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사왕(帶素王) - 부여 갈사왕 (생사년 미상 / 재위년 AD22 ~ ?) :: 부여왕 - 5
: 부여 갈사왕(帶素王) 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여 갈사왕(帶素王)
부여의 5번째 왕
- 재위 : AD22 4월~ ?
- 왕호 : 갈사왕(曷思王)
- 이름 : 미상
- 아비 : 금와왕(金蛙王)
- 아들 : 미상(기록에 남아있지 않으나 그의 손자에 대한 기록이 도두왕(都頭王)으로 남아있어 단지 존재를 추정할 따름이다.)
- 손자 : 도두왕(都頭王)
- 형제 : 대소왕(帶素王), 추모(鄒牟)를 비롯한 7형제 중 막내
- 친척 : 종제(從第 : 사촌동생)
갈사왕(曷思王)은 대소왕(帶素王)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추모(鄒牟)의 손자 대무신왕(무휼)의 장수 괴유(怪由)에게 전사당하자 국력이 기울 것임을 예감하였다.
※ 갈사왕 즉위 및 갈사부여 건국
갈사왕(曷思王)은 나라가 망할 것을 예감하고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피난하였다.
갈사왕(曷思王)이 압록곡(鴨淥谷)에 이르렀을 때 해두국왕(海頭國王)이 마침 사냥 나온 것을 발견, 그를 죽이고 백성을 빼앗아 나라를 갈사수(曷思水)가에 도읍을 정하여 갈사부여를 건국하였다.
※ 갈사왕 사촌동생 종제의 고구려 투항
대소왕의 종제(從第, 사촌동생)는 고구려 대무신왕 5년(서기 22년) 7월에 부여 사람 1만여 명을 이끌고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대소왕이 죽고 부여가 망하자 백성들은 의지할 곳이 없고, 대소왕의 동생(→갈사왕)은 도망하여 갈사에 도읍을 정하였고,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부여를 부흥시킬 수 없다"고 투항한 이유를 말하였다.
고구려 대무신왕은 그의 등에 줄무늬가 있어 락씨(絡氏)라는 성을 내리고 부여왕으로 봉한 후 고구려 연나부(掾那部)에 거주하게 하였다.
BC 22 4월 - 대소왕이 전사 후 100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피신, 갈사수에 도읍을 정한 뒤 부여의 지류국가인 갈사부여를 세움.
BC 22 7월 - 대소왕의 종제(사촌동생)은 부여인 1만명을 이끌고 고구려에 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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