을 쓰는 법은 일하는 사람들이 큰 마음을 먹게 하는데 힘쓰며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과 녹(祿)을 바르게 주어 여러 사람들이 다 함께 뜻을 통하는데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좋아하여 일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고, 여러 사람들이 서로 싫어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기울어 지지 않는 일이 없으니, 집안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도 다 사람을 얻는데 달려 있고, 집안을 망치고 나라가 망하게 하는 것도 다 사람을 잃은데 그 원인이 있느니라. 하늘과 땅 아래 기운을 품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뜻을 얻어 함께 그 뜻을 펼치기를 원하느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일을 하려거든 수부를 들여 세우라 하시니 경석이 선생을 모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 고부인(姨從妹 高夫人)을 천거(薦擧)하니라.)

 

二一.

그 後에 井邑에 계실 때 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今後로 出入을 廢하고 집을 지키라. 이것이 自獄度數니라.

평역:그 후에 정읍에 계실 때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너는 접주(接主)가 되라. 나는 접사(接使)가 되리라" 하시고) "너는 지금 이후로 출입을 그만두고 집을 지키라. 이것은 자신을 스스로 옥에 가두는 자옥도수(自獄度數)니라." 하시니라.

 

二二.

十一月[1907年]에 東谷에 이르사 公事를 行하시고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너도 또한 머리를 깍으라. 亨烈이 마음으로는 즐겨하지 아니하나 强然히 應諾하였더니 또 甲七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明日 大願寺에 가서 錦谷 住持를 불러오너라 하시거늘 亨烈이 크게 근심하였더니 그 뒤에 다시 말씀치 아니하시니라.

평역:정미(1907)년 11월에 구릿골에 이르시어 공사를 행하시고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너도 또한 머리를 깎으라." 하시니 형렬이 마음속으로는 달갑게 생각하지는 아니하나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더니 또 갑칠을 불러 말씀 하시기를 "내가 머리를 깍으리니 내일 대원사에 가서 주지(住持) 금곡을 불러 오너라." 하시거늘 형렬이 크게 근심하였더니 그 뒤로 다시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니라.

 

二三.

하루는 亨烈에게 古書一章을 외어주시며 잘 服膺(복응)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夫用兵之要, 在崇禮而重祿, 禮崇則義士至, 祿重則志士輕死, 故祿賢不愛財, 賞功不逾時, 則士卒 , 敵國削"

평역:하루는 형렬에게 옛 글 한 구절을 읽어 주시면서 잘 받아 마음에 깊이 새기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무릇 일꾼을 쓰는 법은 예의를 중히 여기고 녹줄을 고귀하게 여기는데 있으니 예의로 사람을 높이 대하면 의로운 일꾼이 들어오고 녹줄을 고귀하게 붙여주면 뜻 있는 일꾼은 죽음도 가벼히 여기느니라.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일꾼에게 녹을 주되 재물을 아끼지 않고 공을 세웠을 때 때를 놓치지 않고 상을 내려 큰 일꾼이나 작은 일꾼이나 다 함께 원하는 일을 이루게 만드느니라."

 

二四.

그 後에 또 亨烈에게 古詩를 외어주시며 잘 記憶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急地尙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個好男兒"

평역:그 후에 또 형렬에게 옛 시를 외어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세상을 살아 가는데는 부드러움을 고귀하게 여겨야 하느니 너무 강직하고 굳센 것은 오히려 화(禍)를 부르는 기초가 되느니라. 언제나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천천히 하며 모든 일을 당해서는 어리석은 사람 같이 행동하라. 위급한 곳에서도 당황하지 말고 항상 천천히 생각하며 편안할 때도 위태롭던 옛 일을 잊지 말라. 이렇게 한 세상을 살아간다면 진실로 좋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二五.

또 亨烈에게 古詩를 외어주시니 이러하니라. "明月千江共照 長風八隅氣同驅"

평역:또 형렬에게 옛 시를 외어주시니 이러 하니라. "밝은 달은 이 세상의 모든 강물을 다 같이 비추고 큰 바람은 여덟 방위에서 온 세상에 불어오나 한 가지 기운으로 몰아 오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좌불(坐佛)이 되어 처소(處所)를 잘 지키라, 나는 유불(遊佛)이 되리라 하시니라.)

 

二六.

하루는 亨烈을 命하사 紙片에 六十四卦를 點치고 二十四方位字를 둘러 쓰이 사 太陽을 向하여 불사르시며 가라사대 與我同居하자 하시고 亨烈을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잘 믿는 者에게 海印을 傳하여 주리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형렬에게 명하사 종이쪽지에 육십사괘를 점찍게 하시고 이십사방위 글자를 빙 둘러 쓰게 하신후 해를 향해 불사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이 더불어 영원히 지내자." 하시고 형렬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나를 잘 믿는 자에게 해인(海印)을 전하여 주리라." 하시니라.

 

二七.

또 가라사대 선비는 반드시 몸에 紙筆墨을 가져야 하느니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선비는 반드시 몸에 종이와 붓을 지녀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二八.

또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선비는 大學經 一章 章下를 알아두어야 하나니라 하시고 외어주시니 이러하니라. "右經一章 盖孔子之言而 曾子述之, 其餘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 舊傳頗有錯簡 今因程子所定 而更考經文 別有序次如左"

평역: 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선비는 대학경 일장 장아래를 잘 알아 두어야 하느니라." 하시고 외어주시니 이러하니라. "대개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했고 그 나머지 열 대목은 증자의 뜻을 문인이 기록한 것이다. 옛날 책에는 글이 섞이고 잘못된 것이 있어서 이제 정자가 정의하는 바에 따라 다시 경문의 뜻을 깊이 새겨 고쳐서 순서를 나누니 왼쪽과 같다."

 

二九.

또 亨烈에게 泰誓章을 외어주시며 잘 記憶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如有一介臣 斷斷 (여유일개신 단단의) 無他技 其心休休焉(무타기 기심휴휴언) 其如有容, 人之有技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 如自其口出(부시여자기구출) 是能容之, 以保我子孫黎民, 尙亦職有利哉, 人之有技, 冒疾以惡之, 人之彦聖而違之,  不達(비부달) 是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역왈태재)"

평역:또 형렬에게 서전(書傳)에 나오는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실패를 뉘우치며 말한 진서장(秦誓章)을 외어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만일 한 신하가 있어 다른 재주는 없으나 오로지 마음이 굳고 한결같기만 하고 그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여 다른 사람의 빼어남을 자기가 가진 것처럼 아끼고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크게 어진 것을 그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남에게 칭찬하기도 한다면, 이런 신하는 능히 우리의 자손과 백성을 보전케 할 만한 사람이며 오히려 이로움이 있다 할 것이오. 다른 사람의 재능 있음을 질투로서 증오하며 다른 사람이 크게 어진 것을 어기어 흘겨보며 통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능히 포용치 못할 사람이오. 능히 우리의 자손과 백성을 보전치 못하게 할 사람이니 역시 위태롭다 하겠다."

 

三十.

또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모든 말을 묻는 者가 있거든 듣고 實行이야 하던지 아니하던지 바른 대로 일러 주라 하시니라.

평역: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모든 말을 할 때 묻는 사람이 듣고 실행이야 하던지 아니하던지 바른대로 일러주라." 하시니라.

 

三一.

하루는 泰仁 白巖里 金京學이 와 뵙거늘 先生이 命하사 金自善의 집에 留宿케 하시고 翌日에 自善의 집에 이르사 京學에게 昨夜에 꿈에 본 것을 말하라 하시니 京學이 여쭈어 가로되 꿈에 一匹狗가 테를 짜지 아니한 우물가에 빠지는 것을 보고 죽을까 念慮하여 쫓아가서 救해 내려 하였더니 그 개가 다시 우물에서 뛰어나와 다른 곳으로 가더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俚言에 姜性을 개라 하나니 네가 꿈을 옳게 꾸었다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태인 백암리에 사는 김 경학이 와서 선생을 뵙거늘 선생께서 명하시어 김 자선의 집에 머물러 자게 하시고 다음날 자선의 집에 오셔서 경학에게 "어젯밤에 꿈속에서 본 것을 말하라." 하시니 경학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꿈에 개 한 마리가 테두리 없는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죽을까 걱정이 되어서 쫓아가서 구해 내려고 하였더니 그 개가 다시 우물에서 뛰어나와 다른 곳으로 가더이다." 하므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속말에 강씨 성 가진 사람을 강아지라 하나니 네가 꿈을 옳게 꾸었다." 하시니라.

 

三二.

朴公又가 三年동안 先生을 侍從하며 天地公事에 많이 奉公하였는데 매양 公事後에는 各處 從徒에게 巡廻演布하라 命하시며 가라사대 이 일은 곧 天地의 大巡이라 하시니라.

평역:박 공우가 3년동안 선생을 모시고 따라다니며 천지공사를 많이 받들었는데 항상 공사를 보신 후에는 "여러 곳에 있는 종도들에게 다니며 행한 것을 알리라." 명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일이 곧 천지의 대순(大巡)이라." 하시니라.

 

三三.

戊申[1908年] 六月에 先生이 光贊에게 물어 가라사대 네가 平居에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呼稱하였느냐. 對하여 가로되 村兩班이러고 呼稱하였나이다. 또 물어 가라사대 村兩班은 너를 어떠한 사람이라고 呼稱하겠느냐. 對하여 가로되 邑아전이라고 할 것이외다. 先生이 가라사대 村兩班은 邑아전에게 邑아전놈이라하고 邑吏는 村兩班에게 村兩班놈이라 하나니 이것이 다 不平줄이라. 이제 너와 내가 서로 和解하면 天下가 다 和平 하리라 하시니라.

평역:무신(1908)년 6월에 선생께서 김 광찬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평소에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부르느냐." 하시니 광찬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촌 양반이라고 부르나이다." 하니 또 물어 말씀하시기를 "촌 양반은 너를 어떤 사람이라고 부르겠느냐." 하시니 광찬이 다시 답하기를 "읍내 아전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촌 양반은 읍내의 아전에게 아전놈이라고 하고 아전은 촌 양반에게 촌 양반놈이라 하나니 이것이 다 불평줄이라. 이제 너와 내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화평해 지리라." 하시니라.

 

三四.

하루는 金亨烈이 出行하였다가 耶蘇敎人에게 無數한 凌辱을 當하고 돌아와서 先生께 그 事由를 아뢰니 先生이 가라사대 淸水一器를 떠놓고 스스로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亨烈이 命하신 대로하였더니 그 後에 그 사람이 病들어서 死境에 이르렀다가 어렵게 回春하였다 하거늘 亨烈이 듣고 아뢰자 先生이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그런 일을 當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살피라. 만일 허물이 네게 있을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오. 허물이 네게 없을 때에는 그 毒氣가 근본으로 돌아가니라.

평역: 하루는 김 형렬이 밖으로 나갔다가 예수교인에게 업신여겨 수많은 욕을 당하고 돌아와서 선생께 그 일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스스로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하시거늘 형렬이 명하신대로 하였더니 그 후에 그 사람이 병들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어렵게 살아났다 하거늘 형렬이 듣고 선생께 말씀드리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후로도 그런 일을 당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살피라. 만일 허물이 너에게 있을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요. 허물이 너에게 없을 때에는 그 독한 기운이 원래 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하시니라.

 

三五.

七月[1908年]에 白巖里에 계실 때 金京學이 京學의 薦人(천인)으로 와 뵈이거늘 七日이 지나도록 더불어 말씀치 아니하시니 永學이 크게 憤■(분에)하는지라. 公又, 元一이 일러 가로되 誠意로써 師事하기를 請하면 빨리 가르치시리라. 永學이 그 말을 쫓아 先生께 師事하기를 請한대 先生이 許諾하시더니 문득 크게 꾸짖어 시거늘 永學이 한편으로는 恐 (공구)하고 한편으로는 憤하여 門外로 나간지라 이윽고 永學을 불러 가라사대 너를 꾸짖은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神을 물리치려함이니 너는 不平히 생각지 말라. 永學이 가로되 무슨 척神 입니까. 깨닫지 못하겠나이다. 가라사대 네가 十八歲에 殺人하고 今年에도 殺人하였나니 잘생각하여보라. 永學이 생각하니 十八歲에 南原에서 全州吏 金某와 交語하다가 그 無禮한 말에 怒하여 火爐를 던져 그 頭部를 打傷케 하였더니 이로부터 呻吟하다가 翌年 二月에 身死하였고 今年春에 長城 麥洞에 居住하는 外叔 金堯善이 義兵에게 掠奪(약탈)을 當한 故로 義兵大將 金永伯을 長城 白羊寺에서 찾아보고 그 非行을 꾸짖었더니 永伯이 謝過하고 犯人을 調査하여 砲殺한 일이 있음으로 비로소 恍然(황연)히 깨달아 아뢰자 先生이 가라사대 正히 그러하다 하시니라.

평역:무신(1908)년 7월에 백암리에 계실 때 김 영학이 김 경학의 천거로 와서 뵙거늘 선생께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더불어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니 영학이 크게 분하고 화나게 생각하는지라. 박 공우 신 원일이 영학에게 일러 말하기를 "뜻을 정성스럽게 하여 가르침을 주십사 청하면 분명히 가르치시리라." 하니 영학이 그 말대로 선생의 모시고 가르침을 배우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허락하시더니 문득 크게 꾸짖어시거늘 영학이 한편으로는 두렵고 민망하며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는지라. 이윽고 선생께서 영학을 다시 불러들여 말씀하시기를 "너를 꾸짖은 것은 네 몸안에 있는 두 척신(神)을 물리치려 함이니 너는 그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 영학이 여쭈어 묻기를 "무슨 척신 이옵니까, 깨닫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열여덟 살에 사람을 죽이고 금년에도 사람을 죽였으니 잘 생각하여 보라." 하시니라. 영학이 생각하니 열여덟 살 때 남원에서 전주 아전(吏)과 말다툼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격분하여 화로를 던져 그의 머리에 상처를 입혔더니 그 아전이 그 일로 인하여 신음하다가 그 이듬해 이월에 죽었고 금년 봄에 장성 맥동(麥洞)에 사는 외숙 김 요선이 의병에게 약탈을 당하였으므로 장성 백양사에 머물던 의병대장 김 영백을 찾아가서 만나 그 잘못된 행위를 꾸짖었더니 그 의병대장이 사과하고 범인을 조사하여 총살한 일이 있음을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가 그제서야 비로소 깨달아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로 그러하다." 하시니라.

 

三六.

大興里에 계실 때 하루는 車京石, 安乃成, 朴公又를 데리고 앞 내에 나가 沐浴하실 때 京石을 命하사 白鹽一■(백염일국)을 가져다가 물에 뿌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서시며 가라사대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더니 문득 京石의 다리를 잡고 가라사대 큰고기를 잡았다 하시거늘 京石이 가로되 내다리로소이다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그렇게 되었느냐 하시고 놓으시더라.

평역: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차 경석, 안 내성, 박 공우를 데리고 앞 냇가에 나가서 목욕하실 때 경석에게 명하시어 흰 소금을 두손 가득 가져다가 물에 뿌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 서시며 말씀하시기를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더니 문득 경석의 다리를 잡고 말씀하시기를 "큰 고기를 잡았다." 하시거늘 경석이 말하기를 "저의 다리이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되었느냐." 하시고 놓으시더라.

 

三七.

安乃成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반드시 農事를 부지런히하여 밖으로 奉公의 義務를 다하며 안으로 先靈의 祭祀와 養老育英의 일을 힘써 나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평역:선생께서 안 내성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여 밖으로는 나라의 의무를 다하며 안으로는 선령의 제사와 집안을 보살피고 영재를 기르는 일에 힘써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三八.

八月[1908年]에 銅谷에 계실 때 車京石이 從遊함으로부터 家業을 不治하여 家産이 날로 零替(영체)하는지라. 그 아우 輪七이 不平이 생각하되 先生을 따르면 福을 받는다 하더니 이제 福은 멀어지고 貧苦가 따라드니 이는 한갓 誣惑에 不過함이라. 내가 先生께 가서 質問하리라 하고 銅谷으로 오다가 途中에 비를 만나고 진흙에 엎드려져서 衣服을 망쳐 가지고 先生께 와 뵈이니 先生이 놀랜 빛으로 일러 가라사대 이 附近에 義兵이 出沒하므로 官兵이 四方으로 偵察하니 만일 네가 冒雨行路한 모양을 보면 義兵으로 誤認하여 困辱을 줄 것이니 僻處에 隱居하여 내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하시고 亨烈로 하여금 잘 隱匿(은닉)케 하였다가 翌日에 輪七을 부르사 돈 五十兩을 주시며 가라사대 내가 數日後에 井邑으로 가리니 돌아가서 기다리라. 輪七은 無廉에 쌓였을뿐아니라 數日後에 井邑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좀 풀려서 質問은 後日로 미루고 돌아가니라.

평역:무신(1908)년 8월에 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차 경석이 선생을 모시고 따른 후부터 집안 일을 전혀 돌보지 아니하니 경석의 집안 살림이 날로 줄어만 가는지라. 경석의 아우 윤칠이 불만을 품고 생각하기를 "선생을 따르면 복을 받는다 하더니 이제 복은 멀어지고 가난의 고통만 따라 들어오니 이는 한갓 속임수에 불과함이라, 내가 선생께 가서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리라." 하고 구릿골로 오다가 도중에 비를 만나고 진흙길에 엎어져서 옷을 다 망쳐가지고 들어오니 선생께서 놀란 빛으로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부근에 의병이 출몰하므로 일본군이 사방으로 찾고 있는데 만일 네가 비 맞고 길을 걸어 온 모양을 보면 너를 의병으로 잘못 판단하여 네가 큰 곤욕을 당할테니 조용한 곳에 숨어서 내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 하시고 형렬로 하여금 잘 숨어 있도록 하셨다가 다음날 윤칠을 부르시어 돈 오십냥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몇 일 후에 정읍으로 가리니 돌아가서 기다리라." 하시므로 윤칠은 염치없음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몇 일 후에 선생께서 정읍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좀 풀려서 물어보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 돌아가니라.

三九.

數日後에 先生이 古阜 臥龍里에 가사 京石에게 傳命하시되 나를 보려거든 古阜學洞으로 오라 하시거늘 翌日에 京石이 學洞으로 와서 뵈이니 先生이 돈 五十圓을 주시면서 가라사대 너를 부른 것은 이 一極을 주려함이라 내가 輪七이 두려워서 네집에 가지 못하노라. 京石이 돈을 받고 惶懼(황구)하여 여쭈어 가로되 무슨 일로 그리하시나이까. 가라사대 日前에 輪七이 殺氣를 띄고 銅谷에 왔는데 돈이 아니면 풀기 어렵기로 돈 三圓을 주어서 돌려보냈노라. 京石이 慌忙히 돌아와서 輪七을 불러 물으니 果然 事實을 自白하니라.

평역:몇 일 후에 선생께서 고부 와룡리에 가시어 경석에게 명을 전하시기를 "나를 보려거든 고부 학동으로 오라." 하시거늘 다음날 경석이 학동으로 와서 뵈이니 선생께서 돈 오십원을 주시면서 말씀 하시기를 "너를 부른 것은 이 일극(一極)을 주려고 함이니라. 내가 윤칠이 무서워서 너의 집에 가지 못하노라." 하시니라. 경석이 돈을 받고 송구스러워 여쭈어 묻기를 "무슨 일로 그리하시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얼마전에 윤칠이 살기(殺氣)를 띄고 구릿골에 왔는데 돈이 아니면 풀기 어려워서 돈 삼원을 주어서 돌려 보냈노라." 하시므로 경석이 황망히 돌아와서 윤칠을 불러 물으니 과연 사실이 그러하더라.

 

四十.

翌日에 學洞을 떠나실 때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의 이번 길은 한사람의 절을 받기 爲함이니 이번에 받은 절이 천하에 넓게 미치리라 하시니라.

평역: 다음 날 학동을 떠나실 때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번 길은 한 사람의 절을 받기 위함이니 이번에 받은 절이 천하에 넓게 미치리라." 하시니라.

 

四一.

己酉[1909年] 節日에 京石이 그 祖先에 享祀(향사)하려 하거늘 先生이 그 供備한 饌需(찬수)를 가져오라하사 여러 從徒들과 더불어 잡수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곧 節祀라 하시니 그 後로는 매양 節祀와 忌辰을 當하면 天師께 供享하니라.

평역:기유(1909)년 설날에 경석이 그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려하자 선생께서 조상을 위해 마련한 제사음식을 가져오라 하시어 여러 종도들과 더불어 잡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절사(節祀)니라." 하시니 그 후로는 항상 명절과 제사를 지낼 때 선생께 공양 하니라.

 

四二.

先生이 狗肉을 즐기사 가라사대 이 고기는 上等人의 飮食이니라.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물은되 가라사대 이 고기를 農民이 즐기나니 이 世上에 上等人은 곧 農民이라. 先天에는 道家에서 이 고기를 忌하였슴으로 망량이 應치 아니하였느니라.

평역:선생께서 개고기를 즐기시며 "이 고기는 상등 사람들의 음식이니라." 하시니라. 종도들이 그 이유를 묻자 말씀하시기를 "이 고기를 농민들이 즐기나니 이 세상에 상등사람은 곧 농민이라. 선천에는 도를 딱는 사람들이 이 개고기를 기피하였으므로 천지의 망량이 응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라.

 

四三.

하루는 金自賢이 그 祖母의 葬禮를 行하려고 運柩하여 所定地로 向하거늘 先生이 銅谷앞에 金鑛터를 가리키면서 이곳에 埋葬하라 하시니 自賢이 듣지 않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畵龍千年에 眞龍이 이름을 모른다하시니라.

평역: 하루는 김 자현이 그 조모(祖母)의 장례를 치르려고 운구하여 미리 정해둔 장소로 향하여 가거늘 선생께서 동곡앞에 있는 금광터를 가리키면서 "이곳에 장례를 치르라." 하시니 자현이 듣지 않거늘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그림 속의 용 천년에 진짜 용이 이름을 모른다." 하시니라.

 

四四.

하루는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古阜故里에 가면 모든 族屬의 高行者를 對할 때 반드시 行列을 따라서 말하게 되나니 이것은 倫理上 傳統이라 무슨 關係가 있으리오마는 모든 神明은 그 不敬한 言辭를 그르게 여겨 반드시 罰을 주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일을 어려워서 親族과 交通을 稀少케 하노라.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부에 있는 고향 땅에 가면 항렬이 높은 친인척들은 나를 대할 때 항렬에 따라 말을 낮추어 하게 되나니 이것은 윤리상 전통이라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마는 모든 신명들이 (모르고 나에게 말을 낮추는 사람들에게) 그 불경함을 그르게 여겨 반드시 벌을 주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일이 어려워서 친척과 왕래를 적게 하노라." 하시니라.

 

四五.

하루는 亨烈을 命하사 光贊, 甲七에게 太乙呪를 많이 읽으라 하시고 金炳善(光贊의 姪)에게 桃李園序를 口誦千讀하라 하시고 京石,乃成에게 侍天主呪를 脣舌不動하고 많이 默誦하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형렬에게 명하시어 김 광찬, 김 갑칠에게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시고 김 광찬의 조카인 김 병선에게 "도리원서(桃李園序)를 입으로 소리내어 천 번을 읽으라." 하시고 차 경석, 안 내성에게 "시천주를 혀와 입술을 움직이지말고 소리없이 많이 읽으라." 하시니라.

 

四六.

四月[1909年]에 龍頭峙에 머무르실 때 光贊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金秉旭의 집에 있으면서 내가 傳하는 글을 일일이 淨書하여 가져오라 하시고 亨烈로 하여금 글을 傳하여 淨書 하여온 後에 光贊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글을 世上에 傳함이 可하냐 對하여 가로되 뜻대로 하소서 先生이 가라사대 井邑에 한 冊을 두었으니 그 글이 나타나면 世上이 다 알리라 하시고 드디어 불사르신 後에 銅谷으로 돌아오시니라. 그 글은 다만 光贊의 記憶된대로 一節을 傳하여 온 것이 이러하니라. "士之商職也, 農之工業也, 士之商農之工職業也, 其外他商工. 留所(疑有闕文) 萬物資生, 羞恥(수치), 放, 蕩, 神, 道, 統 春之氣放也, 夏之氣蕩也, 秋之氣神也, 冬之氣道也. 統以氣之主張者也, 知心大道術, 戊申十二月二十四日 左旋 四三八 天地  主張(천지망량주장) 九五一 日月■王主張(일월조왕주장) 二七六 星辰七星主張(성진칠성주장) 運 至氣今至願爲大降 無男女老少兒童 而歌之 是故永世不忘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평역:기유(1909)년 4월에 용머리고개에 머무르실 때 김 광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김 병욱의 집에 있으면서 내가 전하는 글을 일일이 깨끗이 적어 책을 만들어 가져오라." 하시고 형렬로 하여금 글을 전하시어 깨끗이 적어 책으로 만들어 오게 하신 후에 광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글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좋으냐." 하시므로 광찬이 대답하기를 "뜻대로 하소서."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정읍에 한 책을 두었으니 그 글이 나타나면 세상이 다 알리라." 하시고 그 책을 불사르신 후에 구릿골로 돌아오시니라. 그 글은 다만 광찬이 일부 기억하는 대로 한 구절이 전하여 오니 이러하니라. "사농공상이라 하나 선비의 일 또한 상업이고 농사 일 또한 공업이니 후천에는 선비의 일과 상업이 합쳐지고 농사와 공업이 합쳐져서 두가지 직업으로 통합되리라. (빠진 글이 있는 듯) 세상 만물이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바탕에서 태어나 부끄럼 없이 마구 자라서 무성해졌다가 때가되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통합되듯이 봄의 기운은 싹을 틔우시는 것이요, 여름 기운은 크게 무성하게 자라게 하심이요, 가을의 기운은 신(神)이 농사지은 것을 거둠이며, 겨울의 기운은 도(道)로 모든 것을 환원하여 다음 씨 뿌릴 때를 기다리심이라. 이런 기운으로 그 때 그 때 천지를 각각 주재하게 하나니 그것을 아는 마음이 대 도술이니라.

무신 12월 24일(戊申 十二月 二十四日)

왼쪽으로 선회하여 四 三 八 은 천지(天地) 망량(  ) 주장(主張)

九 五 一 은 일월(日月) 조왕( 王) 주장(主張)

二 七 六 은 성신(星辰) 칠성(七星) 주장(主張)

(동서가 뒤 바뀌니 천지개벽이라.)

運 至氣今至願爲大降 無男女老少兒童 而歌之 是故永世不忘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운(運)은 (하느님의 크고) 지극한 기운이 지금 나에게 내려 오기를 원하여 그 기운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데 있으니 남녀노소 할 것없이 모두 지극히 하느님을 위하는 이 주문을 노래하라.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

함없이 천지의 조화를 주재하시는 하느님의 덕에 마음을 합하고 정하여 영원토록 잊지 않고 그 도를 알고 뜻을 받들고자 하오니 지극한 기운이 크게 내리기를 원하옵니다.

 

四七.

하루는 金德贊에게 洋紙一枚를 주시며 七星經을 쓰라 하시니 德贊이 字樣의 大小를 물은즉 가라사대 隨意하여 써라 하심으로 德贊이 뜻대로 쓰니 紙面에 滿載하고 다만 三字쓸만한 餘白이 남았거늘 이에 그 餘白에 七星經三字를 쓰라 하사 불사르시니라.

평역:하루는 김 덕찬에게 양지 한 장을 주시면서 칠성경을 쓰라 하시니 덕찬이 글자의 크기를 물은즉 말씀하시기를 "마음대로하여 쓰라." 하심으로 덕찬이 마음대로 쓰니 지면이 꽉 차고 다만 글 석자 쓸 여백이 남았거늘 이에 그 여백에 "칠성경 세 글자를 쓰라." 하시고 불사르시니라.

 

四八.

하루는 全州 金俊贊의 집에 계실 때 金洛範에게 물어 가라사대 近日에 關廟에 致誠이 있느냐 對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가라사대 그 神明이 이 地方에 있지 아니하고 멀리 西洋에 가서 大亂을 일으키나니 致誠은 헛된 일 이니라.

평역:하루는 전주에 사는 김 준찬의 집에 계실 때 김 낙범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요사이에 관운장의 묘에 치성을 하는 일이 있느냐." 하시니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있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신명이 이 지방에 있지 않고 멀리 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고 있나니 치성은 헛된 일이니라." 하시니라.

 

四九.

하루는 車京石, 金光贊, 黃應鍾을 앞에 세우신 後에 公又에게 몽치를 들리고 京石에게 칼을 들리 사 하여금 "너희들이 이 後에도 지금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變改함이 없겠느냐. 日後에 만일 마음을 變改함이 있으면 이 몽치로 더숙이를 칠 것이오 이 칼로 割腹을 하리라"고 警告하여 이로써 屈服케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차 경석, 김 광찬, 황 응종을 앞에 세우신 후에 공우에게 작은 단단한 몽둥이를 들리고 윤경에게 칼을 들게 하시고 "너희들이 앞으로도 지금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마음을 바꾸어 변함이 없겠느냐. 후일에 만일 마음을 바꾸어 변함이 있으면 이 몽둥이로 더숙이를 칠 것이요, 이 칼로 배를 가르리라." 하시며 꾸짖어 타이르시며 다짐을 받으시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는 자는 창성하고 나를 배반하는 자는 멸망하느니라." 하시니라)

 

五十.

매양 銅谷앞 大樹下에서 소풍하시며 金山안과 龍華洞을 가리키며 가라사대 이곳이 내 墓址라 .將次 꽃밭이 될 것이오 이곳에 人城이 쌓이리라 하시고 또 "天皇地皇人皇後에 天下之大金山寺"라고 말씀하시니라.

평역:항상 구릿골앞 큰 나무아래에 소풍하실 때면 금산안과 용화동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내 묫자리라, 장차 꽃밭이 될 것이요. 이곳에 사람의 성이 쌓이리라." 하시고 또 "최초의 비롯됨인 천황시대 세상의 시작인 지황시대 생업의 시작인 인황시대가 지난 후에 천하에서 금산사가 가장 크리라." 말씀 하시니라.

 

五一.

하루는 여러 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大運을 받으려하는 者는 書傳序文을 많이 誦讀하라하시고 또 가라사대 "且生於數千載之下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亦己難矣"의 一節은 淸水를 떠놓고 읽을만한 句節이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큰 운을 받으려는 자는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라."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또 천년후에 태어나 천년전의 일을 밝혀 설명하려 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 일 것이라." 의 이 한 구절은 깨끗한 물을 떠놓고 읽을 만한 구절이라 하시니라.

 

五二.

하루는 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道通이 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있나니라 하시니 柳贊明이 侍坐하였다가 大聲으로 乾坎艮震巽離坤兌를 읽고 나가니라.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도통이 건감간진손이곤태에 있느니라." 하시니 유 찬명이 선생을 모시고 앉아 있다가 큰소리로 "건감간진손이곤태" 를 한 번 읽고 물러 나가니라.

 

五三.

崔德兼이 여쭈어 가로되 天下事는 어떻게 되오리까 先生이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쓰시며 가라사대 이러하리라. 自賢이 가로되 이것을 解釋하기 어려우니이다. 先生이 다시 그 위에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쓰시고 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두 줄은 베 짜는 바디와 머리 빗는 빗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평역:최 덕겸이 여쭈어 묻기를 "앞으로 세상의 일은 어떻게 되오리까." 하니 선생께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支)를 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러 하리라." 하시므로 자현이 다시 묻기를 "그 뜻을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다시 그 위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간(干)을 쓰시고 차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두 줄은 베짜는 바디와 머리 빗는 빗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先天의 판 안 공부로는 알 수 없을 것이요, 나의 판 밖 공부라야 알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五四.

또 가라사대 二十四節候文이 좋은 글인데 世人은 다 모르나니라. 俚言에 節候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無知蒙然한 것을 철不知라 하여 少年도 知覺을 차린 者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老人도 沒知覺하면 철不知한 兒孩와 같다 하느니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이십사 절후문이 좋은 글인데 세상사람들은 다 모르느니라." 하시고 "속말에 절후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가 지각이 없어 깨닫지 못하는 것을 철부지라 하나니 비록 아이라도 지각이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노인이라도 몰지각하면 철부지한 아이와 같으니라." 하시니라.

 

五五.

또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大祥이란 祥字는 祥瑞라는 祥字니라.

평역: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대상(大祥)이란 상(祥)字는 상서(祥瑞)러울 상(祥)字니라." 하시니라.

 

五六.

하루는 公事를 行하시고 "大丈夫,大丈婦"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평역:하루는 공사를 행하시고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五七.

하루는 某處에서 少婦가 夫喪을 當한 後에 殉節하였다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惡毒한 鬼神이 無故히 人命을 殺害한다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忠孝烈國家之大綱然 國亡於忠 家亡於孝 身亡於烈"

평역: 하루는 어느 곳에서 젊은 부인이 남편의 상(喪)을 당한 후에 따라 목숨을 끓었다 하거늘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악독한 귀신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구나."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무릇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지아비에 절개를 지키는 것은 나라의 큰 근본인데 잘못된 충성심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고 잘못된 효도로 인하여 집안이 망하며 잘못된 절개지킴이 한 여자의 일생을 망치느니라." 하시니라.

 

五八.

하루는 金松煥에게 古詩를 외어주시니 이러하니라. "小年才氣拔天摩(소년재기발천마), 手把龍天幾歲磨(수파용천기세마), 石上梧桐知發響(석상오동지발경), 音中律呂有餘和(음중율려유여화), 口傳三代詩書敎(구전삼대시서교), 文記千秋道德波(문기천추도덕파), 皮幣已成賢士價(피폐이성현사가), 賈生何事怨長沙(가생하사원장사)"

평역:하루는 김 송환에게 옛 시 하나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소년 때의 재주기운으로 하늘의 이치까지 휘어잡고 헤아려서, 손에 쥔 용천검을 몇 해든지 저 돌들이 다 닳도록 갈다보니 어느듯 돌 밭위의 오동나무도 줄을 매어 퉁기니 소리를 낼 줄 알고, 말없이 음만을 써도 율려로서 넉넉히 화답이 되네. 시와 글로 가르친 것이 삼대동안 입으로 전하니, 그 글이 나타나면 후천 오만년을 도덕으로 물결치리. 값비싼 흰사슴 가죽에 글을 써서 이루는 것이 어진 선비의 가치니 漢나라 문제때 사람 가생처럼 장사에서 원망없이 경륜을 펼치면 후세에 이름을 얻으리라."

 

五九.

先生이 自己에게 對하여 甚히 不敬하며 凌辱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禮로써 優待하심으로 從徒中에 或 不可히 생각하는 者가 있으면 곧 일깨워 가라사대 저들이 나에게 不敬함은 나를 모르는 緣故라. 만일 나를 잘 알면 너희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리라. 저희들이 나를 알지 못하고 不敬하며 凌辱함을 내가 어찌 介意하리요 하시니라.

평역:선생께서는 당신을 대할 때 공경하지 않거나 심하게 비방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예의로 대하시고 우대하시니라. 그리고 종도 중에 선생께서 불경한 자들을 예우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으면 선생께서 곧 깨우쳐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나에게 공손하지 아니한 것은 그들이 나를 잘 모르는 까닭이라. 만일 나를 잘 알게되면 너희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나를 대할 것이니라. 그러나 저들이 나를 알지 못하고 공손하지 아니하며 나를 능멸함을 내가 어찌 마음에 두리오." 하시니라.

 

六十.

하루는 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過去에는 道通이 나지 아니 하였음으로 陰害를 이기지 못하여 成事되는 일이 적었으나 이 後로는 道通이 났음으로 陰害하려는 者가 도리어 害를 입으리라.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난날에는 도통(道通)이 나지 아니하였음으로 도가(道家)에서 도통에 힘을 기울여도 숨어서 남에게 해를 입히는 음해(陰害)를 이기지 못하여 일을 이루는 적이 드물었으나 이 후로는 도통(道通)이 났음으로 숨어서 남을 해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하시니라.

 

六一.

또 가라사대 耶蘇敎徒는 耶蘇의 再臨을 기다리고 佛敎徒는 彌勒의 出世를 기다리고 東學信徒는 崔水雲의 更生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모두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평역: 또 말씀하시기를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신자들은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신도들은 최 수운이 다시 살아오기를 기다리나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모두 다 저희들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하시니라.

 

六二.

또 가라사대 내가 出世할 때에는 天地가 震動하고 雷聲霹靂이 大作하리니 잘못 딱은 사람은 죽지는 아니하나 앉을 자리가 없어서 參席하지 못할 것이오. 갈 때에는 따라오지 못하고 엎드려지리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세상에 올 때에는 천지가 진동하고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나리니 도를 잘못 딱은 사람은 죽지는 아니하나 앉을 자리가 없어서 참석하지 못할 것이요, 갈 때에는 따라오지 못하고 엎드려지리라." 하시니라.

 

六三.

하루는 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大人의 行次에 三哨가 있나니 甲午에 一哨가 되었고 甲辰에 二哨가 되었고 孫秉熙는 三哨를 맡았느니 三哨 끝에는 大人이 나오느니라 하시고 孫秉熙의 挽詞를 지어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日新"

평역: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대인(大人)의 행차에 삼초(三哨)가 있나니 갑오에 일초(一哨)가 되었고 갑진에 이초(二哨)가 되었으며 손 병희는 삼초(三哨)를 맡았나니 삼초(三哨) 끝에 대인이 나오느니라." 하시고 손 병희의 만사(晩詞)를 지어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충성을 알고 의리를 아니 그대는 임금을 섬긴 것이요, 한가지 술법을 모든 백성앞에 드러낼 것이라. 화평을 부르는 첫 봄소식에 (그대의) 명성은 갑절로 늘게 되고, 남보다 먼저 나와서 큰 나래를 날로 새롭게 펼칠것이라."

六四.

하루는 朴公又가 先生께 여쭈어 가로되 道通을 주시옵소서. 先生이 꾸짖어 가라사대 이 무슨 말이뇨 各 姓의 先靈神 一名式이 天上公庭에 參列하여 있나니 이제 만일 한사람에게 道通을 주면 모든 先靈神들이 모여들어 偏僻됨을 詰難할지라. 그러므로 나는 私情을 쓰지 못하노라. 이 後에 一齊히 그 딱은 바를 따라 道通이 열리리니 孔子는 다만 七十二人만 通藝를 시켰으므로 얻지 못한 者는 모두 含寃 하였나니라. 나는 누구에게나 그 딱은 바에 따라서 道通을 주리니 上才는 七日이오. 中才는 十四日이오. 下才는 二十一日만 이면 各各 成道하게 되리라.

평역: 하루는 박 공우가 선생께 여쭈어 청하기를 "도통(道通)을 주시옵소서." 하니 선생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무슨 말이냐. 각 성(姓)의 조상 선령신(先靈神) 한 명씩이 하늘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여 열을 지어 도통을 이룰 때를 기다리고 있나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먼저 도통을 주면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모여들어 그 치우침을 비난할지라. 그러므로 나는 사사로운 정을 쓰지 못하니라. 이 후에 일제히 그 닦은 바에 따라 도통이 열리리니 (석가는 오백명을 도통하게 하였고) 공자는 다만 칠 십 두명만 예(藝)로서 도통시켰으므로 도통을 얻지 못한 자는 모두 원한을 품었느니라. 나는 누구에게나 그 닦은 바에 따라서 도통을 주리니 재질이 좋은 인재는 칠일이요, 중간 인재는 십사일이요, 재질이 낮은 인재라도 이십일일이면 각각 도(道)를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六五.

또 가라사대 先天英雄時代에는 罪로써 먹고살며 後天聖人時代에는 善으로써 먹고사나니 罪로써 먹고사는 것이 長久하랴. 善으로 먹고 사는 것이 長久하랴. 이제 後天衆生으로 하여금 善으로써 먹고 살게 할 度數를 짜 놓았노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지난 선천 영웅시대는 죄(罪)로써 먹고 살았으나 후천성인시대는 선(善)으로 먹고 살리니 죄(罪)로써 먹고 사는 것이 오래 가겠느냐. 선(善)으로써 먹고 사는 것이 오래 가겠느냐." 하시고 "이제 후천중생들로 하여금 선(善)으로써 먹고 살게 할 도수(度數)를 짜 놓았노라." 하시니라.

 

六六.

古阜 校洞 申京守가 猪一首를 飼畜하다가 盜失하고 先生께 와서 그 事由를 告하자 先生이 가라사대 그 돗을 찾지 말라. 네가 前生에 그 사람의 집에 가서 돗을 잡아 온 일이 있었느니라.

평역:고부 교동에 사는 신 경수가 돼지 한 마리를 키우다가 잃어버리고 선생께 와서 그 일을 고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돼지를 찾지 말라. 네가 전생에 그 사람의 집에 가서 돼지를 잡아 온 일이 있었느니라." 하시니라.

 

六七.

또 가라사대 蒼生이 大罪를 지은 者는 天罰을 받고 小罪를 지은 者는 人罰 或은 神罰을 받느니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죄를 지으면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천벌(天罰)을 받고 작은 죄를 지은 자는 인벌(人罰) 또는 신벌(神罰)을 받느니라." 하시니라.

 

六八.

世俗에 傳하여 내려온 모든 儀式과 虛禮를 그르게 여겨 가라사대 이는 묵은 하늘이 그르게 꾸민 것이니 將次 眞法이 나리라.

평역:세속에 전하여 내려온 모든 의식과 허례를 그르게 여겨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묵은 하늘이 그르게 꾸민 것이니 장차 진법(眞法)이 나리라." 하시니라.

 

六九.

除禮 陳設法을 보시고 가라사대 이는 묵은 하늘이 그릇 定한 것이니 모든 饌需(찬수)는 깨끗하고 맛있는 것이 貴한 것이오. 그 놓여있는 위치로 因하여 貴重케 되는 것은 아니니라.

평역:제사상에 음식 차리는 제례 진설법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묵은 하늘이 그릇되게 정한 것이니 제사음식은 깨끗하고 맛있는 것이 귀한 것이요. 그 놓여있는 위치로 인하여 귀중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라." 하시니라.

 

七十.

喪服을 보시고 미워하여 가라사대 이는 乞人 죽은 鬼神이 지은 것이니라.

평역:상(喪)복을 보시고 미워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옷은 거지 죽은 귀신이 지은 것이니라." 하시니라.

 

七一.

하루는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의 일은 어떤 蕩者의 일과 같으니 古代에 어떤 사람이 志操가 堅實치 못하여 放蕩히 지내더니 하루는 홀로 생각하되 내 一生에 아무것도 成就한 바 없고 이제 한갓 老衰에 이르게 되니 어찌 恨할 바 아니리오. 이로부터 改心하여 仙人을 찾아 仙學을 배우리라하고 默然良久에 문득 心神이 飄揚(표양)하여 飄然(표연)히 昇天하여 한 仙人을 만나니 그 仙人이 가로되 네가 이제 放蕩을 뉘우치고 仙學을 뜻하니 其 志가 嘉尙이라. 내가 네게 仙學을 가르치리니 네가 淨地에 道場을 設하고 多數한 同學을 모아 기다리라. 내가 장차 臨場(임장)하여 仙學을 傳授하리라. 그 사람이 聽命한 後에 仙人을 辭하고 精神을 收拾하니 氣味가 灑落(쇄락)한지라. 이날로부터 淨地를 가려서 同志를 求하니 그의 放蕩한 前習에 懷疑하여 聽從한 者가 적고 다만 그와 平素에 氣味가 投合된 者 幾個人이 會合하여 宴을 設하고 道場을 開하였더니 문득 天空으로부터 五雲이 燦爛하고 仙樂이 淸亮(청량)히 들리더니 俄而(아이) 그 仙人이 臨場하여 一齊히 仙學을 傳授하였나니라.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어떤 방탕한 자의 일과 같으니 옛날에 어떤 사람이 뜻이 굳고 실하지 못하여 방탕하게 지내더니 하루는 홀로 생각하기를 "내 일생에 아무것도 성취한 바가 없고 이제 늙어 쇠약해지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리오.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고쳐 선인(仙人)을 찾아 선학(仙學)을 배우리라." 하고 지내던 차에 문득 심신이 상쾌해지더니 돌연히 하늘로 올라가 한 선인을 만나니 그 선인이 말하기를 "네가 이제 방탕을 뉘우치고 선학에 마음을 두니 그 뜻이 가상하다. 내가 너에게 선학을 가르치리니 네가 조촐한 곳에 도장을 짓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많이 모아 기다리라. 내가 장차 그곳에 가서 선학을 전수하리라." 하니라. 그 사람이 선인의 명하심을 들은 후에 선인께 감사를 드리고 정신을 모아보니 그 마음이 상쾌하고 시원한지라. 이 날로부터 깨끗한 곳을 가려서 동지를 구하니 그의 방탕한 옛날 일을 알고 말을 듣고 따르는 자가 적고 다만 그와 평소에 생각을 같이 하던 몇 사람만 모여서 자리를 만들고 도장을 열었더니 문득 하늘로부터 오색구름이 찬란하고 맑은 선악이 들리더니 그 선인이 도장에 나타나 일제히 선학을 전수하였느니라." 하시니라.

 

七二.

또 가라사대 나의 일은 呂洞賓의 일과 같으니 呂洞賓이 人間속에 有緣者를 가려 長生術을 傳하려고 빗장사로 變裝하여 街道에서 외쳐 가로되 이 빗으로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衰한 氣力이 强壯하여지고 늙은 얼굴이 젊어지나니 이 빗값이 천냥 이로다 하거늘 世人이 虛誕하게 생각하여 信從치 아니함으로 한 老婦에게 試驗하니 果然 所言과 같은지라. 모든 사람이 그제야 다투어 모여드니 洞賓이 드디어 昇天하니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여 동빈의 일과 같으니 여 동빈이 세상사람들 속에서 인연있는 사람을 가려서 오래 사는 장생술을 전하려고 빗장사로 변장하여 길가에서 외쳐 말하기를 이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쇠약해진 기력이 다시 강해지고 늙은 얼굴이 젊어지나니 이 빗값이 천 냥이로다. 하거늘 세상사람들이 허황한 일이라 생각하여 믿고 따르지 아니하므로 여 동빈이 한 늙은 노파에게 시험하니 과연 그 말 그대로 되는지라. 그제서야 모든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모여드니 여 동빈은 하늘로 올라갔느니라." 하시니라.

 

七三.

또 가라사대 四十八將을 늘여 세우고 玉樞門을 열 때에는 정신차리기 어려우리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사십팔장을 늘여 세우고 옥추문(玉樞門)을 열 때에는 정신차리기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七四.

俚言에 짚으로 만든 鷄龍이라 하나니 世上이 막 일러주는 것을 모르느니라.

평역:속담에 "짚으로 만든 계룡"이라는 말이 있으니 세상이 막 일러 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느니라.

 

七五.

車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東學은 차정으로 亡하였느니라.

평역:차 경석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동학은 차정(車鄭)으로 망하느니라." 하시니라.

 

七六.

또 가라사대 運數를 열어 주어도 이기어 받지 못하면 그 運數가 本處로 돌아오기도 하고 또 남에게 그 運數를 빼앗기기도 하느니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운수(運數)를 열어 주어도 자신이 능히 감당하지 못하면 그 운수가 본래자리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또 남에게 그 운수를 빼앗기기도 하느니라." 하시니라.

第 五 章 治 病

一.

壬寅[1902年]에 先生이 醫法을 花亭里 李京五에게 처음 베푸시니라. 李京五는 大願寺 住持 朴錦谷과 親誼(친의)가 있음으로 그 病勢가 危篤(위독)함을 錦谷에게 말하여 醫師를 널리 求하여 주기를 請하니 錦谷이 先生의 神聖하심을 앎으로 그 일을 稟告하여 神力을 베풀어 주시기를 懇請하거늘 先生이 京五에게 가보니 그 病症은 左足無名指가 저리고 쑤시어 午後부터 새벽까지 다리가 부어 올라 다리 全部가 큰 기둥과 같이 되었다가 아침부터는 浮氣가 내려 正午에는 原狀을 回復하여 이렇게 三四年동안을 寸步를 옮기지 못하고 坐■(좌벽)이 되어 있더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 病症이 진실로 怪異하도다. 모든 일이 적은 일로부터 큰일을 헤아리나니 내가 이 病으로써 準的을 삼아 天下의 病을 다스리기를 試驗하리라 하시고 손으로 만져 내리신 後에 ■末(첨말)로부터 떨어지는 雨水를 받아서 씻어라 命하셨더니 京五가 命하신 대로 ■水(첨수)를 받아 씻음에 곧 나으니라.

평역:임인(1902)년에 선생께서 전주 화정리 우묵실 이 경오에게 처음으로 의법(醫法)을 베푸시니라. 이 경오는 대원사 주지 박 금곡과 평소 친분이 있으므로 그 병세가 위독함을 금곡에게 말하여 널리 의사를 구하여 주기를 간청하였더니 금곡이 선생의 신성하심을 알고 그 일을 선생께 아뢰어 신력(神力)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더니 선생께서 이 경오에게 가서 보시니 그 병의 증세는 왼쪽 무명지 발가락이 저리고 쑤시어 오후부터 새벽까지는 다리가 부어 올라 다리 전부가 큰 기둥같이 되었다가 아침부터는 부운 기운이 내리고 정오에는 원래 상태를 회복하게 되는 병이더라. 이렇게 삼 사년 동안을 계속되어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앉은뱅이가 되어 있었는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병의 증세가 참으로 괴이하도다. 모든 일은 작은 일로부터 큰 일을 헤아리나니 내가 이 병으로써 본을 삼아 천하의 병을 다스리는 것을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손으로 경오의 발을 만져 내리신 후에 "지붕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서 씻으라." 명하셨더니 경오가 명하신 대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씻음에 곧 나으니라.

 

二.

全州 宇默谷 李京五의 幼兒가 腹痛이 있어서 여러 날 大小便을 不通하여 生命이 危篤한지라. 京五가 幼兒를 안고 와서 施療(시료)하심을 請한대 先生이 幼兒를 앞에 눕히시고 손으로 배를 내려 만지시니 곧 小便을 通하는지라. 그릇에 小便을 받아서 두었다가 내려본즉 그릇바닥에 무슨 粉末이 沈澱되어 있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것은 糖粉이라 幼兒가 많이 먹으면 汗門(한문)이 막히고 이러한 病이 發하기 쉬우니 注意하라 하시니라.

평역:전주 우묵골에 사는 이 경오의 아이가 여러 날 대소변을 보지 못하여 복통으로 생명이 위독하여지니라. 경오가 아이를 안고 와서 복통을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아이를 앞에 눕히시고 손으로 배를 쓸어 내려 만지시니 곧 소변이 통하는지라. 그 소변을 그릇에 받아서 두었다가 내려보니 그릇바닥에 무슨 분말이 가라앉아 있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당분이라. 아이가 단 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 항문이 막히고 이러한 병이 생기기 쉬우니 주의하라." 말씀하시니라.

 

三.

癸卯[1903年] 三月에 全州府에서 머무르실 때 張孝淳의 女가 幼時로 부터 蛔腹을 앓아 每年 三四回를 月餘式 苦痛하더니 이해에는 數朔을 連痛함에 生命이 危殆에 瀕하거늘 孝淳이 그 일을 아뢰고 施療하시기를 哀乞하니 先生이 그 女■(여서)를 부르사 夫婦끼리 壁을 間隔하여 서로 등을 맞추어서라 하시니 그 女■(여서)가 命하신 대로 함에 妻의 痛症은 곧 낫고 그 病勢를 옮겨서 앓거늘 先生이 손으로 만져 낫게 하시니라.

평역:계묘(1903)년 3월에 전주부에서 머무르실 때 장 효순의 시집간 딸이 어릴 적부터 회충으로 인한 복통을 앓아 매년 서너번씩을 한달가까이 고생 하더니 이 해에는 연달아 수개월을 계속 앓음에 생명이 위독해지거늘 효순이 그 일을 선생께 아뢰고 복통을 낫게 하여 주실 것을 간청하니 선생께서 효순의 사위를 부르사 "부부끼리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추어 서라." 하시더니 그 사위가 명하신 대로 함에 그 부인의 병은 낫고 그 병이 옮겨서 사위가 대신 앓거늘 선생께서 손으로 만져 낫게 하시니라.

 

四.

金允根이 묵은 痔疾(치질)로 數十年을 앓아 오다가 이해에는 더욱 甚하여 起動을 못하고 누웠거늘 先生이 불쌍히 여기사 每朝에 侍天呪 七遍씩 읽어라 하셨더니 元根이 그대로 하여 數日만에 곧 나으니라.

평역:김 윤근이 묵은 치질로 수십년간을 앓아 오다가 이 해에는 더욱 심하여 일어서 다니지 못하고 누웠거늘 선생이 불쌍히 여기사 "매일 아침마다 시천주를 일곱 번씩 읽어라." 하시더니 윤근이 그대로 하여 수 일만에 곧 나으니라.

 

五.

古阜人 李道三이 癎疾이 있어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를 따르라 하시고 누워서 자지 못하게 하였더니 食後면 腹痛이 發하고 大便에서 痰이 섞여 나오다가 十四日만에 나으니라.

평역:고부사람 이 도삼이 간질병이 있어서 병을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시키는대로 따라 하라." 하시고 누워서 자지 못하게 하시더니 밥을 먹고 난 후에 배가 아프고 대변에서 담(痰)이 섞여 나오다가 열 나흘만에 나으니라.

 

六.

甲辰[1904年] 九月十日에 咸悅 會仙洞 金甫京의 집에 가시니 개가 甚히 짖고 나오더라. 이때에 甫京이 病들어 누워서 크게 危篤하므로 先生께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主人의 病은 이미 저 개에게 옮겼으니 근심말라하시더니 果然 甫京의 病은 곧 快復되고 그 개는 病들어 三日만에 죽으니라.

평역:갑진(1904)년 9월 10일에 함열 회선동 김 보경의 집에 가시니 개가 심히 짖고 나오더라. 이 때에 보경이 병들어 누워서 크게 위독함으로 선생께 그 병이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주인의 병은 이미 저 개에게 옮겼으니 근심하지 말라." 하시더니 과연 보경의 병은 곧 완쾌하고 그 개는 병들어 사흘만에 죽느니라.

 

七.

十二月[1904년]에 銅谷에 이르시니 金甲振이 積年된 癩病(나병)으로 面部와 手足에 浮腫이 나고 眉毛가 빠졌더니 先生의 神聖하심을 듣고 와서 施療를 哀請하거늘 先生이 甲振으로 하여금 正門밖에서 房을 向하여 서게 하시고 金亨烈과 그外 數人으로 하여금 大學經一章 章下를 誦讀케 하신 後에 돌려보내시더니 이로부터 甲振의 病이 全快하니라.

평역:갑진(1904)년 12월에 구릿골에 이르시니 김 갑진이 오래된 나병으로 얼굴과 손과 발에 부종이 나고 눈썹이 빠졌더니 그가 선생의 신성하심을 듣고 와서 나병을 낫게 하여 주시기를 애원하며 간청하거늘 선생이 갑진으로 하여금 정문 밖에서 방을 향하여 서게 하시고 김 형렬과 그외 여러사람으로 하여금 대학 우경 일장 밑부분을 (大學經 一章章下) 소리내어 읽게 하신 후에 돌려 보내시니 이로부터 갑진의 병이 전부 나으니라.

 

八.

銅谷里前에서 酒商하는 全順一이 長病으로 오랫동안 委痛하다가 先生께 뵈입기를 至願하거늘 先生이 韓公淑을 데리고 그집에 가사 順一에게 일러 가라사대 醫師가 떠나니 病人은 門밖에 나와 送別하라 하시니 順一이 强作하여 사람을 붙들고 일어나서 門밖에 나와 送別함에 病勢가 곧 快差하니라. 그 後로 順一이 酒案을 차려오지 아니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사람이 口味를 얻지 못하여 辛苦하리라 하시더니 果然 順一이 口味가 돌아서지 아니하여 數朔을 辛苦하니라.

평역:구릿골 앞에서 술장사를 하는 전 순일이 지병으로 오랬동안 고통받고 있다가 선생을 뵙기를 간절히 바라거늘 선생께서 한 공숙을 데리고 그 집에 가셔서 (순일에게 죽 한 그릇을 먹이시고 공숙에게 주머니속에 있는 은행 한 개를 방안에 있는 거울 조각 위에 얹어 으슥한 곳에 두게 하시고) 병자에게 술 한 상을 청하신 후 십여분 후에 순일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의사가 떠나니 병자는 문밖에 나와 전송하라." 하시니 순일이 억지로 힘들게 사람을 붙들고 일어나서 문밖에 나와 전송함에 병세가 곧 나으니라. 그 후로는 순일이 선생께 공양하지 않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이 입맛을 얻지 못하여 고생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순일이 입맛이 돌아오지 아니하여 수개월을 고생하니라.

 

九.

또 그 이웃집에 酒商하는 金士明의 아들 成玉이 六,七歲되었는데 어느 날 急病에 걸려 죽거늘 半日이 넘도록 살리려고 百方周旋하여도 回甦(회소)할 餘望이 없는지라 할 수없이 그 母가 死兒를 안고 銅谷藥房에 다다르니 先生이 그 外門에 當到할 때에 미리 아시고 문득 가라사대 藥房이 運否하려고 屍體를 안고 오는 者가 있다 하시더라. 成玉의 母는 屍體를 先生의 앞에 누이고 號哭하면서 살려주시기를 哀乞하거늘 先生이 웃으시며 死體를 무릎 위에 올려 누이시고 배를 만져 내리시며 虛空을 向하여 "眉■시켜 尤菴을 부르라"고 큰소리로 외치신 後에 침을 흘려서 死兒의 입에 넣으시니 死兒가 문득 肛門으로 醜汁(추즙)을 쏟으며 큰소리를 치고 回甦하거늘 이에 米飮을 지어서 먹이시고 걸려서 돌아가게 하시니라. (成玉은 現今 壯年인데 銅谷에 居住함)

평역:또 순일의 이웃집에 술장사하는 김 사명의 아들 성옥이 육,칠세 되었는데 어느 날 급한 병에 걸려 죽거늘 반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백방으로 애를 써도 다시 소생할 가망이 없는지라. 할 수없이 그 어머니가 죽은 아이를 안고 구릿골 약방에 다다르니 선생께서 그 바깥문에 왔을 때 미리 아시고 문득 말씀하시기를 "약방이 운이 없으려고 시체를 안고 오는 자가 있도다." 하시니라. 성옥의 어머니가 아이의 시체를 선생의 앞에 누이고 통곡하면서 살려주시기를 애걸 하거늘 선생께서 웃으시며 그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 누이시고 배를 만져 내리신 후에 허공을 향하여 "미수(眉■)를 시켜 우암(尤菴)을 부르라." 고 큰소리로 외치신 후에 침을 흘려서 죽은 아이의 입에 넣으시니 죽은 아이가 문득 항문으로부터 더러운 액체를 쏟으며 큰소리를 치고 살아나거늘 이에 미음을 지어서 먹이시고 아이를 걸려서 돌아가게 하시니라. (성옥은 대순전경 발행 당시 장년으로 구릿골에 거주하였다함)

 

十.

銅谷 金昌汝가 累年 積滯로 飮食을 먹지 못하여 形容이 憔悴(초췌)하거늘 先生이 불쌍히 여기사 平床위에 뉘이신 後에 배를 어루만지시며 亨烈을 命하사 "調來天下八字曲, 淚流人間三月兩, 葵花細■能補衰(규화세침능보쇠) 萍水浮踵頻泣■,(평수부종빈읍결) 一年月明壬戌秋, 萬里雲迷太乙宮 淸音鮫舞二客簫,(청음교무이객소) 往■烏飛三國塵(왕겁오비삼국진)"이라는 글을 읽어 주었더니 그 後로는 昌汝의 滯症이 全快되니라.

평역: 구릿골 김 창여가 여러해 동안 누적된 체증으로 인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모습이 초췌하거늘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평상 위에 눕게 하신 후에 배를 어루만지시며 형렬에게 명하시어 아래의 글을 읽어 주게 하시니 그 후로는 창여의 체증이 완전히 나으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팔자를 한탄하니 흐르는 눈물은 삼월에 내리는 봄비 같고, 임금을 언제나 곁에 모시고 살아 갈수 있었으련만 부평초같이 떠도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 임술(1922)년 가을 일년 중 달은 가장 밝고 머나먼 태을궁에는 구름만 가득한데, 두 나그네의 맑은 피리소리에 교룡은 춤을 추고 다가오는 겁액에 까마귀만 나는데 삼국은 풍진세상이라."

 

十一.

全州 龍頭峙 金某가 앉은뱅이로 轎子를 타고 와서 施療를 哀乞하거늘 先生이 그 사람을 앞에 앉히고 煙竹을 들어올리시며 가라사대 이 煙竹을 따라 차차 일어서라 하시니 그 사람이 그 徐徐히 들어올리는 煙管을 따라서 무릎과 다리를 漸漸펴며 일어서거늘 이에 亨烈을 命하사 "曳鼓神, 曳彭神, 石蘭神, 東西南北中央神將, 造化造化云吾命令■"라는 글을 읽은 後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庭中에 驅步케 하시고 光贊을 命하사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빨리 걷게 하시고 轎子를 버리고 徒步로 돌려 보내실 때 謝金三十兩을 받아 큰길가 酒店에 나가시어 來往行人을 불러 술을 사주시며 가라사대 다리를 펴주니 고맙다 하시니라.

평역:전주 용머리고개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앉은뱅이가 교자를 타고 와서 그 다리를 낫게하여 주실 것을 애걸하거늘 선생께서 그 사람을 앞에 앉히고 담뱃대를 들어 올리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담뱃대를 따라 차차 일어서라." 하시니 그 사람이 그 서서히 들어 올리는 담뱃대를 따라서 무릎과 다리를 점점 펴며 일어서거늘 이에 형렬에게 명하시어 "예고신 예팽신 석란신 동서남북 중앙신장 조화조화운 오명령훔"이라는 글을 읽게 하신 후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당을 걷게 하시고 광찬을 명하사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빨리 걷게 하시고 그 타고온 교자를 버리고 걸어서 돌아가게 하실 때 사례금 삼십냥을 받아 큰 길가 주점에 나가시어 왕래하는 행인을 불러 술을 사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다리를 펴주니 고맙도다." 하시니라.

 

十二.

金溝 水流面 龜尾洞 崔雲益의 아들이 病들어 死境에 이르렀으므로 雲益이 와서 살려주시기를 請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病人의 形貌가 甚히 醜陋(추루)하여 一生에 恨을 품었음으로 그 魂이 이제 支那 瀋陽에 있어서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어찌 할 수 없노라. 雲益이 그 病子의 形貌를 보는 듯이 알아 말씀하심을 神聖히 여기며 回甦치 못하리라는 말씀에 더욱 슬퍼하여 굳이 藥을 請하는지라. 先生이 四物湯 한 貼을 지으사 貼紙에 九月飮이라 써주시니 雲益이 藥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즉 그 아들은 벌써 죽었더라. 雲益이 돌아간 後에 從徒들이 九月飮의 뜻을 물어보니 가라사대 "九月葬始皇於驪山下"라 하였으니 살지 못할 뜻을 表示함이로다. 만일 굳이 약을 請하여 얻지 못하면 恨을 품을 것이므로 그 뜻을 慰勞하기 爲하여 藥을 주었노라 하시니라.

평역: 금구 수류면 구미동 최 운익의 아들이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운익이 와서 아들을 살려주기를 청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병든 사람이 얼굴이 매우 못생겨서 일생동안 한을 품었으므로 그 혼이 이제 심양으로 가서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어찌 할 수 없노라." 하시니라. 운익이 그 병든 사람의 얼굴 모양을 본 듯이 알아 말씀하심을 신성하게 여기며 다시 소생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더욱 슬퍼하며 굳이 약을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사물탕" 한 첩을 지으사 그 약 싼 종이에 "구월음"이라 써 주시더니 운익이 약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 즉 그 아들이 벌써 죽었더라. 운익이 돌아간 후에 종도들이 "구월음"의 뜻을 물어보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구월에 여산 밑에 진시황의 장례를 지냈노라." 하는 뜻이니 살지 못할 것을 표시함이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만일 굳이 약을 청하다가 얻지 못하면 한을 품을 것이므로 그 뜻을 위로하기 위하여 약을 주었노라." 하시니라.

 

一三.

銅谷 朴順汝의 母가 年이 六十餘에 病들어 매우 危篤하여 回春될 希望이 없으므로 治喪諸具를 準備하고 葬禮에 쓸 술까지 빚어 넣었더니 先生이 들으시고 順汝의 집에 가사 順汝로 하여금 市場에 가서 初終에 쓰는 모든 물건을 쓰이지 않게 하여 주라는 心告를 誠意껏 하고 돌아오라 하시고 四物湯한 貼을 달이신 後 그 病室正門밖 階下로부터 十二步를 行하사 땅을 長方形으로 파고 그 藥을 부으며 가라사대 病이 이미 葬期에 이르렀으니 藥을 땅에 써야 되리라 하시고 돌아오시니 病人은 이로부터 곧 回甦하니라. 이때에 順汝가 市場으로부터 돌아오거늘 先生이 물어 가라사대 市場에서 누구에게 心告하였느뇨. 順汝 對하여 가라사대 先生님께 心告하였나이다. 先生이 웃으시고 그 빚어 넣어 둔 술을 가져오라하사 이웃사람들을 불러 나누어 먹이시니라.

평역:구릿골 박 순여의 어머니가 나이 육십이 넘은 나이에 병이 들어 매우 위중하니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으므로 순여가 치상에 쓸 도구를 준비하고 장례에 쓸 술까지 빚어 넣었더니 선생께서 들으시고 순여의 집으로 가시어 순여로 하여금 "시장에 가서 초상에 쓰는 모든 물건들이 쓰이지 않게 하여 달라는 심고(心告)를 정성껏 하고 돌아오라." 하시고 사물탕 한 첩을 달이신 후에 그 병든 사람의 방 정문밖 계단 밑으로부터 열두 걸음 되는 곳에 이르러 땅을 사각형으로 파고 그 약을 부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병이 이미 장례를 치를 지경에 이르렀으니 약을 땅에 써야 되리라." 하시고 돌아오시니 병든 사람이 이때부터 곧 다시 소생하니라. 이때에 순여가 시장으로부터 돌아오거늘 선생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시장에서 누구에게 심고(心告) 하였느냐." 하시므로 순여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선생님께 심고(心告) 하였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고 "그 빚어 넣어 둔 술을 가져오라." 하시어 이웃 사람들을 불러 나누어 먹이시니라.

 

一四.

丙午[1906年] 三月에 京城 黃橋 金永善의 집에 머무르실 때 이웃에 있는 吳議官이 三年前부터 肺病에 걸리어 이미 危期에 이르렀더니 永善에게 先生의 神聖하심을 듣고 와서 뵈인 後 施療를 懇請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서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을 그대의 寢室에 갈머두라. 吳氏가 그대로 하였더니 그날 밤부터 ■睡(은수)하고 모든 다른 病■(병수)도 다 풀려 完快하니라.

평역:병오(1906)년 3월에 서울 황교에 사는 김 영선의 집에 머무르실 때 이웃에 있는 오 의관(議官)이 3년 전부터 폐병에 걸리어 이미 위독한 시기에 이르렀더니 영선에게서 선생의 신성하심을 듣고 선생께 와서 뵈인 후 폐병을 낫게 하여 주실 것을 간청하거늘 선생께서 글을 써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그대가 자는 방에 잘 간수하라." 하시므로 오 의관이 그대로 하였더니 그 날 밤부터 편안히 잠을 잘 자고 다른 모든 병들도 다 풀려 완전히 나으니라.

 

一五.

吳議官의 妻가 少時로부터 晴盲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더니 그 夫病이 快差되었음을 듣고 눈을 뜨게 하여 주시기를 哀願하는지라. 先生이 그 盲人의 寢室正門에 이르사 陽傘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後에 白鹽을 좀 먹이시고 해 쬐이는곳에서 四聖飮 한 帖을 다려서 땅을 파고 부으시니 그 눈이 煌然히 밝아지니라. 吳議官의 夫妻는 크게 感泣하여 至誠으로 先生께 供養하며 一行의 經用을 負擔하니라.

평역:오 의관의 아내가 어릴 적부터 눈뜬장님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더니 그 남편의 병이 낫게 되었음을 듣고 눈을 뜨게 하여 주시기를 애원하는지라. 선생께서 그 장님의 침실정문에 이르사 해날 때 쓰는 양산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후에 흰 소금을 좀 먹이시고 해 쬐이는 곳에서 "사성음(四聖飮)" 한 첩을 다려서 땅을 파고 부으시니 그 눈이 갑자기 밝아지니라. 오 의관 부부는 부부의 병을 모두 고쳐주신 그 은혜를 잊지 못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선생께 공양을 모시고 선생일행께서 쓰시는 모든 경비를 부담하니라.

 

一六.

銅谷附近에 사는 金道一이 先生께 甚히 倨慢하더니 腹痛이 發하여 여러날 苦痛하거늘 先生이 道一을 가보시고 손으로 그 胸部로부터 臍上(제상)까지 만져 내리고 돌아오시더니 그 後로는 臍上腹部에는 痛症이 없어지고 臍下腹部에는 痛症이 依然한지라. 道一이 사람을 보내어 先生께 다시 만져주시기를 請하니 先生이 道一을 불러오사 房中에 눕게 하시고 門밖에서 건성으로 이르시다가 들어오시며 문득 道一을 꾸짖어 가라사대 네가 어찌 長者의 앞에 누웠느냐 하시고 從徒들을 命하사 일으켜 逐出하시니 道一이 크게 憤怒하여 돌아갔더니 그 病이 그때부터 곧 快差하거늘 道一이 비로소 그 꾸지람이 葯 이었음을 깨달으니라. 從徒들이 꾸지람으로 治療하시는 理由를 물으니 가라사대 그 病症은 蛔■(회충)의 作用이라. 내가 한 번 만짐에 蛔 이 臍下에 내려가서 敢히 擡頭(대두)치 못하는데 만일 다시 만지면 녹아서 죽을 뿐 아니라 사람의 生命까지 危殆할지라. 그러므로 병인을 분노케 하여 蛔■(회충)이 그 기운을 타고 올라와서 本處로 돌아 安靜을 얻게 한 것이니 이것이 醫術이니라.

평역:구릿골 부근에 사는 김 도일이 선생께 매우 거만하였는데 어느날 복통이 나서 여러 날을 고통받거늘 선생께서 도일에게 가서 보시고 손으로 그 가슴으로부터 배꼽 위에까지 만져 내려 주시고 돌아오시더니 그 후로는 배꼽 위 복부통증이 없어지고 배꼽 아래 부분의 복부통증은 계속 그대로 인지라, 도일이 사람을 보내어 선생께서 다시 한 번 더 만져주시기를 청하 니 선생께서 도일을 불러오게 하시어 방 한가운데 눕게 하시고 문밖에서 건성으로 이르시다가 들어오시며 문득 도일을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 어른의 앞에서 누워 있느냐." 하시고 종도들을 명하시어 일으켜 세워 쫒아내시니 도일이 크게 화가 나서 돌아가더니 그 병이 그때부터 곧 나아지거늘 도일이 비로소 그 꾸지람이 약 이었음을 깨닫느니라. 종도들이 꾸지람으로 병을 고치시는 방법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그 병은 회충의 장난으로 인함이라. 내가 한 번 만지니 회충이 배꼽 아래로 내려가서 감히 올라오지 못하는데 만일 다시 만지면 회충은 녹아서 죽겠지만 사람의 생명도 위태로워 질 것이라, 그러므로 병든 사람을 화나게 하여 회충이 그 기운을 타고 본래자리로 돌아 올라와 안정을 얻게 한 것이니 이 것이 의술이니라." 하시니라.

 

一七.

道一이 病이 나은 後로 腰痛이 나서 풀리지 아니하여 지팡이를 짚고 先生께 와 뵈이니 先生이 가라사대 病나은 뒤에 오히려 지팡이를 짚고 다님은 웬일이뇨. 道一이 대하여 가로되 腰痛이 나서 그리하나이다. 先生이 光贊을 命하사 그 지팡이를 꺽어 버리셨더니 이로부터 腰痛이 곧 快差하니라.

평역: 김 도일이 병이 나은 후에 허리에 통증이 생겨서 풀리지 아니하여 지팡이를 짚고 선생께 와서 뵈이니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병 나은 뒤에 오히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웬 일이냐." 하시니 도일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허리에 통증이 생겨서 그리하나이다." 하므로 선생께서 광찬을 명하시어 그 지팡이를 꺽어 버리게 하셨더니 그 후 곧 허리의 통증이 없어져 나으니라.

 

一八.

다시 道一을 命하사 가라사대 西天에 紅雲이 떠 있는가 보라 하시니 道一이 나가보고 復命하여 가로되 紅雲이 떠 있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金山을 얻기가 어렵다 하시니라.

평역:다시 도일을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서쪽하늘에 붉은 구름이 떠 있는가 보라." 하시니 도일이 나가서 보고 말씀드리기를 "붉은 구름이 떠 있나이다."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금산(金山)을 얻기가 어렵다." 하시니라.

 

一九.

亨烈이 脚痛으로 因하여 發汗頭痛하며 飮食을 全廢하고 苦悶하거늘 先生이 六十四卦를 暗誦하라 命하시니 亨烈이 그대로 함에 곧 寒氣가 물러가며 頭痛이 그치고 脚痛도 全快하거늘 極히 異常히 여겨 그 理由를 물은즉 先生이 가라사대 八卦 가운데 五行之理가 있고 葯은 곧 五行의 기운을 應함인 緣故라 하시니라.

평역:김 형렬이 다리통증으로 인하여 머리가 아프고 식은땀이 나서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고통스러워 하거늘 선생께서 "육십사괘(六十四卦)를 마음속으로 외우라." 명하시니 형렬이 그대로 행함에 곧 한기가 들던 것이 물러가고 머리 아픈 것도 그치고 다리의 통증도 낫거늘 아주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은 즉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팔괘(八卦) 가운데 오행(五行)의 이치가 감추어져 있고 그 오행의 기운을 응하게 한 것이 곧 약인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二十.

丁未[1907年]春에 全州 伊西面 佛可止 金成國의 집에 계실 때 同面 鶴洞(황새마을)에 사는 文致道가 先生의 聲名을 듣고 찾아 뵈이려고 오는 길에 伊城洞 宋大有에게 들려 同行하려고 하였더니 宋大有는 마침 손님이 있어서 同行치 못하고 그 從弟를 同行케하며 가로되 내 從弟가 肺病으로 苦痛한지 數年에 危期에 이르렀으니 姜先生께 말씀을 잘하여 良藥을 얻어 주기를 바라노라 하며 돈 二圓을 그 從弟에게 주며 가로되 이것이 略少하나 가지고 가서 酒肴(주효)나 한때 供養하라. 그리고 償還할 때에 利息은 없이하라. 病人이 그 돈을 받았다가 償還하라는 말을 듣고 一圓을 돌려주며 가로되 一圓이면 足하외다 하고 致道를 따라서 先生께 와 뵈이니라. 致道가 先生께 그의 病勢를 아뢰고 施療를 請한대 先生이 가라사대 吝嗇(인색)한 者는 病을 고치지 못하느니라. 致道가 對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元來 貧乏(빈핍)하여 吝嗇 할 꺼리가 없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주는 것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吝嗇하지 않으리요. 病이란 자신의 믿음과 誠意로 낫느니라. 致道는 이 말씀을 듣고 그 神聖無比 하심에 놀래고 病人은 부끄러워하여 돌아가니라. 致道가 돈 一圓을 내어 金成國에게 부탁하여 略干의 酒肴를 準備하여 先生께 올리니 先生이 물어 가라사대 이것이 어디서 난 것이냐 하시니 成國이 致道의 供養임을 아뢰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돈이 오늘 저녁에 多數한 增殖을 얻을 것인데 부질없는 일이로다 하시니 대개 그 돈은 그날 저녁에 노름資本을 하려 하였던 것이라. 致道가 더욱 놀라서 天神의 降世이신 줄로 믿느니라. 致道가 물러감을 告하자 선생이 가라사대 病人은 오늘 저녁부터 麥飯을 먹게 하라. 그러면 病■(병수)가 곧 풀리리라. 致道가 應命하고 病人에게 그대로 일렀더니 과연 麥飯으로 未幾에 全快하니라.

평역:정미(1907)년 봄에 전주 이서면 불가지 김 성국의 집에 계실 때 같은 면 황새마을에 사는 문 치도가 선생의 명성을 듣고 찾아뵈려고 오는 길에 이성동에 사는 송 대유에게 들러 동행하려고 하였더니 송 대유는 마침 손님이 있어서 그 이종동생을 동행케 하며 말하기를 "내 이종동생이 폐병으로 고생한지 몇 년이나 되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선생께 잘 말씀을 드려 좋은 약을 얻어 주기를 바라노라." 하며 돈 이원을 이종동생에게 주며 말하기를 "이것이 약소하나 가지고 가서 술이나 한 잔 공양하라. 그리고 그 돈을 갚을 때에는 이자없이 상환하라." 하니 병든 사람이 그 돈을 받았다가 다시 갚으라는 말을 듣고 일 원을 돌려주며 말하기를 "일 원이면 충분합니다." 하고 치도를 따라서 선생께 와서 뵈이니라. 치도가 선생께 그 사람의 병세를 아뢰고 그 병을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색한 자는 병을 고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치도가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원래 매우 가난하여 인색할 꺼리가 없나이다." 하니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주는 것도 받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인색하지 않으리요, 병이란 자신 스스로의 믿음과 성의로 낫 느니라." 하시니라. 치도는 이 말씀을 듣고 선생의 그 신성하심에 놀래고 병든 사람은 부끄러워하여 돌아가니라. 치도가 돈 일원을 내어 김 성국에게 부탁하여 약간의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선생께 올리니 선생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어디에서 난 것이냐." 하시니 성국이 치도의 공양임을 아뢰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돈이 오늘 저녁에 많이 불어날 것인데 부질없이 소비하는도다." 하시니 대개 그 돈은 그 날 저녁에 노름 밑천을 하려 하였던 것이라. 치도가 더욱 놀라서 하늘의 신이 세상에 강림하신 줄로 믿느니라. 치도가 물러감을 고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병든 사람에게는 오늘 저녁부터 보리밥을 먹게 하라. 그러면 병이 곧 나으리라." 하시니 치도가 명을 받들어 병든 사람에게 그대로 일렀더니 과연 그 날부터 보리밥을 먹고 곧 나으니라.

 

二一.

丁未[1907年]에 亨烈의 從弟 俊相의 妻가 左右 발바닥에 腫瘡이 나서 모든 藥에 效驗을 보지 못하고 마침내 死境에 이르렀거늘 俊相이 와서 施療를 請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그 患處가 곧 龍泉穴이라.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니 죽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오. 만일 誠意를 다하여 다스리려 하면 一百兩의 金錢을 消費하여야 하리라. 俊相이 여쭈어 가로되 家勢가 甚히 貧乏하여 一百兩의 金錢을 出辦(출판)키 어려우니 家屋이라도 放賣할 수밖에 없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그 家屋을 내게 팔아라. 俊相이 드디어 承諾하고 賣渡文記를 써 올리니 先生이 받아서 燒火하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患處를 만져 낫게 하여 주신 後에 그 집은 俊相으로 하여금 如前히 居住케 하시고 다만 한 便 房一間을 수리하여 藥局을 設하시니라.

평역:정미(1907)년에 형렬의 이종동생 준상의 아내가 양쪽 발바닥에 종기가 나서 모든 약을 다 써보아도 효험이 없고 마침내 죽을 지경에 이르렀거늘 준상이 와서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종기가 난 부분이 용천혈이라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니 죽는 날만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것이요, 만일 성의를 다해서 다스리려 한다면 돈 일백냥을 들여야 하리라." 하시므로 준상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집안 살림이 매우 가난하여 일백냥의 돈을 만들기 어려우니 집이라도 팔 수밖에 없나이다." 하므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그 집을 나에게 팔아라." 하시더니 준상이 그렇게 하기로 승낙하고 양도문서를 써서 올리니 선생께서 그 문서를 받아서 불사르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환자의 아픈 곳을 만져 낫게 하여 주신 후에 그 집은 여전히 준상으로 하여금 살게 하시고 다만 한편에 있는 방 한칸을 수리하여 약국을 개설하시니라.

二二.

銅谷 朴順汝가 半身不遂症으로 오랫동안 委席하여 活動力을 全失하였음으로 先生께 사람을 보내어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金自賢에게 물어 가라사대 順汝의 病을 다스림이 옳으냐 그대로 두어 죽게 함이 옳으냐. 네가 마음을 풀어야 하리라. 自賢이 異常히 여겨 가로되 살려주심이 옳으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順汝가 네게 不平을 끼친 일이 많으니 그러면 너와 함께 가서 治療하리라 하시고 自賢을 데리고 順汝의 집에 이르사 휫바람을 한 번 부시고 病든 다리를 주물러 내리시며 끓인 물을 한 그릇 먹이셨더니 그 病이 곧 完快되니라. 大抵 自賢이 社交關係로 順汝에게 不平을 가졌는데 先生이 그 일이 척이 되어 있음을 아시고 물으심이라.

평역:구릿골 박 순여가 반신불수증세가 있어서 오랬동안 자리에 누워 활동을 전혀 못함으로 선생께 사람을 보내어 반신불수증을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거늘 선생이 김 자현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순여의 병을 다스림이 옳으냐, 그대로 두어 죽게 함이 옳으냐, 네가 마음을 풀어야 하리라." 하시니 자현이 이상히 여겨 대답하기를 "살려 주심이 옳으나이다." 선생께서 밀씀하시기를 "순여가 너에게 불평을 끼친 일이 많으니 그러면 너와 함께 가서 치료하리라." 하시고 자현을 데리고 순여의 집에 가셔서 휘파람을 한 번 부시고 병든 다리를 주물러 내리시며 끓인 물을 한 그릇 먹이셨더니 그 병이 곧 나으니라. 이것은 자현이 순여와의 인간관계에 많은 불평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일이 척이 되어 있음을 선생께서 아시고 물으신 것이니라.

 

二三.

東谷 李載憲의 妻가 病든지 數年에 形骸(형해)만 남았거늘 載憲이 先生께 와 뵙고 施療를 懇請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그 病은 病人이 平素에 他人에게 惡言을 많이 하여 그 報應으로 發한 것이니 날마다 悔改하면 病이 저절로 나으리라. 載憲이 命하신 대로 그 妻를 曉諭하여 날마다 허물을 뉘우치게 하였더니 그 뒤로 곧 나으니라.

평역:구릿골에 사는 이 재헌의 아내가 병이 들어 몇 년째 되니 몸에 뼈만 남았거늘 재헌이 선생께 와 뵙고 낫게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병은 병든 사람이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많이 하여 그로 인하여 생긴 것이니 날마다 그 일을 뉘우치게 하면 병이 저절로 나으리라." 하시므로 재헌이 그 명하신대로 그의 아내를 설득하여 날마다 허물을 뉘우치게 하였더니 그 뒤로 곧 나으니라.

 

二四.

龍巖里앞 酒店에 지나실 때 그 酒婦가 連珠■■(연주라력)으로 末境에 이르러서 先生께 施療를 哀乞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서 그 집 개에게 던지시니 그 개는 곧 엎어져 죽고 酒婦의 病은 곧 나으니라.

평역:용암리 앞 주막을 지나실 때 그 주막 주모가 목의 힘줄과 살이 곪는 병이 나서 그 병이 말기에 이르러 위독한지라. 주모가 선생께 낫게 하여 주실 것을 애걸하므로 선생께서 글을 써서 그 집 개에게 던지시니 그 개는 곧 엎어져 죽고 주막집 주모의 병은 곧 나으니라.

 

二五.

朴公又의 妻가 겨울에 물을 길다가 氷板에 엎어져서 허리와 다리를 重傷하여 起動치 못하고 누웠거늘 公又가 크게 걱정하여 淸水를 떠놓고 멀리 先生의 계신곳을 向하여 그 妻의 傷處를 낫게 하여 주시기를 至誠으로 發願하였더니 그 妻가 곧 나아 일어 나니라. 그 뒤에 公又가 先生께 와 뵙자 先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네가 內患으로 얼마나 念慮하였느냐 하시니라.

평역:박 공우의 아내가 겨울에 물을 길다가 얼음판에 엎어져서 허리와 다리를 크게 다쳐 움직이지 못하고 누웠거늘 공우가 크게 걱정하여 깨끗한 물을 떠놓고 멀리 선생께서 계신 곳을 향하여 그 아내의 다친 곳을 낫게 하여 달라고 지극한 정성으로 빌었더니 그 아내가 곧 나아서 일어 나니라. 그 뒤에 공우가 선생께 가서 뵙자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집안의 근심스런 일로 얼마나 걱정하였느냐." 하시니라.

 

二六.

戊申[1909年 ]에 車京石의 小室이 指 頭에 바늘 찔린 것이 독이나 점점 팔이 저리다가 마침내 半身不隨가 되었거늘 先生이 六十干支를 쓰시고 한 干支씩 읽으심을 따라서 傷하였거든 指頭로 힘껏 짚으라 하신 後에 다시 命하사 술잔을 들고 거닐게 하시니 이로부터 血氣가 流通되어 곧 快差하니라.

평역:무신(1909)년에 차 경석의 작은 집이 손가락끝에 바늘 찔린 것이 독이 생겨서 점점 팔이 저리다가 마침내 반신불수가 되었거늘 선생께서 육십간지를 쓰시고 한 간지씩 "상한 손가락끝으로 힘껏 짚으며 읽으라." 하신 후에 다시 명하시어 술잔을 들고 거닐게 하시니 이로부터 혈기가 돌더니 곧 나으니라.

 

二七.

大興里 附近 巨沙幕에 사는 張成遠의 幼兒가 病들어 낮이면 낫고 밤이면 身熱과 咳嗽(해수)로 잠자지 못하고 數朔동안 苦痛하거늘 成遠이 病兒를 안고 와서 施療를 請하자 先生이 가라사대 이 病■(병수)는 곧 西洋으로부터 멀리 건너 온 飛鼈(비별)이니 낮이면 나가 놀고 밤이면 들어오는 것이라. 不可不 다른 곳으로 옮겨야 나을 터인데 山으로 옮기면 禽獸도 또한 生命이오. 바다로 옮기면 漁鼈도 또한 生命이니 電線에 붙여서 四方으로 흩어져 가게 하리라 하시고 成遠을命하사 鐵絲數尺을 求하여 病兒의 머리 위에 둘렀다가 電柱밑에 버리라 하시니 成元이 그대로 하여 곧 나으니라.

평역: 대흥리 부근 거사막에 사는 장 성원의 아이가 병들어 낮이면 낫고 밤이면 몸에 열이 나고 연달아 기침을 하여 잠을 자지 못하고 두어달동안 고통을 받거늘 성원이 아이를 안고 와서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병의 증세는 곧 멀리 서양으로부터 건너 온 비별이니 낮이면 나가 놀고 밤이면 들어오는 것이라. 불가불 다른 곳으로 옮겨야 나을 터인데 산으로 옮기려 하니 짐승들도 또한 생명이요. 바다로 옮기려 하니 물고기들도 또한 생명이라, 전선에 붙여서 사방으로 흩어져 가게 하리라." 하시고 성원을 명하시어 "철선 몇 자를 구하여 병든 아이의 머리위에 둘렀다가 전주밑에 버리라." 하시므로 성원이 그대로 하여 곧 나으니라.

 

二八.

金京學의 八歲된 幼兒가 病들어 여러 날을 委痛하거늘 先生이 病室에 들어가 보시고 꾸짖어 가라사대 너의 父親이 들어오는데 일어나지 아니하니 그런 道理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病兒가 두려워하여 일어나니 곧 病 이 나으니라. 京學이 父親이라는 말씀을 異常히 여겨 생각하니 예전에 俗例를 따라 金山寺 彌勒佛에 팔았던 일이 있었는데 先生은 곧 彌勒佛이신 까닭이라.

평역:김 경학의 여덟살난 아이가 병이들어 여러 날을 고통받으므로 선생께서 병실에 들어가 보시고 꾸짖어 말씀 하시기를 "너의 부친이 들어오는데 일어나지 않으니 그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아이가 두려워하여 일어나니 곧 병이 나으니라. 경학이 부친이라는 말씀을 이상히 여겨 생각하니 예전에 세속풍습에 따라 금산사 미륵불에 아이를 팔았던 일이 있었는데 선생께서 곧 미륵불이신 까닭이라.

 

二九.

그 後에 京學이 病들어 危篤하거늘 先生이 아시고 四物湯을 다려서 땅에 붓고 月色을 仰見케 하시니 곧 나아서 일어나니라.

평역:그 후에 김 경학이 병들어 위독하거늘 선생께서 아시고 사물탕 한 첩을 달여서 땅에 부으시고 달빛을 우러러 보게 하시니 곧 나아서 일어나니라.

 

三十.

金洛範이 천포瘡으로 苦痛하다가 하루는 先生이 龍頭峙에 계실 때 洛範이 至誠으로 奉侍하더니 先生이 문득 震怒하사 꾸짖어 가라사대 네가 어찌 長者앞에서 그렇게 怠慢하느냐 하시니 洛範이 다만 俯首하여 一方으로는 悚■(송구)히 생각하며 一方으로는 異常히 여기다가 그 後에 집으로 가서 허물을 생각하되 깨닫지 못하고 悚 히 지내더니 그 後로 천포瘡이 곧 快差하거늘 비로소 先生의 震怒와 譴責(견책)이 곧 葯임을 깨달으니라.

평역:김 낙범이 천연두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선생께서 용머리고개에 계실 때 낙범이 지극한 정성으로 선생을 모시더니 하루는 선생께서 문득 진노하시어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 어른 앞에서 그렇게 태만하느냐." 하시므로 낙범이 다만 고개를 숙이고 한편으로는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여기다가 그 후에 집으로 가서 허물을 생각하되 깨닫지 못하고 송구스럽게 지내더니 그 후로 천연두가 곧 낫거늘 비로소 선생의 진노하심과 나무램이 곧 약임을 깨달으니라.

 

三一.

水流面 會坪里에 사는 十八九歲된 少年鑛夫가 큰 돌에 傷하여 다리가 부러지고 筋肉이 떨어져 마침내 그대로 굳어서 다리가 攣曲(연곡)하여 屈身치 못함으로 先生께 와서 施療를 哀乞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가 흐르느니라" 하시며 몸을 뛰어서 骨節과 血■(혈맥)을 衝動케 하라 하시니 그 少年이 몸을 솟아 한 번 뜀에 卽時 그 攣曲되었던 다리가 펴져서 任意로 屈身케 되니라.

평역:수류면 회평리에 사는 18,9세된 소년 광부가 큰 돌에 다쳐서 다리가 부러지고 힘줄이 떨어져 마침내 그대로 굳어서 다리가 오그라들어 몸을 쓰지 못하므로 선생께 와서 그 다리를 고쳐 주시기를 애걸하므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가 흐르게 되느니라." 하시며 "몸을 위로 뛰어서 골절과 혈맥에 충격을 주어 움직이게 하라." 하시더니 그 소년이 몸을 솟아 한 번 뜀에 즉시 그 오그라들었던 다리가 펴져서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니라.

 

三二.

銅谷 李正三이 髮底腫이 發하여 크게 苦痛하거늘 先生이 보시고 光贊을 命하사 백호를 쳐주시니 그 腫이 곧 나으니라.

평역:구릿골 이 정삼이 머리아래에 종기가 생기는 병으로 크게 고통받고 있는 것을 선생께서 보시고 광찬에게 명하시어 백호(白虎)를 쳐주시니 그 병이 곧 나으니라.

 

三三.

銅谷앞에서 酒商하는 平壤 女 의 아들이 年五歲인데 坐 이 되어 起立치 못하므로 先生께 안고 와서 施療를 晴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明朝에 牛肉과 眞油를 좀 먹이고 안고 오라 하시니 平壤女가 窮乏한 所致로 牛肉은 사 먹이지 못하고 眞油만 먹인 後에 안고 와서 그 事由를 아뢰니 先生이 누우시고 아무 말씀도 아니하신 지라. 平壤女가 甚히 未安하여 病兒를 때리며 가로되 病身이 되려거든 차라리 죽으라하니 病兒가 울며 문득 다리를 펴고 일어나서 避하여 달아나거늘 平壤女가 그 光景을 보고 甚히 기뻐하여 선생께 謝恩하되 先生은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라.

평역: 구릿골 앞에서 술장사를 하는 평양댁의 아들이 다섯 살인데 어느날 갑자기 앉은뱅이가 되어 일어서지를 못하므로 선생께 안고 와서 낫게하여 주시기를 청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아침에 소고기와 참기름을 좀 먹이고 안고 다시 오라." 하시더니 평양댁이 매우 가난하여 소고기를 사 먹이지 못하고 참기름만 먹인 후에 아이를 안고 와서 그 까닭을 아뢰니 선생께서 누우시고 아무 말씀도 아니 하시는지라. 평양댁이 매우 무안하여 병든아이를 마구 때리며 말하기를 "병신이 되려거든 차라리 죽으라." 하니 병든 아이가 울며 문득 다리를 펴고 일어나서 피하여 도망가거늘 평양댁이 그 광경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선생께 은혜를 감사 드렸으나 선생께서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라.

三四.

黃應鍾이 先生을 뵈이려고 泰仁 새울 崔昌祚의 집에 이르니 마침 哭聲이 들리거늘 應鐘이 들어가지 아니하고 昌祚를 불러내서 온 事由를 말하니 昌祚가 들어가서 先生께 告한 後에 나와서 일러 가로되 이제 내 집에 계시나 지금 보시는 일이 있으니 좀 遲滯하라 하므로 應鐘이 그 앞 旅店에 나가서 기다리려하더니 다시 곧 부르시거늘 들어가 先生께 뵈이니 先生이 昌祚의 七歲된 아들을 무릎 위에 뉘여 안으셨는데 곧 氣息이 떨어진 屍體더라. 大抵 昌祚의 아들이 그 앞 날에 急病으로 因하여 死亡하였음으로 昌祚가 先生의 계신 곳으로 찾아가 死兒를 回甦케하여 주시기를 哀願하여 先生이 그때에 방장 昌祚의 집에 오사 死兒를 살리려하심이라. 손으로 死兒의 腹部를 만지시고 수저로 淨水를 떠서 死兒의 입에 넣으니 死兒가 左脚을 움직이거늘 先生이 꾸짖어 가라사대 네가 어찌 어른 앞에 누워있느냐 하시니 死兒가 문득 눈을 뜨고 精神을 차려 일어나거늘 先生이 모든 사람에게 私語를 禁하시며 가라사대 이 아이가 머나먼 千里길을 往還하였으니 沈靜히 있어야 할지라. 內室로 옮겨 누이고 미음을 다려 먹이라 하셨더니 翌日에 그 아이가 外室에 나오거늘 그 입에 眞油를 바르시고 밥을 먹이시니라.

평역:황 응종이 선생을 뵈려고 태인 새울 최 창조의 집에 이르니 울음소리가 들리거늘 응종이 들어가지 않고 창조를 불러내어 온 이유를 말하니 창조가 들어가서 선생께 고한 후에 나와서 말하기를 "지금 내 집에 계시나 보시는 일이 있으니 좀 기다리라." 함으로 응종이 그 앞 주점객사에 나가서 기다리려고 하였더니 다시 곧 부르시거늘 들어가 선생께 뵈이니 선생께서 창조의 일곱살된 아들을 무릎위에 뉘여 안으셨는데 숨이 끓어진 시체더라. 이 일은 창조의 아들이 그 앞날에 급한 병으로 인하여 사망하였음으로 창조가 선생의 계신 곳으로 찾아와 죽은 아이를 회생케하여 주시기를 애원하여 선생께서 그 때에 창조의 집으로 오셔서 죽은 아이를 살리려 하심이라. 손으로 죽은아이의 복부를 만지시고 수저로 깨끗한 물을 떠서 죽은 아이의 입에 넣으니 죽었던 아이가 왼쪽다리를 움직이거늘 선생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 어른 앞에 누워 있느냐." 하시니 죽었던 아이가 문득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 일어나거늘 선생께서 모든 사람에게 사사로운 잡담을 금하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가 머나먼 천리길을 다시 돌아왔으니 아주 조용히 하여야 할지니라." 하시며 병실로 옮겨 누이고 "미음을 달여 먹이라." 하셨더니 다음날에 그 아이가 바깥방에 나오거늘 그 입에 참기름을 바르시고 밥을 먹이시니라.

 

三五.

그 後에 孫秉旭의 妻가 병들어 死境에 이르거늘 黃應鍾이 그 事由를 先生께 告하니 先生이 應鐘을 데리고 秉旭의 집에 이르사 病房門밖에 앉아 閑談 하시더니 應鐘이 秉旭에게 先生께 供待할 술을 準備하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나 먹을 술은 있으니 準備하지 말라 하시더니 과연 秉旭의 妻母가 先生의 來臨하심을 알고 酒肴를 가지고 오니라. 先生이 술을 마시신 후에 應鐘에게 일러 가라사대 臥病에 人事絶이니 病人을 붙들어 일으키라 하시니 應鐘이 病人을 붙들어 일으키거늘 다시 가라사대 病은 이미 나앗으나 이 後로는 孕胎(잉태)는 못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 後로는 孕胎하지 못하니라.

평역:그 후에 손 병욱의 아내가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거늘 황 응종이 그 일을 선생께 고하니 선생이 응종을 데리고 병욱의 집에 이르사 병실 밖 방문에 앉아 한가로히 말씀을 하시니 응종이 병욱에게 "선생께 공양드릴 술을 준비하라." 하거늘 선생께서 들으시고 "내가 먹을 술은 있으니 준비하지 말라." 하시더니 과연 병욱의 장모가 선생께서 오셨음을 알고 술과 안주를 가지고 오니라. 선생께서 술을 마시신 후에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누워있는 병이라 인사를 못하니 병자를 붙들어 일으키라." 하시니 응종이 병든 사람을 붙들어 일으키거늘 다시 말씀하시기를 "병은 이미 나았으나 이 후로는 잉태는 못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 후로는 잉태하지 못하니라.

 

三六.

先生의 父親이 병들어서 危篤하거늘 黃應鍾이 先生께 病報를 아뢰려고 銅谷에 이르러 先生의 住處를 물으니 全州 陵所에 계시다하거늘 다시 그곳으로 發往하니 銅谷에서 距離가 七十里더라. 陵所에 이르러 先生께 뵈입고 病報를 아뢰자 先生이 술을 주신 후에 돈 十圓을 주시며 가라사대 날은 이미 늦었으나 不快한 마음을 두지 말고 곧 돌아가다가 淸道院 金松煥의 집에 들어가 자고 明早에 銅谷 金甲七에게 가서 나의 苧周衣(저주의) 한 벌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父親을 입히고 이 돈으로 滋養物을 사서 잘 供養하라. 應鍾이 날은 이미 저물었으나 敢히 違命치 못하고 陵所를 떠났더니 行한지 한 時間이 못되었는데 뜻밖에 路傍(노방)에 石碑가 보이거늘 자세히 살피니 곧 淸道院이라. 應鐘이 놀래어 생각하되 陵所에서 여기가 六十里거늘 한 時間이 못되어 當到하게 됨은 반드시 先生의 道力에 밀려옴이라 하니라. 松煥의 집에 들어가 자고 翌早에 銅谷에 들려 周衣를 가지고 客望里에 이르러서 그 父親에게 周衣를 입히니 곧 精神이 回甦하여 辨別力이 생기거늘 이에 滋養物을 사서 供養하니 元氣도 곧 回復되니라.

평역:선생의 부친께서 병들어 위독하거늘 황 응종이 선생께 그 일을 아뢰려고 구릿골에 이르러 선생께서 계신 곳을 물으니 전주 능소(陵所)에 계시다 하거늘 다시 그곳으로 떠나니 구릿골에서 거리가 칠십리더라. 능소에 이르러 선생을 뵙고 그 일을 아뢰자 선생께서 술을 주신 후에 돈 열냥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날은 이미 늦었으나 불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곧 돌아가다가 청도원 김 송환의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구릿골 김 갑칠에게 가서 나의 두루마기 한 벌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부친께 입혀드리고 이 돈으로 좋은 음식을 사서 잘 공양하라." 하시니라. 응종이 날은 이미 저물었으나 감히 선생의 명을 어기지 못하여 능소를 떠났더니 떠난 지 한 시간이 못되었는데 뜻밖에 길옆에 돌비석이 보이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곧 청도원이라. 응종이 놀래서 생각하기를 능소에서 여기가 육십리나 되는데 한 시간이 못되어 도착하게 됨은 반드시 선생의 도력에 밀려옴이라 생각하니라. 송환의 집에 들어가 자고 다음날에 구릿골에 들러 선생의 두루마기를 찾아 가지고 객망리에 이르러서 선생의 부친에게 그 옷을 입혀드리니 곧 정신이 다시 돌아와 판별력이 생기거늘 이에 좋은 음식을 사서 공양하니 원기도 곧 회복되니라.

 

三七.

金俊贊의 母가 多年 肩臂痛을 앓아 팔을 屈身치 못하고 委痛하더니 兄 德贊이 先生을 모시고 이르거늘 俊贊이 그 小室의 宿室을 치우고 先生을 모셨더니 先生이 가라사대 네 母親이 肩臂痛으로 苦痛하느냐. 俊贊이 對하여 가로되 그러하나이다. 또 私語하여 가라사대 밖 人心은 좋은데 안 人心이 좋지 못하도다 하시거늘 俊贊이 異常히 여겨 內室에 들어가 살피니 小室이 자기의 宿室을 치운 것을 不平히 하여 怒氣를 띄우고 있음으로 俊贊이 잘 慰撫하니라. 翌日에 그 母親의 肩臂痛(견비통)이 저절로 나아 屈身을 任意로 하니 이로부터 俊贊은 크게 敬服하여 先生을 따르니라.

평역:김 준찬의 어머니가 여러해 동안 견비통을 앓아 팔을 잘 펴지 못하고 고통받더니 준찬의 형 덕찬이 선생을 모시고 이르거늘 준찬이 그 소실이 살던 곳을 치우고 선생을 모셨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모친이 견벽통으로 고통받고 있느냐." 하심으로 준찬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러하나이다." 하니 또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바깥 인심은 좋은데 안쪽 인심이 좋지 못하도다." 하시거늘 준찬이 이상하게 여겨 내실에 들어가 살피니 소실이 자기의 방을 치운 것을 불평하여 화를 내고 있음으로 준찬이 잘 달래느니라. 다음날에 그 모친의 견비통이 저절로 나아 몸을 제대로 쓰게되니 이로부터 준찬은 크게 공경하고 복종하여 선생을 따르니라.

 

三八.

黃應鍾의 아들이 病들어 危篤하거늘 應鐘이 淸水를 떠놓고 先生 계신 곳을 向하여 낫게 하여주시기를 發願하니 그 病이 곧 낫는지라. 翌日에 銅谷에 와서 先生께 뵈이니 先生이 물어 가라사대 어제 구름을 타고 내려본즉 네가 손을 비비고 있었으니 어쩐일이뇨 하시거늘 應鐘이 그 事由를 아뢰자 先生이 웃으시니라.

평역:황 응종의 아들이 병들어 위독하거늘 응종이 깨끗한 물을 떠놓고 선생 계신 곳을 향하여 낫게 하여주시기를 기원하였더니 그 병이 곧 낫는지라. 다음날에 구릿골에 와서 선생께 뵈이니 선생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어제 구름을 타고 내려다 보니 네가 손을 비비고 있었으니 어찌된 일이냐." 하시거늘 응종이 그 일을 아뢰자 선생께서 웃으시니라.

 

三九.

金俊贊의 아들이 病들어 死境에 이르거늘 빨리 銅谷에 와서 先生께 그 事由를 아뢰니 先生이 아무 말씀도 아니하심으로 마음이 焦燥하여 곧 돌아가기를 告한데 先生이 挽留하사 밤을 지내고가라 하심으로 命을 어기지 못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고 翌日 早朝에 집으로 돌아가니 病子가 나아서 快活히 遊戱하는지라. 그 病勢 快差 된 때를 물으니 先生께 病勢를 稟하던 時刻과 相符하니라.

평역:김 준찬의 아들이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거늘 빨리 구릿골로 와서 선생께 그 일을 아뢰니 선생께서 아무 말씀도 아니하심으로 마음이 초조하여 곧 돌아갈 것를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만류하사 "밤을 지내고 가라." 하심으로 명을 어기지 못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니 병든 아이가 나아서 잘 놀고 있는지라. 그 병이 나은 때를 물으니 선생께 그 병을 말씀드리던 시간과 같으니라.

 

四十.

金俊相의 妻가 胸腹痛이 있어서 年二三回씩 至難하게 苦痛하여 形容이 憔悴할 뿐 아니라 家事를 收拾치 못하여 産業이 恒常 潚然하여 家樣을 이루지 못하거늘 俊相이 先生께 그 事由를 아뢰어 施療를 請한데 先生이 불쌍히 여기사 四聖飮一貼을 지어 주시며 衣藏속에 探藏하라 하시거늘 俊相이 命하신 대로 하였더니 그 後로는 그 症■(증수)가 다시 發作되지 아니하니라.

평역:김 준상의 아내가 흉복통이 있어서 일년에 2-3회씩 매우 고통받아 그 모습이 초췌할 뿐아니라 집안 일을 돌보지 못하니 집이 항상 적적하여 사람사는 집모양을 이루지 못하거늘 준상이 선생께 그 일을 아뢰어 아내의 병이 낫게하여 주시기를 청하므로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사성음 한 첩을 지어주시며 "옷장속에 깊이 간직하라." 하시거늘 준상이 명하신대로 하였더니 그 후로는 그 병의 증세가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라.

 

補註 第五章十節:

先生께서 金 俊相에게 四聖飮을 주신 지가 임의 二十年이 지냇스나 藥貼을 내여서 藥材를 상고한즉 藥材가 如新하야 腐敗치 아니하고 좀도 일지 아니 하엿더라.

補充註解: 선생께서 김 준상에게 사성음을 주신지가 이미 20년이 지났으나 그 지어주신 첩약을 내어서 약재를 보니 약재가 여전히 새것처럼 부패하지 아니하고 좀도 일지 아니하였더라.

 

四一.

大興里 申才人의 아들이 胸腹痛으로 死境에 이른지라. 申才人이 先生께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猪一首를 烹宰하여 오라. 才人이 命하신 대로 行하려하더니 문득 다시 가라사대 未久에 猪肉 三片이 이르리니 돗을 잡지 말라 하시더니 이윽고 車輪京이 祭祀지낸 집에 가서 酒案을 가져오니 果然 酒案에 猪肉三片이 있는지라. 드디어 才人에게 주어 그 아들을 먹이게 하시니 胸腹痛이 곧 나으니라.

평역:대흥리에 사는 신 재인의 아들이 흉복통으로 사경에 이른지라. 신 재인이 선생께 와서 낫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돼지 한 마리를 삶아서 오라." 하시므로 재인이 명하신대로 행하려고 하였더니 문득 다시 말씀하시기를 "곧 돼지고기 석 점이 올테니 돼지를 잡지 말라." 하시더니 이윽고 차 윤경이 제사지낸 집에 가서 술과 음식을 가져오니 과연 그 음식에 돼지고기 석점이 있는지라. 그것을 재인에게 주어 그 아들을 먹이게 하시니 흉복통이 곧 나으니라.

 

四二.

大槪 從徒中에 무슨 病故가 있어서 來告하는 者가 있으면 그 病勢의 如何를 물으신 後에는 아무 施療法이 없이 나으며 만일 危境에 이른 사람이면 그 病 를 가름하여 알으시면 곧 나았으니 가령 腹痛이 있는 사람이면 문득 배가 아프다고 한 번 말씀하시고 머리 아픈 사람이면 머리 아프다고 한 번 말씀하실 따름이니라. 그러므로 하루는 亨烈이 여쭈어 가로되 病을 낫게 하여 주시며 아이를 낫게 하여 주시고도 아무 말씀을 아니하시니 그 功을 알아줄 사람이 없겠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病만 낫고 아이만 나으면 可할지니 功을 알 필요가 있으리요.

功德을 남에게 알게 하려는 것은 小人의 일이라 하시니라.

평역:대개 종도들 중에 무슨 아픈 일이 있어서 와서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께서 그 병의 증세가 어떠한지 여부를 물으신 후에는 아무 치료법이 베푸시지 않아도 나으며 만일 위급한 지경에 이른 사람이면 그 병의 증상을 가름하여 대신 앓으시면 곧 나았으니 가령 배앓이를 하는 사람이면 문득 배가 아프다고 한 번 말씀하시고 머리 아픈 사람이면 머리 아프다고 한번 말씀하실 따름이니라. 그러므로 하루는 형렬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병을 낫게 하여 주시고 아이를 낳게 하여 주시고도 아무 말씀을 아니하시니 그 공을 알아 줄 사람이 없겠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병만 낫고 아이만 낳았으면 될 것이니 공을 알게 할 필요가 있으리요. 공덕을 남에게 알게 하려는 것은 소인들의 일이라." 하시니라

第 六 章 天 地 公 事

 

補註 第六章:

天地公事라 하면 누구나 다 처음 듯는 말임으로 그 意義를 曉得키 어려울지라. 例컨데 어느 公會에서 會長이 會員을 召集하야 會議를 열어 모든 意見을 徵取하야 最善의 方針을 決定함과 갓치 先生께서 三界를 主宰하사 天地 大神門을 열고 萬古神明을 召集하사 先天 旣往의 모든 非法을 改廢하고 가장 合理的으로 天道와 地義와 人事에 徵取하야 萬世 不替의 眞法을 規定하신 後 天地神明으로 하여금 如律令 攝成케 하신 것이니 곳 大宇宙를 先生의 大理想속에 料理하심이라. 따라서 先生의 深遠한 抱負와 偉大한 價値를 오직 여긔서 찻게 될  이오. 其外 法言 聖行은 오직 그 斷片的 現露일뿐이니 그럼으로 天地公事의 妙義를 理解치 못하면 또한 先生의 宏謨遠猷를 엿볼 수 업슬지니라. 그런대 九年間을 쉬임업시 가진 苦難을 격그면서 여러가지로 行하신 公事를 從徒들이 만히 參觀하엿스나 모든 것이 超人間的인 神秘에 屬한 것임으로 보는 者가 그 條理를 曉得치 못하며 先生 서도 大蓋 그 行하시는 것을 남에게 알니려 하지 아니하시고 매양 隱秘에 붓치심으로 모다 泛然히 看過하엿스며 그 行하시는 바가 一一이 天地에 應驗하야 奇現象이 낫허나는 것을 한갓 好奇心으로 구경에 貪하야 보앗슬 따름이오. 意味잇게 본 사람은 업섯나니 그럼으로 若干事實을 傳하여 온 것도 그 詳細를 일헛스며 公事를 行하실 때에 매양 度數를 定한다는 말삼을 慣用하셧는대 그 意味는 엇더한 狀態를 어느 時期에 이르러 豫定대로 現實케 하는 것 卽 이 時代를 어느 때에 엇더한 狀態로 變動하야 推移케 한다는 것이라. 그러나 그 內容은 漠然히 不知하고 다만 所觀의 奇驗만 傳한 것도 만흐며 從徒중에 漢字에 能하야 흔히 文明을 바더 쓴 者는 金 光贊인대 그도 隨時로 쓰여서 燒火하실 따름이오. 別로히 抄記치 못하게 하섯슴으로 이졔 傳하여 온 片言隻行은 頭緖업시 記憶된 者라. 距今 十餘年前에 光贊이 身死하엿슴으로 그나마 詳細히 들을 곳이 업고 처음부터 끝까지 追從한 者는 金 亨烈인대 公事를 行하실에는 흔이 客地에 巡回하사 그 隨從을 만히 替番하섯슴으로 한 사람으로서 公事件數의 終始를 參觀치 못하엿나니 그럼으로 大略 듯는 대로 記錄한 것이 실상 恒河一沙에 不過하노니 讀者는 깊히 參商할지어다.

천지공사 보충주해:

천지공사라 하면 누구나 다 처음 듣는 말이므로 그 뜻을 깨닫기가 어려울지라. 예를 들면 어느 모임에서 회장이 회원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어 모든 의견을 듣고 최선의 방침을 결정하는 것과 같이 선생께서 천지인 삼계를 주재하사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천지의 모든 신명을 소집하사 예로부터 전해오는 선천의 모든 잘못된 법을 바로 고치며 혹은 폐하시고 가장 합리적으로 하늘의 도와 땅의 의로움과 사람의 일을 수렴하여 영원토록 바뀌지 않는 진법을 확정하신 후에 천지신명으로 하여금 명을 받들게 하여 그 정하신 바 천지의 섭리대로 일를 행하게 하신 것이니 곧 대우주를 선생의 큰 이상속에 펼치심이라. 따라서 선생의 깊고 원대한 포부와 위대하심를 오직 여기서 찾게 될 뿐이요, 그외 말씀하신 바 그리고 성스러운 행적은 오직 단편적인 현상의 나타남 일뿐이니 그러므로 천지공사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또한 선생의 커다란 구상과 원대한 펼치심을 엿 볼수 없을지라. 그런데 9년간을 쉼없이 갖은 고난을 겪으시면서 여러 가지로 행하신 공사를 종도들이 많이 참관하였으나 모든 것이 초인간적인 신비에 속한 일이므로 보는 자들이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선생께서도 대개 그 행하시는 것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아니하시고 항상 은밀한 가운데 비밀에 붙이심으로 모두 예사로이 지나쳤으며 그 행하시는 바가 일일이 천지에 응하여 체험되어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한갓 호기심 섞인 구경거리로 보았을 따름이요. 그 하시는 바를 의미있게 본 사람은 없었나니 그러므로 약간 사실을 전하여 온 것도 그 상세한 바는 알수없으며 공사를 행하실 때에 항상 도수를 정하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 의미는 어떤 상태를 어느 시기에 이르러 예정대로 현실로 나타나게 하시는 것 즉 이 시대를 어느 때에 어떠한 상태로 변동시켜 그렇게 되도록 하신다는 것이라. 그러나 그 공사내용은 막연하여 알지 못하고 다만 참관하여 기이한 체험만을 전한 것도 많으며 또 종도들 중에서 한자에 밝아서 흔히 공사에 행하시는 글을 받아쓴 자는 김 광찬인데 그도 그때 그때 잠시 쓰시고 그 쓴 글을 불사르시고 별도로 사본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이제 전하여온 단편적인 말씀과 행적들은 두서없이 기억 된 것이 많은지라. 지금으로부터 십여년전에 광찬이 사망하였으므로 그나마 상세히 들을 곳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을 따르고 모신 종도는 김 형렬인데 공사를 행하실 때에는 흔히 객지에 순회하사 공사를 행하실 때 선생을 따르는 다른 종도들로 교체하여 행하셨음으로 한 사람으로서 공사건수의 시작과 끝을 모두 참관치 못하였나니 그러므로 대략 듣는 대로 기록 한 것이 실제로는 아주 미흡하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깊이 참고하여 생각 할지라.

 

一.

壬寅[1902年] 四月에 金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冥府公事를 行하시며 일러 가라사대 冥府公事의 審理를 따라서 人世의 모든 일이 決定되나니 冥府의 混亂으로 말미암아 世界도 또한 混亂케 되나니라 하시고 崔水雲, 全明淑, 金一夫로 冥府의 正理公事를 主케 한다 하시면서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평역:임인(1902)년 4월에 김 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며 명부공사를 행하시고 일러 말씀하시기를 "명부공사의 심리에 따라서 인간세상의 모든 일이 결정되나니 명부가 혼란해짐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또한 혼란케 되었느니라." 하시고 최 수운,전 명숙, 김 일부로 하여금 명부의 정리공사를 주관하게 한다 하시면서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二.

金亨烈의 집이 貧乏하여 麥飯으로써 先生께 供養하더니 八月 秋夕節을 當하여 할 수없이 食鼎을 팔아서 節饌을 準備하려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솥이 들썩이니 彌勒佛이 出世하리로다 하시고 亨烈로 하여금 牛尾한 개를 求하여 불을 피우고 두어 번 둘러 낸 後에 亨烈을 命하사 太陽을 보라 하시니 亨烈이 우러러봄에 日暈이 둘러 있더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제 天下大勢가 方病大腫이라. 내가 腫을 破하였노라 하시니라.

평역:김 형렬의 집이 매우 가난하여 보리밥으로 선생께 공양하더니 팔월 추석이 되어 할 수 없이 밥짓는 솥을 팔아서 음식을 준비하려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솥이 들썩임은 미륵불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로다." 하시고 형렬로 하여금 쇠꼬리 한 개를 구하여 오게 하시어 불을 피우고 두어 번 둘러 내신 후에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태양을 보라." 하시니 형렬이 우러러 보니 햇무리가 둘러 있더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대세(大勢)가 모두 병들어 큰 종기(腫氣)를 앓는 것과 같으니 내가 그 종기를 없애었노라." 하시니라.

 

三.

癸卯[1903年] 春에 先生이 亨烈과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古代에는 東西洋의 交通이 없었음으로 神明도 또한 넘나들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汽車輪船으로 輸出入되는 貨物表를 따라서 通行함으로 朝鮮神明을 西洋으로 들여보내어 役事를 시키려 하나니 財主를 얻어서 길을 띄워야 할지라. 財主를 薦擧하라. 金秉旭이 全州 富豪 白南信을 薦擧하거늘 先生이 南信에게 물어 가라사대 所持한 財産이 얼마나 되느뇨. 南信이 對하여 가로되 三十萬兩은 되나이다. 또 물어 가라사대 二十萬兩으로써 그대의 生活은 넉넉히 하겠느냐. 對하여 가로되 그러하리이다. 또 가라사대 이제 쓸곳이 있으니 돈 十萬兩을 주겠느냐. 南信이 默然히 생각하다가 드디어 許諾하거늘 이에 十日로 限定하여 證書를 받아서 秉旭에게 맡기셨더니 期限이 이름에 南信이 돈을 準備하여 刻紙로 二十枚를 올리니 先生이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또 秉旭에게 맡기신 證書를 불사르신 後에 刻紙 二十枚는 돌려주시며 가라사대 돈은 이미 要緊히 써서 일을 잘 보았으니 多幸이라 하시니 南信은 現金으로 쓰지 아니하신 것을 未安히 여기고 다시 여쭈어 가로되 現物의 時勢를 보아서 貿易하여 利를 增殖함이 어떠하나이까. 선생이 가라사대 그것은 不可하니라하시고 또 가라사대 南信의 일이 龍頭蛇尾와 같다 하시니라.

평역:계묘(1903)년 봄에 선생께서 김 형렬과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옛날에는 동서양이 서로 교통이 없었으므로 신명(神明)들도 또한 넘나들지 못하더니 이제는 기차와 배로 들어오고 나가는 화물표를 따라서 통행함으로 조선신명을 서양으로 들여보내어 일을 시키려하니 재주(財主)를 얻어서 길을 틔워야 할 터이니 재주를 천거하라." 하시므로 김 병욱이 전주부호 백 남신을 천거하거늘 선생께서 남신을 불러 물어시기를 "그대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남신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삼십만냥은 되나이다." 하니 또 물어 말씀하시기를 "이십 만냥으로 그대의 생활은 넉넉히 하겠느냐." 하시므로 남신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러하리이다." 하니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쓸 곳이 있으니 돈 십만 냥을 주겠느냐." 하시니 남신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드디어 허락하거늘 이에 열흘로 한정하시어 증서를 받아서 병욱에게 맡기시더니 기한이 되어 남신이 돈을 준비하여 그것을 어음 이십매로 만들어 올리니 선생께서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또 병욱에게 맡기신 증서를 불사르신 후에 어음 이십매는 돌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돈은 이미 요긴하게 써서 일을 잘 보았으니 다행이라." 하시니 남신은 선생께서 현금으로 쓰시지 아니하신 것을 미안하게 여겨 다시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그 돈으로 현물의 시세를 보아서 무역을 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어떠하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이므로)아니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남신의 일이 용두사미와 같다." 하시니라.

 

四.

그 뒤에 先生이 여러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地方을 守護하는 모든 神明을 西洋에 보내어 大亂을 지으리니 이 뒤로는 外人들이 主人없는 빈집 드나들듯하리라. 만일 모든 神明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기 집일은 자기가 맡아 하리라.

평역:이 때에 선생께서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지방을 지키는 모든 신명(神明)들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난리를 일으키게 하리니 이 뒤로는 외국인들이 주인없는 빈 집 드나들듯 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기 집의 일은 자기가 맡아서 하리라." 하시니라.

 

五.

이 해[1903年] 여름에 金秉旭이 觀察府의 委囑(위촉)으로 南原에 가서 오랫동안 滯留하여 稅金을 督收하니라. 이때에 朝廷은 露西亞를 結託하여 日本을 抑制(억제)하고자 할 때라 日本에 亡命한 朴永孝 一派를 親日派로 指目하여 그 黨派를 大擧 剿滅(초멸)하니 秉旭이 또한 連累가 된지라. 十月에 京城으로부터 多數의 巡檢隊가 突然히 全州府에 이르러 秉旭을 搜索하다가 南原에 滯在한 줄 알고 星夜로 南原에 發向하니라. 이때에 先生이 南原에 이르사 秉旭을 찾아서 그 收入한 稅金을 ■主(관주)에게 保管케하고 곧 伴行하사 들 밖에 나가시니 秉旭은 그 緣由를 모르더라. 十餘里를 行하사 秉旭의 先墓 齋舍(재사)에 들어 계시사 墓直을 命하여 南原에 가서 形勢를 살펴 오라 하시니 墓直이 奉命하고 곧 南原에 갔다가 돌아와 多數한 京巡檢隊가 이르러 秉旭을 搜索하는 狀況을 告하니 秉旭이 비로소 크게 두려워 하니라. 翌日에 轎子를 準備하여 秉旭을 태우고 全州로 回程하사 徐元圭의 葯局으로 들어가시니 元圭가 秉旭을 보고 大驚하여 가로되 君이 어찌 死地를 벗어났으며 또 어찌 이러한 危地로 들어 왔느뇨. 너무 急禍이므로 通知할 겨를이 없어 君의 家族은 다만 驚惶罔措(경황망조)하여 號哭으로 지낼 따름이니라 하거늘 秉旭이 그 仔細한 經過를 들으니 京巡檢이 全州를 떠나서 南原 到着 할 때와 自己가 先生을 따라 南原을 脫出할 때가 겨우 一二 時間의 差異가 있는지라. 秉旭이 歎息하여 가로되 先生은 실로 天神이시라. 만일 先生의 救援이 아니었으면 어찌 死地를 벗어낫으리오 하니라. 그때에 巡檢들이 南原에 가서 秉旭을 찾지 못하고 全州로 돌아와서 四下로 크게 찾느니라. 元圭의 藥局이 通路大街에 있음으로 秉旭이 그 幽僻치 못함을 근심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모든 것을 내게 信賴하여 근심을 풀어 버리라. 내가 將次 네 일을 풀리라 하시니라. 秉旭이 元圭의 葯局에 오랫동안 머무르되 知面한 사람의 出入이 없고 또 昏夜에는 先生이 忌憚없이 秉旭을 데리고 거리를 다니며 소풍하되 한 번도 아는 사람의 눈에 띄이지 아니하니라.

평역:계묘(1903)년 여름에 김 병욱이 관찰부의 위촉으로 남원에 가서 오랬동안 머무르면서 세금징수를 독려하니라. 이때 조정은 러시아와 결탁하여 일본의 세력을 억제하고자 할 때라, 일본에 망명한 박 영효일파를 친일파로 지목하여 그 당파를 모두 없애 버리려고 하니 병욱이 또한 그 일에 연루가 되었더라. 10월에 서울로부터 많은 순검들이 갑자기 전주부에 이르러 병욱을 찾다가 남원에 머무르는것을 알고 밤길을 달려 남원으로 떠나느니라. 이 때에 선생께서 남원에 오시어 병욱을 찾아서 그 거둔 세금을 숙소 주인에게 맡기게 하시고 병욱을 데리고 곧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니 병욱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더라. 십리 쯤 가시더니 병욱의 선산에 딸린 재실(齋室)에 들어가 계시면서 산지기에게 명하시어 남원에 가서 형세를 살펴보고오라 하시니 산지기가 명을 받들어 곧 남원에 갔다가 돌아와서 많은 순검들이 병욱을 찾고있는 상황을 고하니 병욱이 비로소 크게 두려워 하니라. 다음날에 교자(轎子)를 준비하여 병욱을 태우고 전주로 돌아가시어서 원규의 약방으로 가시니 원규가 병욱을 보고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그대가 어떻게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죽을 곳을 벗어났으며 또 어찌 이렇게 위험한 곳으로 들어 왔느냐. 너무 급하게 당한 일이라 알릴 겨를도 없었고, 그대의 집 사람들은 놀래서 다만 울음으로 지샐 따름이라." 하거늘 병욱이 그 자세한 경과를 듣고보니 경성에서 온 순검들이 전주를 떠나서 남원에 도착한 때와 자기가 선생을 따라 남원을 탈출 할 때가 겨우 한 두시간밖에 차이가 없는지라. 병욱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진실로 하늘이 내리신 신(天神)이시라, 만일 선생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그런 죽을 곳을 벗어났으리요." 하니라. 그 때에 순검들이 남원에 가서 병욱을 찾지 못하고 전주로 돌아와서 사방으로 찾으니 원규의 약국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에 있으므로 병욱이 자기가 숨어 있는 곳이 은밀하지 못함을 무척 근심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나를 믿고 근심을 풀어버리라, 내가 장차 너의 일이 풀리게 하리라." 하시니라. 병욱이 원규의 약국에 오랬동안 머물렀으나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의 출입이 없고 또 밤에는 선생께서 거리낌 없이 병욱을 데리고 거리를 다니셔도 한번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띄이지 아니하니라.

 

六.

先生이 秉旭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의 禍厄(화액)을 풀기 爲하여 日露戰爭을 促成하여 日本을 도와서 露勢를 驅逐하리라 하시니 從徒들이 그 말씀을 不信하여 서로 이르되 一人의 禍厄을 풀기 爲하여 兩國의 戰亂을 促發케 한다 함도 妄誕한 바이거니와 弱少한 日本을 도와 天下莫强의 露勢를 驅逐한다 함은 더욱 虛荒한 말이라 하더니 十二月에 日露戰爭이 勃發(발발)하여 日兵이 勝勢를 타서 國境을 通過하니 이에 國禁이 解弛(해이)하여져서 朴泳孝의 嫌이 드디어 풀리니라.

평역:선생께서 김 병욱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닥친 화액을 풀기 위하여 러일전쟁을 일으켜 일본을 도와서 러시아세력을 물리치리라." 하시니 종도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서로 말하기를 "한 사람의 화액을 풀기 위하여 두나라간에 전쟁을 일으킨다 함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지만 힘이 약한 일본을 도와 천하에 막강한 러시아세력을 물리치신다함은 더욱 허망한 말이라." 하더니 12월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군이 상승세를 타서 국경을 통과하니 이에 나라의 금법(禁法)이 해이해져서 박 영효의 혐의가 드디어 풀리니라.

 

七.

그때에 先生이 秉旭에게 물어 가라사대 日露가 國家의 虛弱을 乘하여 서로 勢力을 角逐하니 朝廷은 黨派가 分立하여 或은 日本을 親善하려 하며 或은 露國을 結托하려하니 君은 어떤主義를 옳게 여기느뇨. 秉旭이 對하여 가로되 人種의 別과 東西의 殊로 하여 日本을 親善하고 露國을 멀리 함이 옳다 생각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의 말이 유리하니라. 이제 만일 西勢를 물리치지 아니하면 東洋은 永久히 西人의 蹂躪(유린)한 바 되리라. 그러므로 西勢를 물리치고 東洋을 安保함이 옳으니 日本人이 天地에 큰 일꾼이 되나니라 하시고 이에 天地大神門을 열고 날마다 公事를 行하사 四十九日을 한 度數로 하여 東南風을 불게 하시더니 미처 期限에 數日이 차지 못해서 한사람이 와서 治病하여 주시기를 懇乞하는지라. 先生이 公事에 專心하사 그 사람의 懇乞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 아무 對答이 없으시니 그 病人이 드디어 恨을 품고 돌아가더니 그 後로 문득 東南風이 그치거늘 先生이 그제야 깨달으시고 사람을 그 病人에게 보내 사 公事의 專心으로 因하여 듣지 못하신 事實을 告하여 安心케 하시고 곧 病을 낫게 하여주시니 바람이 다시 繼續하는지라. 선생이 가라사대 한사람이 寃恨을 품음에 能히 天地기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그 後로 露軍이 海陸으로 連敗하니라.

평역:이때에 선생께서 김 병욱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일본과 러시아가 우리나라의 허약함을 틈타서 서로 세력을 확장하려 다투니 조정은 당파가 둘로 갈라져서 혹은 일본과 친선을 도모하려하고 혹은 러시아와 결탁하려하니 그대는 어떤 세력이 옳다고 여기느냐." 병욱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인종의 차별과 동서양의 문화 차이로 볼 때 일본과 친선을 도모하고 러시아를 멀리 함이 옳다고 생각하나이다."라고 답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말이 이치에 맞느니라. 이제 만일 서양의 세력을 물리치지 아니하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사람들에게 유린당하게 되리니 그러므로 서양의 세력을 물리쳐서 동양을 보전함이 옳으니 일본사람을 천지에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고 이에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날마다 공사를 행하시어 사십구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게 하시더니 미처 사십구일 기한이 되기 몇 일전에 한 사람이 와서 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애걸하는지라. 선생께서 공사에 전념하시어 그 사람이 간절히 애걸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 아무 대답이 없으시더니 그 아픈 사람이 드디어 원한을 품고 돌아가니라. 그 후로 문득 동남풍이 그치거늘 선생께서 그제서야 깨달으시고 사람을 그 병자에게 보내시어 공사에 전념함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신 사실을 알려 마음을 달래고 곧 병을 낫게 하여 주시니 바람이 다시 계속 부는지라. 이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능히 천지의 기운을 막느니라." 하시니라. 그 후로 러시아 군대가 바다와 육지에서 싸울때마다 모두 패하니라.

 

八.

東學信徒가 甲午의 慘敗를 當한 後에 敢히 擡頭치 못하고 潛勢를 保守하여 오다가 日露戰役의 機會를 타서 日本에 結託하여 一進會를 組織하니 西方이 響應하여 ■原(요원)의 勢를 呈함에 人民은 甲午의 亂暴에 鑑하여 危■之心(위구지심)을 품은 지라. 先生이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들의 擧動에는 各히 自力을 資케 할 것이오. 甲午와 같이 民害를 짓지 못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率先하여 模範을 지음이 가하니라 하시고 略干의 田地와 家屋을 放賣하사 全州府에 이르러 모든 乞人에게 散盡하시더니 果然 一進會員이 마침내 各自의 財産을 蕩盡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저들이 나를 본받으니 살려줌이 옳으니라 하시고 冠을 벗고 삿갓을 쓰시며 衣服은 안이 검고 밖이 희게 하사 가라사대 저들이 黑衣를 입으니 나도 黑衣를 입노라. 또 하늘을 가리키며 가라사대 저 구름이 속은 검고 밖은 흰 것이 나를 模型함이라 하시니라.

평역:동학신도들이 갑오(1894)년 동학농민전쟁에서 참패를 당한 후에 감히 나타나지 못하고 숨어서 세력을 유지하여 오다가 러일전쟁이 일어난 기회를 틈타서 일본에 결탁하여 일진회를 조직하니 사방에서 호응하여 세력이 커짐에 사람들이 갑오년 난리때 난폭하던 일을 생각하여 불안한 마음을 품는지라. 선생께서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활동할 때에는 각자 자신들의 돈으로 움직이게 할 것이요. 갑오년 때와 같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리니 이렇게 하려면 내가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임이 옳으리라." 하시고 갑진(1904)년 칠월에 본댁의 살림과 약간의 전답 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신 후에 전주부에 이르러 모든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시더니 과연 일진회원들이 각자 자신들의 재산을 탕진하게 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나를 본받으니 살려줌이 옳으리라." 하시고 관을 벗으시고 삿갓을 쓰시며 옷은 안이 검고 바깥을 희게 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검은 옷을 입으니 나도 검은 옷을 입노라." 하시고 또 하늘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 구름이 속은 검고 겉은 흰 것이 곧 나를 본받음이니라." 하시니라.

 

九.

丙午[1906年] 二月에 先生이 여러 從徒를 데리고 益山 萬中里 鄭春心의 집에 이르사 僧衣 한 벌을 지어 壁에 걸고 四明堂을 외우시며 山河 大運을 돌리실 때 七日間을 房에 불을 넣지 아니하고 春心을 命하사 牛頭一個를 煮熟(자숙)하여 門 앞에 놓은 後에 배를 運漕하리라 하시고 鄭伯成을 命하사 僧衣를 부엌에 불사르시니 문득 雷聲이 汽笛소리와 같이 發하며 石炭煙氣가 觸鼻하며 온 집안 동량이 暴風에 動搖되는 배속과 같아서 一室中에 있는 사람이 다 暈倒(훈도)하여 或 嘔吐도 하며 或 精神을 잃으니 이때에 參座한 者는 蘇鎭燮, 金德裕, 金光贊, 金亨烈, 金甲七, 鄭春心, 鄭成伯과 그 아래 家族이라. 金德裕는 門밖에서 거꾸러지고 春心의 家眷은 各히 그 寢室에 昏倒하고 金甲七은 人事不省하며 呼吸을 不通하거늘 先生이 淸水를 甲七의 입에 흘려 넣으며 불으시니 곧 蘇甦된지라. 차례로 淸水를 얼굴에도 뿌리며 或 먹이기도 하시니 모두 精神을 回復하니라. 金德裕는 肺病으로 重期에 이르렀던 바 이로부터 完快되니라. 先生이 가라사대 六丁六甲을 쓰려 들 때에는 살아날 사람이 적으리라 하시니라.

평역:병오(1906)년 2월에 선생께서 여러 종도들을 데리고 익산 주산 부근 만중리 정 춘심의 집에 이르시어 승복 한 벌을 지어서 벽에 걸고 사명당을 외우시며 산하 대운을 돌리실 때 (또 남조선 배 도수를 돌린다 하시며) 칠 일간을 방에 불을 넣지 아니하시고 춘심에게 명하시어 소머리 한 개를 삶아서 문 앞에 놓은 뒤에 "배를 저어 운행하여 보리라." 하시고 정 성백을 명하시어 승복을 부엌에 불사르시니 문득 뇌성이 기적소리와 같이 일어나고 석탄연기 냄새가 코를 찌르며 온 집안 기둥이 폭풍에 흔들리는 배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정신이 혼미해져서 혹은 구토하기도 하고 혹은 정신을 잃으니 이 때에 참석한 사람은 소 진섭, 김 덕유, 김 광찬, 김 형렬, 김 갑칠, 정 춘심과 그 아들 정 성백 및 그 가족들이라. 김 덕유는 문 밖에서 꺼꾸러지고 춘심의 가족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정신을 잃고 김 갑칠은 인사불성이 되어 숨을 쉬지 못하니 선생께서 청수를 갑칠의 입에 흘려 넣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시니 곧 다시 깨어나는 지라. 차례로 청수를 얼굴에 뿌리기도 하시고 혹은 먹이기도 하시니 모두 정신을 회복하니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을 하느라고 애를 썼으니 밥이나 제때에 먹어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갑칠을 주어 부엌에 불사르라 하시거늘 갑칠이 부엌에 이르니 성백의 아내가 부엌에서 정신을 잃고 있거늘 갑칠이 급히 글을 불사르니 곧 회생하여 밥을 지어 올리니라. 선생께서 한 그릇에 밥을 많이 비벼 여러사람에게 함께 먹게 하시며 말씀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불사약이니라." 하시더니 모든 사람이 그 밥을 먹은 뒤에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회복되더라.) 그 당시에 김 덕유는 그 당시 폐병이 들어 매우 심한 상태에 이르렀었는데 이로부터 완전히 낫게 되니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허약한 무리들이 일을 재촉하느냐 하시고) "육정육갑을 쓰려 들 때에는 살아 날 사람이 적으리라." 하시니라.

 

十.

그 後에 銅谷으로 돌아오사 數日을 지내신 後에 다시 大公事를 行하시려고 京城으로 떠나실 때 가라사대 戰艦은 淳昌으로 돌려대리니 亨烈은 地方을 잘 지키라 하시고 또 모든 사람을 命하사 各自의 所願을 記錄하여 오라하사 그종이로 眼鏡을 싸서 넣으신 後에 鄭南基, 鄭成伯, 金甲七, 金光贊을 데리시고 群山으로 가서 汽船을 타기로 하시고 辛元一과 그外 四人은 大田으로 가서 汽車를 타라 하시며 가라사대이는 水陸 進이라 하시니라. 또 辛元一에게 命하여 가라사대 너는 먼저 入京하여 "天子浮海上"이라 써서 南大門에 붙이라. 元一이 領命하고 一行을 거느리고 大田으로 떠나니라.

평역:그 후에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몇 일간을 지내신 후에 다시 대공사를 행하시려고 서울로 떠나실 때 말씀하시기를 "전함을 순창으로 돌려 대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고 또 모든 사람에게 명하시어 "각자의 소원을 기록하여 오라." 하시어 그 종이로 안경을 싸서 넣으신 후에 정 남기, 정 성백, 김 갑칠, 김 광찬을 데리시고 군산으로 가서 배를 타기로 하시고 신 원일과 그외 네 사람은 "대전으로 가서 기차를 타라." 하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것은 물과 육지로 동시에 진격함이라." 하시니라. 또 신 원일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먼저 서울로 들어가서 "천자가 바다에 떠 계신다.(天子浮海上)" 라고 써서 남대문에 붙이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들어 일행을 거느리고 대전으로 떠나니라.

 

十一.

先生이 群山에 이르사 여러 從徒에게 물어 가라사대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 하시니 光贊이 對하여 가로되 놓고 감이 옳으니이다 하거늘 이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烏梅五枚式 準備하라 하시고 汽船을 타시니 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배가 甚히 搖動하여 모든 사람이 眩暈嘔吐하거늘 各히 烏梅를 입에 물어 安定케 하시고 이날 밤에 甲七을 命하사 各人의 所願을 記錄한 종이로 싼 眼鏡을 北方으로 向하여 바닷물에 던 지라 하시니 甲七이 船上에 올라서 方向을 辦別치 못하여 躊躇(주저)하거늘 先生이 다시 불러 들여 가라사대 어찌 빨리 던지지 아니하느냐. 甲七이 對하여 가로되 方向을 辦別치 못한 緣故입니다. 가라사대 電光이 發 하는 곳으로 던 지라. 甲七이 應命하고 다시 船上에 올라 살피니 문득 電光이 發하거늘 이에 그 方向으로 던지니라. 翌日에 仁川에 내리자 곧 汽車를 바꾸어 타시고 京城에 이르러 各히 禁煙하라 하시고 光贊의 引導로 黃橋에 있는 그의 從弟 永善의 집에 드시니 辛元一 一行은 먼저 當到하였더라.

평역:선생께서 군산에 이르시어 여러 종도들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하시니 김 광찬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놓고 감이 옳으니이다." 하거늘 이에 모든 사람들에게 "검은매화(烏梅) 다섯매 씩을 준비하라." 하시고 기선을 타시니 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배가 매우 흔들려서 모든 사람들이 현기증을 일으키고 구토를 하거늘 각자 검은매화를 입에 물어 안정케 하시고 이날 밤에 갑칠을 명하시어 "각자 소원을 기록한 종이로 싼 안경을 북쪽으로 향하여 바닷물에 던지라." 하시니 갑칠이 배 위로 올라가서 방향을 판단하지 못하여 머뭇거리거늘 선생께서 다시 불러 들여 말씀 하시기를 "어찌 빨리 던지지 아니하느냐." 하시므로 갑칠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방향을 판단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번갯불이 일어나는 곳을 향하여 던지라." 하시므로 갑칠이 명을 받들어 다시 배 위로 올라 살피니 문득 번갯불이 일어나거늘 이에 그 방향으로 던지니라. 다음날에 인천에 내리시어 곧 기차로 바꾸어 타시고 서울에 이르러 모두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신 후에 김 광찬의 안내로 황교에 있는 그의 이종동생 김 영선의 집에 가시니 신 원일 일행이 먼저 도착하여 있더라.

 

一二.

元一은 當到 卽時에 "天子浮海上"이라는 文字를 써서 南大門에 붙이니 온 京城이 크게 騷動하여 人心이 洶洶함으로 朝廷은 嚴重히 警戒하더라. 京城서 여러 가지 法을 行하시고 十餘日後에 모든 從徒는 다 돌려 보내시고 오직 光贊만 머무르게 하시다가 數日後에 다시 萬頃으로 보내시며 通知 있기까지 기다리라 하시니라.

평역:원일이 서울에 도착하자말자 "천자께서 바다에 떠서 계신다" 이라는 글을 써서 남대문에 붙이니 온 서울이 크게 소란스러워짐으로 조정에서는 엄중히 경계를 하고 있더라. 서울에서 여러 가지 법을 행하시고 (벽력표를 묻으신 뒤에) 열흘쯤 후에 모든 종도들은 돌려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모두 흩어져 돌아가라 십년 후에 다시 만나리라, 십년도 십년이요, 이십년도 십년이요, 삼십년도 십년이니라." 어떤 사람이 여쭈어 말하기를 "사십년은 십년이 아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사십년도 십년이야 되겠지만 넘지는 아니하리라 하시고) 오직 광찬만 머무르게 하시다가 몇일 후에 광찬을 다시 만경으로 보내시며 "통지가 있을 때 까지 기다리라." 하시니라.

 

一三.

四月 晦(회)에 先生이 萬頃 金光贊의 住所에 이르시니 이때에 崔益鉉이 忠南 洪州에서 擧義함에 마침 날이 가물어 人心이 洶洶하여 서로 安業치 못하고 義兵에 投入하는 者가 날로 增加하여 軍勢가 大振하거늘 이에 數日동안 萬頃에 머무르시면서 비를 많이 내리시니 人心이 비로소 安定하여 各히 農畝(농무)로 돌아감으로 義兵의 形勢가 드디어 萎縮하여 崔益鉉은 마침내 淳昌에서 被擒(피금)하니라.

평역:병오(1906)년 4월 그믐날에 선생께서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하룻밤을지내시고) 만경 김 광찬이 머무르는 곳에 이르시니 이 때에 최 익현이 충남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마침 날이 가물어 농부들이 농사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인심이 흉흉해져서 의병에 들어가는 자들이 날로 증가하여 의병들의 세력이 크게 불어 나거늘 (이에 말씀하시기를 최익현이 고종부자의 천륜을 끊어 그 대죄가 그의 몸에 붙어 있노라 하시고) 이에 선생께서 가뭄을 걱정하시어 몇 일동안 만경에 머무르시면서 비를 많이 내리시니 민심이 비로소 가라 앉아서 모두들 농사일로 돌아감으로 의병의 형세가 갑자기 세력이 약해지더니 최 익현이 마침내 순창에서 체포 되느니라.

 

一四.

先生이 崔益鉉 彼擒의 報를 들으시고 萬頃을 떠나 益山 萬中里로 가시며 가라사대 今番 崔益鉉의 動을 일찍 鎭壓하지 아니하면 朝鮮 全土가 慘禍中에 들어 無辜한 生民이 全滅을 當할지라. 崔益鉉의 擧事가 한갓 蒼生만 死滅에 驅入할뿐이니 내가 어찌 忍見할바리오. 그러므로 이제 公事로써 鎭壓하였노라 하시고 崔益鉉의 挽章을 지어 從徒에게 주시니 "讀書崔益鉉, 義氣束劍戟, 十月對馬島, 曳曳山河■"이라 그 후에 果然 그러하니라.

평역:선생께서 최 익현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만경을 떠나 익산 만중리로 가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최 익현의 거사에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였으니 이것은 그의 피 끓는 정성에(血誠)에 감동된 까닭이니라. 그러나 그 재질이 큰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旱災까지 겹쳤으니) 이번에 최 익현의 거사를 일찍 진압하지 아니하면 조선의 국토가 참화를 입어 무고한 백성들만 죽을 지경에 몰아 넣을 따름이라. 최 익현의 거사가 한갓 백성들만 죽을 지경에 들게 할 뿐이니 (백성들을 구하는 일에는 전혀 이익이 없는 일이고 더구나 가뭄의 재앙까지 겹치면 백성들이 살아나갈 방법이 전혀 없으리니) 내가 어찌 참고 보고만 있으리요. 그러므로 이제 공사를 행하여 진압하였노라 하시며 최 익현의 만장(輓章)을 지어 종도에게 주시더니 이러하니라. "글을 공부한 최 익현이 의로운 기상으로 의병을 일으켰으나 창과 칼은 묶으리니 시월이면 대마도 산천으로 끌려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 후에 과연 그러하니라.

 

一五.

이 公事를 마치시기 前에 京城에서 金甲七을 돌려 보내실 때에 命하여 가라사대 銅谷에 가서 亨烈, 成伯으로 더불어 四十九日동안을 每日 紙燈 一個式 合力 하여 製造하고 또 각자 草鞋(초혜)一部式 지어두라 하심으로 甲七이 돌아와서 일일이 命하신 대로 行하였더니 그 後에 先生이 萬頃으로부터 銅谷에 이르사 紙燈에 각각 "陰陽"二字를 쓰신 後에 다 불사르시고 甲七에게 銀杏二個를 求하여 오라 하시니 甲七이 四方으로 求하여도 얻지 못하다가 그의 從弟에게 二個가 있음을 發見하여 가져다 드리니 紙燈 사른 재 속에 넣은 後에 다시 甲七을 命하사 그 재를 모아 가지고 앞내에 가서 한줌씩 물에 띄워 내리며 하늘을 우러러 보라 하시거늘 甲七이 命하신 대로 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니 구름이 재를 집어 띄우는 대로 물에 떨어져서 펴여져 흐르는 모양과 같이 무늬무늬 피어나니라.

평역:이 공사를 마치시기 전에 서울에서 김 갑칠을 돌려 보내실 때에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구릿골에 가서 형렬, 성백으로 더불어 사십구일동안을 매일 종이등 한 개씩을 힘을 합쳐 만들게 하시고 또 각자 짚신 한 켤레씩 지어두라 하시니 (말씀하시기를 그 신으로 천하 사람들을 신게 할 것이요, 그 등으로 천하사람들의 어두운 곳을 밝히리라) 갑칠이 돌아와서 일일이 명하신대로 행하였더니 그 후에 선생이 만경으로부터 구릿골에 이르시어 (짚신은 원평장에 나가서 팔게 하시고) 종이등에는 각각 "음양" 두 글자를 쓰신 후에 다 불사르시고 갑칠에게 "은행 두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니 갑칠이 사방으로 구하여도 얻지 못하다가 그의 이종동생에게 두 개가 있음을 발견하여 가져다 드리니 종이등 불사르신 재 속에 넣은 후에 다시 갑칠을 명하시어 "그 재를 모아 가지고 앞내에 가서 한줌씩 물에 띄워 내리며 하늘을 우러러 보라." 하시거늘 갑칠이 명하신대로 하늘을 우러러 보니 구름이 재를 집어 물에 띄우는대로 떨어져서 펴져서 흐르는 모양과 같이 무늬무늬 피어나더라.(그 공사에 썼던 은행은 갑칠이 간직하여 두니라.)

 

一六.

그 後에 "全州 銅谷 解寃神, 慶州 龍潭 報恩神"이라 써서 亨烈의 집 壁上에 붙이시니라.

평역:그 후에 "전주 동곡 해원신, 경주 용담 보은신" 이라 써서 형렬의 집 벽위에 붙이시니라.

 

一七.

그 後에 群山에 가사 또 公事를 보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地有群倉地, 使不天下虛, 倭萬里淸萬里洋九萬里, 彼天地虛此天地盈"

평역:그 후에 군산에 가시어 또 공사를 보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이 땅은 수 많은 창고가 있는 땅이니 이 천하로 하여금 비우면 하면 안될지니 일본과 청나라는 만리 길이요, 서양은 구만리 길이라 멀지만 저 천지를 비우더라도 이 천지는 채우도록 하라."

 

一八.

丁未[1907年] 秋에 淳昌 籠巖(농암)에 머무르시며 公事를 行 하실 때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許眉 가 重修한 成川 降仙樓 一萬二千 고물은 祿줄이 붙어있고 金剛山 一萬二千峯은 怯氣가 끼어 있으니 이제 그 怯氣를 除 하리라 하시고 金亨烈을 命하사 金光贊, 李道三과 더불어 銅谷에 가서 白紙를 一方寸式 오려서 侍字를 써서 四壁에 붙이되 한 사람이 하루에 四百字式 써서 十日에 마치라. 그리고 그 동안에 朝夕으로 淸水 二十四器씩 길어 놓고 밤이면 七星經 三七遍씩 念誦하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行한 後에 甲七을 籠巖으로 보내어 일을 다 마쳤음을 告하니 先生이 羊一頭를 사주시며 가라사대 나의 돌아가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그 後에 先生이 銅谷에 이르사 羊을 잡아 그 피를 一萬二千侍字의 머리에 바르시고 가라사대 그 글자 모양이 아라사 兵丁과 같다 하시고 또 가라사대 沙器는 金堤로 보내리라 하시더니 마침 金堤 水閣 林相玉이 이르거늘 淸水 길든 沙器를 狗湯에 씻어 주시며 가라사대 人夫를 많이 부릴 때에 써라 하시니라.

평역:정미(1907)년 가을에 순창 농바우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실 때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허 미수가 중수한 성천 강선루 일만이천 고물은 녹(祿)줄이 붙어있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겁기(劫氣)가 끼어 있으니 이제 그 겁기(劫氣)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김 형렬에게 명하시어 "김 광찬, 이 도삼과 더불어 구릿골에 가서 백지를 한 조각씩 오려서 모실 시(侍)자를 써서 사방벽에 붙이되 한사람이 하루에 사백자씩 써서 열흘에 마치라. 그리고 그 동안에 아침 저녁으로 청수 스물네그릇 씩을 길어 놓고 밤이면 칠성경을 스물한번씩 생각하며 읽으라." 하시므로 형렬이 명하신대로 행한 후에 갑칠을 농바우로 보내어 일을 다 마쳤음을 알리니 선생께서 양 한 마리를 사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돌아 가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그 후에 선생께서 구릿골에 이르시어 양을 잡아 그 피를 일만이천 시(侍) 글자의 머리에 바르시고 말씀하시기를 "그 글자 모양이 러시아 병정(兵丁)과 같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사기(沙器)는 김제로 보내리라." 하시더니 마침 김제 수각에 사는 임 상옥이 오거늘 청수를 담았던 사기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인부를 많이 부릴 때에 써라." 하시니라.

 

一九.

淳昌 避老里에 계실 때 黃應鍾이 이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古阜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可히 운전하리라 하시고 "英雄消日大中華, 四海蒼生如落子"라는 글을 외우시고 그 後에 崔水雲과 全明淑의 寃을 푸신다 하사 司命旗를 各一幅씩 지어서 높은 솔가지에 달았다가 다시 떼어서 불사르시니라.

평역:순창 피노리에 계실 때 (농바우 박 장근의 집에 이르시어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제 풀어 쓰리라." 하시고 "전 명숙과 최 익현은 그 사람이 아니므로 도리어 이곳에서 해를 입었노라." 하시고 공사를 행하실 때에) 황 응종이 오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고부사람이 오니 능히 바둑판을 운전하리라." 하시고 "영웅들이 이 땅에서 날을 보내며 때를 기다리니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될 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바둑판에 죽은 돌과 같구나." 라는 글을 외우시고 그 후에 최 수운과 전 명숙의 원을 풀어 주신다 하시며 사명기를 각 한 폭씩 지어서 높은 소나무 가지에 매달았다가 다시 떼어서 불사르시니라.

 

二十.

十二月[1907年]에 古阜 臥龍里에 이르사 申京守의 집에 머무르시며 從徒 二十餘人을 同里 文公信의 집에 모으시고 "天地之主張, 萬物之首唱, 陰陽之發覺"이라 쓰시며 棋局 中央에 다섯 將點을 列置함과 같이 情誼 二字를 紙面四隅와 中央에 列書하사 文公信의 집 壁上에 붙이시고 堯의 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를 解說하여 가라사대 天地가 日月이 아니면 空殼(공각)이요. 日月은 知人이 아니면 虛影이라. 唐堯가 비로소 日月의 法을 알아서 때를 百姓에게 알렸으니 天惠와 地利가 이로부터 人類에게 遺漏없이 享有케 되었느니라 하시고 朴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後天 五萬年 첫公事를 行할 터인데 公又가 아니면 못할지니 公事를 말하라.

公又가 知識이 없어 告達 할 바를 모른다하여 謙讓하다가 良久에 여쭈어 가로되 先天에는 靑春少婦가 守節한다하여 空閨를 지켜 寂寞(적막)히 늙어버리는 것이 不可하오니 後天에는 이 弊害를 除하사 젊은 寡婦는 젊은 鰥夫(환부)를 늙은 寡婦는 늙은 鰥夫를 각각 가려서 知舊를 일일이 請하여 公衆禮席을 버리고 禮를 갖추어 改嫁케 하시는 것이 좋을 줄 아나이다. 先生이 賞贊하사 가라사대 네가 아니면 이 公事를 못하겠음으로 네게 맡겼더니 대단히 잘하였도다. 이제 決定한 公事가 五萬年을 내려가느니라.

평역:정미(1907)년 12월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시어 신 경수의 집에 머무르시면서 종도 이십여명을 같은 동네 문 공신의 집에 모으시고 정의도(情誼圖)를 써서 붙이시니 그 모양은 이러하니라. 백지에 "천지지주장(天地之主張),만물지수창(萬物之首倡), 음양지발각(陰陽之發覺)" 이라고 쓰시며 바둑판 중앙에 다섯점을 찍어 배열하는것과 같이 정의(情誼) 두 글자를지면 중앙과 네 군데에 배치하여 쓰시고 (왼쪽 아래에 인사각지(人事刻之)라 쓰시고 중앙 하단에 정의 위에 홀생홀유(忽生忽有)라 쓰시고 오른쪽 아래에 무신사월십일일(戊申四月十一日)을 꺼꾸로 쓰시고) 문 공신의 집 벽에 붙이시고 요(堯)임금의 "역상일월성진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를 해설하여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해와 달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해와 달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빈 그림자라." 하시고 "요임금이 비로소 해와 달의 운행법칙을 알아서 때를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나니 이로부터 사람들이 하늘의 혜택을 입고 땅의 이로움을 아낌없이 누리게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해와 달은 사심없이 만물을 다스리고 강과 산은 자기 주어진 길을 따라 만물을 포용하여 감싸고 흐르느니라.(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을 외우시며 선기옥형도수(璿璣玉衡度數)를 보실 때 경수의 집에 '저울 갈고리도수'를 정하시고 응종의 집에 '저울추도수'와 공신의 집에 '저울 끈도수'를 정하시고 또 경수의 집에 '日月大御命 度數'와 공신의 집에 '天地大八門度數'를 정하신 후에 晝夜로 번갈아 세 집을 왕래하시며 공사를 행하시고 박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후천 오만년 첫 공사를 행할 터인데 공우가 아니면 못할지니 공사를 말하라" 하시므로 공우가 아는 것이 부족하여 무엇을 말씀드야 할지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사양하다가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기를 "선천에는 젊은 과부가 수절한다하여 빈방을 지켜 적막하게 늙어 가는 것이 잘못된 일이오니 후천에는 이런 폐해를 없애시어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맞이하게 하여 아는 사람을 모두 청한 후 기존의 예법을 버리고 간단하게 예를 차려서 다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좋을 줄 아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칭찬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못하겠음으로 너에게 맡겼더니 대단히 잘하였도다. 이제 결정한 공사가 후천 오만년을 내려가느니라." 하시니라.

二一.

또 公信의 집 門에 孔門을 뚫어 놓고 公又를 爲首하여 모든 從徒를 列立케 하시고 煙竹을 들며 가라사대 서로 替番하여 물초리를 門孔에 대고 입으로 북소리를 하며 돌라. 從徒들이 命하신 대로 몇번함에 四方에서 天피鼓聲이 大發하는지라. 이에 天地大神門을 열고 公事를 行하실 때 金亨烈, 金自賢, 文公信, 朴壯根, 李化春等 二十餘人의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文公信의 집에 있어 비록 官吏가 올지라도 畏怯치말고 나의 住所를 묻거든 隱暐치 말고 實告하라. 만일 官吏에게 붙들려서 禍厄을 當하기에 畏怯心이 있거든 各히 解散하라. 모든 사람은 다만 異常히 알 따름이더니 마침 所管面長 梁某와 同里 里長이 文公信의 집에 들어오거늘 先生이 문득 꾸짖어 가라사대 너희들이 어찌 이런 天地公事場에 들어오나뇨 하시거늘 面里長이 그 말씀을 듣고 義兵으로 誤解하여 官府에 告發하니라.

평역:또 공신의 집 창문에 구멍을 뚫어 놓고 공우와 모든 종도들을 줄지어 서게 하시고 담뱃대를 들고 말씀하시기를 "서로 번갈아 가며 담뱃대를 빈구멍에 대고 입으로 북소리를 내면서 돌아라." 하시니 종도들이 명하신대로 몇 번을 하니 사방하늘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일어나는지라. 이에 천지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실 때 김 형렬, 김 자현, 문 공신, 박 장근, 이 화춘등 이십여인의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문 공신의 집에 있으면서 비록 관청에서 사람이 잡으러 올지라도 두려워 하지말고 나의 있는 곳을 묻거든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 만일 관청에 잡혀가서 화를 당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제각기 흩어져서 마음대로 돌아가라." 하시니 모든 사람은 다만 이상하게 여길 따름이더니 마침 이 동네 관할 면장 양모와 같은 동네 이장이 문 공신의 집에 들어오거늘 선생께서 문득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공사를 행하여 천하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데 너희들이 어찌 이런 음모에 참여하느냐." 하시니 면장과 그 동네 이장이 선생의 그 말씀을 듣고 의병으로 잘못 판단하여 관청에 고발하니라.

 

二二.

十二月二十五日[1907年]에 武裝巡檢 數十人이 突然히 文公信家를 包圍하고 모든 사람을 捕縛 한 後에 先生의 去處를 묻거늘 모든 사람이 비로소 先生의 말씀을 깨닫고 申京守의 집에 계심을 直告하니 巡檢들이 다시 달려가서 先生을 붙들어 合二十一人을 古阜 警務廳으로 拏去(나거)하니라. 이 일이 나기前에 金光贊과 朴公又는 井邑 車京石의 집으로 보내시고 申元一은 泰仁 辛京元의 집으로 보내시니 대개 朴公又는 여러 번 官災에 困辱을 當하였음을 아시고 그 禍를 免케 하심이오, 光贊과 元一은 性質이 過剛함을 忌하여 不參케 하심이더라. 二十六日에 警官이 先生과 그 아래 從徒를 訊問(신문) 한 後에 모두 獄中에 拘置 하니라.

평역:정미(1907)년 12월 25일에 무장한 순검 수십인이 갑자기 문 공신의 집을 포위하고 모든 사람을 체포하여 묶은 후에 선생께서 계시는 곳을 묻거늘 모든 사람이 비로소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깨닫고 신 경수의 집에 선생께서 계심을 바른대로 말하니 순검들이 다시 달려가서 선생을 붙들어 모두 스물한명을 고부 경무청으로 잡아가니라. 이 일이 있기 전에 김 광찬과 박 공우는 정읍 차 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신 원일은 태인 신 경원의 집으로 보내시니 대개 박 공우는 여러번 관재에 곤욕을 당하였음을 아시고 그 화를 면하게 하심이오. 광찬과 원일은 성질이 과격함을 아시고 그것을 기피하여 참석하지 못하게 하심이더라. 26일에 경관이 선생과 그 아래 종도들을 심문 한 후에 모두 감옥에 가두니라.

 

二三.

이 먼저 先生이 이일에 쓰기 爲하여 若干의 金錢을 準備하여 甲七에게 맡기사 京石에게 전하라 하셨더니 甲七은 이일이 난 後에 井邑에 가서 그 金錢을 京石에게 傳하니 京石이 古阜로 와서 衾具(금구)와 食事를 差入 하니라. 看守中에 亨烈과 自賢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便宜를 돕기 위하여 다른 조용한 獄房으로 옮기거늘 亨烈이 看守에게 請하여 先生까지 옮기시게 되니라. 先生이 다른 房으로 옮기신 後에 亨烈과 自賢에게 일러 가라사대 三人會席에 官長의 公事를 處決한다 하니 우리 三人이면 무슨 일을 解決치 못하리오. 또 自賢에게 가만히 일러 가라사대 비록 十萬大衆이 이러한 禍厄에 빠졌을지라도 秋毫의 傷害가 없이 다 풀리게 하여 데리고 나가리니 安心하라 하시니라. 除夕에 雷電이 大發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西洋에서 天子神이 넘어옴이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天子神은 넘어 왔으나 너희들이 血心을 가지지 못함으로 因하여 將相神이 應하지 아니한다 하시니라.

평역:이 일이 있기전에 선생께서 미리 이 일에 쓰기 위하여 약간의 돈을 준비하여 갑칠에게 맡기시면서 경석에게 전하라 하시더니 갑칠이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정읍에 가서 그 돈을 경석에게 전달하니 경석이 고부로 와서 이불과 식사를 차입하더라. 간수중에 형렬과 자현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다른 조용한 감방으로 옮기거늘 형렬이 간수에게 청하여 선생까지 옮기시게 되니라. 선생께서 다른방으로 옮기신 후에 형렬과 자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세사람이 모이면 관장을 일을 처결한다 하니 우리 세사람이면 무슨 일을 해결하지 못하리오." 하시고 또 자현에게 가만히 일러 말씀하시기를 "비록 십만명이 이러한 위험에 빠졌을지라도 조금도 상해가 없이 다 풀리게 하여 데리고 나가리니 안심하라." 하시니라. 밤에 뇌전이 크게 일어 나거늘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서양에서 천자신이 넘어옴이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자신은 넘어 왔으나 너희들이 굳은 마음을 가지지 못함으로 인하여 장상신이 응하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

 

二四.

戊申[1908年] 元日에 눈이 크게 내리고 日氣가 酷冷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大公事를 處決함이라 하시니라. 警官이 여러 사람을 取調하여도 아무 義兵의 證據를 얻지 못하고 先生의 말씀은 狂言으로 듣느니라. 正月十日에 獄門을 열고 여러 사람을 釋放한 後 오직 先生만 남겨 두었다가 三十日 驚蟄節에 또 釋放하니라.

평역:무신(1908)년 새해 첫날에 눈이 크게 내리고 날씨가 매우 추워지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대공사를 마치신 까닭이라." 하시니라. 순검이 여러 사람을 취조하여도 아무런 의병의 증거를 얻지 못하고 선생의 말씀은 미친 사람의 이야기로 알아 듣느니라. 정월 10일에 옥문을 열고 여러 사람을 석방한 후 오직 선생만 남겨 두었다가 정월 30일 경칩절에 석방하니라.

 

二五.

이때에 車京石, 安乃成이 金錢 一百二十兩을 가지고 와서 新依를 지어 드리려 하거늘 先生이 禁止하시고 그 金錢을 모든 巡檢과 貧窮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시고 三日을 留하신 後에 臥龍里 黃應鍾의 집으로 가시니 車京石이 따르니라.

평역:이 때에 차 경석, 안 내성이 돈 백이십냥을 가지고 와서 새 옷을 지어 드리려 하니 선생께서 그만두게 하시고 그 돈을 모든 순검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시고 삼일을 고부 손바래기 본댁에서 머무르신 후에 와룡리 황 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차 경석이 선생을 따르니라.

二六.

在囚하셨을 때에 모든 從徒들은 先生께서 天地를 開闢하사 仙境을 열어 各히 福祿을 마련하여 주실 줄 믿더니 뜻밖에 이런 禍地에 빠지게 되니 이는 虛無한 말로 우리를 欺 (기광)함이라 하여 모두 先生을 怨望하고 文公信, 李化春, 朴壯根 三人은 더욱 憤怒하여 자주 悖說(패설)을 發하며 警官에게 先生을  毁(구회)하더니 三月에 이르러 李化春은 義兵에게 砲殺되고 朴壯根은 義兵에게 毆打를 當하여 折骨이 된지라. 先生이 들으시고 文公信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도 마음을 고치라. 그렇지 아니하면 天怒가 있으리라. 또 가라사대 李化春은 鬼神으로나 좋은 곳에 가게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평역:감옥에 계셨을 때 모든 종도들은 선생께서 천지를 개벽하사 선경을 열어 모두에게 복록을 마련하여 주실 줄 믿고 있었는데 뜻밖에 이런 곤경에 빠지게 되니 이것은 허망한 말로 우리를 기만함이라 하여 모두 선생을 원망하고 그 중에 문 공신, 이 화춘, 박 장근 세 사람은 더욱 분노하여 자주 심한 욕을 하고 순검에게 선생을 모함하고 다니더니 삼월에 이르러 이 화춘은 의병에게 총을 맞아 죽고 박 장근은 의병에게 구타를 당하여 뼈가 부러지게 된지라. 선생께서 들으시고 문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도 마음을 고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의 노여움이 있으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화춘은 귀신으로나 좋은 곳에 가게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二七.

二月二日[1908年]에 本宅으로부터 泰仁 辛京元의 집에 이르사 그곳에서 一朔동안 머무르실 때 崔昌祚에게 命하여 가라사대 猪一首를 宰하여 鷄卵으로 전야를 부쳐 竹器에 담아서 淨潔한곳에 두고 또 나의 衣服 한 벌을 지어두라. 將次 쓸데가 있도다. 昌祚가 應命하고 猪肉전야와 衣服을 만들어 두니라.

평역:무신(1908)년 2월2일에 본댁으로부터 태인 신 경원의 집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한 달동안 머무르실 때 최 창조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어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나의 옷 한 벌을 지어두라. 장차 쓸 데가 있도다." 하시니 창조가 대답하고 돌아가서 돼지고기 명하신 대로 전을 부치고 의복을 만들어 두니라.

 

二八.

三月[1908年]에 銅谷에 이르사 亨烈에게 命하여 가라사대 네가 泰仁에 가서 辛京元, 崔乃敬을 데리고 白巖里 崔昌祚의 집에 가서 일전에 準備하여 둔 衣服한 벌을 三人에게 한가지씩 나누어 입히고 猪一首를 잡아서 煮熬(자오)한 後 오늘 저녁 人跡이 그칠 때를 기다려 그 집 正門밖에 땅을 파고 그 앞에 淸水一器와 火爐를 놓고 淨 器에 胡酒와 文魚와 전야를 넣고 그 위에 豆腐로 덮어 그 구덩이 속에 넣고 다시 한 사람은 猪肉전애를 들어 淸水와 火爐를 넘기고 한사람은 그것을 받고 한사람은 다시 받아 그 구덩이 속에 넣은 後에 흙으로 덮으라 하여 詳細히 일러주고 빨리 돌아 오라. 亨烈이 奉命하고 泰仁에 가서 일일이 指揮한 後에 빨리 돌아와 집에 들어서니 밤이 깊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暴雨가 쏟아지며 雷電이 大作하는지라. 先生이 물어 가라사대 이때쯤 일을 行하겠느냐. 亨烈이 對하여 가로되 行할 때가 꼭 되었겠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邊山과 같은 불구덩이가 나타나 구르면 온 世界가 焦土될지라 그러므로 이제 그 불을 묻었노라 하시니라.

평역:무신(1908)년 3월에 구릿골에 이르사 형렬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태인에 가서 신 경원, 최 내경을 데리고 백암리 최 창조의 집에 가서 일전에 준비하여 둔 옷 한 벌을 세 사람에게 한가지씩 나누어 입히고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삶아서 익힌 뒤에 오늘 저녁 인적이 그칠 때를 기다려 그 집 정문밖에 땅을 파고 그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깨끗한 그릇에 청주와 문어와 돼지고기전을 넣고 그 위에 두부로 덮어 그 구덩이 속에 넣고 다시 한사람은 돼지고기 전을 들어 청수와 화로를 넘기고 한 사람은 그것을 받고 한사람은 다시 받아 그 구덩이 속에 넣은 뒤에 흙으로 덮으라." 하여 자세히 일러주시고 빨리 돌아오라 하시니 형렬이 명을 받들어 태인에 가서 일일이 지휘한 후에 빨리 돌아와 집에 들어서니 밤이 깊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폭우가 쏟아지며 천둥과 번개가 크게 일어 나는지라. 선생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이때쯤 일을 행하겠느냐." 하시므로 형렬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행할 때가 꼭 되었겠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변산과 같은 큰 불덩이가 나타나 구르면 온 세계가 재가 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 불을 묻었노라." 하시니라.

 

二九.

四月[1908年]에 白南信으로부터 돈 千兩을 가져오사 銅谷 金俊相의 집에 房一間을 修理하고 葯局을 벌이실 때 木工 李京文을 불러 葯藏과 机를 製造하라 命하시고 그 長廣尺寸과 製造方法을 일일이 가르치시며 期限을 定하여 完工하라 하셨더니 木工이 期限內에 完工치 못하거늘 先生이 木工으로 하여금 그 材木을 한곳에 모아놓고 그 앞에  坐(궤자)케 하신 後에 그 違期함을 꾸짖어 시며 한 封書를 木工에게 주어 불사르시니 문득 白日에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木工이 戰慄하여 땀을 흘리더라. 다시 命하사 速히 完工하라 하시니 木工은 手戰症이 나서 한 달이 넘은 後에 비로소 完工하거늘 先生이 木工에게 일러 가라사대 葯藏에 번개가 들어야 할지니 네가 몸을 정히 씻고 衣冠을 整齊하고 淨水一器를 葯藏앞에 놓은 後에 誠心으로써 절하라. 木工이 命하신 대로 行하니 문득 晴天에 번개가 크게 發하더라. 葯藏과 机를 藥房에 安置한 後에 甲七을 命하사 每日 早朝에 藥房을 淨掃하시며 窓戶를 緊閉하여 사람의 出入을 禁하시고 二十一日을 지낸 뒤에 비로소 房을 쓰실 때 統監, 書傳各 一秩과 鐵硏子, 藥刀등 모든 藥 局器를 備置하시니라.

평역:무신(1908)년 사월에 (공신의 집에 정의도(情誼圖)를 그려 붙이시고 구릿골로 돌아오신 뒤에) 백 남신으로부터 돈 천냥을 가져오시어 구릿골 김 준상의 집에 방 한 칸을 수리하시어 약국을 차리실 때 (공우로 하여금 고부에 가서 장판을 사오라 하시어 깔으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것은 선인포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쓰는 것이로다 하시고) 목수 이 경문을 불러 약장(藥藏)과 궤를 만들라 명하시고 그 크기의 치수와 만드는 방법을 일일이 가르치시며 기한을 정하여 주시며 그 기한을 넘기지 말고 마치라고 하시더니 목수가 기한내에 마치지 못하거늘 선생께서 그 목수로 하여금 목재를 한 곳에 모아 놓고 하고 그 앞에 꿇어 앉게 하신 후에 그 정한 날짜를 어긴 것을 꾸짖으시며 한 봉서(封書)를 목수에게 주어 불사르게 하시니 문득 마른 하늘에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목수가 두려워 몸을 떨며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다시 명하시어 "속히 마치라." 고 말씀하시더니 목수가 손이 떨리는 수전증(手戰症)이 생겨서 한 달이 넘은 후에야 비로소 끝마치니 선생께서 목수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약장(藥藏)에 번개가 들어야 할테니 네가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정결히 한 후 정화수 한 그릇을 약장 앞에 놓은 후에 정성스런 마음으로 절하라." 하시니라. 목수가 명하신 대로 행하니 문득 맑은 하늘에 번개가 크게 일어나더라. 약장과 궤를 약방에 안치(安置)하신 후 갑칠을 명하시어 매일 아침 일찍 약방을 깨끗이 청소하게 하시고 모든 문을 닫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시고 21일을 지낸 뒤에 비로소 방을 쓰실 때 통감(通鑑), 서전(書傳),(주역(周易)) 각 한 질씩과 철연자(鐵硏子), 약칼등 모든 약방에 쓰는 기구를 비치하시니라.

三十.

그 後에 全州 龍頭峙에 이르사 朴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天地에서 藥기운이 平壤으로 내렸으니 네가 明日 平壤에 가서 藥材를 求하여 오라 하시거늘 公又가 應命하고 行裝을 收拾하여 다시 命令이 있기를 기다리더니 이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數日後에 銅谷으로 돌아오사 栗 木으로 藥牌를 製造하사 牌面에 "萬國醫院"이라 刻하여 字 에 鏡面朱沙를 박으신 後에 公又에게 命하여 가라사대 이 藥牌를 院坪 길거리에 붙이라. 公又가 應命하고 院坪으로 가려 하거늘 先生이 물어 가라사대 이 藥牌를 院坪에 붙일 때에 警官이 물으면 어떻게 對答하려 하나뇨. 公又가 對하여 가로되 萬國醫院을 設立하여 죽은 者를 다시 살리며 눈먼 者를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其外 모든 大小疾病을 다 낫게 한다 하겠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 말이 옳으니 꼭 그대로 하라 하시고 藥牌를 불사르시니라.

평역:그 후에 전주 용머리고개에 이르사 박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약기운이 평양으로 내렸으니 네가 오늘 평양에 가서 약재를 구하여 오라." 하시거늘 공우가 명을 받들어 행장을 수습하여 다시 명령이 있기를 기다리더니 이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말씀하시기를 "평양에서 약 기운이 전주로 왔도다." 하시고 김 병욱을 불러 "약 삼백냥 어치를 사오라." 하신 후) 몇 일 후에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밤나무로 약패(藥牌)를 만드시어 약패 한 면에 "만국의원(광제국)" 이라 새기시고 그 글자에 경면주사(鏡面朱沙)를 넣으신 후에 공우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약패를 원평 길거리에 붙이라." 하시므로 공우가 명을 받들고 원평으로 가려하거늘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이 약패를 원평에 붙일 때 경관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려 하느뇨." 하시니 공우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만국의 원을 설립하여 죽은 자를 다시 살리며 눈먼 자를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그리고 모든 크고 작은 병을 다 낫게 하려한다 하겠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으니 꼭 그대로 하라." 하시고 약패를 불사르시니라.

 

三一.

藥藏은 아래에 큰間을 두고 위로는 藥 넣는 間이 縱三橫五 合十五間인데 한가운데 間에 "丹朱受命"이라 쓰시고 그 속에 牧丹皮를 넣고 "烈風雷雨不迷"라 쓰시고 또 七星經을 洋紙에 縱書하신 後 그 末端에 "禹步相催登陽明"이라 橫書하여 藥藏 위에서부터 뒤로 내려 붙였으며 机안에는 "八門遁甲"이라 쓰시고 그 글자를 눌러서 "舌 門"二字를 烙印하신 後 그 周圍에 二十四點을 紅色으로 찍으시니라.

평역:약장은 아래에 큰 칸을 통으로 두고 (그 위로 다시 큰 칸을 두어 셋으로 나누어 서랍을 두었고) 다시 그 위에 약 넣는 칸을 아래로 세 칸 옆으로 다섯 칸 합하여 열다섯 칸인데 한 가운데 칸에 "단주수명(丹朱受命)" 이라 쓰시고 그 속에 목단피(牧丹皮)를 넣고 "천둥과 심한 비바람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는다.(烈風雷雨不迷)" 라고 쓰시고 또 칠성경(七星經)을 종이에 세로로 쓰신 후에 그 끝에 "느린 걸음으로 묵묵히 행하고 서로 재촉하며 이끌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禹步相催 登陽明)" 이라 가로로 쓰셔서 약장 위에서 부터 뒤로 내려 붙였으며 궤 안에는 "팔문둔갑(八門遁甲)" 이라 쓰시고 그 글자를 눌러서 "설문(舌門)" 두 글자를 불로 새겨 쓰신 후에 그 주위에 붉은 색 스물 네점을 찍으시니라.

 

三二.

그 後에 全州로부터 藥材를 買入하셨는데 마침 비가 오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藥湯水라 하시니라.

평역:그 후에 전주로부터 약재를 매입하셨는데 마침 비가 오거늘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이 비는 약탕기에 넣을 약탕 물이라." 하시니라.

 

三三.

藥材는 二十四種인데 人蔘이 들지 아니하였거늘 黃應鍾이 여쭈어 가로되 俗言에 "藥局에 人蔘이 빠지지 않는다"하는데 어찌 이 二十四種中에 藥中靈長이 되는 人蔘이 들지 아니하였나이까. 先生이 가라사대 蔘精은 가는 곳이 있나니라. 應鐘이 가로되 어디로 가나이까. 가라사대 亨烈에게로 갔느니라 하시니라.

평역:약재는 (목단피, 천화분, 금은화 세가지외에) 스물네종류인데 인삼이 들지 아니하였거늘 황 응종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속말에 "약국에는 인삼이 빠지지 않는다 하는데 어찌 이 스물네종류의 약재중에 약재의 영장인 인삼이 들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삼의 정기는 가는 곳이 있느니라." 하시므로 응종이 다시 여쭈어 묻기를 "어디로 가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형렬에게로 가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스물네 가지 약종만 잘 쓰면 만국의원이 되리라." 하시니라.)

 

三四.

藥房壁上에 "士農工商, 陰陽"과 또 其外 여러 글자를 많이 써 붙이고 白紙로 褙附한 後에 自賢을 命하사 그 뜻 가는 대로 食■(식완)을 대고 褙附한곳을 오려 떼시니 陰字가 나타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正히 合하도다. 陰과 陽을 말할 때에 陰을 먼저 읽나니 이는 地天泰니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藥藏은 곧 安葬 이며 또 神 이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종이를 뜯을 날이 速히 이르러야 하리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약방 벽위에 "사농공상, 음양(士農工商, 陰陽)" 과 또 다른 여러 글자를 많이 써서 붙이시고 백지로 도배한 후에 자현을 명하시어 그 뜻가는 대로 밥 사발을 대고 도배한 곳을 오려 떼게하시니 음(陰)자가 나타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정히 옳도다." 하시고 "음과 양을 말할 때에는 음을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 괘니라." 하시며 또 말씀하시기를 "약장은 곧 안방의 장농이며 또 신주를 넣어두는 궤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종이를 뜯을 날이 빨리 이르러야 하리라." 하시니라.(이 뒤에 大興里에 가시어 高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藥欌은 곧 네 농(籠)바리가 되리라 하시니라.)

 

三五.

그 後에 藥房에 비치한 모든 物目을 記錄하사 朴公又와 金光贊을 주시며 가라사대 이 物目記를 金山寺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奉安된 釋迦佛像을 向하여 마음으로 다른 곳으로 移安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사르라 하시니 兩人이 金山寺에 가서 命하신 대로 行하니라.

평역:그 후에 약방에 비치한 모든 물건의 목록을 기록하시어 박 공우와 김 광찬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물건의 목록을 기록한 것을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 곳에 봉안된 석가불상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서 모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사르라." 하시니 두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三六.

先生이 가라사대 中天神은 依托이 없어서 黃泉神에게 붙어 물과 밥을 얻어먹어왔나니 그러므로 寃恨을 품었다가 이제 내게 하소연을 함으로 이로부터 中天神에게 福을 맡기어 偏私가 없이 均分케 하려 하노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천신은 후사를 두지 못한 신명이요, 황천신은 후사를 둔 신명이라. 중천신은 의지할 곳이 없어서 황천신에게 붙어서 물과 밥을 얻어 먹어 왔나니 그러므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내게 하소연을 하므로 이로부터는 중천신에게 복을 맡기어 사사로운 치우침이 없이 고루 나누어 주게 하려 하노라."

 

三七.

하루는 여러날 동안 글을 쓰신 洋紙로 크게 卷軸을 만드신 後에 光贊, 亨烈, 甲七, 允根, 京學, 元一 等에게 命하사 가라사대 너희는 窓戶를 緊封하고 房中에서 이 글軸을 火爐에 불사르되 煙氣가 房안에 充滿케하여 다 燒火한 뒤에 門을 열라. 일을 하려면 火地晋도 하여야 하느니라. 모든 사람이 命하신 대로 擧行할 때 煙氣가 房中에 充滿하여 呼吸을 通하기 어려우므로 允根, 元一은 밖으로 나가고 남은 사람은 다 타기를 기다려서 門을 여니라.

평역:하루는 여러날 동안 글을 쓰신 양지로 크게 두루마리를 만드신 후에 광찬, 형렬, 갑칠, 윤근, 경학, 원일등에게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창문과 문을 꼭 닫고 방안에서 이 두루마리를 화로에 불사르되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게하여 다 타고 난 뒤에 문을 열어라. 일을 하려면 화지진(火地晉)도 하여야 하느니라." 하시니 모든사람이 명하신 대로 거행할 때 연기가 방안에 충만하여 호흡을 통하기 어려우므로 윤근, 원일은 밖으로 뛰쳐 나가고 남은 사람은 다 타기를 기다려서 문을 여니라.

 

三八.

하루는 黃應鍾이 이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黃泉神이 이르니 黃巾力士의 숫대를 불사르리라 하시고 甲七을 命하사 짚 한 묶음을 물 축여 잘라서 숫대를 만들어 火爐에 불사르시니라.

평역:하루는 황 응종이 오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황천신(黃泉神)이 이르니 황건역사(黃巾力士)의 숫(數)대를 불사르리라." 하시고 갑칠을 명하시어 짚 한 묶음을 물에 축여 잘라서 숫대를 만들어 화로에 불사르시니라.

 

三九.

하루는 白巖里 崔昌祚의 집에 계시사 昌祚를 命하사 布袋를 지어서 租三斗와 짚재를 混和하여 넣은 後에 黃應鍾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布袋를 가지고 너의 집에 가서 항아리에 물을 붇고 그 속에 담아두고 每日 한 번씩 물을 둘러 저으며 또 食■(식해) 일곱 사발을 빚어 넣어라. 내가 三日後에 너의 집에 가리라. 應鍾이 領命하고 돌아가서 그 布袋를 물에 담가두고 매일 한 번씩 둘러 저으니 물빛이 灰色이 되고 하늘빛도 또한 三日間을 灰色이 되어 햇빛이 나지 아니하니라.

평역:하루는 백암리 최 창조의 집에 계시면서 창조에게 명하시기를 포대를 만들어서 벼 서말과 짚 재를 섞어 넣게 하신 후에 황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포대를 가지고 너의 집으로 가서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담아두고 날마다 한 번씩 물을 휘둘러 저으며 또 식혜 일곱 사발을 빚어 넣으라. 내가 사흘 후에 너의 집으로 가리라." 하시니 응종이 명을 받들고 돌아가서 그 포대를 물에 담가두고 매일 한 번씩 휘둘러 저으니 물빛이 잿빛이 되고 하늘도 또한 사흘 동안 잿빛이 되어 햇빛이 나지 아니하니라.

 

四十.

三日後에 先生이 應鍾의 집에 이르러 가라사대 이제 山河의 大運을 거두어들이리라 하시고 이 날밤에 白紙로 僧帽를 만들어서 應鍾의 머리에 씌우시고 布袋에 넣었던 벼를 꺼내어 그 집 사방에 뿌리며 白紙 一百二十枚와 洋紙四枚에 글을 써서 食■(식해)에 調合하여 深更 人跡이 없을 때를 타서 시금 흙가운데 묻고 僧帽 쓴 채로 洗面하라 하시니 應鍾이 命하신 대로함에 兩眉間에 콩알과 같은 큰 사마귀가 생겨서 손에 만져지더라. 翌早에 벼 뿌리던 곳을 두루 살피니 한 낱알도 남아 있는 것이 없더라.

평역:사흘후에 선생께서 응종의 집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산하대운(山下大運)을 거두어 들이리라." 하시고 이날 밤에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서 응종의 머리에 씌우시며 포대에 넣었던 벼를 꺼내어 그 집 사방에 뿌리시고 백지 일백이십장과 종이 넉장에 글을 써서 식혜에 버무려 섞은 후에 밤이 깊어 인적이 없을 때를 틈타서 시궁 흙 가운데 파묻고 고깔을 쓴 그대로 얼굴을 씻으라." 하시더니 응종이 명하신대로 하니 양미간에 콩알과 같은 큰 사마귀가 생겨서 손에 만져지더라. 다음날 아침에 벼 뿌렸던 곳을 두루 살피니 한 낱알도 남아있는 것이 없더라.

 

四一.

그 後에 朴公又에게 마음으로 六任을 定하라 하시거늘 公又가 마음으로 六任을 생각하여 定할 때 한사람을 생각하니 先生이 문득 不可하다 하시거늘 다시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定하였더니 이날 저녁에 公又의 心定한 六人을 부르사 그들로 하여금 深夜에 燈불을 끄고 房가운데서 돌아다니면서 侍天呪를 읽게 하시니 문득 한사람이 거꾸러지거늘 모든 사람이 놀래어 呪聲을 그치니 先生이 가라사대 놀래지 말고 如前히 돌며 呪聲을 繼續하라 하심으로 다시 繼續하여 한 食頃을 지낸後에 呪聲을 그치고 불을 밝혀보니 孫秉旭이 거꾸러져 죽었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몸이 不淨한 연고라 하시고 물을 머금어서 얼굴에 뿜으시니 秉旭이 精神을 겨우 돌이키거늘 불러 가라사대 나를 부르라 하시니 秉旭이 목안소리로 겨우 先生을 부르니 기운이 곧 恢復되는지라. 이에 일러 가라사대 侍天呪에 큰 기운이 박혀 있도다 하시고 또 일러 가라사대 너를 그대로 두었으면 田畝(전무)사이에 엎드려져서 牛馬에 밟힌바가 되었으리라. 또 일러 가라사대 이 後에 怪病이 全世를 猛襲하여 몸 돌이킬 틈이 없이 이와 같이 人命을 죽일 때가 있으리니 그 危急한 때에 나를 부르라 하시니라.

평역:그 후에 박 공우에게 "마음속으로 육임(六任)을 정하라." 하시거늘 공우가 마음속으로 육임을 생각하여 정할 때 한 사람을 생각하니 선생께서 문득 "불가하다." 하시거늘 다시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정하였더니 이날 저녁에 공우가 마음속으로 정한 여섯 사람을 부르시어 그들로 하여금 밤중에 등불을 끄고 방 한가운데를 돌아 다니게 하면서 시천주를 읽게 하시니 문득 한사람이 꺼꾸러 지거늘 모든 사람이 놀래어 주문소리를 그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놀래지 말고 돌면서 주문을 계속하라." 하심으로 다시 계속하여 한 식경을 지낸 후에 주문소리를 그치고 불을 밝혀보니 손병욱이 넘어져서 죽었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허물을 지어) 몸이 부정을 타서 그러한 연고라." 하시고 물을 머금어서 얼굴에 뿜으시니 병욱이 정신을 겨우 돌이키거늘 선생께서 병욱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나를 부르라." 하시니 병욱이 목안에 기어가는 소리로 겨우 선생을 부르니 기운이 곧 회복되는지라. 이에 일러 말씀하시기를 "시천주에 큰 기운이 박혀 있도다." 하시고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밭두렁 사이에 엎어져서 소나 말에게 밟히는 바가 되었으리라." 하시고 또 일러 말씀 하시기를 "이 후에 괴질이 온 세상을 휩쓸어 (자던 사람은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길을 가던 자는 길 위에서 각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하고 혹은 엎어져서) 몸 돌이킬 틈이 없이 이와같이 사람을 죽일 때가 있으리니 그 위급한 때에 나를 부르라." 하시니라. (공우가 마음속으로 육임을 정 할때 선생께서 불가하다 말씀하신 그 사람은 수일후에 죽으니라.)

 

四二.

六月[1908年]에 大興里에 계실 때 公又를 命하사 各處에 巡廻하여 여러 從徒로 하여금 二十一日間을 잠자지 말고 每曉에 한 時間씩만 자라 하시니라. 京石이 여러날 자지 못함으로 甚히 疲困하여 밭가에 昏倒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天子를 圖謀하는 者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평역:무신(1908)년 6월에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를 명하시어 각처를 순회하여 여러 종도들로 하여금 "스무하루동안 잠자지 말고 새벽에 한 시간씩만 잠을 자라." 하시니라. 경석이 여러 날을 잠자지 못하여 매우 피곤하더니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앞 모시밭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四三.

하루는 여러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天下에 水氣가 枯渴하였으니 水氣를 돌려야 하리라 하시고 그 뒷산 避亂洞 安氏 齋舍에 가사 그 앞 우물을 대가지로 한 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陰陽이 고르지 못하니 齋舍(재사)에 가서 어떠한 緣故인지 물어라. 安乃成이 應命하고 齋舍에 들어가 물으니 齊直은 三日前에 死去하였고 그 妻만 있거늘 돌아와서 事由를 아뢰자 또 가라사대 다시 行廊에 가서 보라 딴 기운이 支持하여 있도다. 乃成이 그 行廊에 들어가 보니 行商하는 男女 二人이 들어 있거늘 돌아와서 事實을 告한대 先生이 이에 齋舍廳上에 오르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西天을 바라고 萬修를 高唱케 하시며 가라사대 이 가운데 東學歌詞를 가진 者가 있으니 가져오라 하시니 果然 한 사람이 歌詞를 내어 올리고 물러나거늘 先生이 그 冊中間을 펴고 한 줄을 읽으시니 하였으되 "詩云伐柯伐柯여 其則不遠이라. 내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마는 이는 都是사람이오 不在於近이라. 目前之事 쉽게 알고 深量없이 하다가 未來之事 같지 않으면 그 아니 내 恨인가"라 하니라. 처음에 微聲으로 한 번 읽으시니 白日에 문득 雷聲이 發하거늘 다시 크게 읽으시니 雷聲이 大砲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天地를 轟動(굉동)하며 火藥냄새가 觸鼻하고 또 地震이 强烈히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精神을 잃고 엎드려지거늘 先生이 乃成을 命하사 各히 일으키시니라.

평역:하루는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에 물기운(水氣)이 말랐으니 물기운을 돌려야 하리라." 하시고 그 뒷산 피난동 안씨 재실(齋室)에 가시어 그 집 앞 우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재실에 들어가서 어떠한 연고인지 물어보라." 하시므로 안 내성이 명을 받들어 재실에 들어가 물으니 재실을 지키던 남자가 삼일전에 죽고 그 아내만 있거늘 돌아와서 그 일을 아뢰자 또 말씀하시기를 "다시 행랑채에 가보라. 딴 기운이 버티고 있도다." 하시므로 안내성이 행랑채에 들어가 보니 봇짐행상 남녀 두사람이 들어 있거늘 돌아와서 그 사실을 말씀드리니 이에 재실 마루에 오르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서쪽하늘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소리쳐 부르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가운데 동학가사(東學歌詞)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 하시니 과연 한 사람이 동학가사를 내어 올리고 물러 가거늘 선생께서 책 중간을 펴시고 한 줄을 읽으시니 다음 구절이라. "시운벌가벌가(詩云伐柯伐柯)하니 기측불원(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마는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눈앞에 있는 일(目前之事)을 가볍게 여기고 깊이 생각하고 헤아림이 없이(深量없이) 하다가서 앞으로 닥쳐 올 일이(未來之事) 순조롭지 않으면 그 아니 내 한인가." 선생께서 처음에 작은 소리로 한 번 읽으시니 맑은 하늘에 문득 천둥소리가 일어나거늘 다시 크게 읽으시니 천둥이 대포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천지를 진동시키며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고 또 지진이 강렬히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늘 선생께서 안 내성에게 명하여 각각 일으키게 하시니라.

 

四四.

하루는 先生이 泰仁 새올 서 白巖里로 가실 때 公又가 侍從하더니 문득 關雲長의 形貌로 變하여 돌아보시며 물어 가라사대 내 얼굴이 關雲長의 形貌와 같으냐 하시니 公又는 놀래어 어떻게 對答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서 알지 못한다고 對答하였더니 그와 같이 세 번을 물으시므로 이에 對하여 가로되 關雲長과 恰似하나이다 하니 그 後로는 本貌를 回復하시고 京學의 집에 이르러 公事를 行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선생께서 태인 새올에서 백암리로 가실 때 공우가 모시고 따르더니 문득 관운장의 모습으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물어 말씀하시기를 "내 얼굴이 관운장의 모습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는 놀래어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서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더니 그와 같이 세 번을 물으시므로 이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를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 하니 그 후로는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시고 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시니라.

 

四五. (원본에 누락)

 

四六.

翌日에 韓公淑이 이르거늘 先生이 親히 술을 부으사 公淑을 주며 가라사대 내일을 많이 하였으니 술을 마시라. 公淑이 對하여 가로되 先生의 일을 한바가 없나이다. 가라사대 한일이 있나니라. 公淑이 등을 돌려 술을 받아 마시고 이윽고 앉았다가 여쭈어 가로되 지난밤 꿈에는 한 일이 있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꿈에 한 일도 또한 일이니라. 左右가 公 淑에게 그 꿈을 물으니 公淑이 가로되 꿈에 先生께서 내 집에 이르사 天下의 戶口를 成籍하여 오라 하시기에 應答하고 五方神將을 불러서 成籍하여 올림에 先生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보았노라.

평역:다음 날에 한 공숙이 오거늘 선생께서 친히 술을 부어 공숙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을 많이 하였으니 술을 마시라." 하시므로 공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생의 일을 한 바가 없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일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공숙이 등을 돌려 술을 받아 마시고 한참을 앉았다가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지난 밤 꿈 속에서는 한 일이 있나이다."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꿈에 한 일도 또한 일이니라." 하시니라. 박 공우가 공숙에게 그 꿈을 물으니 공숙이 말하기를 "꿈에 선생께서 내 집으로 오셔서 천하의 모든 가구수(天下戶口)를 책으로 만들어 오라 하시기에 응답하고 오방신장(五方神將)을 불러서 책으로 만들어 올리니 선생께서 받아 들이시는 것을 보았노라." 하니라.

 

四七.

하루는 公又에게 "天地大八門, 日月大御命, 禽獸大道術, 人間大積善, 時乎時乎鬼神世界"라 써주시며 申京守의 집 壁上에 붙이라하사 가라사대 京守의 집에 壽命所를 定하나니 네가 모든 사람을 對할 때에 그 善處만 取하여 好意를 가질 것이오. 或 惡處가 보일지라도 잘 容恕하여 憎惡心을 두지 말라 하시니라. 이때에 公又는 申京守의 집에 함께 居住하는 故로 公又를 시키심이더라. 또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萬方에 퍼져 내리는 것이므로 "京"字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라. 그러므로 京守의 집에 壽命所를 定하노라 하시고 因하여 金京學의 집에 大學校를 定하시고 辛京元의 집에 福祿 所를 定하시니라.

평역:하루는 공우에게 "천지의 여덟 큰 문을 움직여 선천(先天)을 닫고 후천(後天)을 열어 후천창생(後天蒼生)의 수명을 늘여 해와 달과 더불어 함께 하게 하리라. 비록 말세(末世)에 무도(無道)하여 인륜(人倫)이 사라지고 금수(禽獸)와 같을지라도 신도(神道)로서 가르치고 선술(仙術)을 배우게 하여 선천(先天)에 죄(罪)로써 먹고 살던 인간(人間)들을 다가오는 후천(後天)에는 선(善)을 쌓아 먹고 살게 할 도수(度數)를 짜리니 다가오는 이 후천(後天)의 때는 조화무궁한 귀신 세계라." 써주시며 "신 경수의 집 벽위에 붙이라."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경수의 집에 수명소를 정하나니 너희들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좋은 점만 바라보아 호감을 가질 것이요, 혹 나쁜 점이 보이더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 하시니라. 이 때에 공우는 신 경수의 집에 함께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우를 시키심 이더라. 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에 퍼져 내리는 것이므로 서울 "경"자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라, 그러므로 경수의 집에 수명소를 정하노라." 하시고 계속하여 김 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다유곡기횡이입(多有曲岐橫易入) 비무탄로정난심(非無坦路正難尋)이라 써주시며 벽에 붙이라 하시고) 신 경원의 집에 복록소를 정하시니라.

 

四八.

하루는 銅谷에 계실 때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제 火遁을 묻었으니 너의 집에 줄을 注意하라. 만일 너의 집에서 火災가 나면 火神의 勢力이 擴大하여 全世에 大禍를 끼치리라. 亨烈이 놀래어 家人을 董督(동독)하여 종일토록 불을 조심 하니라.

평역:하루는 구릿골에 계실 때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숨어있는 불(火遁)을 묻었으니 너의 집에 불을 조심하라. 만일 너의 집에서 불이 나면 불의 신(火神)이 세력을 확장하여 전 세계에 큰 화를 끼치리라." 하시므로 형렬이 놀래어 집안사람을 단속(團束)하여 종일토록 불을 조심하게 하니라.

 

四九.

하루는 銅谷에서 밤중에 글을 쓰시며 金甫京에게 命하사 가라사대 東天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甫京이 밖에 나가서 우러러보고 對하여 가로되 黑雲이 하늘을 가리워서 별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 先生이 門을 여시고 東天을 향하여 입으로 한 번 부시니 구름이 흩어지고 별이 나타나니라.

평역:하루는 구릿골에서 밤중에 글을 쓰시며 김 보경에게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동쪽 하늘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므로 보경이 밖에 나가서 우러러보고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워서 별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문을 여시고 동쪽 하늘을 향하여 입으로 한 번 부시니 구름이 흩어지고 별이 나타나니라.

 

五十.

九月[1908年]에 先生이 洋紙七片에 各히 "病自己而發" "葬死病衰旺冠帶浴生養胎胞"를 써서 對하여 亨烈을 주시며 가라사대 全州府에 가서 某某등 七人에게 分給하고 돌아 오라. 여러 從徒가 그 意義를 물은 즉 先生이 가라사대 말하여도 모를 것이오. 成編後에는 스스로 알게 되리라. 亨烈이 領命하고 全州府에 이르러 金洛範, 金秉旭, 金光贊, 金俊贊 五人에게 分給하고 其外二人은 만나지 못하여 傳하지 못하고 돌아왔더니 先生이 기다려서 傳하지 아니함을 꾸짖으시니라.

평역:무신(1908)년 9월에 선생께서 종이 일곱장에 각각 "병(病)은 자기(自己) 몸 안에서 스스로 생겨 나오느니라."는 글과 묻을 장(葬)자를 맨 앞에 둔 십이포태(十二胞胎)를 꺼꾸로 쓰신 글을 써서 형렬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전주부에 가서 내가 정한 일곱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돌아오라." 하시므로 여러 종도들이 그 뜻를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말해주어도 모를 것이요, 책이 다 된후에는 저절로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을 받들고 전주부에 이르러 김 낙범, 김 병욱, 김 광찬, 김 준찬, 김윤근등 다섯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그외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여 전하지 못하고 돌아왔더니 선생께서 기다리다가 전해주지 않고 왔음을 꾸짖으시니라.

 

五一.

十月[1908年]에 金洛範을 命하사 白米二十斗를 藥房에 들여 두었더니 亨烈이 마침 絶粮(절양)되어 甲七로 하여금 그 白米에서 半斗를 갈라 내었더니 先生이 아시고 꾸짖어 시니라.

평역: 무신(1908)년 10월에 김 낙범을 명하사 백미 스무 말을 약방에 들여 두었더니 형렬이 마침 양식이 떨어져서 갑칠로 하여금 그 백미에서 반 말을 갈라 내었더니 선생께서 아시고 형렬과 갑칠을 크게 꾸짖으시니라.

 

五二.

이 달에 古阜 臥龍里에 이르사 가라사대 이제 無秩序와 混亂을 바르게 하려면 皇極神을 옮겨와야 하리니 皇極神은 淸國 光緖帝에게 應氣하여 있다 하시며 또 가라사대 皇極神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될 機緣은 宋尤菴의 萬東廟  設(창설)로부터 發源되었나니라 하시고 여러 從徒를 命하사 每夜에 侍天呪를 誦讀케 하시고 親히 調子를 먹이사 몇 날을 지낸後에 가라사대 이 소리가 運喪하는 소리와 같다 하시고 또 가라사대 運喪하는 소리를 御路라 하나니 御路는 곧 人君의 길이라. 이제 皇極神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더니 그때에 光 緖帝가 崩하니라.

평역:이 달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세상의 무질서와 혼란을 바로 잡으려면 황극신을 옮겨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나라 광서제에게 기운이 응(應氣)하여 있느니라." 하시며 또 말씀하시기를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될 연고는 송 우암이 만동묘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 하시고 여러 종도들을 명하시어 매일 밤에 시천주를 친히 곡조를 붙이시어 소리내어 읽게 하시고 몇 일을 지낸 후에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상여를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상여를 운반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니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외치시더니) 그 때에 광서제가 갑자기 죽느니라. (인하여 세계일가 통일 정권의 공사를 행하실 때 제자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국제왕(萬國帝王)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더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莊嚴)한 거동의 모양을 이루어 허공(虛空)에 벌려 있다가 이윽고 사라지니라.)

 

五三. (원본에 누락)

 

五四.

十一月[1908年] 二十八日에 先生이 井邑 大興里 車京石의 집에 이르사 布政所를 定하시고 公事를 行하시니 大略 如何하니라.

평역:무신(1908)년 동짓달(11月) 28일에 선생께서 정읍 대흥리 차 경석의 집에 이르시어 경석의 집을 포정소로 정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니 대략 다음과 같으니라.

 

五五.

하루는 洋紙에 二十四方位字를 돌려쓰시고 中央에 "血食千秋道德君子"라 쓰신 후에 가라사대 天地가 艮方으로부터 始作되었다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오 二十四方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일은 南朝鮮 뱃길이라. 血食千秋道德君子의 神明이 이 배를 運漕하고 全明淑이 都 工(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神明들에게 어떻게 하여 萬人에게 仰慕를 받으며 千秋에 血食을 그침 없이 받아 오게된 理由를 물은 즉 다 一心에 있다고 對答하니 그러므로 一心을 가진 者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法을 行하신 後에 불사르시니라.

평역:하루는 종이에 이십사방위자를 돌려 쓰시고 중앙에 "혈식천추도덕군자"라 쓰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이십사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 졌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남조선 뱃길이라. 혈식 천추 도덕군자의 신명들이 이 배를 몰고 전 명숙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에게 추앙(推仰)을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끓임없이 받아 오게되느냐 이유를 물으니 모두다 한마음(一心)에 있다." 고 대답하니라. "그러므로 한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법을 행하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五六.

이때에 皇極數를 돌리시며 여러 從徒들에게 所願을 물으시고 다시 京石에게 所願을 물으시니 京石은 裂地를 願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너는 兵部가 마땅하다 하시니 京石이 不快히 여기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直臣이 아니면 兵權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이제 特히 네게 맡기노라 하시니라.

평역:이 때에 황극수를 돌리시며 여러 종도들에게 소원을 물으시고 다시 차 경석에게 소원을 물으시니 경석이 땅을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병부(兵部)가 마땅하다." 하시니 경석이 불쾌히 여기는 지라. 선생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직계 신하가 아니면 병권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이제 특히 네게 맡기노라." 하시니라.

 

五七.

하루 밤에는 여러 從徒를 京石家前 柳樹下에 벌려 세우시고 北으로 向하여 휫바람을 한 번 부시니 문득 方丈山으로부터 一條의 雲霞가 일어나서 四方을 둘러 문턱을 이루니라.

평역:어느 하루 밤에는 여러 종도들을 차 경석의 집 앞 버드나무 밑에 벌려 세우시고 북쪽으로 향하여 휫바람을 한 번 부시니 문득 방장산으로부터 실구름 한 줄기가 안개같이 일어나서 사방을 퍼져 문턱과 같은 모양을 이루니라.

 

五八.

하루는 여러 從徒들에게 命하사 前古以來의 모든 名將을 써 들이라 하시니 京石이 물어 가로되 創業君主도 名將의 列에 들겠나이까. 가라사대 그러하니라. 京石이 上古로부터 創業한 모든 君主와 名將을 일일이 記錄하고 最終에 全明淑을 써서 올리자 先生이 가라사대 왜 全明淑은 끝에 썼느냐. 京石이 對하여 가로되 左로부터 보시면 全明淑이 首位가 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全明淑은 萬古名將이라. 白衣寒士로 일어나서 能히 天下를 움직였다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여러종도들에게 명하시어 "옛날부터 지금까지 역대의 모든 이름난 장군(名將)들을 기록하여 가져오라." 하시니 경석이 물어 여쭈기를 "나라를 개국한 창업군주도 명장의 대열에 포함하나이까." 하니 "그러하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태고로부터 창업한 모든 군주(君主)와 이름난 장군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제일 마지막에 전 명숙을 써서 올리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왜 전 명숙을 끝에 썼느냐." 물으시므로 경석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왼쪽으로부터 보시면 전 명숙이 제일 처음이 되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전 명숙은 천하고금의 명장(名將)이라, 벼슬없는 가난한 선비(白衣寒士)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의 난(亂)을 동(動)하게 하였노라." 하시니라.

 

五九.

이때에 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前日에는 네가 나의 말을 쫓았거니와 이제는 내가 네발을 쫓으리니 모든 일을 묻는 대로 잘 생각하여 對答하라 하시고 물어 가라사대 西洋人의 發明한 모든 利器를 그대로 두어야 옳으냐 걷어 버려야 옳으냐. 京石이 對하여 가로되 그대로 두는 것이 利於用이 될 듯 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말이 옳으니 저들의 器機가 天上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러 가지를 물으신 後에 公事로서 決定하시니라.

평역:하루는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는 네가 나의 말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행하였으나 이제는 내가 너의말을 듣고 그대로 공사를 행할 터이니 모든 일을 묻는대로 잘 생각하여 대답하라." 하시고 물어 말씀하시기를 "서양인이 발명한 모든 문명의 이로운 기기(利器)들을 그대로 두어야 옳으냐, 없애 버림이 옳으냐." 하시므로 경석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대로 두어 쓰시게 함이 사람들에게 이로울 것 입니다."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저들의 기계문명은 천상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러 가지를 물으신 후에 공사로서 결정하시니라.

 

六十.

또 安乃成으로 하여금 棍棒으로 마루 장을 치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제 病痼에 沈纏(침전)한 人類를 救活하려면 一等方文이라야 堪當(감당)할 것이오. 二等方文은 不可하리라 하시며 또 朴公又에게 棍棒을 들리사 京石을 亂打하며 마음을 變치 아니 하겠느냐 하여 다짐을 받으시고 高夫人에게 巫度를 붙이시니라.

평역:또 안 내성으로 하여금 곤봉으로 마루장을 치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깊게 병들어 있는 인류를 구해서 살리려면 일등박문이라야 감당할 것이요. 이등박문은 불가하리라." 하시며 또 박 공우에게 곤봉을 들리시어 경석을 치게 하시며 "네가 마음을 변치 않겠느냐." 하여 다짐을 받으시고 고부인에게 무당도수를 붙이시니라.

六一.

하루는 紙數 三十枚인 洋紙冊에 前十五枚에는 頁面(혈면)마다 "背恩忘德萬死身, 一分明, 一陽始生"이라 쓰시고 後 十五枚에는 頁面마다"作之不止聖醫雄樂, 一陰始生"이라 쓰신 後에 鏡面朱砂末과 보의(器) 一介를 놓고 光贊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일은 살길과 죽을 길을 決定하는 것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 光贊이 여쭈어 가로되 先靈神 을 否認 或 薄待하는 者는 살 기운을 받기 어려울 것이로소이다. 先生이 默然 良久에 가라사대 네 말이 가하다하시고 보의를 종이로 싸서 朱砂末을 묻혀 가지고 冊頁面마다 찍어 돌리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馬牌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서른장 되는 종이책에 앞쪽 열 다섯장에는 각 면마다 "은혜를 배반하고 베푼 덕을 망각한 그 사람은 만번 죽어 마땅 할 것이니 일분명 일양시생(一分明一陽始生)" 이라 쓰시고 뒤쪽 열 다섯장에는 각 면마다 "성스러운 의사는 쉬지않고 죽은 자도 살리는 약을 지으니 일음시생(一陰始生)" 이라 쓰신 후에 경면주사와 그릇 한 개를 놓고 광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살 길과 죽을 길을 결정하는 것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 하시므로 광찬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조상 선령신을 부인하거나 박해하는 자들은 살 기운을 받기 어려울 것이로소이다." 하니 선생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다." 하시고 그릇을 종이에 싸서 주사 분말을 묻혀 가지고 책 한 면 한 면마다 찍어 돌리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것은 마패니라." 하시니라.

 

六二.

己酉[1909年] 正月 一日에 玄武經이 脫稿되거늘 安乃成의 집에서 白甁에 물을 담은 후에 洋紙에 글을 써서 卷軸을 지어 甁口를 막아놓고 그 앞에 白紙를 깔고 白紙위에 玄武經 上下篇을 놓아두었더니 先生이 化天하신 後에 京石이 乃成에게 와서 玄武經을 빌려 가면서 甁口막은 軸紙를 빼어서 펴보니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쓰여 있더라.

평역:기유(1909)년 정월 초하룻날에 현무경이 탈고되거늘 안 내성의 집에서 백자 병에 물을 담은 후에 종이에 글을 써서 권축을 지어 병의 입구를 막아 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위에 현무경 상 하편을 놓아 두었더니 선생께서 화천하신 후에 경석이 안 내성에게 와서 현무경을 빌려가면서 병 입구 막은 종이를 빼어서 살펴보니 "좋은 꽃에 좋은 열매 맺고 나쁜 꽃에 나쁜 열매 맺느니라." 라는 글이 쓰여 있더라.

 

六三.

二日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三日에 告祀를 行하려 하실 때 車京石이 술에 醉하여 逆謀한다는 소리를 高唱하니 이 말이 川原 兵站(병참)에 들리니 軍兵이 出動하려는 지라. 先生이 아시고 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집을 지키고 나를 가름하여 明日 子正에 門隙(문극)을 緊封하고 모든 祀饌(사찬)은 火爐에 구우며 술병은 마개만 열고 至誠으로 心告하라. 이것이 곧 告祀니라 하시고 떠나시니라. 三日 曉에 京石이 命하신 대로 行한 後에 날이 밝으니 擔銃兵數十人이 殺到하여 先生을 搜索하다가 어찌 못하고 돌아가니라.

평역:기유(1909)년 정월 초이튿날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초사흗날에 고사를 지내려고 하실 때 차 문경이 술에 취하여 (고샅에 돌아다니며 경석의 집에서 강모(姜某)가) "역적모의(逆謀)를 한다."는 소리를 소리쳐 외치니 이 말이 천원군 병참에 소문이 나서 군인들이 출동하려고 하는지라. 선생께서 아시고 (고 부인과)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집을 지키면서 날을 가름하여 내일 자정에 문틈을 봉하고 모든 제사음식을 화로에 구우며 술병은 마개만 열고 지극한 정성으로 심고하라. 이것이 곧 고사이니라." 하시고 (비룡촌 차 윤경의 집으로) 떠나시니라. 초사흗날 새벽에 경석이 명하신대로 행한 후에 날이 밝으니 총을 든 수십명이 쇄도하여 선생을 수색하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가니라.

 

六四.

이 날에 先生이 白巖里 金京學의 집으로 가시니 京石이 公又와 輪京을 보내어 經過의 顚末과 無事히 된 事由를 告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내가 公事를 行한 後에 京石을 試驗함이니 無事히 겪어내니 多幸이라 하시니라.

평역:이 날에 선생께서 백암리 김 경학의 집으로 가시니 경석이 공우와 윤경을 보내어 그간 일어난 일의 전말과 무사히 넘어가게 된 사유를 고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사를 행한 후에 경석을 시험해 보았더니 무사히 겪어내니 다행이라." 하시니라.

 

六五.

하루는(年度未詳) 先生이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一年中에 가장 速度로 長成하는 物件이 무엇이냐. 모두 竹으로써 對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竹의 기운이 萬物에 特長하니 그 기운을 덜어 쓰리라 하시더니 그해에 대가 大荒하니라.

평역:하루는 선생께서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일년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물건이 무엇이냐." 하시니 모두 대나무라 대답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나무의 기운이 만물 중에서 특히 크니 그 기운을 덜어 쓰리라." 하시더니 그 해에는 대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느니라.

 

六六.

白巖으로부터 銅谷藥房에 이르러 계실 때 모든 從徒들을 벌려 앉히시고 "三國時節 誰知止於司馬昭"를 大聲으로 誦讀케 하시니라.

평역:백암리로부터 구릿골 약방에 이르러 계실 때 모든 종도들을 둘러 앉히시고 "삼국시절이 사마소에 이르러 끝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오.(三國時節誰知止於司馬昭)" 하시고 큰 소리로 소리내어 읽게 하시니라.

 

六七.

하루는 京石의 弟 輪京이 이르거늘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天地에서 玄武가 쌀을 부르니 네 兄 기운을 써야 할지라. 돌아가서 네 兄에게 脣舌咽喉를 動치 말고 侍天呪를 暗誦하되 起居動作에 暫時라도 쉬지 말라고 指揮하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차 경석의 동생 윤경이 오거늘 선생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천지에서 현무가 쌀을 부르니 네 형의 기운을 써야 할지라. 돌아가서 네 형에게 혀와 입술을 움직이지 말고 시천주를 외어 읽게 하되 앉고 서고 움직이는 모든 기거동작에라도 잠시라도 쉬지 않고 그렇게 하도록 하라." 하시니라.

 

六八.

하루는 藥房에 從徒八人을 벌려 앉게 하시고 四物湯한 貼을 지어 그 貼紙에 人形을 그리사 두손으로 合하여 위로 들고 侍天呪三遍을 읽으신 後에 八人에게 順次로 돌려서 그와 같이 시키시고 "南朝鮮배가 泛彼中流로다"라고 唱하시며 가라사대 下陸하였으니 風波는 없으리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약방에 종도 여덟명을 벌려 앉게 하시고 사물탕 한 첩을 지어 그 봉지에 사람모양을 그리시어 두손을 모아서 위로 드시고 시천주 세 번을 읽으신 후에 여덟사람에게도 차례로 돌아가며 그렇게 하도록 하신 후에 "남조선 배가 범피중류로다." 라고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육지에 닿았으니 풍파는 없으리라." 하시니라.

 

六九.

하루 밤에는 藥房에 계시사 三十六萬神을 쓰시고 또 關雲長呪를 쓰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各히 七百遍씩 心誦하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제 國家에나 私家에나 火遁을 묻었는데 날마다 바람이 불다가 그치고 학담으로 넘어가니 사람이 많이 죽을까하여 그리하노라 하시니라.

평역:하루 밤에는 구릿골 약방에서 삼십육만신을 쓰시고 또 관운장주문을 쓰시며 모든 사람에게 각자 칠백 번씩 마음으로 읽으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국가와 각 개인의 집에 화둔을 묻었는데 날마다 바람이 불다가 그치고 학담으로 넘어가니 사람이 많이 죽을까하여 그리하노라." 하시니라.

 

七十.

하루는 龍頭峙에 계실 때 光贊으로 하여금 方藥合編에 있는 藥名에 朱墨으로 批點(비점)하여 불사르시니라.

평역:하루는 전주 용머리고개에 계실 때 광찬으로 하여금 한방(韓方)의학서적인 방약합편을 사오게 하시어 (네가 병욱의 집으로 가서) "주묵(朱墨)으로 이 책 속에 있는 약명에 비점(批點)을 찍으라." 하시고 불사르시니라.

 

七一.

하루는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淸國일을 볼 터인데 너무 途遠(도원)하여 跋涉(발섭)키 難함으로 淸州 萬東廟에 가서 天地神門을 열고자 하나 또한 가기가 不便하니 다만 音同을 取하여 淸道院에 그 기운을 붙여서 일을 보려 하노라 하시고 亨烈, 公又를 데리고 淸道院으로 가실 때 淸道院 嶺 (영전)에 이르사 城隍廟 마루에 쉬어 누우시며 좀 遲滯하여 가자 하시고 잠깐 졸고 계시다가 다시 일어나시며 가라사대 아라사군대가 내 군사라 하시고 金松煥의 집에 이르사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그날 밤에 柳贊明의 집에서 留宿하시면서 天地大神門을 열고 公事를 行하실 때 無數한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평역:하루는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청나라에 대한 공사를 볼 것인데 너무 멀어서 직접가서 행하기 어려우므로 청주 만동묘에 가서 천지대신문을 열고자 하나 또한 가기가 불편하니 다만 음이 같은 것을 취하여 청도원에 그 기운을 붙여서 그 공사를 보려고 하노라." 하시고 김 형렬, 박 공우를 데리시고 청도원으로 가실 때 청도원 고개마루에 이르시어 성황당 마루에 누워서 쉬시며 좀 지체하였다가 가자 하시고 잠깐 졸고 계시다가 다시 일어나시며 "아라사 군대가 내 군대니라." 하시고 김 송환의 집에 이르시어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그날 밤에 류 찬명의 집에 머물러 계시면서 천지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실 때 무수히 많은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七二.

하루는 先生이 藥房廳上에 앉으시고 柳贊明을 廳下에 앉히사 淳昌五仙圍碁와 長城玉女織錦과 務安胡僧禮佛과 泰仁君臣奉詔를 쓰게 하시고 또 淸州 萬東廟를 쓰게 하신 後 불사르시니라. 이때에 贊明이 좀 放心하였더니 先生이 가라사대 神明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放心하느냐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선생께서 약방마루에 앉으시고 유 찬명을 마루아래에 앉히시어 순창(淳昌) 오선위기(五仙圍碁)와 장성(長城)옥녀직금(玉女織錦)과 무안(務安)호승예불(胡僧禮佛)과 태인(泰仁)군신봉조(君臣奉詔)를 쓰게 하시고 또 청주(淸州)만동묘(萬東廟)를 쓰게 하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이 때에 찬명이 좀 방심하였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명(神明)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하시니라.

 

七三.

하루는 贊明으로 하여금 卷紙에 二十八宿字를 左로부터 橫書한 後에 끓어서 자로 재게 하시니 一尺이 차거늘 이에 불사르시니라.

평역:하루는 유 찬명으로 하여금 종이에 28별자리 이름을 왼쪽으로부터 옆으로 쓰게 하신 후에 끓어서 자로 재게 하시니 한 자가 차거늘 이에 불사르시니라.

 

七四.

하루는 洋紙冊에 無數히 글을 써서 一枚씩 오려 떼이사 다시 從徒들을 命하사 任意대로 無數히 찢은 後에 一片씩 헤아려서 불사르시니 合三百八十三枚라. 一片이 不足하다 하사 두루 찾으니 人形 그린 一片이 褥밑에 있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것이 곧 皇極數라. 唐堯때에 나타났던 數가 이제 다시 나타난다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책에 무수한 글을 써서 한 매씩 오려 떼시고 종도들을 명하시어 마음대로 무수히 찢게 하신 후에 한 쪽씩 헤아려서 불사르시니 합이 삼백팔십삼매라. "한 쪽이 부족하다." 하시어 두루 찾으니 사람모양을 그린 한 쪽이 요밑에 들어있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황극수라. 요임금때 나타났던 그 수(數)가 이제 다시 나타나리라." 하시니라.

 

七五.

하루는 龍頭峙에 계시사 宿舍마당에 燭을 밝히시고 "天有日月之明, 地有草木之爲, 天道在明故人行於日月, 地道在爲故人生於草木"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구름이 하늘에 가득 차고 바람이 急히 불며 비가 내리되 燭불은 꺼지지 아니한지라. 先生이 柳贊明을 命하사 西北天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니 贊明이 우러러 살핌에 다만 구름사이에 별 한 개가 보이거늘 그대로 告達하니 다시 東南天을 보라 하시거늘 또 우러러보니 구름이 많이 흩어지고 별이 많이 보이는지라. 그대로 復命하자 先生이 가라사대 西北은 살아날 사람이 稀少하고 東南은 살 사람이 많으리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용머리고개에 계시면서 주막 객사 마당에 촛불을 밝히시고 "하늘에는 해와 달의 밝음이 있고 땅은 초목을 자라게 하나니 하늘의 도는 해와 달의 밝음에 있으므로 사람은 해와 달의 운행에 따라서 살고 땅의 도는 만물을 낳아 기르는데 있으므로 사람이 초목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느니라." 써서 불사르시니 구름이 하늘에 가득차고 바람이 급하게 불며 비가 내리되 촛불은 꺼지지 아니하는지라. 선생께서 유 찬명을 명하시어 "서북쪽하늘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니 찬명이 우러러 살펴보니 구름사이에 별 하나만 보이거늘 그대로 말씀드리니 다시 "동남쪽 하늘을 살펴보라." 하시므로 우러러보니 구름이 많이 흩어지고 별이 많이 보이는지라. 그대로 본 것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서북쪽에서는 살아 날 사람이 아주 적고 동남쪽에는 살아날 사람이 많으리라." 하시니라.

 

七六.

하루는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오늘은 淸國만리창 神明이 이르러 오니 接待하여야 하리라 하시고 술을 사서 마시시니라.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청나라 만리 창신명이 올 것이니 대접하여야 하리라." 하시고 술을 사서 더불어 마시시니라.

 

七七.

하루는 淸國 祈雨祭를 지내리라 하시고 家 猪 一 首를 잡아서 찜하여 燒酒를 마시시고 여러 從徒들에게도 나누어 먹이시니라.

평역:하루는 "청나라의 기우제를 지내리라" 하시고 집에 기르는 돼지 한마리를 찜하여 소주를 마시시고 여러 종도들에게도 나누어 먹이시니라.

 

七八. (원본에 누락)

 

七九.

하루는 李道三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람을 害하는 물건을 낱낱이 세어 보라 하시니 道三이 虎豹豺狼(호표시랑)으로부터 蚊蝨蚤蝎(문슬조갈)까지 자세히 세어 告하자 先生이 가라사대 後天에는 사람을 害하는 물건은 다 없애리라 하시니라.

평역:하루는 이 도삼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낱낱이 세어 보라." 하시니 도삼이 호랑이 표범 승냥이 이리로부터 지네 이 벼룩 전갈까지 자세히 세어 아뢰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천에는 사람을 해치는 물건은 모두 다 없게 하리라." 하시니라.

 

八十.

하루는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天地公事를 맡아 봄으로 부터는 年事를 맡아서 一切의 餓莩神(아표신)을 天上으로 올려 보냈으니 此後로는 굶어 죽는 弊가 없으리라.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보고나서 부터는 일년의 일들을 모두 도맡아서 모든 굶어죽은 송장 귀신들을 천상으로 올려 보냈으니 이후로는 굶어 죽는 괴로움은 없으리라." 하시니라.

 

八一.

先生이 天地公事를 마치신 後 "布敎五十年工夫終筆"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伊尹이 五十에 四十九年의 非를 알고 드디어 成湯을 도와 大業을 이루었나니 그 度數를 썼노라. 이제 내가 天地의 運路를 굳게 更正하여 물샐틈없이 度數를 굳게 짜 놓았으니 그 度數에 돌아 닿는 대로 새기틀이 열리리니 너희들은 다만 마음을 한결같이 가져 隋落치 말고 나아가라. 이제는 九年동안 行하여 온 開闢公事의 確證을 天地에 質正할 터이니 너희들도 參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 오직 天地는 말이 없으니 雷聲과 地震으로 表徵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문득 天動과 地震이 아울러 大發하더라.

평역:선생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布敎五十年工夫 終筆)"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이윤이 오십살에 사십구년동안의 그름을 깨달아 드디어 탕임금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다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이제 내가 천지의 운수 길을 굳게 고쳐 바로잡아서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니 너희들은 다만 마음을 한결같이 가져 타락하지 말고 나아가라. 이제 구년동안 행하여 온 개벽공사의 확증을 천지에 물어 결정하리니 너희들도 참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 오직 천지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나타내 보이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문득 천둥과 지진이 아울러 크게 일어나더라.

第 七 章 傳 敎

 

一.

先生이 金京學의 집에 大學校를 定하시고 가라사대 學校는 이 學校가 크리라. 이제는 解寃時代라 賤人에게도 敎를 傳하리니 巫人 六名을 불러오라. 京學이 承命하고 巫人을 불러오니 先生이 命하사 冠巾을 벗기고 各 사람의 앞에 淸水를 놓고 그 淸水를 向하여 네 번씩 절을 시키신 後에 侍天呪 三遍을 읽으시며 各人으로 하여금 따라 읽게 하시고 姓名을 물으신 後 淸水를 마시라 하사 가라사대 이것이 곧 福祿이라 하시니라.

평역: 선생께서 김 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말씀하시기를 "학교는 이 학교가 크리라. 이제는 해원시대이니 천한 사람에게도 가르침을 전하리라." 하시고 경학을 시켜 무당 여섯 명을 불러오라 하시므로 경학이 명을 받들어 무당들을 불러오니 선생께서 명하시어 그들의 머리에 쓴 관과 수건(冠巾)을 벗기시고 그들 앞에 각각 청수를 놓고 그 청수를 향하여 네 번씩 절을 시키신 후에 시천주를 세 번씩 읽으시며 한 사람 한 사람 따라 읽도록 하시고 이름을 물으신 후 청수를 마시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복록이라." 하시니라.

 

二.

銅谷에 계실 때 從徒 九人을 벌려 앉히시고 일러 가라사대 이제 敎運을 전하리라 하시며 甲七을 命하사 靑竹 一竿을 隨意로 裁斷하여 오라하사 그 節數를 세니 모두 十節이거늘 또 命하사 그 節을 切斷하시며 가라사대 이 한마디는 頭目이라. 往來와 巡回를 任意로 할 것이오. 남은 九節은 受敎者의 數와 相符하도다. 하늘에 星宿가 몇 개나 나타났는가 仰觀하라. 甲七이 밖에 나가서 우러러보니 黑雲이 滿天하고 하늘 中央이 열려서 별 九顆가 放光 하였거늘 그대로 復命하자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受敎者의 數와 相應함이라 하시니라.

평역:구릿골에 계실 때 종도 아홉명을 벌려 앉히시고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교운(敎運)을 전하리라." 하시며 김 갑칠을 명하시어 "푸른 대나무 한 가지를 마음대로 잘라 오라." 하시어 그 마디수를 세니 모두 열 마디이거늘 그 중 한 마디를 끓어내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한 마디는 두목이라. 두목은 왕래와 순회를 마음대로 할 것이요. 남은 아홉마디는 수교자(受敎者)의 수(數)와 서로 같으니라." 하시고 "하늘에 별이 몇 개나 나타났는가 올려 보고 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밖으로 나가서 우러러 보니 검은 구름이 온 하늘에 가득 찼는데 하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로 별 아홉개가 반 짝이거늘 그대로 아뢰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수교자의 수에 서로 응한 까닭이니라." 하시니라.(또 말씀하시기를 교운의 개시(開始)가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世)를 이루리라 하시니라.)

 

三.

丁未[1907年]冬에 古阜 臥龍里에서 모든 從徒에게 五呪를 가르치시며 가라사대 이 글은 天地의 津液이라 하시니 이러 하니라. "侍天地家家長世 日月日月萬事知, 侍天地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氣今至至願爲大降, 明德觀音 八陰八陽 氣今至至願爲大降, 三界解魔大帝神位 願■天尊關聖帝君"

평역:정미(1907)년 겨울에 고부 와룡리에서 모든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가르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시천지가가장세 일월일월 만사지, 시천지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지기금지원위대강 , 명덕관음팔음팔양 지기금지원위대강 ,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관성제군 "

四.

大興里 車京石의 집에 계실 때 洋紙 全面에 人形을 그려서 壁에 붙이시고 祭祀節次와 같이 位를 設한 後에 모든 從徒를 命하사 그 곳을 向하여 절하고 마음으로 所願을 告하라 하시며 先生이 人形앞에 서시더니 式을 畢함에 물어 가라사대 누구에게 心告하였느냐 對하여 가로대 先生께 所願을 告 하였나이다. 先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산 祭祀를 받았도다 하시니라.

평역:선생께서 대흥리 차 경석의 집에 계실 때 양지(洋紙) 전체 한 장에 사람 모양을 그려서 벽에 붙이시고 제사 절차와 같이 위패자리에 그것을 모신 후에 모든 종도들에게 명하시어 그 곳을 향하여 반천무지식(攀天撫地式)으로 네 번을 절하게 하시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말하라 하시며 선생께서 친히 사람모양 그려 붙인 곳에 서시더니 식을 마침에 말씀하시기를 "누구에게 마음속으로 고(心告) 하였느냐." 하시므로 종도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생께 소원을 빌었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살아서 제사를 받았으니 이 후에까지 미치리라." 하시고 (사배를 받았으니 내가 한번 절하리라 하시고 단배(單拜)로 절하시며) 또 말씀 하시기를 "자리로서는 띠자리가 깨끗(淨)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五.

己酉[1909年]春에 先生이 關雲長呪를 써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이 大借力呪라 하시니 이러하더라. "天下英雄 關雲長 依幕處 近聽天地 八位諸長 六丁六甲 六丙六乙 所率諸將 一別屛營 邪鬼■■急急 如律令 娑婆■"

평역:기유(1909)년 봄에 선생께서 관운장주를 써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큰 차력이 깃들어 있는 주문이라." 하시고 가르치시니 이러하니라. "천하영웅관운장 의막처 근청천지팔위제장 육정육갑육병육을 소솔제장 일별병영 사귀엄엄급급여율령사바하"

 

六.

하루는 先生이 從徒들을 돌려 앉히시고 五呪를 써서 한사람에게 주어 읽히시고 萬人에게 傳하라 하사 다짐을 받으신 후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傳하여 連次로 돌려서 서로 傳受케 하시니라.

평역: 하루는 선생께서 종도들을 돌려 앉히시고 오주(五呪)를 써서 한 사람에게 주어 읽히시고 "만 명(萬人)의 사람에게 전하라." 하셔서 다짐을 받으신 후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차례차례로 돌려서 서로 전수(傳受)하게 하시니라.

七.

하루는 從徒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崔水雲의 五十年공부는 侍天呪로 一貫하였고 金京 (忠南 庇仁人)은 五十年 공부로 太乙呪를 얻었나니 이제는 神明解寃時代라. 同一한 五十年공부에 누구를 解寃함이 옳으냐 光贊이 對하여 가로대 先生의 處分대로 하사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侍天呪는 이미 行世 되었으니 太乙呪를 쓰리라 하시고 읽어주시니 이러하니라. "■■■■太乙天上元君 ■■■耶都來 ■■喊■ 娑婆■"(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최 수운의 오십년 공부는 시천주로 일관하였고 충남 비인 사람 김 경흔은 오십년 공부에 태을주를 얻었으니 이제는 신명해원시대라. 같은 오십년 공부에 누구를 해원함이 옳으냐." 하시므로 광찬이 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선생의 처분대로 하사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시천주는 이미 세상에 나와서 사용되었으므로 태을주를 쓰리라." 하시고 읽어주시니 이러하니라.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

 

八.

先生이 柳贊明, 金自賢에게 일러 가라사대 各히 十萬人에게 布敎하라 하시니 贊明은 承諾하고 自賢은 承諾치 아니 하거늘 督促하사 承諾을 받으신 後에 일러 가라사대 平天下는 내가 하리니 治天下는 너희들이 하라. 治天下 五十年 공부니라.

평역:선생께서 류 찬명, 김 자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각자 십만 명에게 교(敎)를 전하라." 하시니 찬명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자현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지 아니하거늘 자현을 독촉하시어 대답을 받으신 후에 일러 말씀하시기를 "천하를 평정하는 것은 내가 하리니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너희들이 하라.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오십년 공부이니라." 하시니라.

 

九.

이때에 泰仁 禾湖里 附近에 太乙呪가 喧籍(훤적)히 傳播된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文公信의 所爲라. 時期가 尙早하니 그 기운을 걷으리라 하시고 藥房壁上에 "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라 쓰시고 門밖에 盤石위에 物形을 그리고 打點하신 後에 종이에 太乙呪와 金京 을 써 붙이시고 일어나서 절하여 가라사대 내가 金京 에게 받았노라 하시고 刀一, 筆一, 扇一, 墨一을 盤石위에 列置하시고 모든 從徒들로 하여금 뜻가는대로 들라 하시니 柳贊明은 刀를 들고 金亨烈은 扇을 들고 金自賢은 墨을 들고 韓公淑은 筆을 드는지라. 이에 四人을 葯房 四隅(사우)에 갈라 앉히고 先生은 正中에 서사 "二七六, 九五一, 四三八"을 한 번 읽으신 後에 從徒 三人으로 하여금 종이를 紙幣와 같이 切斷하여 硯匣(연갑)속에 채워 넣은 後에 一人으로 하여금 一片씩 집어내어 鄧禹를 부르고 他一人에게 傳하며 他一人도 그와같이 받은 後에 淸國知面이라 읽고 다시 이상과 같이 하여 馬成을 부른 後에 日本知面이라 읽고 吳漢을 부른 後에 朝鮮知面이라 읽어서 二十八人과 二十四人을 다 마치기 까지 紙 片을 집으니 그 紙 片數가 맞으니라.

평역:이 때에 태인 화호리 부근에 태을주가 떠들썩하게 퍼져 전파되고 있다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문 공신이 행한 일이라. 시기가 아직 이르니 그 기운을 걷으리라." 하시고 약방 벽위에 "기운(氣)은 동북에서 지키고(氣東北而固守) 이치는 서남에서 교통하느니라(理西南而交通)" 쓰시고 문밖에 있는 반석위에 그림을 그리고 점을 찍고 나서 종이에 태을주와 김 경흔을 써 붙이시고 일어나서 절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김경흔에게 받았노라." 하시고 칼, 붓, 먹, 부채 한 개씩을 반석위에 늘어 놓으시고 모든 종도들에게 "뜻 가는대로 주워 들라." 하시니 류 찬명은 칼을 들고 김 형렬은 부채를 들고 김 자현은 먹을 들고 한 공숙은 붓을 드는지라. 이에 네 사람을 약방 네 구석에 각각 갈라 앉히고 선생은 방의 한가운데 서시고 "이칠륙, 구오일, 사삼팔" 을 한 번 읽으신 후에 종도 세 사람으로 하여금 종이를 지폐(紙幣)같이 잘라서 그것을 벼룻집 속에 채워 넣은 후에 남은 한 사람을 시켜 한 쪽씩 끄집어 내어 등우(鄧禹)를 부르게 하고 그 종이를 다른 한사람에게 전달하며 또 그 종이를 받은 사람도 역시 등우를 부르게 하고 그 다음 사람에게 전하면 받은 그 사람은 앞에서 말하는 대로 청국지면이라 읽고 다시 먼저와 같이 반복하여 마성을 부르고 다음에 일본지면이라 읽고 또 그와 같이 반복하여 오한을 부르고 다음에 조선지면이라 읽어서 이십팔장과 이십사장을 다 불러 마치시기까지 종이 쪽지를 집으니 벼룻집 속에 넣었던 종이 쪽지가 한 장도 틀리지 않고 맞으니라.

 

十.

매양 公事를 行하실 때에 글이나 物形을 써서 불사르시므로 그 物形은 意趣를 알 수 없고 다만 그 글이나 記錄하려하나 先生이 禁止하시며 가라사대 文明은 後日에나 나니라 하심으로 文明의 記錄은 없고 다만 節 몇을 傳하여 온 것은 그때에 從徒들이 한 번 보아서 記憶된 것이니라.

평역:항상 공사를 행하실 때에 글이나 그림을 써서 불사르셨으나 그림의 의미는 알 수 없고 다만 글이나 종도들이 기록하려하나 선생께서 못하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문명은 후일에야 나타나리라." 하셨으므로 문명의 기록은 없고 다만 몇 구절 전하여 온 것은 그 때 종도들이 한 번 보고 기억하여 기록된 것이니라.

 

十一.

先生이 公事를 行하실 때나 어느 곳에 座를 定하고 머무르실 때에는 반드시 從徒에게 正心을 命하시고 或 放心하는 者가 있으면 마음을 보는 듯이 일깨우시며 或 就寢하실 때를 타서 放心하는 者가 있을지라도 문득 보는 듯이 마음을 거두라고 命하시니라.

평역:선생께서 공사를 행하시기 위하여 어느 곳에 자리를 정하고 머무르실 때에는 반드시 종도들에게 마음을 바르게 하실 것을 명하시고 혹시 방심하는 자가 있으면 마음을 보신 듯이 일깨우시며 혹 선생께서 주무시는 틈을 타서 방심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문득 보신 듯이 마음을 거두라고 명하시니라.

 

十二.

또 처음 從學하려는 者에게는 반드시 一生지은 허물을 일일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赦하여 주시기를 빌라 하시되 만일 잊고 생각지 못한 일이 있으면 일일이 開頭하여 깨닫게 하시며 또 반드시 그 몸을 爲하여 척 神과 모든 障碍를 맑게하여 주시니라.

평역:또 처음 선생을 모시고 따르려는 자에게는 반드시 일생동안 지은 허물을 일일이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게 하시고 만일 잊어버리고 생각해내지 못한 일이 있으면 일일이 일깨워 깨닫게 하시며 또 반드시 그 몸을 위하여 척신과 모든 장애를 없애어 맑게 하여 주시니라.

第 八 章 法 言

一.

先生이 金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남 잘되는 것을 부러워 말고 남은 福이 많으니 남은 福을 求하라. 呼寒(鳥名)信天猶不死니라.

평역: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남 잘되는 것을 부러워 말라. 아직도 남아 있는 복(福)이 많으니 남은 복을 구하는 데 힘쓸지어다." 하시며 하늘만 믿고 밤새 떨다가 낮이면 잊어버리고 집을 짓지 않는 호한(呼寒)과 우연히 입으로 들어오는 먹이만 먹고사는 신천(信天)이란 새도 굶어 죽지 않는다 하시니라.

 

二.

車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온갖 일이 欲速不達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成熟의 早晩이 人工에 있나니라.

평역:선생께서 차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에 욕심이 앞서 서두르면 일을 이루기 어려우니라." 하시고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 길러 빨리 내이고 늦게 내이는 것이 다 사람이 공들이는데 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

 

三.

安乃成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不義로써 남의 子弟를 誘引치말며 남의 寶貝를 탐내지 말며 남과 서로 爭鬪치 말며 屠漢(도한)과 巫人에게 下賤으로 待遇하지말라.

평역:선생께서 안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의롭지 않게 남의 자녀들을 유인하지 말며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며 남과 서로 다투지 말며 무당이나 백정같은 사람이라 하여 그 사람들을 낮추어 천하게 대하지 말라." 하시니라.

 

四.

春無仁이면 秋無義라. 農家에서 秋成 後에 穀種을 갈무리 해 두는 것은 오직 土地를 믿는 연고니 이것이 곧 信路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봄에 (어짐을) 심지 않으면 가을에 (의로움을) 거둘 것이 없느니라. 농가에서 곡식을 추수한 뒤에 곡식종자를 갈무리 해 두는 것은 오직 땅을 믿는 까닭이니 이와 같은 것이 곧 믿음의 길이니라." 하시니라.

 

五.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漢高祖는 蕭何의 德으로 天下를 얻었나니 너희들은 아무것도 베풀 것이 없으니 오직 言德을 잘 가지라. 말을 善하게 하면 남 잘되는 餘蔭이 밀려서 점점 큰 福이되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惡하게 하면 남 해치는 餘殃이 밀려서 점점 큰 禍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평역: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한(漢) 고조(高祖)는 소하(蕭何)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너희들은 아무것도 베풀 것이 없는지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다만 말의 덕(言德)을 잘 가져야 할지니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 사람이 먼저 잘되고 그 사람이 잘 되고 남은 음덕(陰德)이 밀려와 점점 큰 복(福)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에게 말을 나쁘게 하면 먼저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그 남은 여파(餘波)가 밀려와서 점점 큰 재앙(禍)이 되어 내 몸에 이르느니라." 하시니라.

 

六.

亨烈에게 일러 가라사대 亡하는 세간살이는 아낌없이 버리고 새 배포를 꾸미라. 만일 愛惜하게 여겨 놓지않고 붙들면 몸까지 따라 亡하나니라.

평역:선생께서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망하려는 세간살이를 아낌없이 버리고 새로운 배포를 차리라. 만일 애석하게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면 몸마저 따라서 망하게 되리니 잘 깨달으라." 하시니라.

 

七.

俚言에 禍福이라 이르나니 福보다 禍가 앞선다 함이라. 禍를 견디어 잘 받아야 福이 이어 이르나니라.

평역:속담에 화복(禍福)이라 이르나니 이것은 복(福)보다 화를 먼저 겪는다는 말이니 당하는 화(禍)를 잘 견디어 받아 넘겨야 복이 이어서 이르느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좋은 복을 내려 주어도 이기어 받지 못하면 그 복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느니라." 하시니라.)

 

八.

나는 解魔를 爲主로 하는 故로 나를 따르는 者는 모든 伏魔가 發動하나니 伏魔의 發動을 잘 받아 이겨야 福이 이어 이르나니라.

평역:나는 해마(解魔)를 위주로 함으로 나를 따르는 자는 모든 복마(伏魔)가 먼저 움직이리니 그 복마의 발동(發動)을 잘 받아 이겨야 복이 이어 이르느니라.

 

九.

俚言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이 없어야 잘산다 함이라. 사람에게 寃抑(원억)을 짓지말라. 척이 되어 報復하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神明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

평역:속담에 "무척 잘 산다." 이르나니 척이 없어야 잘산다 함이라. 그러므로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짓는 일을 하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하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만일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의 신명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

 

十.

이웃사람이 맛없는 飮食을 주어서 먹고 病들지라도 그 辭色을 내지 말라. 이도 또한 척이 되나니라.

평역:이웃 사람이 주는 맛없는 음식을 먹고 혹시 병이 생겼을지라도 내색을 하지 말라. 오는 정이 끓겨 이것도 또한 척이 되어 돌아오느니라.

 

十一.

大軍을 統御하고 敵地를 쳐들어 감이 榮則榮矣로되 人命을 死地로 驅入(구입)한 者이므로 악척이 되어 앞을 막나니라.

평역:장군이 군대를 통솔하여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일이 그 장군에게는 영화로운 일이나 수많은 사람을 죽을 곳(死地)에 몰아 넣어 상하게 함으로 그것이 나쁜 척이 되어 앞을 가로막게 되느니라.

 

十二.

나는 "生長斂藏" 四義를 쓰노니 이것이 無爲以化니라.

평역:나는 만물을 낳고 기르고 거두며 그것을 갈무리하는 네가지 의로움(義)을 행하니 이것이 함이 없이 모든 것을 이루는 조화(造化)이니라.

 

十三.

天地의 造化로도 風雨를 지으려면 無限한 공력을 들이나니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이 없느니라. 鄭北窓같은 재주로도 入山三日에 始知天下事라 하였나니라.

평역:(예로부터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말하나 이는 그릇된 말이라.) 천지의 조화로도 비와 바람을 지으려면 무한한 공력을 들여야 하나니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 북창 같은 재주로도 입산한지 삼 일만에 천하의 일을 알기 시작하였다 하였느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전해 오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는 그릇된 말이라 하시니라.)

 

十四.

모든 일을 있는 말로 지으면 天地가 부수려 하여도 못 부술 것이오. 없는 말로 꾸미면 부서질 때에 餘地가 없나니라.

평역:모든 일을 있는 말로 지으면 천지가 부수려 해도 못 부술 것이요, 만일 없는 말로 꾸미면 부서질때는 여지가 없나니라.

 

十五.

사람을 쓸 때에는 男女와 老弱의 別이 없나니 陳平은 夜出東門 女子五百人하였나니라.

평역:사람을 쓸 때에는 남녀와 노약을 구별하지 않으니 옛날에 진평(陳平)은 야밤에 동쪽문으로 여자 이천명을 움직여서 일을 이루었느니라.

 

十六.

말을 듣고 實行하지 아니하면 바위에 물주기와 같으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옳은 말을 듣고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바위에 물을 주는 것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十七.

악을 악으로 갚으면 피로 피를 씻기와 같으니라.

평역: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를 피로 씻는 것과 같느니라.

 

十八.

風亦吹而息하나니 動靜이 各히 때가 있나니라.

평역:바람이 불었다가도 그치는 것과 같이 모든 일에는 움직일 때와 그칠 때가 있느니라.

 

十九.

이제 모든 일에 成功이 없음은 血心가진 자가 없는 연고니 만일 血心만 가지면 못되는 일이 없나니라.

평역:이제 모든 일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일을 성사시키려는 굳은 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니 만일 진실로 굳은 마음만 가지면 못되는 일이 없나니라.

 

二十.

崔益賢이 淳昌에서 被擒(피금)하거늘 先生이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一心의 힘이 크니라. 同一한 彈雨下에서 林樂安은 喪命하고 崔勉菴은 全命하였으니 이는 一心의 힘에 因함이라. 一心하는 者는 一指를 彈하여 能히 萬里밖에 巨艦을 깨트리나니라.

평역:최 익현이 순창에서 체포되거늘 선생께서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일심(一心)의 힘이 크느니라. 같은 탄환속에서 임 낙안은 죽고 최 익현은 살았으니 이것은 일심(一心)의 힘에 의한 것이니라." 하시고 "일심(一心)하는 자는 한 손가락을 퉁겨서 능히 만리밖에 있는 큰 군함을 부술 수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二一.

天地間에 充塞한 것이 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神이 떠나면 마르며 흙바른 壁이라도 神이 떠나면 무너지나니라.

평역:천지간에 가득찬 것이 신이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二二.

사람이 만일 나를 치면 그의 손을 만져서 慰勞할지니라.

평역: 만일 다른 사람이 나를 때리면 그의 손을 만져서 위로 할 지니라.

 

二三.

나의 말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符節과 같이 合하나니라.

평역:나의 말은 구천에 사무쳐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아니하니 부절(符節)과 같이 합하느니라.

 

二四.

食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먹는 일을 말하지 말며 寢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陋行(누행)을 말하지 말라.

평역:식불언(食不言)이라 하였으니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침불언(寢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살림살이와 누추한 행색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二五.

내가 비록 西蜀에 있을지라도 一心하는 者에게는 찾으리라.

평역:내가 비록 서쪽 촉나라에 있을지라도 일심으로 행하는 자는 빠짐없이 찾으리라.

 

二六.

世人이 全明淑의 힘을 많이 입었나니 一結八十兩의 重稅를 三十兩으로 輕減케 한 者는 全明淑이라. 言論上이라도 그의 이름을 害하지 말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전 명숙의 은덕(恩德)을 많이 입었나니 한 결(結)에 팔십 냥이던 무거운 세금을 삼십 냥으로 낮추게 한 자는 전 명숙이라. 은연중의 말에서라도 그의 이름을 나쁘게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二七.

金秉旭에게 일러 가라사대 남은 어찌하던지 너는 全明淑의 이름을 害하지 말라. 너의 榮貴에는 全明淑의 힘이 많으니라.

평역:김 병욱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남은 어떻게 생각하던지 너는 전 명숙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너의 부귀영화에는 전 명숙의 공(功)이 많으니라." 하시니라.

 

二八.

爲天下者는 不顧家事라 하나니 諸葛亮의 不成功은 有桑 八百株로 因함 이니라.

평역: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자신의 집안 일을 돌보지 아니하나니 제갈공명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 마련해둔 뽕나무 팔백그루 때문이니라.

 

二九.

天尊과 地尊보다 人尊이 높으니 이제는 人尊時代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하늘이나 땅을 받들어 모시는 것보다 사람을 잘 대우하는 것이 높으니 이제는 사람이 하늘이나 땅보다 존귀한 시대이니라." 하시니라.

 

三十.

柳贊明에게 일러 가라사대 毁東道者는 無東去之路하고 毁西道者는 無西去之路니라.

평역:선생께서 류 찬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동방(東方)의 도(道)를 훼손하는 자에게는 동쪽으로 갈 길이 없고 서도(西道)를 훼손하는 자는 서쪽으로 갈 길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三一.

外飾을 버리고 陰德에 힘쓰라. 德은 陰德이 크니라.

평역:모든 일을 할 때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거나 겉으로 꾸미는 일을 버리고 남 모르게 덕(陰德)을 쌓는데 힘쓰라. 덕(德)은 남모르게 행한 음덕(陰德)이 크니라.

 

三二.

가장 두려운 것은 博覽博識이니라.

평역:가장 두려운 것은 넓게 보고 넓게 아는 것이니라.

 

三三.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過失이 있거든 다 생각하여 풀어 버리라. 만일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身命을 그르치나니라.

평역: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허물이 있거든 다 생각하여 하나하나 자신의 마음속으로 풀라. 만일 다 풀지 않고 하나라도 남겨두면 자신의 몸과 운명을 그르치느니라." 하시니라.

 

三四.

父親에게 말씀을 傳하시되 一生에 지은 허물을 날마다 생각하여 풀어버리시라 하시니라.

평역:선생께서 어느날 부친에게 유 칠룡을 시켜 말씀을 전하시되 "일생을 살아 오시면서 잘못된 일을 빠짐없이 기록 하소서." 하시니 선생의 부친께서 낱낱이 기록하여 올리니 선생께서 받으시고 일일이 보신 후에 불사르시면서 "이제 잘못된 과거는 다 풀렸으나 짚신을 더 삼아야 하니이다." 하시더니 선생의 부친께서는 종전대로 임자(1912)년까지 8년간을 짚신을 삼으시니라.

 

三五.

마음은 聖人의 바탕으로 딱고 일은 英雄의 韜略(도략)을 取하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을 할 때에는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하시니라.

 

三六.

天地안에 있는 말은 하나도 거짓말이 없나니라.

평역: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말은 하나도 거짓말이 없다." 하시니라.

 

三七.

色은 사람의 精氣를 耗散케 하는 것이니 볼 때에 익히 보고 마음에 두지 말라.

평역:박 공우가 선생을 모시고 태인읍을 지날 때 한 젊은 여자가 지나가거늘 공우가 체면상 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가 그 모습을 잊지 못하니 선생께서 아시고 이르시기를 "여자는 남자의 정기를 소모하게 하는 것이니 이 뒤로는 볼 때에 익히 보고 마음에 두지 말라." 하시니라.

三八.

大人의 말은 九天에 사무치나니 나의 말은 한 마디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인(大人)의 말은 구천(九天)에 사무치나니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니 잘 믿으라." 하시니라.

 

三九.

뱀도 人薦을 얻어야 龍이 되나니 남에게 말을 좋게 하면 德이 되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뱀도 인간이 용이라고 불러주는 신망(信望)을 얻어야 용이 되느니 남에게 말을 좋게 하면 덕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四十.

모든 일을 알기만 하고 取舍를 못하면 모르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 될 일을 못되게 하고 못될 일을 되게 하여야 하느니라. 孫賓의 재주는 龐涓(방연)으로 하여금 暮至(모지)馬陵케 하는데 있고 諸葛亮의 재주는 曺操로 하여금 華容道에 만나게 함에 있나니라.

평역:모든 일을 알기만 하고 변통하여 쓰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리라. 그러므로 될 일을 못되게 하고 못 될 일을 되게 하여야 하나니 손빈(孫賓)의 재주는 방연(龐涓)으로 하여금 마능(馬陵)에서 죽게 하는데 있고 제갈량(諸葛亮)의 재주는 조조(曺操)로 하여금 화용도(華容道)에서 관운장(關雲長)을 만나게 함에 있느니라.

 

四一.

나의 일은 남 죽을 때에 잘살자는 일이오. 남 살 때에는 榮福을 누리자는 일이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남이 죽을 때 잘 살자는 일이요. 남이 잘 살 때에는 영화와 복록을 누리자는 일이니라." 하시니라.

 

四二.

術數는 三國時節에 나서 解寃치 못하고 이제야 비로소 解寃되나니라.

평역:술법(術法)은 삼국시절에 나서 해원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해원 하느니라.

 

四三.

三生의 緣이 있어야 나를 쫓으리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생(三生)의 인연(因緣)이 있어야 나를 따르리라." 하시니라.

 

四四.

韓信이 漢高의 推食而食과 脫衣而衣를 感激하여 ■徹(괴철)의 言을 쓰지 아니하였으니 韓信이 漢高를 저버림이 아니오. 漢高가 韓信을 저버림이니라.

평역:한신(韓信)이 한(漢)고조(高祖)가 자기의 밥을 밀어 주어 먹이고 (推食食之) 자기의 옷을 벗어 입혀준(脫衣衣之) 은혜에 감격하여 괴철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한신이 한 고조를 저버린 것이 아니요 한 고조가 한신을 저버린 것이니라.

 

四五.

東學歌詞에 새 기운이 박혔으니 말은 蘇張의 辯이오. 알음은 康節의 知識이오. 글은 李杜의 文章이 있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학가사(東學歌詞)에는 세가지 기운이 박혀 있으니 동학가사속의 말은 소진(蘇晋), 장의(張儀)의 웅변이요, 앎은 강절(康節)의 지식이며, 글은 이백(李白), 두보(杜甫)의 문장이니라." 하시고 "잘 생각하여 보라." 하시니라.

 

四六.

現代에 許多한 主義로 許多한 團體를 모임은 秋成 後에 五穀을 거두어 結束함과 같으니라.

평역:이제 동서양이 교류하여 여러가지 주장을 내세우는 주의(主義)와 수 많은 단체들이 생기나니 이것은 성숙된 가을에 오곡을 거두어 결속하는 것과 같으니라.

 

四七.

天下事는 生死兩道에 그치나니 우리의 不斷努力은 하룻밤 세 때 벌이 하는 일이니라.

평역:천하의 모든 일은 결국 살고 죽는 두가지 길로 끝맺음을 하나니 우리가 쉴 새없이 서둘러 노력하는 것도 알고 보면 하루에 밥 세끼 벌이로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니라.

 

四八.

富貴한 者가 貧賤을 즐기지 아니하며 剛强한 者가 柔弱을 즐기지 아니하며 知慧로운 者가 어리석음을 즐기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貧賤하고 病들고 어리석은 者가 내 사람이 되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천(賤)하고 가난한 것을 즐기지 아니하며 강한 자는 약한 것을 즐기지 아니하며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즐기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가난하고 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내 사람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四九.

나를 모르는 者가 나를 험담하나니 내가 험담으로써 갚으면 나는 더욱 愚劣(우열)한 者가 되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모르는 자가 항상 나를 헐뜯나니 내가 만일 같이 그 사람을 헐뜯어서 그것을 갚으려 하면 나는 더욱 어리석고 용렬한 자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트집을 잡고 싸우려는 사람에게 마음을 누그러트리고 지는 사람이 상등 사람이고 복된 사람이요, 분에 이기지 못하여 어울려 싸우는 자는 하등사람이니 신명의 도움을 받지 못하리라.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하시니라.)

 

五十.

한 사람의 寃恨이 天地를 閉塞(폐색)하나니라.

평역:한 사람이 품은 원한으로도 능히 천지의 기운을 막게 할 수 있느니라.

 

五一.

남의 誹笑를 匕首로 알며 남의 嘲笑를 潮水로 알라. 大將이 匕首를 얻어야 敵陣을 헤치며 龍이 潮水를 얻어야 天門에 오르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이 나를 비웃는 웃음(誹笑)을 날카로운 비수(匕首)로 알며, 남이 나를 조소(嘲笑)하는 것을 조수(潮水)로 알라. 대장이 비수를 얻어야 적진을 헤치고 다닐 것이며 용이 물을 얻어야 하늘에 오르느니라." 하시니라.

 

五二.

이때는 解寃時代라 사람도 無名한 사람이 氣勢를 얻고 땅도 無名한 땅에 吉運이 돋나니라.

평역:이제는 해원시대라. 사람도 이름없던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이름없던 땅에 좋은 운이 돋느니라.

 

五三.

寶貨라는 글자에 狼狽라는 貝字가 붙어 있나니라.

평역:보화(寶貨)라는 글자 속에는 낭패(狼狽)의 패(貝)자가 들어 있느니라.

 

五四.

車京石이 前過를 생각하여 甚히 근심하거늘 先生이 일러 가라사대 일 즉 모든 허물을 생각하여 일일이 풀어버리라 하였는데 어찌 이제까지 남겨두었느냐. 今後로는 다시 생각지 말라.

평역:차 경석이 과거의 잘못을 생각하여 매우 근심하거늘 선생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일찌기 모든 허물을 낱낱이 생각하여 풀어버리라고 하였는데 어찌 지금까지 남겨 두었느냐. 앞으로는 다시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라.

 

五五.

亨烈이 여쭈어 가로대 世人이 先生을 狂人으로 여기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前日에 거짓말로 行世할 때 에는 神人이라 呼稱하더니 이제 참말을 하니 오히려 狂人으로 아는도다.

평역:형렬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세상 사람들이 선생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난날에 내가 거짓으로 행세할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신인(神人)이라 부르더니 참으로 행하는 오늘 날에는 오히려 미친 사람으로 아는구나." 하시니라.

 

五六.

일꾼 된 者 마땅히 씨름하는 法을 본 받을지니 씨름판에 뜻 둔 者는 판 밖에서 술과 고기를 많이 먹고 기운을 잘 길러 끝판을 노리고 있나니라.

평역:공사의 일꾼 된 자는 마땅히 씨름하는 법을 본 받을지니 씨름판에 뜻을 두는 자는 반드시 판 밖에서 음식을 충분히 먹고 기운을 잘 길러 끝판을 노리고 있느니라.

 

五七.

東學歌詞에 일렀으되 "제 소위 推理한다고 생각하나니 그 뿐이라"하였나니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기를 싫어함은 疑惑이 增長하는 연고니 이곳은 곧 仙房이니라.

평역:동학가사에 이르기를 "제 소위 추리한다고 생각하나 그 뿐이라." 하였으니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기 못하는 것은 의문이 더하는 까닭이니 이곳이 곧 신선들이 모인 자리니라.

 

五八.

或이 年事를 묻자 가라사대 七山바다에 고기잡이도 먹을 사람을 定하여 놓고 잡히나니 農事도 또한 먹을 사람을 定하여 놓고 될지라. 그러므로 굶어 죽지는 아니하리라.

평역:어떤 사람이 한 해의 일을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칠산 앞바다에 잡히는 고기도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잡히고 농사도 또한 그와 같이 먹을 사람을 정하여 놓고 되는 것이니 굶어 죽지는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五九.

여러 從徒들이 道術을 가르쳐 주시기를 請하자 가라사대 이제 가르쳐 줄지라도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서 바위에 물주기와 같으리니 쓸 때에 열어 주리라.

평역:여러 종도들이 도술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자 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항상 도술을 배우기를 원하나 지금 가르쳐 주어도 그것은 바위에 물주기와 같아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모두 밖으로 흘러가리니 필요할 때가 되면 열어주리니 마음을 부지런히 닦는데 힘쓸지니라." 하시니라.

 

六十.

或이 先生을 毁謗(훼방)하되 종이만 보면 四肢를 못쓴다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일러 가라사대 내가 辛未生이라. 通俗에 未를 羊이라 하나니 羊은 종이를 잘 먹나니라.

평역: 어떤 사람이 선생께서 일정한 법을 따라 공사를 보시지 않고 주로 종이를 많이 쓰시므로 비방하여 말하기를 "종이만 보면 사지를 못 쓴다." 하거늘 선생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신미년생이고 속설에 미(未)를 양(羊)이라 하나니 양(羊)은 종이를 잘 먹느니라." 하시니라.

 

六一.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들이 이제는 이렇게 親熟하되 後日에는 눈을 거듭 뜨고 바로 보지 못하리니 마음을 바로 가지고 修煉을 잘하라. 東學歌詞에 "많고 많은 저 사람에 어떤 사람 그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가"라 함과 같이 歎息줄이 절로 나오리라.

평역:선생께서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지금은 이렇게 나에게 친숙하게 따르나 훗날에는 눈을 떠서 바로 보지 못할지니 마음을 바로 잡고 수련을 잘하라." 동학가사에 "많고 많은 저 사람중에 어떤 사람 그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가." 라 함과 같이 탄식줄이 절로 나오리라.

六二.

或이 말하되 甑山은 진실로 폭 잡기 어렵다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사람이 마땅히 폭 잡기 어려워야 할지니 만일 폭을 잡히면 凡俗에 지나지 못하니라.

평역:어떤 사람이 선생께서 공사하신 일을 두고 말하기를 "증산(甑山)께서 하시는 일은 참으로 폭 잡기 어렵다." 하거늘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대인의 일은 마땅히 폭을 잡기 어려워야 할지니 만일 폭을 잡힌다면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六三.

東學歌詞에 일렀으되 "運數는 길어지고 燥渴은 暫時로다"하였으니 志道者의 明鑑이니라.

평역:동학가사에 이르기를 "운수는 길어가고 목이 타는 것은 잠시로다." 하였으니 이것은 도에 뜻을 둔 사람들의 거울이니 잘 기억하여 두라 하시니라.

 

六四.

大學에 일렀으되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卽近道矣라"하였으며 "其所厚者에 薄하고 其所薄者에 厚하면 未之有也라"하였으니 일꾼 된 者의 名鑑이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대학에 이르기를 "모든 만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또 모든 일에 시작과 마침이 있으니 그 먼저 할 바와 나중에 할 바를 알면 도에 가까워 지리라." 하였고 "그 후하게 대해야 할 곳에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해야 할 곳에 후하게 할 사람이 있지 않으리라." 하였으니 일꾼 된 사람들의 귀감이라 하시니라.

 

六五.

自古로 上通天文과 下察地理는 있었으나 中通人義는 없었나니라.

평역:옛적부터 상통천문과 하찰지리는 있었으나 중찰인의는 없었나니라.

 

六六.

魏徵은 밤이면 上帝를 섬기고 낮이면 太宗을 도왔다 하거니와 나는 사람의 마음을 빼었다 찔렀다 하노라.

평역:위징(魏徵)은 밤이면 상제(上帝)를 섬기고 낮이면 당(唐) 태종(太宗)을 도왔다 하거니와 나는 사람의 마음을 빼었다 넣었다 하노라.

 

六七.

近俗에 童蒙에게 通鑑을 읽히는 風習이 盛行하나니 이는 初入을 是非로써 여는 것이라 어찌 該當하리오.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근래 풍습에 어린 학동들에게 통감(通鑑)을 읽히는 풍습이 성행하고 있으나 이것은 첫 공부부터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르치는 것이니 어찌 마땅하리오." 하시니라.

 

六八.

生有於死하고 死有於生하나니 나를 따르는 者는 먼저 亡하고 들어서야 하나니라.

평역: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아 비롯되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아 비롯하나니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망하고 들어서야 하느니라.

六九.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나니라.

평역:생각에서 또 생각이 나오느니라.

 

七十.

罪는 남의 天倫을 끓는 것보다 더 큰 者가 없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죄는 남의 천륜을 끓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나니라." 하시고 (다시 이르시기를 "유부녀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어긋나게 함이니 죄가 워낙 크므로 내가 관여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七一.

이제 모든 先靈神이 發動하여 그 善子善孫을 모든 척神의 손에서 빼았아 덜미를 쳐서 내 세우나니라.

평역: 이제 각 성의 선령신들이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그 자손들중에서 착한 이들을 모든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내세우리니 힘써 마음을 닦을지니라.

 

七二.

俚言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이르나니 淵源을 잘 바르게 하라.

평역: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속담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도의 연원(淵源)을 바르게 하라." 하시니라.

 

第 九 章 開闢과 仙境

一.

先生이 가라사대 이제 混亂無倫한 末代의 天地를 改造하여 새세상을 열고 否劫에 沈淪한 人神을 廣度하여 各히 安定을 누리게 하리니 往古에 未曾有라. 舊宗의 繼紹(계소)도 아니며 前聖의 祖述고 아니오.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라. 譬喩(비유)컨데 父母가 모은 財産을 恒常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빛이 쳐다보임과 같이 쓰러진 집을 支住하려면 顚覆의 患이 따름과 같이 남의 지은 것과 낡은 것을 그대로 쓰려면 不安과 危■(위구)가 追隨하나니 그러므로 새 배포를 꾸미는 것이 옳으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혼란하고 인간의 윤리가 땅에 떨어진 말세를 당하여 내가 하늘과 땅을 개조(改造)하여 새 세상을 열고 겁화(劫火)에 쌓인 사람과 신(神)을 널리 제도(濟度)하여 모두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라. 나의 일은 옛 종교의 소명을 이어받아 계속하는 것도 아니며 옛 성인들이 말한 바도 아니며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라. 비유컨데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항상 얻어 쓸 때마다 얼굴빛이 쳐다보임과 같이 쓰러진 집을 지탱하여 그대로 살려면 무너질 염려가 있으므로 늘 불안하여 살기 어려운 것과 같이 남이 지어 놓은 것과 낡은 것을 그대로 쓰려면 불안과 위태함이 따라 드나니 그러므로 새 배포를 꾸미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二.

대저 판 안에 드는 法으로 일을 꾸미려면 世間에 들켜서 阻止(저지)를 받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남 모르는 法으로 일을 꾸미는 것이 完全하니라.

평역: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대개 판 안에 있는 법으로 일을 꾸미려면 세상사람의 이목에 저해(沮害)를 받게 되느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남 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는 것이 완전하니라." 하시니라.

 

三.

巨細事를 勿論하고 神道로써 理化하면 玄妙不測之功을 얻나니 이것이 곧 無爲而化라. 이제 神道를 調和하여 모든 일을 道義에 典則하여 無窮한 仙境의 隆運을 定하리니 제 度數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過去에 壬辰靖亂의 責을 崔風憲이 當하였으면 三日 일에 不過하고 震默이 當하였으면 三朔을 넘지 않고 宋龜峯이 當하였으면 八個月에 풀으리라 하시니 이는 仙佛儒의 法術이 相異함을 이름이라. 古代에는 판이 적고 일이 簡單하여 한가지만 專用하더라도 能히 亂局을 바르게 할 수 있거니와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複雜하여 諸法을 混用하지 않고는 能히 混亂을 풀지 못하느니라.

평역: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신도(神道)로써 그 일을 다스리면 현묘(玄妙)하고 헤아릴수 없는 공(功)을 이루게 되나니 이것이 곧 행함이 없는 조화(無爲而化)라. 내가 이제 신도(神道)를 조화하여 모든 일을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와 의로움(道義)에 맞추어서 무궁한 신선세계의 운수를 정하리니 모두들 제 도수(度數)가 돌아 닿는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지난 임진왜란을 최 풍헌이 맡아 감당하였으면 사흘을 넘기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진묵이 맡았다면 석 달을 넘지 않았을 것이요, 송 구봉이 당하여 맡았으면 여덟 달만에 난(亂)을 평정하였으리라."하시니 이는 유불선(儒,佛,仙)의 법술이 다름을 말씀하신 것이라. 옛날에는 판이 좁고 일이 간단하여 한가지만 써도 능히 혼란을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여 모든 법을 함께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풀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시니라.

 

四.

先天에는 相克之理가 人間事物을 司配함으로 모든 人事가 道義에 일그러져 寃恨이 맺히고 쌓여 三界에 充滿하여 마침내 ■氣(여기)의 衝發을 이루어 人世의 모든 慘災가 생기나니라. 그러므로 이제 天地度數를 釐正(이정)하며 神明을 調和하여 萬古의 원을 풀고 相生의 道로써 仙境을 열고 造化道場을 세워 無爲之化와 不言之敎로 化民靖世 할지니라. 무릇 머리를 들면 條 理 가 펴임과 같이 人倫記錄의 原始요 寃의 처음인 堯子 丹朱의 깊은 寃을 풀면 그 以下 數千年동안 쌓여 내리는 一切의 寃이 마디와 고가 풀릴지라. 大抵 丹朱로써 不肖히 여겨 堯가 二女를 舜에게 降하고 드디어 天下를 禪함에 丹朱는 깊이 寃을 품어 그 憤鬱之氣의 衝動으로 마침내 舜이 蒼梧에서 崩하고 二妃가 潚湘에 빠지는 慘事를 이루었나니 이로부터 寃의 뿌리가 깊이 박히어 世代의 推移를 따라 더욱 發達하여 드디어 天地에 充塞하고 人世를 爆破함에 이르렀나니 그러므로 丹朱解寃으로 爲首하여 모든 澄淸(징청) 天下의 大志를 懷抱하고 時不利로써 飮恨하여 九族滅夷의 慘禍를當하고 無依無托하여 千載飄零(천재표영)하는 萬古逆神을 第二로하여 各히 寃柱를 풀어 或은 行爲를 審理하여 曲解를 바르게 하며 或은 安托을 붙여 永遠히 安靜을 얻게 함이 곧 仙境建設의 初步니라.

평역: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상극(相剋)의 이치가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맡아봄으로 모든 인간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와 의로운 일들이 일그러져 원한이 맺히고 쌓여 하늘과 땅과 사람사는 세상(三界) 모두에 꽉차게 되고 마침내 그 사나운 기운들이 충돌을 일으켜 인간세상의 모든 참혹한 재해들이 생겼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천지의 도수(度數)를 바르게 개정(改正)하며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을 풀고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仙境)을 열고 조화세계를 세워 행함이 없는 조화(無爲之化)와 말없는 가운데 가르침(無言之敎)으로 사람을 새롭게하고 세상을 다스릴지니라. 무릇 머리를 똑바로 들면 앞뒤가 바로 펴이는 것과 같이 인간 윤리에 관한 기록의 시작이며 원한의 첫머리인 요 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의 깊은 원한을 풀면 그 아래 수천년 동안 쌓여 내려온 모든 원한의 실마리와 어려움이 풀릴지라. 옛날에 요 임금이 자신의 아들 단주(丹朱)가 못나고 어리석다고 여겨 자신의 두 딸을 순 임금에게 주고 마침내 천하를 물려 주었으므로 단주는 마음속 깊이 원한을 품게되고 그 한 맺힌 기운의 충동으로 인하여 마침내 순임금이 창오(蒼梧)에서 죽고 순 임금의 두 왕비가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되었으니 이로부터 원한의 뿌리가 깊이 박히어 세상이 돌아가는 형세를 따라 원한이 더욱 발달하여 퍼지고 퍼져서 드디어 천지에 꽉 차게되고 이제는 인간세상이 원한으로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나니 그러므로 단주의 원한을 푸는 것을 시작의 첫머리로 하고 맑고 깨끗한 큰 뜻을 품고 세상을 바꾸려다가 시기를 잘못 타서 구족이 멸문 당하는 화를 당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떠도는 모든 만고역신들을 해원하는 것을 두번째로 하여 각자 원한의 뿌리를 풀게 하리니 때로는 그 행한 바를 심사하여 잘못 알려진 오해(誤解)를 바르게 하여주며 때로는 편안히 머물 곳을 붙여주어 의지할 곳 없는 신명들이 영원한 안정을 얻게 하는 것이 곧 신선세계 건설의 기초이니라" 하시니라.

五.

元來 逆神은 곧 時代와 機會의 所使라. 그 懷抱를 이루지 못하여 寃恨이 漲天(창천)하거늘 世人은 事理를 善解치 못하고 그들을 疾視하여 類似없는 惡評을 加하여 日常用語에 凶惡의 首로 稱道하니 逆神은 此를 嫌惡하므로 萬物中에 無是非한 星宿로 붙여 보내리라. 하늘도 明天과 老天의 是非가 있고 날도 水旱의 是非가 있고 땅도 厚瘠(후척)의 是非가 있고 때도 寒署의 是非가 있으되 오직 星宿는 是非가 없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원래 역신(逆臣)이란 그 시대와 기회의 산물이라. 역신들이 그들의 뜻을 살아서 이루지 못하여 원한이 하늘에 가득 맺혀 있거늘 세상사람들은 그 일의 이치를 좋게 해석하지 못하고 그들을 밉게 보아서 나쁘게 평하며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말에서도 흉악한 사람들의 으뜸으로 여기니 모든 역신들은 이것을 매우 싫어하므로 내가 그들을 만물중에서 가장 시비(是非)가 없는 별자리로 그 역신들을 붙여 보내리라. 하늘도 옛 하늘과 새 하늘의 시비가 있고 땅도 비옥하고 척박함의 시비가 있으며 날도 가물고 물이 넘쳐 홍수를 이루는 시비가 있으며 때도 춥고 더운 시비가 있으나 오직 별자리는 시비(是非)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六.

大盖 예로부터 各地域을 割據하는 모든 族屬의 紛■(분운)爭鬪는 地運의 不統一로 因함이라. 그러므로 山河의 大運을 統一함이 人類和平의 原動이 되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의 기운이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각 지역에 나뉘어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제각기 자기네 삶의 터전에 맞게 이루어진 사상을 제각각 옳다고 주장함으로 생각이 엇갈려 서로 반목 투쟁 하고 있으므로 산하의 큰 기운을 통일함이 인류평화의 원동력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七.

全州 母岳山은 淳昌 回文山과 對立하여 屹然히 父母山(卜書에 文은 父로 通用함)이 되었으니 父母는 一家의 長으로 家族을 養育統率하는 義가 有함과 如히 地運을 統一하려면 父母山으로써 宗主를 삼을지라. 이제 母岳山을 爲主로 하여 回文山 五仙圍碁를 應氣하고 拜禮 밖 君臣奉詔(泰仁)와 僧達山 胡僧禮佛(務安)과 巽龍 仙女織錦(長城)의 氣靈을 統合하여 此로써 本宗을 삼아 大地의 鍾靈을 集中 할지니 弓乙歌에 일렀으되 "四明堂이 更生하니 昇平時代 不遠이라"하였나니 이를 이름이니라.

평역:선생께서 땅의 지기(地氣)를 뽑는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전주 모악산은 순창 회문산과 마주하여 부모산이 되었으니 부모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을 기르고 교육하고 통솔하는 의무가 있음과 같이 땅의 기운을 통일하려면 먼저 부모산으로부터 비롯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이제 전주 모악산을 그 근본 기둥으로 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혈을 응기하고 태인 배례밭(拜禮田) 군신봉조혈과 무안 승달산 호승예불혈과 장성 손룡(巽龍)의 선녀직금혈의 지기(地氣)을 모두 뽑아 모아서 이로써 밑자리로 삼아 땅에 모여있는 지기(地氣)를 집중할지니 궁을가에 말하기를 "사명당이 다시 살아나니 후천시대가 멀지 않다." 하였나니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八.

先天에는 威武로써 勝寶를 삼아 福利와 榮貴를 이 길에서 求하였나니 이것이 相克의 遺傳이라. 아무리 利器라도 쓸곳이 없으면 廢棄한 바 되고 卑劣한 것도 쓸 곳이 있으면 取한 바 되나니 이제 西來武器의 暴威에는 짝이 틀리어 對伍할 것이 없으리니 戰爭은 將次 終局을 告하리라. 그러므로 모든 武術과 兵事를 멀리하고 비록 卑劣한 일이라도 醫統을 알아 두라. 人命을 많이 救活하면 報恩줄이 찾아들어 永恒의 福을 얻으리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위엄(威嚴)과 무기를 승부로 삼아 복과 영화를 이 길에서 구하였나니 이것이 상극이 대대로 유전(遺傳)되어 내려 온 까닭이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쓸 곳이 없으면 버리는 것이 되고 비록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할지라도 쓸 곳이 있으면 취해서 쓰게 되는 것과 같이 이제 서양에서 건너온 무기의 위력에는 그 대적 할 것이 없으니 전쟁은 장차 끝을 마감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든 무술과 병법을 멀리하고 비록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의통(醫統)을 알아두라. 사람을 많이 구해 살리면 은혜에 보답하는 보은(報恩)줄이 찾아들어 영원한 복을 얻으리라." 하시니라.

 

九.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 물샐 틈 없이 짜 놓았으니 제 限度에 돌아 닿는 대로 新機運이 展開 할지니라. 또 神明으로 하여금 사람의 腹中에 出入케 하여 그 體性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木石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이 되는 연고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賤하고 弱한 것을 편히 하여 心口意로 부터 일어나는 모든 罪를 조심하고 사람에게 척을 짓지 말지어다. 富하고 貴하고 知慧롭고 强權을 가진 者는 모든 척에 걸리어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묵은 氣數가 채워져 있는 곳에 大運을 堪當키 不能한 所以라. 富豪家의 府庫와 廳舍에는 殺氣와 災殃이 가득히 채워져 있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늘도 뜯어 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서 물샐 틈없이 도수(度數)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限度)에 돌아 닿는대로 새로운 기틀이 열리리라. 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하게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 이것은 비록 목석(木石)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새가 있게 되는 까닭이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천하고 약한 것을 편하게 생각하여 마음과 입과 뜻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죄를 조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척을 짓지 말지어다. 부유하고 귀하고 지혜롭고 강한 권력을 가진 자는 모든 척에 걸리어 콩나물 뽑히듯이 하리니 묵은 기운이 채워져 있는 곳에는 큰 운수(運數)를 감당하기 어려운 까닭이라. 부자의 집 마루와 방과 창고에는 살기와 재앙으로 가득 차있나니라." 하시니라.

 

十.

元來 人間에서 하고 싶은 일을 行치 못하면 憤통이 터져서 大病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各히 自由行動에 맡기어 먼저 亂道를 지은 後에 眞法을 내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詐僞는 모든 罪의 근본이오. 眞實은 萬福의 根源이라. 이제 神明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히어 邪正을 勘定(감정)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詐僞를 甘行하는 者는 至氣가 돌 때에 心膽이 破裂하고 骨節이 錯遠하리라. 運數는 좋다마는 목 넘기가 어려우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원래 인간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이 걸리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자 자신의 책임에 맡기어 자유롭게 행동하게 하리니 먼저 난법(亂法)을 먼저 지은 후에 진법(眞法)을 내리리니 너희들은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罪)의 근본이요, 진실은 모든 복의 근원이라. 이제 내가 신명으로 하여금 각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살피게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거짓과 바른 것을 판별하여 정하게 한 후에 번갯불에 붙여 심판하리니 마음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하늘의 지극한 기운(至氣)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 나가리라. 운수(運數)는 좋다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十一.

西洋人 利瑪竇가 東洋에 來하여 天國을 建設하려고 여러 가지 意圖를 發하였으나 容易히 모든 痼■(고폐)를 고치고 理想을 實現키 不能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天上과 地下의 境界를 開放하여 예로부터 各히 境域(경역)을 固據(고거)하여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神明으로 하여금 서로 交通케 하고 그 死後에 東洋의 文明神을 引率하고 西洋에 歸하여 다시 天國을 建設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地下神이 天上에 올라 모든 妙法을 본받아 내려 사람에게 慧竅(혜규)를 열어주어 人世의 모든 文化와 利器를 啓發하여 天國의 模型을 본 뜨나니 이것이 現代의 文明이라. 그러나 이 文明은 다만 物質과 事理에 技藝를 精極하였을 뿐이오 實際로는 도리어 人類의 驕肆(교사)와 殘暴을 增長하여 悖法과 非義로 天道에 抗爭하며 自然을 征服하려는 氣勢를 呈하여 傲天(오천)과 慢神이 極에 達하니 이에 神威가 墜失하고 三界가 混亂하여 天道와 人事가 常度를 어김으로 元始의 모든 神聖 佛菩薩이 會合하여 三界의 混亂과 神人의 否劫을 悲悶하여 救治의 急을 九天에 呼■(호유)함으로 내가 이에 西洋 大法國 天階塔에 降하여 三界를 周視하고 天下에 大巡하다가 釋迦牟尼의 當來佛讚歎說偈에 爲據하여 僧 眞表가 當來의 秘音을 感通하고 母岳山 金山寺에 金身을 建하여 至心祈願하여 오던 곳에 止하여 三十年을 지내면서 崔濟愚에게 天命과 神敎를 내려 大道를 首唱케 하였으나 崔濟愚가 能히 儒門의 舊型을 超越하고 眞法을 闡明(천명)하여 이로써 神人의 表極을 지으며 大道의 眞光을 열지 못함으로 드디어 甲子에 天命과 神敎를 거두고 當 에게 人民攝護의 命을 붙인 後 辛未에 스스로 人世에 降하였노라.

평역:서양인 마테오리치(利瑪竇)가 동양으로 와서 지상천국을 건설하려고 하였으나 오랬동안 뿌리내린 유교의 고질적인 폐습(弊習)을 쉽게 고치지 못하여 이상(理想)을 실현하지 못하고 뜻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境界)를 개방하여 예로부터 자신들의 지역만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고 머무르던 신명(神明)으로 하여금 서로 왕래하게 하였느니라.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는 동양의 문명신을 인솔(引率)하고 다시 서양으로 돌아가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들이 천상으로 올라와서 천국의 모든 묘법(妙法)을 본받아 내려 사람들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그것을 세상에 베풀수 있게 하니 오늘날 발달한 현대의 문화와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모두 천국의 모형을 본 뜬 것이라. 그러나 이 현대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물의 이치에만 그 재능을 정통할 뿐이요, 실제로는 도리어 인간의 교만방자함과 잔혹한 폭력심만을 늘이고 키워서 어그러진 법도와 불의(不義)로 하늘의 도(道)를 거부하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를 드러내어, 하늘을 업신여기고 신(神)을 기만함이 극한에 달하니 이에 신(神)의 위엄이 추락하고 천,지,인 삼계(三界)가 혼란해져서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度數)를 어기니, (이에 마테오 리치(利瑪竇)와 원시(元始)의 모든 신(神)들과 성인(聖人), 부처와 보살들이 함께 모여 삼계의 혼란과 신과 인간계에 닥친 겁액(劫厄)을 매우 걱정하며 그것을 바로 다스려 구원(救援)하는 것이 시급함을 구천(九天)에 하소연함으로 내가 이에 서천 서역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서 삼계를 주시(注視)하고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오래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석가모니의 당래불찬탄설게(當來佛讚歎說偈)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계시(啓示)를 깨달아 듣고 모악산 금산사에 미륵불을 조성(造成)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불이 이 땅에 강림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여 오던)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삼십년년을 지내면서 최제우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세상을 구원할 큰 도(大道)를 앞장서서 펼치게 하였으나 최 제우가 능히 유교(儒敎)의 낡은 가르침을 초월하여 신과 인간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바 진법(眞法)을 지어 세상에 펴지 못하고, 대도(大道)의 참 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년(甲子年,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辛未年,1871年)에 스스로 인간세상에 내려 왔노라.

 

一二.

後天에는 天下一家하여 威武와 刑 (형벽)을 不措(부조)하고 造化로써 衆生을 理化할지니 居官者는 職位를 隨하여 化權이 열림으로 逾分僭越(유분참월)의 弊가 없고 住民은 寃恨, 克虐, 貪淫, 瞋痴와 모든 煩惱가 그침으로 聲音笑貌에 平和가 洋溢(양일)하고 動靜語默이 道德에 合致하며 衰病死葬을 免 하여 不老不死하며 貧富의 差別이 廢하고 美味와 珍衣가 所要를 隨하여 寶盒(보합)에 化現하며 모든 일은 自由慾求에 應하여 天神이 隨從하며 雲車를 타고 碧空에 飛翔하여 適遠涉險의 具에 用하고 天門이 나직하여 升降이 自在하며 知見이  澈하여 過去未來現在十方世界의 一切事를 通達하며 水火風三災가 屛跡하여 禎祥이 무르녹아 淸和明麗의 樂園으로 化하리라.

평역:후천에는 세상이 모두 한 집안이 되어 위엄이나 무력 그리고 형벌을 쓰지 않고 조화(造化)로써 사람들을 가르쳐 교화(敎化)하리니, 벼슬하는 자는 그 직위에 맞게 조화의 권능이 열림으로 자신의 직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들은 원한과 상극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어리석고 탐내고 음란하고 화내는 모든 번뇌가 그침으로 얼굴과 말(言)에 평화로움이 가득 할 것이며, 모든 행동과 말이 도덕에 합하며 병들어 약해지고 죽어 묻히는 것이 없어져서 늙지 않고 죽지 않을 것이며, 빈부의 차별이 없어지고 좋은 음식과 옷이 그 바라는 대로 나타날 것이며, 모든 일은 원하는 대로 천신(天神)이 따라와 돌보아 줄 것이며, 구름을 타고 먼 곳이나 험한 곳 어느 곳이나 갈 것이며, 하늘이 낮아져서 오르고 내리는 것을 뜻대로 하며, 지혜가 밝아져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시방(十方)세계의 모든 일에 통달하며, 세상에는 물과 불과 바람에 의한 세가지 재해(災害)가 없어져서 상서러운 서기(祥瑞)가 무르녹는 맑고 밝으며 평화롭고 수려한 낙원으로 변화하리라.

 

一三.

蚩尤(치우)作亂하여 大霧를 지음으로 黃帝가 指南車로써 定하였나니 作亂者도 造化요 靖亂者도 造化라. 崔水雲은 動世를 맡았고 나는 나는 靖世를 맡았나니 全明淑의 動은 곧 天下의 亂을 動케 하였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치우천왕이 큰 안개를 지어 어지러움을 만드니 황제가 지남거(指南車)로써 안정시켰나니 세상에 난(亂)을 짓는 사람도 조화요, 난(亂)을 다스리는 자도 조화라. 최 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으니 난을 짓는 사람이요,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으니 난을 다스리는 사람이라. 갑오년에 일어난 전 명숙의 동학 농민전쟁이 곧 천하의 난(亂)을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一四.

이때는 天地成功時代라. 西神이 司命하여 萬有를 宰制하여 衆理를 集而大成 하나니 이른바 開闢이라. 萬物이 가을바람에 或 凋落도 되고 或 成熟도 됨과 같이 참된 者는 碩果를 얻어 其壽 永昌할 것이오, 거짓된 者는 凋落(조락)하여 길이 滅亡할지라. 그러므로 或 神威를 떨쳐 不義를 肅正하고 或 仁愛를 베풀어 義人을 돕나니 生을 求하는 者와 福을 求하는 者는 힘쓸지어다.

평역:이 때는 천지가 성공하는 시대라.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서신(西神,金神)이 명(命)을 주재(主宰)하여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開闢)이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은 말라 떨어지고 혹은 성숙(成熟)하는 것과 같이 참된 사람은 큰 열매를 얻어 영원토록 살아갈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威嚴)을 떨쳐 의롭지 못한 모든 것들을 엄격히 바로잡기도 하며 혹은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들을 돕기도 하나니 삶을 구하는 자와 복을 구하는 사람은 힘쓸지어다.

 

一五. (원본에 누락)

 

一六.

神農氏가 耕農과 醫藥을 가르침으로부터 天下가 그 厚澤을 입어왔으나 그 功德을 仰慕하여 報答치 않고 姜太公이 除殘禁暴의 妙略을 傳授함으로부터 天下가 그 德을 입어 왔으나 그 功德을 仰慕하여 報答치 아니하니 어찌 道義에 合하리요. 이제 解寃時代를 當하여 모든 神明이 神農과 太公의 恩惠를 報答하리라.

평역:신농씨가 온갖 풀 맛을 보아 의약을 짓고 그리고 농사짓는 법을 천하에 가르치시어 천하가 그 후한 은덕(恩德)을 입어 왔으나 그 공덕에 기려 보답하지 않고 약방에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 써 붙일 뿐이요. 강 태공이 백성들을 다스릴 때 폭력 없이 어짐으로 다스리는 묘법을 전수(傳授)하여 천하가 그 덕을 입어 왔으나 그 공덕을 기려 보답하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강태공 조작(造作)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리에 맞으리요.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모든 신명들이 신농씨와 강태공의 은혜에 보답하게 하리라.

 

一七. (원본에 누락)

 

一八.

勇力術을 배우지 말라. 汽車輪船으로 百萬斤을 運輸하리라. 縮地術을 배우지 말라. 雲車를 타고 御風而行하여 萬里之遠을 頃刻에 達하리라.

평역:힘쓰는 법을 배우지 말지니 기차와 배로 수백만 근을 한번에 운반하게 될 것이요. 축지술을 배우지 말지니 구름을 타고 바람을 제어하여 수 만리 길을 순식간에 왕래하게 되리라.

 

一九.

바둑도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 남 모르는 공부를 하여 두라. 이제 비록 張良, 諸葛이 두름으로 날지라도 어느 틈에 끼인지 모르리라. 先天開闢以來로 水旱刀兵의 劫災가 서로 替番하여 그칠 새 없이 人世를 殄蕩하였으나 아직 病劫은 크게 없었나니 當來에는 病劫이 全世를 猛襲하여 人類를 全滅케 하되 活方을 얻지 못하리니 모든 奇事妙法을 다 버리고 醫統을 알아 두라. 내가 天地公事를 맡아 봄으로부터 이 東土에 모든 큰 劫災를 물리쳤으나 오직 病劫은 그대로 두고 너희에게 醫統을 붙여 주리니 멀리 있는 珍貴葯品을 重히 말고 純一한 마음으로 醫統을 알아 두라. 몸 돌이킬 餘暇가 없이 홍수 밀리듯 하리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둑에서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두라. 이제 비록 삼국시절 제갈공명, 장량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어느 틈에 끼어 있었는지 모르리라. 선천 개벽이 있은 이후로 홍수와 가뭄 그리고 전쟁의 재앙(劫災)이 서로 그칠 새 없이 번갈아 가며 인간세상을 휩쓸어 왔으나 아직 병으로 인한 겁재(病劫)는 크게 없었나니 이제 오래지 않아 병겁이 전세계를 뒤덮어 인류를 전멸하게 하되 살아 날 방도를 전혀 얻지 못하리니 너희들은 모든 기이한 일과 묘한 법을 다 버리고 오직 의통(醫統)을 잘 알아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봄으로부터 이 동토(東土)에서 모든 큰 겁재는 다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그대로 두고 너희에게 의통을 붙여 주리니 멀리 있는 진귀한 약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말고 순결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의통을 잘 알아두라. 병겁이 밀려 올 때에는 몸 돌이킬 틈도 없이 홍수 밀리듯 하리라." 하시니라.

 

二十.

나의 말은 곧 葯이라.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慰安도 하며 말로써 病든 者를 일으키기도 하며 말로써 罪에 걸린 者를 풀어주기도 하나니 이는 내 말이 곧 葯인 까닭이라. 忠言이 逆耳나 利於行이라 하니 나의 말을 잘 믿을 지어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이 곧 약(約)이라.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여 편안하게 만들기도 하며, 말로써 병든 사람을 살려 일으키기도 하며, 말로써 죄에 걸린 자를 풀어주기도 하나니 이것은 내 말이 곧 약인 까닭이라. 좋은 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동함에는 이롭다 하였으니 나의 말을 잘 믿을지어다." 하시니라.

 

二一.

震默이 鳳谷에게 慘害를 입은 後에 寃을 품고 東洋의 道通神을 거느리고 西洋에 건너가서 文化啓發에 從役하였나니 이제 그를 解寃하여 故土로 돌려와 仙境建設에 從役케 하리라.

평역:진묵대사가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인간세상에 그것을 베풀고자 하였으나 유학자 김 봉곡에게 참혹하게 해를 입고 죽은 후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들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문화 계발에 힘써 일 하였나니 이제 내가 그를 해원하여 옛 땅으로 데려와 신선세계를 건설하게 하는 일에 힘쓰게 하리라.

 

二二.

現下의 大勢가 五仙圍碁와 如하여 二仙은 서로 局을 對하고 二仙은 各히 訓手하고 一仙은 主人이라 垂手傍觀하고 다만 供饋(공궤)만 맡았나니 그러므로 年事만 無欠(무흠)하여 供饋之節만 빠지지 아니하면 主人의 責任은 다하나니 만일 바둑이 마치고 판이 끝나면 판과 바둑은 主人에게로 돌리나니라.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세상의 큰 흐름이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과 같으니 두 신선은 바둑판을 대하고 대국하고 있고 두 신선은 각각 훈수를 하는데 한 신선은 주인이라. 어느 편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대접하는 일만 맡고 있나니 그러므로 접대에만 큰 흠이 없다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니 만일 바둑이 마치고 판이 끝나면 바둑판과 바둑알은 주인에게 다시 돌려지리라." (옛날 한(漢) 고조(高祖)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나 우리나라는 좌상(座上)에서 천하를 얻으리라) 하시니라.

 

二三.

現下의 大勢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 판과 총각 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 나니라.

평역: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지금 세상의 큰 흐름이 씨름판과 같으니 아기씨름판과 총각씨름판이 지난 후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二四.

現下의 大勢가 가구판의 賭博과 같으니 같은 끝 수에 末手가 먹나니라.

평역:현하의 대세가 가구판 노름과 같으니 같은 끝수에 말수가 먹느니라.

第 十 章 文 明

一.

病有大勢

病有小勢

大病無葯小病或有葯然而大病之葯安心安身

大病之葯四物湯八十貼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得其有道則大病勿葯自 小病勿葯自 

至氣今至四月來

醫統

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世無孝世無烈是故天下皆病

有天下之病者用天下之葯厥病乃愈

聖父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葯局在全州銅谷生死判斷

聖神

大仁大義無病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知天下之勢者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有天下之死氣

東有大聖人曰東學

西有大聖人曰西學都是敎民化民

孔子魯之大司寇

孟子善說齊梁之君

近日日本文神武神병務道通

朝鮮國上計神中計神下計神無依無托不可不文字戒於人

宮商角徵羽 聖人乃作先天下之職先天下之業 職者醫也業者統也

聖之職聖之業

평역:(병세문은 두루마리에 써서 물 담은 흰 병 입구를 막아서 차 경석의 집에 두신 것인데 선생께서 화천하신 뒤에 발견되었으나 그 후로 원래의 글은 없어지고 다만 입으로 전해오는 것인데 순서가 많이 바뀐듯 하며 그 이외에 글들도 분명한 기록이 없으므로 들은 대로 기록하니 잘못 기억된 것과 빠진 부분이 없지 않을 줄로 생각된다.)

병의 형세에 대한 글 (病勢文)

병에는 세력이 큰 병이 있고 세력이 작은 병이 있으니(病有大勢, 病有小勢)

병이 큰 데는 약이 없고 병이 작을 때에는 혹 약이 있으니(大病無葯, 小病或有葯)

큰 병의 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며

작은 병의 약은 사물탕 팔십첩이니라.(然而大病之葯 安心安身, 小病之葯 四物湯八十貼)

 

기도(祈禱)

하느님을 모시고 조화의 자리에 합하여 그 은혜를 영원토록 잊지 않고 있사오니 모든 일을 다 알게 하시고 지극한 기운을 이제 이르게 하시어 크게 내려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

큰 병이 생기는 것도 도(道) 없음에서 비롯되고 작은 병이 생기는 것도 모두 도(道) 없음에서 생기니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도(道)를 다시 회복한다면 큰 병이나 작은 병이나 약 없이 저절로 나으리라. (得其有道則大病勿葯自 小病勿葯自 )

지극한 기운이 이제 이르사 사월에 오시고 예(禮)로써 화답하니 의통(醫統)이라.

(至氣今至四月來 禮章)

의통(醫統)

나라의 은혜를 잊은 자도 무도(無道) 함이요 (忘其君者無道)

어버이의 은혜를 잊은 자도 무도(無道) 함이며 (忘其父者無道)

스승의 은혜를 잊은 자도 무도(無道)함이니 (忘其師者無道)

이 세상에 충과 효와 열이 사라짐으로서 천하가 모두 병들었느니라.

(世無忠世無孝世無烈是故天下皆病)

 

병세(病勢)

천하의 병을 낫게 하려고 마음에 뜻을 품은 자는 천하에 있는 약을 써야 병을 낫게 하리라.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葯厥病乃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의 도(道)이니 천지의 도술을 받들도록 하고 약국은 전주 동곡에 있는 도술약국이니 살고 죽음의 생사판단을 하는 곳이니라.

 

聖父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葯局在全州銅谷生死判斷

聖神

크게 어질고 크게 의로우면 병이 없을 것이며 (大仁大義無病) 해원을 다한 삼계의 복마들을 관성대제가 진압하리라.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세상 돌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는 살 기운이 붙어 있고 (知天下之勢者有天下之生氣)

세상 돌아가는 법을 모르는 어두운 사람에게는 죽을 기운이 붙어 있느니라.

(暗天下之勢者有天下之死氣)

동방세계에 큰 성인이 계시니 동학이요. (東有大聖人曰東學)

서방세계에 큰 성인이 계시니 서학이라. (西有大聖人曰西學)

이는 모두 사람들을 가르쳐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데 그 사명이 있느니라.

(都是敎民化民)

공자는 노나라의 대사구 관직에 있었고 (孔子魯之大司寇)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 군주에게 선한 정치를 펴도록 하였느니라.(孟子善說齊梁之君)

가까운 장래에 邪道를 바로잡고 正道를 세우시는 태양(日)이시며 근본(本)되시는 문무신(文武神)이 겸하여 도를 통하게 하려니와 (近日日本文神武神 務道通)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은 의탁할 곳이 없으니 할 수 없이 문자와 오음으로 사람들에게 경계하여 말하노라.

(朝鮮國上計神中計神下計神無依無托不可不文字戒於人 宮商角徵羽)

성인께서 선천에 사람이 마땅히 천하를 위해 해야 할 직책과 업무를 지으시니

(聖人乃作先天下之職先天下之業)

그 직책은 사람을 구해 살리는 일이요 그 업무는 선천의 기운들을 통합하는 일이라.

(職者醫也業者統也) 성인의 직업은 의통이니라. (聖之職聖之業)

 

二.

天下紛운 自作死黨以不安聖上之心以不安聖父之心以不安敎師之心

평역: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천하가 어지러워져서 스스로 무리를 지어 죽을 당(黨)들을 만드니 성상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성부의 마음을 불안케 하며 가르치는 스승의 마음도 불안하게 하느니라."

三.

體面章

維歲戊申十二月七日

道術姜一淳敢昭告于

惶恐伏地問安 氣體候 萬死不忠不孝無序身 泣祝於君於父於師

氣體候大安千萬伏望伏望

평역:하루는 공사를 행하실 때 글을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체면장이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체면장(體面章)

이 해에 이르러 무신 섣달 이렛날 (維歲戊申十二月七日)

전주 동곡 도술약국 강 일순 (道術姜一淳敢昭告于)

황공스럽게 엎드려 문안드리니 (惶恐伏地問安)

부디 기운과 신체를 보살피소서. (氣體候)

불충불효하며 차례를 몰라서 모두 죽을 사람들이여.(萬死不忠不孝無序身)

참 인간의 지도자와 스승과 어버이들에게 축복을 드리나니(泣祝於君於父於師)

그 몸과 마음 크게 평안하소서. 천만번 머리 숙여 바라고 바라노라.

(氣體候大安千萬伏望伏望)

 

四.

天地鬼神祝文

所願人道願君不君願父不父願師不師有君無臣其君何立有父無子其父何立

有師無學其師何立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

 

평역:하루는 공사를 보실 때 글을 써서 불사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천지귀신을 축수하는 글(祝文)이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천지의 귀신에게 축수하는 글 (天地鬼神祝文)

원하는 바 사람의 도리라 (所願人道) 참다운 지도자를 원하나 옳바르게 이끄는 지도자가 없고 어버이를 원하나 자식을 바르게 가르치는 참다운 어버이가 드물고 참스승을 원하나 스승다운 스승이 없으니 (願君不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지도자가 있어도 신하가 없다면 어찌 지도자 노릇을 하며 어버이가 있어도 바른 자식이 없다면 어찌 어버이 노릇을 하며 스승이 있어도 좋은 제자가 없다면 어찌 스승 노릇을 하리요. (有君無臣其君何立 有父無子其父何立 有師無學其師何立) 이런 큰일 작은 일들을 천지의 귀신들은 자세히 살피고 살필지라. (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

 

五.

佛之形體, 仙之造化, 儒之凡節

평역: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술수는 내가 쓰기 위해서 내놓은 것이니라" 하시고 하루는 공사를 보시면서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불도(佛道)의 법은 그 근본 마음의 형상을 찾음이요 (佛之形體)

선도(仙道)의 법은 만물의 조화를 취하는 것이며 (仙之造化)

유가(儒家)의 법은 예의범절을 주장하는 것이니라.(儒之凡節)

천지(天地)의 허무(虛無)한 기운(無極)을 받은 선도(仙道)의 가르침은

인간이 어떻게 신으로부터 포태(胞胎)하여 생겼는지를 가르쳤고

천지(天地)의 적멸(寂滅)한 기운(太極)을 받은 불도(佛道)의 가르침은

인간이 스스로 몸을 길러 신에 이르는 양생(養生)의 길을 가르쳤으며

그 후 천지(天地)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법을 배우게 하여 유가(儒家)의 법으로 인간이 더불어 살며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욕대(浴帶)하는 법을 가르쳤나니 이제 인류가 성숙하니 선생께서 이 세가지 도를 함께 모아 천지와 인간이 함께 성공하는 관왕(冠旺)도수를 쓰시니 유,불,선을 모두 통합하여 쓰시니라.

 

六.

無奈八字至氣今至願爲大降

欲速不達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九年洪水七年大旱千秋萬歲歲盡

佛仙儒

一元數六十三合爲吉凶度數

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姜一淳

五呪

天文地理風雲造化八門遁甲六丁六甲知慧勇力道通天地報恩

聖師

醫統 慶州龍潭

无極神 大道德奉天命奉神敎大先生前如律令審行先知後覺元亨

利貞布敎五十年工夫

평역: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하느님을 모시고 조화를 정하여 영세토록 잊지 않고 만사를 다 알고자 하여 지극한 기운이 내 몸에 이르게 하여 주시길 원하는 "지기금지원위대강" 여덟 자가 하루속히 이루어지지 않음은 구 년의 유교도수(儒 度數)와 칠년의 불교도수(佛 度數)를 지내고 좌우에 유,불(儒佛)의 기운과 더불어 선(仙)을 본체로 삼아 천추만세 나아가기 위함이라. 일원수에 육십삼을 합하면 길흉도수가 되느니라. 십이월 이십육일 재생신(再生神) 강 일순

五呪(오주)

天文地理 風雲造化 八門遁甲 六丁六甲 知慧勇力 道通天地報恩

성스러운 신명과 사람들이여 (聖醫師) 세상의 병을 고치는 법맥(法脈)을 받들어 (醫統) 경주용담의 동학보은신과 무극신의 큰 도덕으로 천명(天命)을 받들고 신교(神敎)를 받들어 대선생 앞에 율령(律令)과 같이 자세히 행하도록 하여야 할지니 먼저 어제까지의 그릇됨을 알아 오늘의 바른 것을 깨닫고 원형이정에 맞게 선천과 후천을 바꾸는 가르침을 널리 펼치니 오십년 공부라.

 

七. (원본에 누락)

 

八.

造 慶州龍潭報恩神

化 法 年

永 至氣今至願爲大降 月

不 師 日

忘 全州銅谷解寃神

평역:병오(1906)년에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귀신은 하늘의 이치(天理)에 지극하니 공사를 행할 때 귀신과 더불어 판단하노라." 하시고 글을 써서 김 형렬의 집 벽에 붙이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

전주 동곡의 해원신 (全州 銅谷 解寃神)

경주 용담의 보은신 (慶州 龍潭 報恩神)

 

九.

一三五七九

二四六八十

成器局 塚墓天地神 基址天地神

運 靈臺四海泊 得體 得化 得明

평역:하루는 구릿골에서 공사를 보시면서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일삼오칠구는 양수(陽數)요, 이사육팔십은 음수(陰數)니 이 둘은 천지의 근본수라. 음수와 양수가 같이 어울리듯 음택(陰宅) 천지신과 양택(陽宅) 천지신이 기국을 이루어 근본마음과 신명(神明)을 잘 운행하여야 온 세상이 고요히 쉬리니 몸받아 화육(化育)되고 밝히라."

 

十.

道傳於夜天開於子 轍環天下虛靈

敎奉於晨地闢於丑 不信看我足智覺

德布於世人起於寅 腹中八十年神明

평역:도를 전할 때는 밤에 전하는 것이 좋고 교는 새벽에 받들며 덕은 널리 세상에 펴야 하느니라. 하늘은 자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에 열리며 사람은 인시에 일어 나느니라. 공자는 평생 천하를 다녀도 허령(虛靈)이었고 석가는 열반에 들 때 나를 보고도 믿지 못하면 내 발을 보고 죽음의 도리를 깨우치라 하였으며 노자는 어머니 뱃속에서 팔십 년을 살다가 태어나서 복중 팔십년신명이라 하느니라.

 

十一. (원본에 누락)

 

十二.

閑談敍話可起風塵閑談敍話能掃風塵

평역:한가롭게 주고받는 말로 능히 천하의 난을 일으키고 한가롭게 주고받는 말로 능히 천하의 난을 평정 하느니라.

 

十三.

天地從容之事自我由之 天地紛亂之事自我由之

평역:이 세상의 모든 분란도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음으로 지각되고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나로부터 비롯되고 이 세상 모든 일의 맺음 또한 나로부터 비롯되느니라.

 

十四.

人生世間何滋味曰衣曰食 衣食然後曰色也

故至於衣食色之道 各 受天地之氣也 惑世誣民者 欺人取物者

亦受天地之氣也

평역:하루는 글을 써서 경석에게 주시며 "이 뒤에 음양(陰陽)의 제한이 없도록 하여 달라고 심고(心告)하라." 하시고 불사르신 뒤에 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사람이 무슨 살아가는 재미가 있으리오. 그것은 먹고 입는 것이라. 먹고 입는 것이 풍족히 갖추어진 후에야 남녀의 사랑도 있으리라. 그런고로 사람이 모두 제각각 입고 먹고 사랑하는 법이 틀려도 그 나름대로 모두 천지의 기운을 받아 이루어 지느니,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어지럽히는 자와 사람을 속여 재물을 갈취하는 자 역시 천지의 기운을 받느니라."

 

十五.

不受偏愛偏惡曰仁 不受專强專便曰禮 不受全是全非曰義

不受恣聰恣明曰智 不受濫物濫欲曰信

평역:치우쳐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아니함을 어질다 하고, 치우쳐 다 옳다 그르다 하지 않음을 의롭다하며, 오로지 강하게 나가거나 적당히 형편따라 하지 않음을 예의라 하며, 스스로 총명하거나 밝다 하지 않음을 지혜라 하며, 물욕을 탐하여 욕심을 부리지 않음을 믿음이라 하니라.

 

十六.

德懋耳鳴 過懲鼻息

평역:덕을 펼칠 때는 귀에 울리도록 힘쓰고 허물은 코로 숨쉬듯 경계하라.

 

十七.

天下自己神 古阜運回 天下陰陽神全州運回 天下通情神井邑運回

天下上下神泰仁運回 天下是非神淳昌運回

평역:하루는 선생께서 구릿골 약방에서 공사를 보시며 형렬에게 명하여 형렬의 딸을 데려오게 하시고 명하시기를 "방 한가운데 청수를 모시고 네 구석에 한 번씩 앉았다 일어나며 청수 그릇을 한 바퀴 돌고 나가라." 하시니 형렬의 딸이 그와 같이 하고 나간 후에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천하의 자기신(自己神)은 고부로 운이 돌아오고 천하의 음양신은 전주로 운이 돌아오며 천하의 통정신(通情神)은 정읍으로 운이 돌아오고 천하의 상하신(上下神)은 태인으로 운이 돌아오며 천하의 시비신(是非神)은 순창으로 운이 돌아 오느니라." 하시고 "회문산(回文山)은 산군(山君) 변산(邊山)은 해왕(海王)의 도수(度數)를 붙여 그 기령(氣靈)을 쓰리라." 하시니라.

 

十八.

潛心之下道德存焉 反掌之間兵法之焉

평역:마음을 낮추어 가라 앉히는데 도덕이 있고 손바닥 뒤집는 사이에 병법이 있느니라.

 

十九.

非人情不可近, 非情義不可近, 非義會不可近, 非會運不可近,

非運通不可近, 非通靈不可近, 非靈泰不可近, 非泰統不可近

평역:인정이 없는 곳은 가까이 하지 말고, 정이 있더라도 의롭지 않으면 가까이 하지 말고, 의롭더라도 모임이 아니면 가까이 하지 말고, 모임이라도 운수를 받지 못하는 곳은 가까이 하지 말고, 운수라도 형통하지 못하면 가까이 하지 말며, 형통하더라도 신령스럽지 않으면 가까이 하지 말며, 신령스럽더라도 밝고 크지 않으면 가까이 하지 말며, 비록 밝고 크더라도 법통을 이어 받은 곳이 아니면 가까이 하지 말라.

 

二十.

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爲天下者不顧家事, 桀惡其時也 湯善其時也,

天道敎桀於惡, 天道敎湯於善, 桀之亡湯之興在伊尹

평역:하루는 류 찬명이 선생을 모실 때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마음을 바르게 한 후에야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느니 천하사를 위해 일하는 자는 집안 일을 돌보기 어려우니라. 걸임금이 악정을 편 것도 그 때가 있으며 탕임금이 선정을 베푼 것도 그 때가 있으니 하늘이 걸임금을 내어 악한 것을 가르치고 탕임금을 내어 선함을 가르쳤나니 걸임금이 망하고 탕임금이 흥하게 되는 것이 다 이윤에게 달려 있었느니라."

 

二一.

萬國活計南朝鮮, 淸風明月金山寺, 文明開化三千里, 道術運通九萬里

평역:세상 모든 나라를 살릴 계책이 남조선에 있고 밝은 달빛 맑은 바람은 금산사에서 불어오네. 후천 문명은 삼천개의 나라에서 꽃피우고 도술문명은 구 만리에 통하리라.

 

二二.

世界有而此山出, 紀運金天藏物華, 應須祖宗太昊伏, 道人何事多佛歌

평역:세상에 이 산이 솟아 있어 후천 가을 기운을 머금고 있구나, 마땅히 선천문명의 으뜸이며 첫머리는 태호복희씨인데 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어찌 부처만 찾을까.

 

二三.

厥有四象包一極, 九州運祖洛書中, 道里不暮禽獸日, 方位起萌草木風,

開闢精神黑雲月, 遍滿物華白雪松, 男兒孰人善三才, 河山不讓萬古鍾

평역:사상(四象=水火金木)은 일극(一極= 中央土)을 둘러 있으니 세상의 운세는 낙서에서 살펴 보라. 세상은 도리(道理)가 사라진 금수시대라. 새 기운이 싹을 틔워 초목에 바람이 이네. 개벽 정신은 검은 구름 속의 달과 같고 세상이 온통 눈 덮인 중에 소나무 홀로 푸름과 같구나. 어느 누가 우주의 삼재에 능하리오. 산과 물은 만고의 세월을 울리는 소리에 응하노라.

 

二四.

龜馬一道今山河, 幾千年間幾萬里, 胞連胎運養世界, 帶道日月旺聖靈

평역: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원리로 살아 온 산하 몇 천년동안 몇 만리를 지내 왔구나. 가을개벽 성숙의 운수 포태(胞胎)하여 세상을 길러 왔나니 변화의 길을 여는 일월에 성령(聖靈)이 충만하구나.

 

二五.

金屋瓊房視逆旅, 石門苔壁儉爲師, 絲桐蕉尾誰能解, 竹管絃心自不離,

匏落曉星霜可履, 土墻春柳日相隨, 革援甕畢有何益, 木 耕牛宜養 

평역:선생께서 이 치복과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불가지(佛可止)는 부처가 가히 그칠 곳이란 말이요. 그 곳에서 '가활만민(可活萬民)' 이라 일러 왔으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을 건지리라' 하시고 가마를 타고 불가지로 가시며 옛 글 한 수를 외우시니 이러하니라. "호화로운 집과 화려한 방을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으로 보고 돌문에 이끼 낀 벽 검소한 살림살이를 본 받으라. 사동(絲桐)과 초미(蕉尾)의 음을 누가 능히 알리요. 피리와 거문고 소리 하나로 어우러지고, 박 떨어지는 새벽별 비치는 아침 서리를 밟고 흙 담장에 봄버들 날로 서로 가까워지네. 마원과 필탁의 일이 무슨 이로움이 있으리오, 소 몰고 농사지으며 마땅히 큰 뜻을 기르리라."

 

二六.

面分雖舊心生新, 只願急死速亡亡, 虛面虛笑去來間, 不吐心情見汝矣,

歲月汝遊劍戟中, 往劫忘在十年乎, 不知而知知不知 嚴霜寒雪大洪爐

평역:기유(1909)년 봄에 구릿골에 계시며 대공사를 행하실 때 등불을 처마에 달고 공사를 행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오랫만에 어렵게 빠져나오는구나." 하시며 시를 읊으시니 이러하니라. "너와 내가 비록 대한지는 오래지만 대할 때마다 마음은 새로워오고 다만 원하는 것은 속히 이 세상을 개벽하는 것이라. 그냥 만나 헛웃음 지으며 오고 가는 사이에 그대를 보고도 내 심정을 털어놓지 못하노라. 세월은 전쟁속에서 흘러 가는데 그 오는 겁액이 십 년 세월속에 있음을 잊지 말지니 안다고 해도 모를 것이요, 모른다해도 알게 될 것이니 그것이 아무리 큰 겁액이라도 끝날 때는 큰 화로에 눈 녹듯 하리라."

 

二七.

元亨利貞道日月, 照人臟腑通明明

평역:만물을 기르는 천지의 마음은 해와 달의 운행과 같은 원형이정의 도(道)요. 그 빛이 사람의 몸 속을 비추니 조화광명에 통해 있어 밝고도 밝구나.

 

二八.

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出艮兌宮

평역:선생께서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군산으로 떠나실 때 김 병선에게 명하시어 글 한 수를 외우게 하시니 이러하니라. "영원토록 평화의 꽃 만발한 건곤의 자리 온 천지에 개벽의 광명 밝으니 간태궁이라."

 

二九.

經之營之不意衰, 大斛事老結大病, 天地眷佑境至死, 漫使兒孫餘福葬

평역:정미(1907)년에 농바우에서 수일 동안 공사를 행하시고 돌아오실 때 글 한 수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천하의 일을 경영하다가 뜻하지 않게 쇠약해지니 일을 이루려고 하다가 큰 병을 맺으리라. 천지가 도와주어도 마침내 죽음에 이르리니 자손들의 남은 복마저 묻어 장례 지내는구나."

 

三十.

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

평역:해와 달은 사사로운 마음없이 만물을 다스리고 강과 산은 자기 주어진 길을 따라 만물을 포용하며 감싸고 흐르느니라.

 

三一.

天是天非修道道, 不求俗地得長生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글 한 수를 외어주시니 이러하니라. "하늘이 행하는 일을 두고 옳다 그르다 하지말고 열심히 수도(修道)하며 세상의 속된 욕망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구하라."

 

三二.

心深黃河水, 口重崑崙山

평역:입은 곤륜산같이 무겁게 다스리고 마음은 황하수같이 깊이 간직하라.

第 十一 章 引 古 文 明

(從徒들에게 외어주시면서 잘 記憶하여두라 하신 것)

一.

三人同行七十里, 五老峯前二十一, 七月七夕三五夜, 冬至寒食百五除

평역:세 사람의 동행(일본과 독일과 이태리)은 칠십리(己卯 - 乙酉까지 七年)를 가고 오래된 산봉우리 앞은 스물하나 이니라. 칠월칠일 저녁 (丁丑年,1937年 七月七日 저녁 中日戰爭시작)과 팔월 보름 밤 (乙酉年,1945年 八月十五日 밤 解放)이라. 동지부터 한식까지 백오를 제하라.

 

二.

步拾金剛景 靑山皆骨餘 其後騎驢客 無興但躊躇

평역:하루는 종도들에게 옛 글을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걸어서 금강산을 구경하니 푸른 산이 모두 뼈대만 앙상하구나. 그 뒤에 나귀타고 찾아온 남쪽 나그네가 흥취없이 머뭇거릴 뿐이더라."

 

三.

我得長生飛太淸, 衆星要我斬妖將, 惡逆최折邪魔驚, 섭강履斗濟光靈

天回地轉步七星, 禹步相催登陽明, 一氣混沌看我形, 음음急急如律令

평역: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 하니라. "내가 장생을 얻어 하늘에 나니 많은 별들이 나에게 요사스러운 귀신을 없애달라 호소함으로, 패악과 무도함을 자르니 사악한 마귀들은 놀라고 천강성을 끼고 북두성을 밟아 신령하고 빛나는 영(靈)을 건지노라. 내가 하늘과 땅을 운행하고 북두칠성에 걸어서 바쁜 걸음 재촉하여 밝은 세계에 오르니 천지가 우주조화의 혼돈 속에서 내 모습을 보고 나를 본받아 내 명에 따라 행하는구나."

 

四.

一身收拾重千金, 頃刻安危在處心

평역:내 한 몸을 잘 수습하는 것이 천금보다 소중하니 순간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모두 마음쓰기에 달려 있느니라.

 

 

第 十二 章 化 天

一.

戊申[1908年]에 先生이 高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變改함이 없겠느냐" 대하여 가로되 "어찌 변개 할 리가 있사오리이까." 先生이 다시 글 한수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無語別時情若月 有期來處信通潮"

평역:무신(1908)년에 선생께서 고 부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변치 아니하겠느냐." 하시니 고 부인이 "어찌 변함이 있겠습니까." 하시므로 이 대답을 듣고 선생께서 글 한 수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말없이 헤어질 때 정은 으스름 달빛 같으나 다시 돌아 올 것을 믿는 마음은 조수(潮水)처럼 어김이 없네."

 

二.

또 高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여덟가지 병으로 어떻게 苦痛하리오. 그중에 丹毒이 크리니 이제 그 毒기를 除去하리라" 하시고 그 손등에 침을 바르시니라.

평역:다시 고 부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을 때 어떻게 여덟가지 병으로 고통을 당하리오. 그 중에 단독(丹毒)이 크리니 이제 그 독을 제거하리라." 하시고 고 부인의 손등에 침을 바르시니라.

 

三.

또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그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홀로 맡아서 處理하리오" 하시니 高夫人은 어느 外處에 出行하실 말씀으로 알았더라.

평역:다시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으면 그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혼자 맡아서 처리하리오." 하시니 고 부인은 선생께서 어느 곳에 멀리 가시는 줄로만 알았더라.

 

四. (원본에 누락)

 

五.

己酉[1909年] 二月에 金自賢을 데리고 金堤 內住坪 鄭南基의 집에 가사 일러 가라사대 이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妻族들을 일일이 찾으리라 하시고 燈燭을 들리시고 終夜토록 여러집을 찾으신 後 翌日 새벽에 水閣里 林相玉의 집에 가시사 公事를 行하시고 萬頃三街里에 이르사 쉬시며 가라사대 今日午後에 白虹이 貫日하리니 내가 잊어버리더라도 네가 잘 살펴보라 하시더니 果然 午後에 白虹이 貫日 하니라.

평역:기유(1909)년 2월에 김 자현을 데리고 김제 내주평 정 남기의 집에 가시어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친척들을 낱낱이 찾으리라." 하시고 등불을 들리시고 새벽까지 여러 집을 다니신 후에 이튿 날 새벽에 수각리 임 상옥의 집에 가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곳에서 글을 쓰고 그 종이를 가늘게 잘라 잇고 집 뒷담에서 앞 대문까지 펼치니 그 종이 길이와 대문까지의 거리가 꼭 맞느니라) 공사를 행하시고 (선생께서 그 동네에 사는 김 문거(金 文巨)에게 가셨다가) 다시 만경 삼거리 주막집에 이르시어 쉬고 계시는데 한 스님이 앞을 지나가는지라. 선생께서 그 스님을 불러 돈 세 푼을 주시더니 자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 오후에 흰 무지개가 해를 가로질러 생기리니 내가 잊어버리더라도 네가 잘 살펴보라." 하시더니 과연 오후에 흰 무지개가 해를 가로 질러 생기더라. (그리고 다음날에는 형렬로 하여금 전주로 동행하게 하셨는데 이에 앞서 선생께서 "오늘 너희가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 이르시니라.)

 

六.

三月에 金自賢에게 일러 가라사대 학질로도 사람이 傷하느냐 대하여 가로되 학질이 세 축째에는 거적가지고 달려 든다하오니 이 말이 傷한다는 말 일 것이외다. 가라사대 진실로 그러하리라 하시고 全州로 가셨더니 그 後에 自賢의 八十高齡의 祖母가 문득 학질을 앓아 세 축 되는 날에 死亡하거늘 先生이 돌아오사 가라사대 학질로 傷한다 함이 옳도다 하시고 그 準備하여 둔 棺안에 누우시며 가라사대 내 몸에 맞는다 하시더니 그 後에 自賢을 불러 가라사대 棺材 한 벌을 準備하여야 하겠으니 朴春京의 집에서 販賣하는 棺材中에 잘 맞을 것으로 가려오라 내가 將次 죽으리라. 自賢이 가로되 先生이시여 어찌 이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시니라.

평역:기유(1909)년 3월에 김 자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학질로도 사람이 상하느냐." 하시니 자현이 답하기를 "학질은 세 축째에 거적을 갖고 달려든다 하오니 이 말이 상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진실로 그러하리라." 하시고 전주로 가시더니 그 후에 자현의 팔십고령인 할머니가 갑자기 학질을 앓아 세 축 되는 날에 사망하거늘 선생께서 돌아 오시어 "학질로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옳도다." 하시고 그 준비하여 둔 관안에 누워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 몸에 맞는다." 하시더니 그 후에 자현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관재(棺材) 한 벌을 준비하여야 하겠으니 박 춘경의 집으로 가서 판매하는 관재 중 잘 맞는 것을 가려오라. 내가 장차 죽으리라." 하시니 자현이 말하기를 "선생이시여 어찌 이런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하시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구나." 하시니라.

七.

하루는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의 얼굴을 잘 익혀 두라. 後日에 出世할 때에는 눈이 부시어 보기 어려우리라. 또 가라사대 예로부터 神仙이란 말은 傳說로만 내려왔고 본 사람은 없었으나 오직 너희들은 神仙을 보리라.

평역:하루는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 나의 얼굴을 잘 익혀 두라. 후일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는 눈이 부시어 보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신선이란 말은 전설로 내려왔으나 본 사람은 없었으나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하시니라.

 

八.

또 가라사대 사람의 죽음 길이 먼 것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 나는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죽음길이 먼 것이 아니라 문턱밖이 곧 저승이니 나는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하시니라.

 

九.

하루는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世代가 너무 惡하여 몸둘 곳이 없으므로 將次 깊이 숨으려 하노니 어디가 合當하리오. 辛元一이 對하여 가로되 邊山속에 隱僻處가 많으니 그곳으로 가사이다. 先生이 對答치 아니하시니라.

평역:하루는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이 너무 악하여 몸을 둘 곳이 없으므로 장차 깊이 숨으려 하니 어디가 좋겠는냐." 하시니 (채사윤(蔡士允)이 내장사로 가심이 좋겠다 말씀드리니 내장사로 가자 하시더니) 신 원일이 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변산쪽에 은밀히 숨을 곳이 많으니 그 곳으로 가심이 어떠하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

 

十.

또 가라사대 내가 金山寺로 들어가서 佛養畓이나 차지하리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금산사에 들어가서 불양답이나 차지하리라." 하시니라.

 

十一.

또 가라사대 내가 金山寺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金山寺로 오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 하시니라.

 

十二. (원본에 누락)

 

十三.

黃應鍾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을 때 네가 나를 보지 못하여 哀痛하며 이곳에 往來하는 거동이 내 눈에 森然히 나타나노니 내가 네 등뒤에 있어도 너는 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찾아야 서로 만나리라.

평역:황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을 때 네가 나를 볼 수 없음을 애통해하며 이곳을 왕래하는 모습이 내 눈에 선하게 떠오르니 내가 네 등 뒤에 있어도 너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요, 내가 너를 찾아야 서로 만나리라." 하시니라.

十四.

또 모든 從徒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제 몸을 避하려 하노니 너희들이 能히 찾겠느냐. 모두 對하여 가로되 찾겠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오 내가 너희들을 찾아야 만나보게 되리라.

평역:또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몸을 피하려 하니 너희들이 나를 능히 찾겠느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여 말하기를 "찾겠나이다." 하므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 할 것이요, 내가 너희들을 찾아야 만나보게 되리라." 하시니라.

 

十五.

俚言에 이제 보니 水原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낯을 잘 익혀두라.

평역:속담에 "이제보니 수원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낯을 잘 익혀두라." 하시니라.

 

十六.

또 가라사대 내가 將次 열 석자의 몸으로 오리라.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장차 열석자의 몸으로 다시 오리라." 하시고 (수운가사에 "발동 말고 수도하소 때 있으면 다시 오리." 라고 하였으니 알아 두라 하시니라.)

 

十七.

六月 旬間에 모든 從徒에게 六月二十日에 銅谷藥房으로 모이라고 通知를 發하시니라.

평역:유월 중순에(초 열흘께) 모든 종도들에게 통지하시기를 "유월 스무날에 동곡약방으로 모이라." 하시니라.

 

十八.

二十日에 모든 從徒가 銅谷에 會集하니 先生이 앞에 一列로 돌려 앉히고 물어 가라사대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모두 對하여 가로되 믿나이다. 또 가라사대 죽어도 믿겠느냐. 모두가 가로되 죽어도 믿겠나이다하니 대개 從徒들은 天下事를 하려는데 危地에 들어가서 죽을지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았더라.

평역:유월 스무날에 종도들이 구릿골에 모이니 선생께서 모든 종도들을 선생의 앞에 한 줄로 돌려 앉히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들에게 다 각기 운수를 정하였나니 잘 받아 누릴지어다. 만일 받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성심(誠心)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시고)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여 말하기를 "믿나이다." 하니 다시 말씀하시기를 "죽어도 믿겠느냐." 하시므로 모두 말하기를 "죽어도 믿겠나이다." 하니라. 그러나 종도들은 선생께서 천하의 일을 도모하는 공사를 행하시려 하시는 데 위험한 곳에 들어가서 죽을 지경을 당하더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았더라.

 

十九.

이때 先生이 돈 四十圓을 櫃中에 藏置하사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시니라.

평역:(유월 스무하루에 신 원일, 이 치복이 채 사윤과 그의 처남으로부터 얼마의 돈을 가져오니 선생께서 원일에게 명하시어 금전 가져온 사람의 이름을 써서 불사르시고) 형렬에게 명하시어 돈 일부를 궤 속에 넣어 두고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시니라. (남은 돈으로는 여러 사람의 양식에 충당하게 하시니라.)

 

二十.

이 때에 甲七에게 將令을 붙여 西洋으로부터 雨師를 넘겨 오신 後에(제 四章에 己現함) 柳贊明이 여쭈어 가로되 이러한 妙法을 世人이 다 알지 못하오니 願컨데 世人으로 하여금 널리 알게 하소서 先生이 가라사대 너는 내가 길게 살기를 바라는도다 하시고 古詩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稚子哭問母何之, 謂道靑山採藥遲, 日落西山人不見, 更將何說答啼兒" 또 南原 楊進士의 自挽詩를 외우시니 이러하니라. "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又有江南楊進士, 자고芳草雨蕭蕭"

평역: 선생께서 김 갑칠에게 장군의 영(令)을 붙여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넘겨 오신 후에 류 찬명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이러한 묘법을 세상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오니 원컨데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알게 하소서."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도다." 하시고 옛 시 한편을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어린아이가 울면서 어머니 간 곳을 물으니 저 청산에 약초캐러 간 발걸음이 더디다 말하더라. 해는 서산에 지고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장차 무슨 말로 저 우는 아이를 달래리오." 하시고 다시 남원 양진사의 시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시는 이 태백이요, 술은 유령(伶)인데 한번 청산에 묻히니 모두 소식 없구나. 이 강남의 양 진사도 잡풀 우거지고 자고새 우는 곳에 한 번 죽어 묻히면 쓸쓸한 비바람만 뿌리리라."

 

二一.

二十一日夜에 先生이 金松煥으로 하여금 金自賢을 부르사 물어 가라사대 네가 나를 믿느냐. 自賢이 對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믿음이 不足할진대 古阜禍亂끝에 곧 背反하였을 것이외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제 일이 있어서 將次 어디로 떠나려 하노니 돌아오도록 잘 믿고 있으라. 만일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나니라. 自賢이 請하여 가로되 내가 모시고 따라 가려하나이다. 가라사대 너는 갈곳이 못되나니라.

평역:유월 스무하루날 밤에 선생께서 김 송환에게 김 자현을 불러 오게 하시고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믿는냐." 하시므로 자현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제가 만일 믿음이 부족하였다면 고부화란이 끝난 후에 곧 배반하였을 것입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제 일이 있어서 장차 어디로 떠나려 하노니 내가 돌아오도록 잘 믿고 있으라. 만일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하시므로 자현이 청하기를 "제가 모시고 따라가려 하나이다." 하니 "너는 갈 곳이 못 되느니라." 하시니라.

 

二二.

二十二日에 亨烈을 불러 가라사대 네가 나를 믿느냐 對하여 가로되 믿나이다. 가라사대 聖人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古代에 子思는 聖人이라. 衛候에게 말하되 "若此不己國無遺矣"라 하였으나 衛候가 그 말을 不用하였음으로 衛國이 慘滅하였나니 나의 말도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지니 오직 너는 나의 말을 믿어라.

평역:유월 스무이튿날에 형렬을 불러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믿느냐." 형렬이 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믿나이다." 하니 다시 말씀하시기를 "성인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옛적에 공자의 제자인 자사(子思)는 성인이라. 위(衛)나라 제후(諸侯)에게 말하기를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 하였으나 위나라 제후가 그 말을 듣고 쓰지 아니하였으므로 위나라가 참혹하게 망하였나니 나의 말도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지니 오직 너는 나의 말을 믿어라." 하시니라. (또 가라사대 믿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되리니 너는 알아서 할지어다.)

 

二三.

또 亨烈에게 물어 가라사대 네가 내 事務를 堪當하겠느냐. 亨烈이 對하여 가로되 才質이 鈍薄하고 所學이 없사오니 어찌 能히 堪當 하오리까. 先生이 가라사대 未有學養子而後에 嫁者也라. 舜이 耕歷山하고 漁雷澤하고 陶河濱할때에 璿璣玉衡(선기옥형)을 알지 못하였나니 當局하면 아나니라.

평역:또 형렬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의 일을 감당하겠느냐." 하시니 형렬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재질이 둔박하고 배운게 없사오니 어찌 능히 감당 하오리까." 하니 선생께서 들으시고 (꾸짖으시니 형렬이 다시 대답하여 "가르침에 힘입어 감당하겠나이다."하니) "처녀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미리 다 알고 시집가는 일 없느니라." 하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순 임금이(虞舜)이 역산(歷山)에서 밭 갈고 뇌택(雷澤)에서 고기잡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 빚을 때에 선기옥형을 알지 못하였으니 일이란 닥치면 알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二四.

또 일러 가라사대 모든 일에 삼가하여 無恨有司之不明하라. 馬謖은 孔明의 親友로되 處事를 잘못함으로 揮淚斬之하였나니라.

평역: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을 할 때에 삼가하여 맡은 바 일을 분명하게 처리하여 한(恨)을 남기지 않도록 하라." 하시고 마속은 공명의 친한 벗이었지만 일을 잘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죽음을 당하였으니 부디 삼가 할지어다." 하시니라.

 

二五.

이 달 旬間부터 食事를 廢하시고 燒酒만 마시시다가 二十二日에 亨烈을 命하사 麥飯을 지어오라하시니 곧 지어 올리거늘 先生이 보시고 다시 가져다 두라 하시더니 半日을 지난 後에 命하사 다시 가져오니 밥이 쉬었거늘 가라사대 이는 絶祿이니라 하시니라.

평역:선생께서 유월 중순부터 소주만 드시고 식사를 전폐하시다가 이레만인 유월 스무이튿날에 형렬을 명하시어 "보리밥을 지어오라." 하시므로 곧 지어 올리니 선생께서 보시고 "다시 가져다 두라." 하시더니 반나절이 지난 후에 "다시 가져오라." 명하시거늘 다시 가져오니 밥이 쉬었는지라.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절록(絶祿)이라." 하시니라.

 

二六.

二十三日에 藥房廳上에 누우셨다가 다시 뜰에 누우시고 또 사립門 밖에 누우셨다가 亨烈에게 업혀서 亨烈의 집에가 누우셨다가 다시 藥房으로 돌아오사 이렇게 四五次 往復하시니 亨烈이 매우 疲困하거늘 京石이 가름하여 二回를 往復한 後에 또 다섯사람을 시켜 四肢와 머리를 各各 붙들어 떠메이고 藥房으로 가서 누우사 가라사대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나니라 하시며 京石으로 하여금 "全羅北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湖南西神司命"이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평역: 유월 스무사흩날 (오후에) 약방 마루위에 누우셨다가 다시 뜰에 누우시고 또 사립문 밖에 누우셨다가 형렬에게 업히셔서 형렬의 집에 가서 누우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시기를 네다섯번을 반복하시니 형렬이 매우 피곤하므로 경석이 대신하여 두어차례를 왕복한 후에 또 다섯사람을 시켜 사지(四肢)와 머리를 각각 붙들어 떠 메이게 하시고 약방으로 가시어 누우사 말씀하시기를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우덕면(優德面) 객망리(客望里) 강일순호남서신사명(姜一淳湖南西神司命)" 이라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二七.

이날 밤에 朴公又를 寢室로 불러들여 같이 주무실 때 夜深한 後에 公又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 脣舌에 崑崙山을 달아라. 戊辰 冬至에 起頭하며 묻는者가 있으리니 醫統印牌 한 벌을 傳하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시니라.

평역: 이 날(스무사흗날) 밤에 박 공우를 침실(寢室)로 불러들여 같이 주무실 때 밤이 깊은 후에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의 입술에 곤륜산(崑崙山)을 달아라. 무진(1928)년 동짓날에 너를 찾아와서 묻는 자가 있으리니 그에게 의통인패(醫統印牌) 한 벌을 그에게 전하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시니라.

 

二八.

二十四日 早朝에 京石을 불러 들이사 흘겨보시며 가라사대 똑똑치도 못한 것이 무슨 鄭가이냐 하시더라.

평역:유월 스무나흗날 아침에 경석을 불러 들이시어 흘겨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鄭哥)냐." 하시니라.

 

二九.

二十四日 辛丑 巳時에 先生이 亨烈을 命하사 蜜水一器를 가져오라하사 마시시고 亨烈에게 몸을 의지하시고 합然히 化天하시니라. 亨烈, 京石等 모든 從徒들이 先生의 屍體를 房中에 모시고 門을 닫고 나와 歎息하여 가로되 허망한 일이로다. 大人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아무 異狀없이 睡眠함과 같으리오 하니 문득 비가 뿌리며 雷聲이 大發하고 電光이 閃삭하니라.

평역:단기 4242년 기유년(1909년) 6월 24일 신축(辛丑) 사시(巳時)경에 선생께서 (약방 대청에서 수박에 소주를 타서 우물에 담갔다가 다시 가져오게 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수박을 먹으면 곧 죽으리니 내가 죽은 후에는 묶지도 말고 그대로 관 속에 넣어두는 것이 옳으니라."하시니라.) 다시 형렬에게 명하시어 꿀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시어 마시시고 형렬 에게 몸을 의지하여 조용히 누우시더니 (가는 소리로 태을주를 읽으시다가) 홀로 화천(化天)하시니라. (이 때에 종도들이 무더위를 피하여 후원 죽림에 모여있다가 황 응종이 선생께서 계신 방이 너무 조용하기에 이상한 마음이 들어 방을 들여다보니 선생께서 조용히 누워 계시는데 가까이 가서 자기 뺨을 선생의 얼굴에 대어보니 이미 화천하셨는지라, 응종이 놀라 소리치니) 나갔던 형렬, 경석등 모든 종도들이 선생의 시신(屍身)을 방에 모시고 문을 닫고 나와 탄식하며 말하기를 "허망한 일이로다. 대인(大人)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주무시는 것 같이 아무 이상도 없이 돌아가시리오." 하니 문득 맑았던 하늘에서 천둥이 크게 일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비가 쏟아지며 약방지붕으로부터 빛이 하늘까지 뻗치니라. (이 때가 이조 순종 융희 3년이며 양력으로 1909년 8월9일로 39세 이시니라.)

 

三十.

이 날에 古阜 本宅에 通訃하여 先生의 父親을 모셔오고 机中에 藏置한 돈으로 治喪하니라.

평역:이 날에 고부 손바래기 본댁에 알려서 선생의 부친을 모셔오고 궤 안에 준비해 두셨던 돈으로 상을 치르니라.

第 十三 章 先 生 의 異 表

 

一.

先生이 가라사대 나는 곧 彌勒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金山彌勒을 보라하시고 또 가라사대 金山彌勒은 如意珠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입에 물었노라하시며 下脣안에 朱點을 보이시더라.

 

평역: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을 보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금산사 미륵전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며

아랫입술 안에 있는 붉은 점을 보이시니라.

 

二.

또 가라사대 나는 곧 三離火로다.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삼이화니라." 하시니라.

 

三.

또 가라사대 나는 곧 天地日月이로다.

평역: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천지일월이로다." 하시니라.

 

四.

先生의 面貌는 圓滿하사 金山彌勒과 같으시니라.

평역:선생의 얼굴은 두루 원만하시어 금산사 미륵과 같으시니라.

 

五.

先生은 左手掌에 任字紋과 右手掌에 戊字紋을 有하시더라.

평역: 선생의 왼손에는 북방 임(壬)자 무늬가 있으시고

오른손에는 별 무(戊)자 무늬가 있으시니라.

 

六.

先生은 兩眉間에 佛表를 有하시더라.

평역:선생의 두 눈썹사이에는 선생께서 미륵부처이심을 나타내는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더라.

 

昭和四年 七月 二十七日 印刷 大 巡 典 經

昭和四年 七月 三十 日 發行 定價 金 壹圓五拾錢

編輯兼 發行人 李 祥 昊

發行所 全北金堤郡水流面金山里龍華洞 東華敎會道場

印刷所 每日申報社

發賣元 李 成 英

 

 

 

대순전경 초판본(大巡典經 初版本)의 원문(原文)과 평역(平譯)

글쓴이 : 푸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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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평역을 마치면서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도올 김용옥의 金剛經 講解에 나오는 학문하는 자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내용들은 이러하다.

 

첫째, 경전의 역사적 배경과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오늘 나의 역사적 관심에 대해

일단 상세한 정보와 객관점 관점이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그리고 경전의 판본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그리고 그 쓰여진 문자에 대한 이해, 그 어휘와 문법에 대한

통시적이고도 공시적인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셋째, 그리고 "나의 이해"에 앞선 모든 기타해석의

가능성에 대하여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나의 이해를 선택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나의 이해의 최종적 결과를 옮겨놓을 생각을 하지말고

그 이해에 도달하게 된 과정을 독자와 공유할 생각을 해야한다.

다섯째, 번역은 "文義의 해석"이 아니라 곧 그 文議에 대한 "나의 이해의 구조"를

오늘 여기의 좌중들에게 밝히는 작업이라는 투철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 나의 깨달음을 타인의 깨달음으로 회향(廻向)시키려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그 열정속에서 우리는 모든 방편을 구사하는데 있어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고전이나 여타 문헌을 다룰 때 반드시 "판본"의 문제를 고려할 것이다.

그리고 판본의 선택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타 판본들을 비교하고 검토할 것이다.

나는 도올 김용옥의 추종자도 아니며

기성종교의 추종자도 아니며 한 때 인연으로 증산선생을 모시는 종단에

몸담은 적도 있었으나 그 특정종단에 연연하는 사람도 아님을 먼저 밝힌다.

다만 내가 증산선생을 처음 모시고 신앙했을 때 깊이 의문을 가진 증산종단의

분열과 서로 상극(相剋)하는 이유들 중 하나가 통일된 경전의 부재(不在)로

인식하고 내가 그 일의 기초에 쓰일 돌 하나를 놓아 보았으면 하는 욕심으로

이런저런 자료들을 모아 어지럽게 늘어놓고 헤메는 중에

도올 김용옥의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 읽고 깊이 공감하였고

혹시 나처럼 길을 잃었거나 증산선생에 대한 자료의 부족을 느끼고

그것을 찾는 분들에게 나의 어리석은 이 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임을 밝히며

나는 학문으로서가 아닌 한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증산선생을 모시는 사람이며

천박하고 부족하나마 그 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으며

그 분의 가르침에 보답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임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떨치지 못하는 구습(舊習)으로 인하여 형성된 나의 모습으로

증산선생에 대한 나의 글을 판단하거나 그 분을 이해한다면 그 분의 가르침대로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없는 나로 인하여 증산선생(甑山先生)을 욕되게 하는

천년을 두고 씻을 수 없는 나의 불찰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밝히는 이유는 이 책을 만나게 된 분들이 선입견으로

나의 의도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함인데

내가 한 때 속해있던 종단의 특정한 견해를 무의식중에 따르더라도

그것은 나의 부주의로 비롯함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

또한 내가 개인적으로 상제(上帝)님이라고 믿는 분을 감히 선생(先生)이라

이 책에 통일하여 쓰고있는 이유는 증산교단내에서도 선생에 대한 호칭이

통일되지 않아 천사(天師), 선생(先生), 상제(上帝), 대성(大聖), 도조(道祖),

대선생(大先生)등으로 여러 책들이 각자 다르게 표기하고 있어 호칭에

통일을 기하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이며

이 책을 쓰게 된 의도가 증산선생을 아직 모르는 분들을 위함인 것이

두 번째 이유이며

비록 시대적 상황이 일제시대라 책에 기록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고

김형렬종도와 차경석종도의 진술에 치우쳐 의존했던 바가 많지만

선생의 가르침이 아직 종도들의 귓전에 생생하던 그때

즉 교단이 분열되기 발행된 대순전경 초판본의 기록에 충실하고자 함이

세 번째 이유이다.

내가 대순전경 초판본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증산(甑山)선생을 모시는

여러 단체들의 경전들이 약간씩 내용의 차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던 중

그 이유가 종통계승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이다.

그 후 1983년 겨울에 서울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시는 분이 가지고 있던

대순전경 초판본을 복사하였고 그 후 여러 증산교단의 경전들과 관련 책들을

구해서 읽고 대순전경 초판본과 비교분석하며 왜 무엇 때문에

그러한 차이가 있는지를 스스로 대답하며 생각해 왔다.

그 결과 모든 책의 기초적 약속인 정직(正直)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 예를 들면 판본을 명시하지 않고 대순전경에 기록되기를

또는 대순전경 몇장 몇절에 등으로 표기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구절을 삽입하거나,

원문(原文)의 글자를 교정하였다는 설명도 없이

다른 글자로 바꾸거나, 마음대로 책의 내용을 바꿔 빈 공간으로 두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숨기거나, 타종교의 경전을 표절하여 그 방식을 본받는 등

부정직(不正直)의 예는 수없이 많다.

그리하여 여러 판본과 현재의 증산교단의 경전들이 나타나기 전에 발행되었고

최초의 증산교단 경전(經典)으로 볼 수 있는 대순전경 초판본을

비록 일제시대라는 상황을 고려하여야 하고 오자(誤字)가 있더라도 보태거나

수정함이 없이 원문 그대로 다시 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대순전경에 나오는 선생의 말씀은

번역하거나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것 일 뿐 아니라

보편성과 책임없는 해설이나 번역을 낳게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대순전경 초판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대로의 원문(原文)을 평역하여 증산선생의 말씀을 비결서를

공부한 사람이나 주역에 능통한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닌

선생께서 재세(在世)하여 계시던 그 당시 선생을 모시고 따르던

평범한 종도(從徒)들처럼 한자(漢子)에 밝지 못한 많은 이들과

요즈음의 한글세대들이 선생의 체취를 조금이라도

느낄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과한 욕심을 부려 평역(平譯)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 또한 순수한글세대라 한문에 밝지 못하고

나의 공부가 일정한 깊이에 이르지 못하여 조금도 선생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평역(平譯)을 감행함으로서 감히 풀이해서는 안되는

부분에까지 풀이를 시도(試圖)하거나 뜻에 어긋난 오역(誤譯)을 하거나

자료수집의 부족으로 인하여 나의 글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 것임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그러나 그 치우침이나 오역(誤譯)은 참조한 문헌을 일일이 밝혀

나의 부족함을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보완 할 수 있도록 하고,

감히 나의 무지(無知)로 인하여 풀이를 시도(試圖)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용서를 바라며 나의 이 헛된 노력이 증산선생(甑山先生)을 모시고 따르는

모든 교단(敎團)들이 화합하고 상생(相生)하여 선생의 높으신 이상(理想)을 펼치고

후천선경(後天仙境)을 여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남 진주에서 푸른글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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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譯 大巡典經 主要關聯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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