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전경 : 공사(工事)

전경 공사 1장 7절 (조선朝鮮/청국淸國/일본日本 명부(冥府)를 각각 주장하게 함) - 대순진리회 : 강증산 -

^___^ 2020. 6. 22. 12:19

전경 공사 1장 7절 (조선(朝鮮)청국(淸國)일본(日本) 명부(冥府)를 주장하게 함) - 대순진리회 : 강증산 -

 

 

상제께서 김 형렬의 집에서 그의 시종을 받아 명부공사를 행하시니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조선명부(朝鮮冥府)전명숙(全明淑)으로, 청국명부(淸國冥府)김일부(金一夫)로, 일본명부(日本冥府)최수운(崔水雲)으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곧 “하룻밤 사이에 대세가 돌려 잡히리라”고 말씀을 잇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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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부(朝鮮冥府)

각(各) 나라마다 명부(冥府)가 존재(存在)하는데 선천에서는 명부를 주장하던 신명이 그 역할(役割)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여 혼란이 초래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신명(神明)으로 바꾸어야 하므로 조선명부(朝鮮冥府)는 전명숙(全明淑)이 주장하게 하였다

http://webzine.daesoon.org/m/view.asp?webzine=115&menu_no=1994&bno=3507&page=1

 

전명숙(全明淑)

전명숙(全明淑)은 전봉준(全琫準, 1855년 1월 10일(1854년 음력 12월 3일) ~ 1895년 4월 24일(음력 3월 30일))을 일컫는다. 조선의 농민 운동가이자 동학의 종교 지도자이다.

전제정권과 탐관오리의 부패를 여러 번 상소하여 개정하려 노력하는 등 민권을 제창한 혁명가요, 사상가이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의 남접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명숙(明淑), 다른 이름은 영준(永準)이며 호는 해몽(海夢)이다. 녹두장군(綠豆將軍)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키가 작아 붙여진 별명이다.

 

1894년 3월 21일(음력 2월 15일) 그는 거병을 선언하고 전봉준은 선두로 나서 수백 명의 동학교도를 이끌고 만석보를 파괴하고 고부 관아를 공격하게 되며, 이를 고부 봉기, 제1차 봉기라 한다. 이에 놀란 군수 조병갑은 줄행랑을 놓았고, 전봉준은 관아의 무기를 탈취하고 세금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며, 부패한 관리들을 붙잡았다. 

수탈에 앞장섰던 아전들을 처단하고 불법으로 징수한 세곡을 탈취하여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편 감정이 격해 죄없는 관리들도 관리라는 이유로 처벌하려는 동학농민군을 만류하여 진정시키기도 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B%B4%89%EC%A4%80

 

청국명부(淸國冥府)

각(各) 나라마다 명부(冥府)가 존재(存在)하는데 선천에서는 명부를 주장하던 신명이 그 역할(役割)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여 혼란이 초래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신명(神明)으로 바꾸어야 하므로 청국명부(淸國冥府)는 김일부(金一夫)가 주장하게 하였다

 

김일부(金一夫)

김일부(金一夫: 1826 ~ 1898)는 독특하고 심오한 사상체계를 제시하였는데 평등 ∙ 사랑 ∙ 조화를 염원하고 이상향인 유리세계(琉璃世界)가 온다고 주장한 그의 사상은 60세때 정역(正易, 1885년)으로 체계화되어 나타났다. 

 

정역팔괘도

그는 주역의 체계를 『음을 누르고 양을 높이는 선천의 심법지학(心法之學)이요, 정역의 체계를 『양을 고르고 음을 맞추는 후천의 성리지리(性理之理)』라 하여 대비시키고 있다. 억음존양(抑陰尊陽)을 봉건적 진통의 수직적 신분질서라고 하다면 조양율음(調陽律陰)은 근대적 이념의 수평적 평등사상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정역의 선 ∙ 후천사상은 하나의 혁명사상이요, 한말의 역사적 전환기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공자를 선천의 성인으로 존중하며 천지의 유형지리(有形之理)를 통달 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일부 자신은 천지의 무형지경(無刑之景)을 통찰했다고 밝혔다. 유형(有形)한 세계속에 보편적 이치를 파악하는 공사의 하학상달(下學上達)은 분명히 초월적 영역의 체험이 중요한 종교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역은 십오 일언(十五 一言)과 십일 일언(十一 一言)의 二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10은 무극(無極)으로 하늘을 상징하고, 5는 황극(皇極)으로 땅을 상징하며, 1은 태극(太極)으로 사람을 상징한다. 무극 ∙ 태극 ∙ 황극의 합일을 주장하는 정역의 기본원리는 인간과 천지 우주의 일치라는 이상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곧 모든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의 궁극적 완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역의 정신은 미래적이고 완성적이며 이상적인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정역의 상수론적(象數論的) 논리는 천문 ∙ 역학 ∙ 역사의 변화도수를 해명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모든 변화와 현상의 궁극적 중심으로써 황극(皇極), 중(中)의 강조이다. 여기에서 일부사상의 통일성 ∙ 조화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http://webzine.daesoon.org/board/Print.asp?idx=2625

 

일본명부(日本冥府)

각(各) 나라마다 명부(冥府)가 존재(存在)하는데 선천에서는 명부를 주장하던 신명이 그 역할(役割)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여 혼란이 초래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신명(神明)으로 바꾸어야 하므로 일본명부(日本冥府) 최수운(崔水雲)이 주장하게 하였다

 

최수운(崔水雲)

동학의 창시자. 천도교의 제1세 교주. 경주사람.  어릴때의 이름은 복술(福述) 또는 제선(濟宣)이라 했다.
이름은 제우(濟愚), 호는 수운(水雲)·수운제(水雲齋). 본래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서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일찍 부모를 잃어 한 때 아내의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 무명 행상을 직업으로 전국 각처를 돌아 다녔다.

 

1855년에 금강산 유점사에 있다는 어떤 중으로부터 받은 〈을묘천서(乙卯天書)〉로 도를 깨닫고, 1857년에 천성산 적멸궁에서 49일간 기도를 끝내고 도술을 부리기 시작하여 차츰 기인(奇人)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하였다. 1859년에 경주 용담정에서 보국안민의 대도를 깨치기 위한 수도를 시작하여 1860년에 유·불·선의 동양 삼교를 토착화 하고 민간신앙에 융합하여 시천주(侍天主)의 사상을 핵심으로 한 인내천(人乃天)의 교리를 완성하고 동학을 창시하였다.

 

그는 천(天)·인(人)을 대도의 근원으로 하고, 성·경·신(誠敬信)을 도의 본체로 하며, 수심정기(修心正氣)를 수도의 요결로 삼아 포교를 시작하였다. 교세가 차츰 퍼져 1863년에는 교인 3천 여명과 접소(接所) 14개 소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동학의 급격한 팽창을 두려워하여 동학을 이단사설(異端邪說)이라 하여 1864년에 최수운을 체포하여 대구에서 혹세무인·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처형하였다.

 

제자 최시형(崔時亨)이 뒤를 이어 2세 교주가 되었고, 1893년에 그의 신원(伸?)을 탄원하는 교조 신원운동은 1894년에 동학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최시형 역시 1898년에 체포되어 처형되자 3세 교주 손병희가 1905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삼일운동을 주도하였다. 그의 유문(遺文)을 뒤에 최시형이 편찬한 것이 〈동경대전〉으로 천도교의 기본경전이 되었다. 동경대전 이외에도 〈용담유사(龍潭遺詞)〉가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최수운을 강증산과 함께 선지자(先知者)라 높이 평가하였다.

http://blog.daum.net/manicom/14214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